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62화 (6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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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살아남은 이들이 모여든 곳.

안전지대.

수십만중 살아남은 이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제법 한가락 능력들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돋보이고 튀는 이들은 일곱가문 직속으로 들어갔지만 당연히 모두가 그럴리야 없다.

누군가는 누가 머리 위에 있는것이 싫어서.

누군가는 소속될만한 곳이 필요해서.

누군가는 일곱가문을 견제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하나둘씩 모인 이들이 지하 9층에 자리를 잡고 그 한켠에 또아리를 틀었다.

대륙 박물관이라는 곳에, <볼츠>라는 이름으로.

"뭐하는 곳인데 그래서."

대륙박물관쪽으로 대략 100m정도.

입구 갈림길에서 떨어져나와 좀더 깊숙히 들어온 강태석이 껌 형태의 보조회복제를 질겅질겅 씹으며 물었다.

확실히 위세는 있는듯하다.

간간히 자신들이 들어왔던 9층 입구로 들어오는 이들이 자인공방 방향으로 향하긴 해도 이곳, 대륙박물관 쪽으로는 오지 않는걸 보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는 뭐하는 녀석들인지 알수가 없다.

그냥 무력있고 능력좋은 녀석들이 어느정도 뭉쳤다 정도?

심지어 그 실력도, 숫자도, 세력도 정확히 알수없는 상황.

그런 강태석의 말에 여인이 의외라는듯 빙글빙글 웃었다.

"그런 태도로 나와도 돼? 지금 나한테 부탁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냐? 이 도시에서 일곱가문 눈치 안보고 있을수 있는곳은 우리밖에 없다고."

그 말에 강태석이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아까전 소녀를 보며 끌어올린 입꼬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물론 자신이 일곱가문이라는 녀석들과 정면대결해서 이길 자신이 있는건 아니다.

머리수도 머리수거니와 평범하지가 않을테니까.

세피로트 타워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마 평범한 생존자들은 상상도 못할만한 것들로 무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정면으로 붙거나 평생 여기서 살아야할때의 이야기고.

자신은 적당히 시간만 끌고 숨어다니다가 배가 도달하면 떠나버리면 된다.

즉 딱히 마음이 급하지는 않다는 이야기.

하지만...

'안쓰러워 죽겠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소녀를 보던 강태석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이야기나 들어보지."

"끝까지 고자세네. 뭐 좋아. 그정도 줏대는 있어야지. 실력도 있는것같고."

저멀리 입구쪽, 아직도 기절해있는 일곱가문 직속 남녀들을 흘긋 바라본 여인이 강태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길테니까. 따라와."

이에 강태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과 그뒤쪽, 길게 뻗은 통로를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길, 깊게 뻗은 통로.

사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 들어가는건 적진 한복판으로 가는거나 마찬가지다.

이녀석들이 아까전 쓰러트린 녀석들보다 더 적대적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표정이나 기세를 보아하니 그런것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후우웅...

저너머, 대놓고 뿜어져나오는 스산한 살기.

레이져포인트는 없지만 보나마나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저격들이 느껴진다.

이미 이곳부터가 녀석들 영역인 셈.

잠시후.

"가자고."

어깨를 으쓱한 강태석이 여인의 뒤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

"왓... 저 녀석 볼츠 소속이었어? 어쩐지 어느날 안보이더니."

강태석을 따라걷던 소녀가 구석에서 여유로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며 쉬고있는 사내를 보며 작게 소리쳤다.

넓은 박물관 형태의 공간.

대부분의 유리들은 깨지고 전시관 군데군데들은 파여있었지만 대리석 바닥은 제법 깨끗했고 전시용 벽면으로 구분된 각 공간들은 아늑했다.

그 군데군데마다 자리잡고있는 남녀들.

숫자는 대략 수십 가량.

안에 있는 커다란 매트리스들과 고풍스러운 가구, 풍족하게 쌓인 물자들.

마치 하나하나가 잘 만들어진 가구매장의 매대를 보는듯하다.

위쪽, 폐허에서 간신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풍경.

그런 소녀의 말에 따라걷던 강태석이 슬쩍 보며 물었다.

"유명한 친구야?"

"그럼. 도시 북쪽에서 저녀석 모르면 간첩이었다고. 어느날 사라졌더니 여기있었구나."

속삭이는 소녀의 말에 앞장서서 걷던 여인이 웃었다.

"그럼. 다들 나름 한가락 하는 편이지."

"물자는 왜 이렇게 많지? 딱히 열심히 보물찾기같은걸 하는것같지도 않던데."

강태석이 배정된 개인공간마다 산처럼 쌓인 물자들을 보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녀석들은 바깥활동을 그리 적극적으로 하는것같지도 않고 소형플랜트같은걸 소유하지도 않았다.

한데 쌓인 물자는 그와 달리 한가득.

말하자면 무산계급인데 가진건 많으니 궁금할 수밖에.

그런 강태석의 말에 여인이 피식 웃었다.

"힘이 없으면 일해야하지만 우린 그런게 아니니까. 가만히만 있어도 일곱가문들에서 정기적으로 물자를 지급해주지. 중립을 지키는 대가로. 뭐 시간남거나 심심하면 보물찾기해서 이것저것 더 벌어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러며 발걸음을 옮기던 여인이 어느순간 멈춰섰다.

그런 여인을 따라걷던 강태석과 소녀의 눈에 보인건 여인의 앞, 모여있는 수십명 가량의 남녀.

무슨 작품을 전시했던 곳인지 제법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곳의 안에 수십명의 이들이 앉은채 도착한 여인과 강태석, 소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오던 길에 각자가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있던 것을 생각하면 이질적인 광경.

<고대제국-일월 발굴물품 전시관>

입구위에 붙은 안내판을 스윽 지나친 여인이 가장 가운데, 회의를 진행하듯 선 사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왔어."

"왜 이렇게 늦어. 중요한 회의라니까. 그리고 그 뒤는 누구야."

"신입. 들이고 싶어서."

"이 시기에?"

눈썹을 꺾는 사내의 말에 여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쓸만할거야. 그리고 아니면 뭐..."

그러며 말을 줄이는 여인의 모습에 인상을 쓰던 사내가 이내 얼굴을 풀고는 한발 물러섰다.

됐다는 뜻.

"이리와 이리와. 같이 들어."

한구석에 앉는 여인의 손짓에 강태석이 털썩 옆에 주저앉았고 소녀도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옆에 앉았다.

쉴새없이 옆에 있는 이들의 면면을 흘금흘금 살피면서.

잠시후.

"그럼 시작하지. 오늘 의제는 간단해. 그간 많이 이야기가 나왔던 거니 낯선 이는 없겠지."

주변에 앉은 수십을 주욱 둘러보다 입구의 여인과 강태석을 한번 바라본 사내는 마저 말을 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곱가문을 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겠다."

이야기를 들은 순간.

"아 제길."

'잘못 들어왔다.'

구석에 앉아있던 강태석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

강태석이 그냥 여차저차 따라와본 이유는 세가지 정도였다.

첫번째, 이미 빠져나가기에도 녀석들 영역이었고.

두번째, 사실 뭐하는 녀석들인지 조금 들어보고 싶었던것도 있으며.

세번째, 소녀의 반응을 보니 조용하게 사는 녀석들같은데 설마 뭔 사고를 치랴 하는 마인드도 있었다.

즉 별 큰일에 휘말릴것같지 않았다는 의미.

한데 들어오자마자 저런걸 꺼내?

거기에 저런 이야기는 그냥 듣는것 자체가 문제다.

이걸 자신들이 들었는데 나중에 볼일없다고 고분고분 보내주겠느냐... 이거다.

"하."

그제서야 말을 줄이던 여인과 사내의 반응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강태석이 오만상을 썼다.

이건 그냥 어긋나면 시체로 내보내겠다는 뜻.

'신나네 아주그냥.'

어느새 진중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흘금 본 강태석은 시선을 돌려 정면, 사내를 바라보고는 자세를 풀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인드로.

그런 강태석과 여인, 그리고 주변 수십을 향해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이제까지 일곱 가문이랑 우리는 별탈없이 지내왔어. 내놓을것 내놓고 서로 건드리지만 않으면 좋게좋게 가자는 주의였지. 한데 최근에 이녀석들 동태가 영 수상해."

그러며 사내가 한곳을 바라보자 앉아있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이는 열다섯정도.

옆의 소녀와 별반 차이도 없어보이는 수준.

하지만 몸의 기도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눈에 봐도 한가락하는 기세를 풍기는 소년이 사내를 대신해 말을 이었다.

"지하 10층 아래서부터 주기적으로 개인용 전파방해장비 신호가 잡혀요. 누군가 돌아다닌다는 소리인데... 알다시피 옆의 희귀동물 보호센터랑 지하 10층 아래는 그 짐승 <쿤츠> 녀석들이 점령해서 갈수가 없는 상태죠. 만약 거길 들어갈수 있는 녀석들이라면..."

"그래. 일곱가문 녀석들 뿐이겠지. 따로 자기들 지하랑 샛길같은걸 만들어놨을테니. 그런데 그게 뭔 상관이야? 집주인이 지하실 좀 들락날락거리는게 문제가 돼?"

누군가의 퉁명스런 질문에 말을 멈춘 소년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상관이 있죠. 일곱 가문은 우리를 눈의 가시로 여기고 있으니까. 아래서 몰래 폭약같은 거라도 설치하고 있으면요?"

이에 퉁명스런 대답을 한 남자 외에 모여있던 모두가 미간을 찌푸렸다.

말 그대로.

이 아래층은 그 끝도 없는 짐승, <쿤츠> 놈들의 영역.

지금은 9층과 10층사이, 붕괴된 구멍을 통해 <조금> 빠져나와 우글거리는 정도지만 만약 이곳이 통째로 붕괴된다면?

자신들이 볼츠가 아니라 볼츠 할아버지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사내가 덤덤히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다들 일곱 가문과의 충돌이 껄끄러운걸 알아. 일단 당장은 싸울 이유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저녀석들은 우릴 공격할 이유가 충분해.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상황은 심상치 않아. 점점 더 자일 공방쪽으로 가는 녀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점점더 동나가는 1-8층.

점점더 배고파지는 이들.

자일 공방은 일곱가문의 수족녀석들이 모이는 곳.

즉 이곳과 자일공방이 자신들과 일곱가문의 대립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지금이야 자신들이 강하다.

늑대가 개들보다 약할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그 개들의 숫자가 점점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얼마전 가문들이 연합해서 무기고 일부를 털어온 뒤로는 더더욱!

이제는 쓸모없어보이던 녀석들도 말 잘듣고 무장좀 채워놓으면 쓸만해지는 상황.

반대로 자신들은 허접한 녀석들은 물흐린다고 안그래도 전력이 부족한데 서로 걸러내기나 하고 있다.

앞으로 감당못할 정도로 차이가 나면 일곱 가문은 손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남은 방법은 둘중 하나.

"승부를 걸던가. 아니면 녀석들 밑으로 들어가야한다. 단 후자의 경우 모조리 뿔뿔히 흩어지겠지. 가서 무슨 대우를 받을지도 전혀 짐작할수 없고."

"..."

사내의 말에 인상을 쓰던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처음에는 단순한 반발심이었지만 이제는 사이가 너무 틀어져버렸다.

녀석들이 자신을 인재로 대접할지, 아니면 본보기로 삼을지 알수없는 상황.

심지어 그때는 전혀 대항할수 없게될것이다.

지금과 달리 모두가 흩어져 나약해진 상태일테니.

잠시의 고민후.

"... 계획은?"

"간단해. 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 집고넘어갈게 있지."

누군가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 사내가 입구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여인옆, 뭔가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강태석과 소녀를 향해.

"그래. 신입. 어때? 우리랑 함께 이곳의 물자를 생존자들에게 고르게 분배하는 대업에 참여하는건?"

이에 사내를 비롯한 모두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강태석과 소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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