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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47화 (47/221)

47화

"같이?"

"부품들이 모자라요. 가서 필요한게 있으면 직접 살피고 가져와볼까 해서요."

달리안의 말에 강태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리가 있다.

달리안은 현재 배의 모든 유지와 보수를 책임지고 있으니까.

하물며 추가적인 부품을 확보하면 제작가능한 기기들도 늘어날 것이다.

당장 무기고를 통째로 챙겨올수도 없으니 필요부품을 구분할수 있는 달리안의 동행은 분명 유의미.

하지만...

"안돼. 위험해."

강태석이 달리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형은 알지만 그곳에 뭐가 있을지는 모른다.

상자가 있는건 알지만 뭐가 담겨있을지는 모르는 셈.

아린이나 군파츠, 하다못해 아너스빌이라면 모를까 싸울줄도 모르는 달리안을 데리고갈수는 없다.

하다못해 동행한다면 일단 자신이 갔다와 주변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그런 강태석의 말에 달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제 몸은 제가 지킬수 있어요. 더 그러려고 가는거기도 하고."

그말과 동시에.

쿠우웅...

쿠우우우웅...

달리안의 손짓을 따라 거대한 무언가가 복도를 타고 쿵쿵거리며 갑판 위로 올라왔다.

등장한건...

"기계인형?"

한데 뭔가 좀 생긴게 봤던 것과 다르다.

강태석이 갑판위로 올라온, 크기 10m에 달하는 거구의 기계인형과 키 3m의 날렵한 기계인형을 바라보았다.

**

카티에 의해 상체가 꿰뚫려 박살난 기계인형, 베티.

강태석에 의해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박살난 갑주무사.

달리안에 의해 본인 쇠망치로 머리가 박살난 여덟팔의 거구인형, 로아니로.

이를 떠올린순간 강태석은 눈앞, 두구의 기계인형들이 뭐가 다른지 알수 있었다.

머리가 없어야할 로아니로의 육체에 자신이 챙겨왔던 갑주무사의 머리가 달려있다.

단, 달려있는 팔은 네개뿐.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있어야할 베티의 가슴팍은 로아니로의 그것과 비슷해보이는 색의 기계부품들로 메워져있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색을 띈, 하지만 밸런스맞게 날렵하게 조정된 두 팔과 함께.

"잘 조립했네. 로아니로에서 팔 두개랑 부품을 떼서 베티에게 가져다붙인건가?"

"코어도요. 로아니로는 코어가 두개더라고요. 덕분에 팔은 이제 네개만 쓸수있지만."

키이잉..

멀쩡하게 작동하고있는 두 기계인형을 보며 강태석이 감탄했다.

내부 부품을 활용했다지만 분명 모자란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데 배안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이렇게 재생시키다니.

전투능력이야 안봐서 모르지만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다면 달리안이 저렇게 말하고있지도 않을터.

강태석이 신기하다는듯 다가가 거구의 기계인형을 쓰다듬어보려던 그때.

키이이잉.

철컥.

<만지지마라. 이 건방진 녀석아. 네가 비겁한 수로 날 이긴게 아직도 뼈에 사무치니까.>

"???? 살아있었어? 로아니로?"

<로아니로라니. 내 이름은 크탄이다. 싸운 상대의 이름정도는 알아둬라.>

고개를 내려 퉁명스레 내뱉는 갑주무사, 크탄의 말에 강태석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달리안이 조정하는 녀석인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있다니?

그런 강태석의 모습에 로아니로의 옆, 베티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살아있다는 표현은 웃기네요. 하지만 인지와 기억이 보존된 채 재가동된건 맞지요. 주인은 바뀌었지만.>

말을 마치고 뒤로 스윽 와 부드럽게 껴앉는 베티의 양팔을 살짝 어루만진 달리안이 강태석을 보며 말했다.

"이 둘이 저를 지켜줄거에요. 같이 가도 되겠죠?"

이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은 적이었을때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력이었다.

하물며 둘이 호위한다면 모자랄일은 없는 셈.

'오히려 내가 보호받아야하는거 아냐?'

키이잉...

쿠웅.

달리안의 양옆으로 든든하게 선 두 기계인형들을 보며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

도시, 폐허.

쿵...

쿵...

등뒤에 전파방해기기를 멘채 한팔에 달리안을 안고 쿵쿵 걷는 크탄을 보며 강태석이 감탄 아닌 감탄을 토했다.

전파방해기기까지는 그렇다 쳤다.

강태석 본인이 감탄한건 <비틀> 우산.

크기가 6m에 달하는 기계병기, <비틀>의 외골격 껍데기에 길이 5m의 강철봉을 끼워만든 커다란 우산이 크탄과 달리안뿐 아니라 그아래의 베티와 강태석까지 널찍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싸움이 끝나고 배안에 굴러다니던 기계병기 파편을 이런식으로 재활용할 줄이야.

덩치가 너무 커서 숨어다닐수가 없기에 달리안에 대한 저격은 어찌 해결할까 했는데 이런걸 쓰고 있으면 저격걱정을 할 일은 없다.

'거기다 뭔가 부럽네.'

한팔엔 우산, 한팔엔 달리안.

그래도 팔 두개가 남는다.

엄청 편하게 가고있는 달리안을 강태석이 슬쩍 바라보자 쿵쿵 걷던 크탄이 어림도 없다는듯 손을 내저으며 기가 찬다는 음성을 토했다.

<헛꿈꾸지마라. 너 같은 녀석을 안고 갈 생각은 없으니. 그나저나 정말 이해가 안가는 놈이구나. 천생 무골을 타고났으면서 그리 몸쓰는걸 싫어해?>

"? 무골이 뭔지 안다고?"

강태석이 걷다 고개를 들어 크탄을 바라보았다.

무골을 안다고?

그 개념은 무협계쪽에나 발달되어있지 이곳 세계에는 제대로 자리잡혀있지 않다.

상위 귀족가들이라면 모를까 기계인형이 그걸 안다니?

그런 강태석의 눈길에 크탄이 콧김을 뿜듯 콧가를 철그럭거렸다.

<무시하지 마라. 이 몸은 태어난 기간을 얼마 안되어도 많은걸 익히고 배웠으니. 애초에 내가 있던 지하에선 할게 별로없었지.>

중앙플랜트를 말하는 모양.

그런 크탄을 빤히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내 녀석이 내뱉었던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무골.

무를 위한 골격, 무를 위한 육체.

'싸우기 좋은 몸이긴 해.'

강태석이 자신의 손발을 내려다보았다.

이 아바타는 현실, 플레이어의 가장 건강한 시절을 추정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게임속에 들어와서야 강태석은 본인의 육체가 나름 싸움에 타고난 육체였다는걸 깨달았다.

무기를 휘두르기에 좋은 균형잡힌 신체비율, 물흐르듯 힘의 연계를 이어주는 이상적인 근육분포, 잘 지치지않게 해주는 고른 무게중심과 높은 전신연동에 의한 기술의 빠른 습득 등등.

스탯이 같아도 형에 따라 전투력과 학습력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마치 키와 체중, 근육량이 같아도 축구나 수영의 학습속도가 천양지차가 나듯 말이다.

싸울일이 없었던 현실에선 알수 없었던 요소.

이를 통해 강태석은 무협계뿐 아니라 여러 세계의 초중반부에서 제법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10레벨 전까지 먹히는 단어.

10레벨이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현실을 지나 환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수 없는 경지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나마 현실적인 개념인 무골 따위는 가져다 붙일수도 없는 사기적인 것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천무지체, 선골, 혈마신체, 기타등등.

남들이 한걸음 내딛을때 열걸음을 넘어 백보를 뛰고 천리를 나는 이들.

일반 플레이어인 강태석은 그정도의 사기적인 어드벤티지를 가지고 시작할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업그레이드를 할수는 있다.

성장이야말로 플레이어로서의 특권.

이는 나중에 찬스가 오면 진행하면 되리라.

애초에 이정도 스테이지에서는 그런 사기적인 육체를 가진 녀석은 만날 일도 없을테니 딱히 페널티로 느껴질 것도 아니고.

'아 아니지. 하나 있나.'

지금쯤 배에 남아있을 아너스빌을 떠올린 강태석은 이내 손에 들린 칠채영창을 붕붕 휘둘러보았다.

어느새 목적지가 다가왔기 때문.

후우우웅...

강태석이 무너진 폐허사이, 낡아빠진 작은 철문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아니지만 저게 무기고로 내려가는 입구.

17번 시작포인트는 무기고와 특히 가까운게 강점중 하나이기에 금방 도착할수 있었다.

그 사이 전혀 습격을 받지 않은게 의외이긴 했지만 말이다.

"... 설마 이도시에 생존자가 아무도 없는건가."

끼이익.

철문을 밀어제낀 강태석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럴수도 있다.

고립된 세계, 어느곳의 모든 이들이 죽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까.

씁쓸한 표정을 지은 강태석은 좁은 입구, 크탄을 세워둔채 베티와 달리안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괜스레 머리속에 떠오르려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버리니 남는것은 기대.

'뭔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군.'

하지만 15층에 달하는 계단을 내려가 철문을 박살내고 들어간 강태석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반가워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헷갈려야만 했다.

이유는... 그야말로 지하의 무기고가 그야말로 텅텅 비어있었기때문.

수천평에 달하는 공간이 싹 털린 상태.

"흐하... 생존자가 있나본데."

<어머. 마냥 반갑지 않나봐요? 인류애 부족.>

입을 가리며 웃는 베티의 말에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다 죽어있는 것도 씁쓸하지만 생존자가 있다니 또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떤 이들일지, 어떻게 나올수 알수가 없으니까.

거기에 이곳의 무기들을 싹 털어갈 정도면 그 세력도 보통이 아닐걸로 추측되는 상황.

"정말 깔끔하게 다 가져갔네요."

주변 선반을 살피던 달리안이 나지막히 중얼거리던 그때.

터어어엉!

터엉!!

콰아아아앙!

"!"

위쪽에서 울려퍼지는 요란한 소음.

근원지는 계단위, 크탄이 있을 장소.

이에 눈을 마주친 강태석과 달리안이 이내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

지상.

콰아아아아앙!

등에서 뽑혀나와 크탄의 손에 잡힌 네개의 태도가 투박하면서도 잘 맞물린 선들을 그려내며 사방을 휩쓸었다.

목표는 사방, 십수대의 장갑차에 탄채 자신을 향해 굵은 금속사슬작살들을 쏘아대는 수십명의 남녀들.

<건방진 놈드으을! 감히 나를 짐승 상대하듯이 사냥하려고 해?>

콰드드드드드득!

쩌어어억!

거칠게 휘둘러진 태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사방에서 옭아매려드는 사슬과 작살들이 쩍쩍 쪼개지고 잘려나갔다.

하지만 쪼개지는 사슬의 숫자, 그 이상으로 계속해서 쏘아지는 사슬작살들의 수가 많은 상황.

거기에 상대해야할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계인형이다! 월척이야!

아직 저런놈이 이근방에 있었어?

접근하지 말고 싸워라!

철커덕...

철컥...

분주하게 움직이며 소리친 이들이 장갑차의 뒷문을 열자 길이 3m에 가까운 커다란 기갑창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기갑식 투창.

끝에는 기계병기들의 동력원에 의해 발생하는 파괴장을 휘감은채 뒤로는 고폭화약을 통해 폭발적으로 가속하는 병기.

철컥.

길이 1m에 달하는 손잡이를 들어 안전핀을 뽑은 이들이 그대로 전력을 다해 창을 내던진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내던져진 힘에 더해 화약의 폭발력으로 수십미터 거리를 격렬하게 가속한 길이 3m의 쇳덩어리들이 시뻘건 에너지장을 휘감은채 사방에서 내리꽃혀 크탄의 전신을 후려쳤다.

이어 터져나오는 자욱한 흙먼지, 매캐한 연기.

방심하지 마라!

작살 준비!

고함성에 맞춰 장갑차 상부에 장착된 거치식 사슬작살 발사기가 그대로 연기속을 겨누던 그때.

터어어엉!

"어이. 크탄. 살아있지?"

!!!!!!!!!!!!

스르렁...

철컥.

무기고 철문을 뻥차며 나타난 사내, 강태석의 외침에 정면을 집중하던 이들이 표정을 굳히며 허리춤에 차고있던 각종 병기들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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