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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38화 (38/221)

38화

손에 들린 작은 무선통신기기.

철컥...

이를 본순간 강태석이 눈매를 좁혔다.

'사용법을 알았구나.'

긴급좌표지정기.

그 코드가 담긴 휴대용 기기.

저걸 누르는 순간 입력된 좌표로 하늘에서 불벼락이 쏟아진다.

그리고 아마 지정된 좌표는 이곳, 핵융합엔진과 자신들이 선 대지일터.

하늘로 무선통신기기를 높이 쳐든 칼슨이 멈춰선 강태석들을 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으흐흐흐. 그래. 이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구나. 그럼 이게 떨어지면 아무리 너희라도 다 죽는다는건 알고 있겠지."

흰빛의 갑옷.

기계병기, 센티널.

바디슈트.

일반적인 화력으로는 흠집도 안날것같은 병기들.

하지만 이를 보면서도 아랑곳하지않는 칼슨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누르는순간 작렬하는건 군용 <전술전략> 폭격.

갑옷이고 나발이고.

단 15초간 진행될 뿐이겠지만 그정도면 일시에 자신들을 지워버리기 부족함이 없다.

아니, 그걸 넘어 아마 그들이 선자리 이곳으로 지하 200m에 달하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날 터.

그런 이들을 향해 칼슨이 후욱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핵융합엔진을 너희맘대로 가져가는건 있을수 없어. 약속해라. 나를 비롯한 연합 전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겠다고. 쓸데없는 갑질따위 부리지 않고 말이야."

"아니 아빠 왜그래. 그냥..."

"좀 닥쳐 이 철부지들아!"

칼슨이 말리는 청년과 여인, 아들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위기상황이라고 해서 약세보이고 밀리면 끝장이다.

그래, 녀석의 배에 타야한다는건 인정한다.

하지만 피난민 녀석들마냥 도주하듯 타는게 아니다.

이정도 위기라면 충분히 자신들, 공업단지에 모인 연합들의 저력으로 이겨낼수 있단 말이다!

'최소한... 최소한 힘의 균형추는 맞춰놓고 타야해!'

이를 우득 간 칼슨이 손의 폭격장치를 쥐고 상대를 노려보던 그때.

피이이이이이잉...

피이잉...

피이이이잉...

칼슨의 뒤쪽, 하늘을 가르는 심상찮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무언가 아주 높고 먼곳에서 하늘과 대기를 가르고 날아드는 소리.

이어 칼슨이 미쳐 반응하기도 전 변화는 찾아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궁!

콰아아아아앙!

어어?

우아아! 뭐야!

공업단지 사방, 피어오르기 시작한 커다란 청색 버섯구름.

수십개의 거대한 폭발과 폭음들이 마치 공업단지 주변의 하늘을 장식하듯 피어오른다.

이에 그치지않고 날아드는 무언가들.

피이잉..

콰아아앙!

쿠르르르르릉!

"무슨... 아직 안눌렀는데! 오해하지 마라! 난 작동안했어!"

하늘에서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불벼락에 당황하며 외치는 칼슨을 향해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안다.

작동 안시킨걸.

저걸 쏟아붙고 있는건...

'주변 국가들.'

누군가의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

연방이 밀리고 각 지역이 고립된 사이.

기가 눌려 지내던 이들은 다시 고개를 쳐들며 세력을 키워냈다.

지금 폭격은 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것.

이유는 하나다.

지금 새로 태어난 <존재>가 그들에게조차 너무나 위협적이라는 의미.

"서두르자."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재앙의 불기둥들 속.

키이잉...

이를 멍하니 바라보고있던 아린과 군파츠가 강태석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도시 동북쪽, <레드헬> 본거지.

높이 150m, 중앙시청건물 정상.

"팀장. 이거 제대로 하고있는거 맞습니까?"

옥상에 서있던 이들이 저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을 바라보며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번쩍이는 푸른빛.

몰려드는 은빛 기계병기들의 물결.

그 위로 쏟아지는 폭격과 불벼락.

마치 종말이 터져나오고 전쟁이 벌어진듯 하다.

그리고 수하들과 이를 바라보던, 예전 강태석에게 두들겨맞아 튕겨나갔던 청년이 퉁명스레 말했다.

"터져나온 파장 보면 몰라? 최소 A급이다. 저거 내버려두면 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주변으로 쳐들어올거야. 그전에 처리해야한다."

그게 지금 이 도시로 파견된, 자신들 <부르탄>을 비롯한 각국의 척후세력들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폭격>을 요청한 이유.

저걸 내버려두면 자신들의 나라, 혹은 영토로 쳐들어올터.

그리고 이 재앙같은 상황 속에서 이제 더이상 자신들이 할수있는건 없다.

폭격에 지워지건.

미쳐날뛰는 기계병기들에 휩쓸려나가건.

저 정체불명의 푸른 존재에게 집어삼켜지건.

이 도시는 이제 끝장이고 자신들은 떠나야할테니까.

"제기랄... 아무것도 못건지고 돌아가야겠군. <혁명군> 놈들 흔적 찾을수있나 했더니."

"..."

"뭐해. 짐싸라. 빨리 빠져나간다."

쿠쿵...

쿠쿠쿠쿵...

이에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과 폭격을 바라보던 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히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키이이이잉...

키이잉...

텅텅텅텅!

투타타타타타!

<으악! 이거 뭐이리 무거워!>

"그럼 네가 싸울래?"

<음... 아냐아냐. 생각해보니 들만한거같아.>

사방에서 몰려오는 은빛물결속, 사납게 날뛰는 센티널과 그보다 더 사납게 몰려드는 기계병기들을 본 바디슈트, 군파츠가 짧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등뒤 핵융합엔진을 짊어진채 내달렸다.

크기 3m의 기계덩어리를 3m 크기의 바디슈트가 어깨에 지고 내달리고 있으니 마치 커다란 돌을 짊어진 아틀라스를 보는듯한 느낌.

쿠우우웅!

쿠웅!

한발한발 내딛을때마다 십수톤 중량에 의해 금속대지가 패이고 작은 지진이 울린다.

애초에 공업단지가 아닌 평범한 도로나 땅이었으면 발이 땅에 박혀 움직이지도 못했을 터.

그런 군파츠의 바디슈트를 보던 강태석은 숨을 고른뒤 자신의 손에 들린 칠채영창을 휘둘렀다.

길이 2m, 길쭉하게 뻗은 창 끝에서 일곱빛깔이 영롱하게 빛나며 사방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쩌저저저저적!

터어어어어엉!

<스캐럽(LV. 1)을 처치...>

<크러셔(LV. 5)를 처치...>

<비틀(LV. 9)을 처치...>

순식간에 사방에서 달려드는 기계병기들을 토막내고 군파츠의 바디슈트를 공격하려는 비틀마저 튕겨낸 강태석은 기계병기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아비규환이 된 공업단지속, 어느새 가까워진 목적지를 바라보았다.

보이는건 우뚝선 거대한 배, <오시리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보이는건...

타타타탕!

이 새끼들아! 가까이 오지 말라고!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사격을 가하는 쉘터민들.

그 쉘터민들이 <누구 소속>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강태석이 옆을 보며 물었다.

"저거 뭐냐."

<엉? 당연한거 아냐? 저놈들이 우리한테 한 꼴이 있는데. 너도 저게 낫지 않아? 아이구 시킨대로 잘하고 있네.>

목숨걸고 배를 사수하겠다는듯 갑판 위를 지키고 선 수백명, 자신과 휘하 쉘터민들을 흐뭇하다는듯 바라보는 군파츠를 빤히 바라보던 강태석은 한숨을 내쉰뒤 손에 들린 창을 휘둘렀다.

터어어어엉!

<악! 왜! 그나저나 뭔데 이거! 왜이리 아파!>

바디슈트의 뒤통수를 맞고 비명성을 토하는 군파츠를 향해 강태석이 말했다.

"빨리 저거 안풀어? 급해죽겠는데."

<아니 뭔... 저놈들 다 태우겠다고?>

군파츠가 되려 이해안간다는듯 물었다.

그리고 그건 옆에서 호위하던 아린도 마찬가지.

키이이이잉...

강태석의 옆에 멈춰서는 센티널을 본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싸이코패스인줄 알아? 좀 비웃었다고 다 죽게 내버려두게?"

예전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고 생각한적 있다.

그당시 시절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노아 이 작자도 보통이 아니라고.

배를 만든 다음에 전인류가 물에 빠져죽는 꼴을 지켜보다니.

자신이 마음이 약해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 그런 꼴을 볼 정도의 담력은 가지지 못했나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없어진 물자는 구할수 있어도 죽은 사람은 되살릴수없다.

마음에 안든다고 손놓고 버리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위기가 찾아왔을때 힘이 모자라 죽는다.

홀로 여러 세계를 거닐고 끝없이 싸우며 내린 결론.

'게임속이긴 했지만... 여기가 지금 바로 그 세계니까.'

설령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어도 지금은 이게 낫다.

"뭐해. 빨리 가서 저거 풀고 엔진 실어."

<하... 진짜.>

군파츠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옆에서 중얼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쿵쿵쿵쿵!

<야야! 다들 태워! 막지 마!>

핵융합엔진을 짊어진 군파츠가 저위쪽, 갑판에 모인 자신들 수하를 향해 버럭 소리치며 내달렸고.

키이이잉...

촤르르르르륵!

콰직!

그 옆과 앞, 센티널과 강태석이 여덟개의 금속팔과 창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기계병기들을 차례대로 박살내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

배 안쪽.

쿠우우웅...

쿠웅...

쿠우우우우웅...

투타타타...

선내, 바깥으로부터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전투의 비명속.

쿵...

쿠웅...

<후우... 흐아아아...>

커다란 금속복도를 타고 걸으며 힘들어죽겠다는 신음소리를 내는 군파츠를 흘끔 본 강태석이 눈앞을 바라보았다.

키이잉...

보이는건 이 난리통 속에서도 보행중장비에 손을 얹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달리안.

그 주변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보행중장비들과 그 한가운데, 마치 무언가를 끼워넣기 위한것처럼 준비되어있는 3m 크기의 기계홈.

"... 왔어요?"

"완성됐어?"

이에 힘에 부친다는듯 눈을 감고 고운 아미를 찌푸린채 땀을 흘리던 달리안이 조용히 대답했다.

"아직이요."

<뭐? 아직? 으아아아!>

터어엉!

홈 앞에 핵융합엔진을 내려놓은 군파츠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토했다.

그도 그럴것이 상황이 정말 급박하다.

당장에라도 기계병기들이 들이닥치고 폭격이 하늘위에서 쏟아질것같은데 아직이라니!

그리고 심각해진건 강태석도 마찬가지.

그런 이들을 향해 들려온 작은 한마디.

"아직... 화장실 미장도 못 끝 마쳤고 수영장도 만들어야 해요."

"... 그게 끝이야? 구동계랑 외부장갑은?"

이에 달리안이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그런 거야 진작에 완성했죠. 먼저 만들라면서요."

"... ...."

"설계도대로 다 만들어야 완성 아니었어요?"

한숨을 내쉴뻔한 강태석이 군파츠를 보며 말했다.

"빨리 저기 끼워넣어."

"어 아직 도박장도 만들어야하는데..."

그런 달리안의 말을 무시한 군파츠가 그대로 핵융합엔진을 들어 만들어진 홈에 끼워넣은 순간.

철컥.

키이이잉...

핵융합엔진의 시퍼런 빛이 홈의 중심, 사방으로 뻗은 회로를 따라 배 전체를 향해 내달렸다.

**

투타타타타...

터어어엉!

"허억... 하아아... 아버지 괜찮아요?"

갑판위, 올라타려는 기계병기들을 쳐내고있는 무장병들을 훑어본 청년이 옆, 마찬가지로 간신히 올라탄 칼슨을 보며 물었고.

"그래. 괜찮다."

'... 망가졌군.'

주변에서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는 사람들 사이, 아들의 말에 조용히 대답한 칼슨이 손에 들린 송신기기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코드는 건재하지만 무선송신기능이 망가졌다.

이렇게 되면 남은 사용법은 하나뿐.

스윽.

송신기기를 품에 넣은 칼슨이 옆을 바라보았다.

마치 난민들마냥 배위에 올라탄 수많은 이들.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꼴이었건만 결국 목숨만 건져 이들 사이에 끼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건가.'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아들과 딸을 바라보며 칼슨이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때.

쿠르르르르르릉!

우렁찬 진동이 그들이 선 갑판을 휘감았고 이윽고.

키이이이잉...

어어.. 어어!

움직인다! 움직인다!

"아버지! 움직여요! 으하하하!"

앞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배에 청년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처음은 느리게.

하지만 육중한 거체가 서서히 가속을 붙여가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앞을 가로막는 기계병기들을 통째로 짓뭉개고 으깨버리며!

콰드드드드드득!

콰지직!

그 경쾌한 소리에 희망찬 표정을 지으며 일어난 사람들이 갑판, 그 아래를 살피러 향하던 그때.

쿠르르르릉...

<안되지. 어딜 가려고.>

불길한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위, 구름속에서 푸른 빛과 낭랑한 목소리가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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