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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이에 대한 대답은 아린이 아닌, 천막밖에서 들어온 누군가로부터 들려왔다.

"쇼핑?"

"크흠. 내가 힘좀 써뒀지. 캡슐에 너랑 너희 쉘터부터 들어가서 고를거 좀 고르라고."

"..."

"진짜 힘 많이 썼다고. 지금 그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헐떡대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들어온 장신의 여인, 군파츠의 등장에 강태석의 눈이 샐쭉해졌다.

그러고보니 기억의 처음과 끝은 생각이 났기에.

자신의 뒤통수에 정체불명의 주사기를 틀어박은 녀석이니 생각이 안날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건 좋게좋게 넘어갈까.'

침대 위에 앉아있던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대충 알고는 있었다.

녀석은 여차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태를 최대한의 피해없이 종결지으려 할것이라는걸.

사실 그게 사람들을 이끌고 그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녀석의, 그리고 자신의 책임이자 사명이었다.

어찌 보면 녀석은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것.

물론 자신에게도 충실하라고 뒤통수에 말도 안되는걸 쏘아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만 보면 살아남았고 원래 얻지 못해야했을 캡슐도 얻은데다...

<레벨 8 달성!>

<추가스탯 3이 지불됩니다.>

<검명이 검폭으로 강화됩니다.>

강태석이 아까전 치워두웠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검폭.

무기에 진동과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폭발시킬 정도로 담아 터트릴수 있는 경지.

물론 꽤나 충전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위력은 검명을 훨씬 상회한다.

거기에 이제는 올리는데 시간 한참 걸릴 레벨업까지 단번에.

<스탯 투자... 근력2/반사신경1 투자>

<강태석>

>레벨 : 8(40.66%)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약식 EMP(Active/Passive)(등급-E)

>스탯 : 근력7/반사신경6/체력5/마력7/기술5.

>무장 : 전투강갑(S)/여의(S).

강태석이 총정리된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스탯은 밸런스잡힌 운영을 좋아하는 자신의 선호도를 반영하여 골고루.

레벨도 간신히 오른것이 아니라 경험치가 중반까지 충실하게 쌓여있다.

거기에 방금전의 사태때문인지 정식으로 등록되어있는 <여의>까지.

비록 모든 스탯의 변화는 언제 그랬냐는듯 원래대로 돌아왔고 여의도 여전히 대부분 모드를 사용할수 없는 상태였지만 이정도도 대만족이다.

거기에 가장 고무되는건 전투강갑의 완전수복!

아니, 전투강갑 뿐만이 아니다.

콰득.

"내 뒤통수에 쏜게 아주아주 좋은 거였나봐?"

손아귀 안으로 넘치는 힘.

언제 그랬냐는듯 전신에 그득 채워진 마력과 체력.

마치 하루종일 푹 잤다가 일어난것처럼 상쾌하고 활력이 솟아난다.

무리하게 전투강갑을 사용한 이후 계속해서 만신창이로 싸워왔던 육체의 완전회복.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태석의 말에 입을 꾹 다물던 군파츠가 이내 민망하다는듯 웃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엄청 비싼거지. 나도 간신히 구한건데 이름은 잘 몰라도..."

"거짓말하지 말고."

"..."

"이름."

"... 블랙 블러드."

그런 군파츠의 말에 대답한건 강태석이 아닌, 옆에 있던 아린.

"어어어엉? 그걸 아저씨 뒤통수에 쐈다고?"

"..."

"와 진짜. 우리 먼저 들여보내준다더니 그냥 선심쓴게 아니었네. 그나저나 아저씨 어떻게 살아있어?"

자신의 뒤통수를 더듬거리는 아린의 손길에 한숨을 푹 내쉰 강태석이 군파츠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되뇌었다.

블랙 블러드.

흑혈.

이 세계의 A급 전쟁병기.

수많은 이들이 이걸 자살특공용이라고 생각하며 아린처럼 경원시한다.

하지만 강태석은 이에 대해 제대로 알고있다.

단순 각성제.

저레벨이야 맞으면 뇌를 휩쓰는 폭풍에 사용후 온신경이 녹아내리며 즉사하겠지만.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하룻밤의 단순 쾌락용으로 즐기는 약, 그저 그뿐이다.

심지어 귀족들은 효과는 낮아도 부작용이 적고 후유증이 없다시피하다며 이를 담배마냥 즐겨 복용하는 수준.

강태석도 예전 게임 내에서 이 세계를 즐기다 한번 먹어본적이 있었다.

그때는 되려 <귀족>들보다 훨씬 레벨이 높아 그저 소금을 찍어먹는 느낌정도밖에 안났었었지만 말이다.

'하여간 빨리 레벨 올리던가 해야지. 서러워서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푼 강태석은 군파츠를 바라보았다.

상태도 최상이고 할일도 마무리지었다.

이제 남은 일은 말마따나 그 결과를 느긋히 즐겨보는 것뿐.

"가지."

"큼. 크흠. 내가 직접 안내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위가 있는데..."

"..."

"씁. 알겠어.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좀 말라고."

투덜거린 군파츠가 그 길다란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천막 밖으로 향했다.

**

지하.

키이이잉...

튜브로 내려가는 통로였던, 하지만 이제는 <캡슐>의 상부로 연결된 유일한 입구가 된 지하섹터는 말 그대로 철통경계로 지켜지고 있는 상태였다.

키잉 소리를 내며 사방을 경계하고 지키는 센티널.

그리고 그 사방으로 우뚝선채 각자의 자리를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는 각 쉘터 무장병들까지.

저벅.

여인의 몸으로 180cm에 가까운 키.

거구보다는 장신형의 미인에 가까운 군파츠는 어딜 가나 눈에 띄인다.

그리고 그렇게 앞장선 군파츠의 등장에 고개를 돌린 무장병들이 이내 움찔했다.

군파츠, 그 뒤를 따라오는 이가 누군지 보았기 때문.

"..."

".... ...."

철컥.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나는 쉘터민들의 반응에 군파츠의 뒤를 따라걷던 강태석이 쓰게 웃었다.

보니까 생각은 안나도 기억이 사라진동안 거하게 한건해준 모양.

"그래도 그 와중에 주차는 참 잘했네. 안그래?"

쿠르르릉...

강태석이 폭파된 바닥 아래, 정확히 자리잡고 있는 캡슐의 상부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직경 3m, 원형 형태.

금고와 같은 원형철문이 열려있는 입구 아래로 1.5m에 가까운 캡슐의 금속외벽과 그 너머를 향하는 통로가 보였다.

저게 캡슐 안을 향하는 통로.

물론 이 캡슐이 제대로 중앙플랜트까지 수송이 이루어졌다면 이 캡슐은 자동화 시스템들에 의해 외벽부터 통째로 분해되고 안에 있는 물자들은 우르르 쏟아져 컨베이어벨트들 위로 단번에 날라졌겠지만 지금 이 캡슐은 통째로 땅에 묻혀있는 상태.

캡슐의 분해도 불가능할 뿐더러 안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쏟아내듯 꺼낼수도, 다른 입구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저 이 위의 관리자용 비상통로를 통해 출입하고 나르는 수밖에.

그렇게 위에서 입구를 내려다보던 군파츠와 강태석, 아린을 향해 페리트란이 걸어왔다.

눈이 퀭한게 격무에 시달린 모양.

"왔군. 카트란. 몸은 좀 어떻지?"

"더이상 좋을수가 없지."

"다행이군."

강태석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페리트란이 이내 당부하듯 입을 열었다.

"군파츠. 카트란. 일단 너희 둘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모두가 동의했다. 너희 둘이 일등공신인건 부정할수 없으니까."

"둘?"

"그래. 아주 목소리가 크시더군."

"크흠. 왜 뭐."

페리트란의 말에 헛기침을 하는 군파츠를 바라보던 강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어찌 됐건 각 쉘터를 이끌어 참가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것도 모자라 선두, 가장 위험한 곳에 참여하여 싸웠다.

보통 지위가 있으면 한발 빼고싶은게 사람심리인데 말이다.

그리고 목소리건 뭐건 저 동의를 직접 이끌어낸것도 본인의 능력.

그런 강태석과 군파츠를 향해 페리트란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무제한인건 아냐. 우선적으로 들고 올수 있는 물건은 각자 하나. 그리고 그 하나는 연방시절 가치평가에 따라 배분된 물자에서 차감시킬거야."

"동의하지."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권이 무제한권한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자신이 100만큼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면 자신이 받아야할 500만큼의 물자에서 이를 차감하고 400만 주겠다는 뜻.

하지만 그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이 난리통에서 귀한 것들은 돈이, 물자가 있다고 해도 구할수 없으니 말이다.

이에 군파츠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페리트란이 손짓했다.

"좋아. 둘 다녀와."

"어어? 페리트란 나는?"

"넌 아니지. 이리와. 넌 2순위야. 튜브에 직접 내려가서 싸웠던 사람들 다음."

"히잉."

"귀여운척 하지말고. 그리고 저거 이제 네가 다뤄. 안에 탄 군터 지금 당장에라도 토할라고 한다고. 너 말고 제대로 다룰 사람이 없다니까 왜 자꾸 어린애처럼 그래."

"나 어린데?"

센티널을 가리키며 투닥거리는 페리트란과 아린을 바라보던 강태석은 이윽고 몸을 빙글 돌려 군파츠와 함께 아래, 뻥 뚫린 캡슐 상부입구의 사다리로 향했다.

**

"으와... 으와아..."

통로를 타고 내려온 군파츠가 감탄성을 토했다.

가로세로높이 10m 정육면체의 공간.

반투명한 강화플라스틱 벽으로 만들어진 밀폐된 공간의 사방으로 마찬가지, 10*10*10m 크기의 큐브형 컨테이너들이 자리잡고 있었기때문.

큐브형 컨테이너들 역시 반투명한 재질로 이루어져있었기에 내려와 방 한가운데 선 군파츠와 강태석은 사방, 자신들이 제법 깊숙히 타고내려온 통로가 있는 천장을 제외한 다섯면으로 보이는 내부의 물자들을 모조리 확인할수가 있었다.

바닥에는 하나만 먹어도 한끼 필수영양소를 상당부분 채워주는 C형 영양캡슐들이 10m짜리 상자안에 한가득.

왼쪽 벽면에는 빨대 하나로 3일을 사용할수 있는 정수필터가, 오른쪽 벽면에는 복합전투배낭에 들어가는 급속고양제가 그득히 들어차있었다.

정면으로는 최신형 전파방해장치와 축전팩이, 뒤쪽벽으로는 어찌보면 이시대 가장 필요한 개인화기와 탄창들이 빼곡히.

바깥에서는 하나하나 아껴써야했던 것들이 이곳에는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있다.

심지어 다섯면에 자리잡은 다섯개의 컨테이너들은 이 거대한 캡슐의 일부일뿐.

이 캡슐 전체가 이런 것들로 그득 차있으니 군파츠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하지만...

띠링...

띠리링...

<코드 확인중... 메인관리자 권한이 없습니다.>

<각 큐브 컨테이너의 이동권한이 없습니다.>

<내용물의 검색권한이 없습니다.>

<락의 해제권한이 없습니다.>

"아니 뭐야 지금. 이거 목록 없어? 이걸 지금 하나하나 다 파헤쳐가며 뒤지라는 거야?"

끼기기긱...

군파츠가 사방에 자리잡은 컨테이너의 강화플라스틱 벽면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알기로 이 큐브컨테이너들은 마치 큐빅퍼즐처럼 이리저리 자동시스템으로 움직일수 있다.

한데 이동도, 검색도 안된다고?

물론 이 안의 물자를 빼내는 거야 큰 문제는 없다.

강화플라스틱벽의 강도는 높지 않으니 그대로 뜯어내고 안의 물자를 위로 실어나른뒤 다음 벽면도 뜯어내고 실어나르고... 이를 반복하면 되니까.

캡슐 하나를 다 파먹을때까지 계속 노가다를 하면 되는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눈앞의 녀석, 둘이서 그런 대작업을 해낼수는 없다!

결국 피난민과 각 쉘터를 비롯한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해체작업에 들어가면 귀한건 그사이에서 게눈감추듯 사라져버릴 터.

우선순위를 배정받아도 이걸 써먹을수가 없는 셈.

"아으. 이거 남좋은 일만 잔뜩 시키게 생겼네!"

군파츠가 텅텅 발을 구르던 그때.

"..."

옆에서 머리를 긁적이던 강태석이 손을 뻗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반투명한 벽면에 뜬 패널에 손을 가져다대며.

잠시후.

<상위권한 입증... 메인관리자의 교체를 진행합니다.>

<교체 완료. 앞으로 메인관리자의 모든 권한을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검색하시겠습니까?>

연구자, 카트란.

자신에게 코드를 넘겨주었던 익숙한 그이름.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촤르르르르르륵!

패널을 대신하는 반투명한 벽면 위로 캡슐 전체의 물품목록이 촤르르륵 떠올랐고.

띠잉...

띠이잉...

강태석이 다른 흰색의 목록들과는 명백히 구분지어지는, 다채로운 색들로 빛나고있는 상위 일곱개 목록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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