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32화 (32/221)
  • 32화

    "언제오는거야."

    지하공동망과 튜브 연결통로.

    "제대로 되고 있는거 맞나?'

    콰르르르륵...

    콰르르륵....

    쇠사슬을 감아들이고 있는 거대한 거치형 크레인들 옆에서 대기중이던 백수십명 가량의 이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어둠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임무는 두가지.

    첫번째,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이곳을 지키며 크레인을 가동 시킬 것.

    두번째, 캡슐이 제대로 도착하면 양옆을 폭파시켜 일을 마무리지을것.

    걸려있는게 크기에 걱정도 크다.

    딸려올 위험을 알기에 긴장도 크다.

    그들의 옆에 있는 도르래는 기분나쁠 정도로 착실하게, 끊임없이 작동하며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튜브 너머로는 여전히 어둠속을 향하는 수십개의 사슬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마치 심연, 망망대해 속에서 끊임없이 낚싯줄을 끌어당기건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그때.

    ...

    ....

    아아악!

    "무슨...!"

    "비명이다!"

    철컥.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대경실색하며 칼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요한 어둠 너머.

    저 멀리서 아득하게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거기에...

    터어어엉!

    터어어어어엉!

    촤르르르르륵!

    갑자기 들려온, 팽팽하던 것이 퉁퉁 거리며 끊어지는 소리.

    묵묵하게 움직이던 쇠사슬들이 돌연히 출렁거리며 맹렬하게 감겨들고 있었다.

    이 말은?

    "이런 제기랄! 사슬이 다 끊어졌어!"

    "다들 준비해라! 비상사태다!"

    모조리 끊어진 사슬에 들려오는 비명.

    이에 사람들이 식겁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촤르르르르르륵!

    촤아아아아아악!

    키르르르르륵....

    튜브 너머.

    그 안쪽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어둠보다 더욱 짙은 칠흑의 그림자가 마치 폭발하듯 넘실거리며 캡슐로부터 퍼져나간다.

    덤프트럭, 쇠사슬, 옵저버와 기계병기들.

    걸리적거리는것은 가리지않고 모조리 깊은 바다로 끌어당기듯 삼켜버리며.

    3차원에 존재하던 물체들이 마치 2차원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듯 스러지는 광경은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통찰력있는 몇몇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마법이 아니다.

    검은 그림자에 스친 모든 것들이 <분해>되어 삼켜지는 것이다!

    "미친... 미친미친미친... 무슨 일이래 이게."

    우아아악!

    뛰어! 뛰어!

    타타타타타타탁!

    기겁을 하며 내달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뛰던 군파츠가 뒤, 맹렬하게 뻗어오는 어둠을 보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광경.

    튜브에서 터져나온 어둠이 걸리적거리는 모든것을 집어삼키며 질주하고 있었다.

    그토록 공포스럽던 은빛 기계병기들의 물결마저!

    그리고 그 범인은... 아마도 저 캡슐 위에서 뻗어나오는 붉은 안광의 주인.

    키이이이잉...

    뒤를 돌아보며 달리던 군파츠가 이를 악물었다.

    너무 검어 이제는 평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속.

    붉은 두줄기의 안광이 똑바로 선채 그들을 직시하고 있었다.

    적마인, 혹은 카트란.

    자신이 쏜 블랙블러드에 얻어맞은 녀석.

    자신은 분명 녀석이 감춰놓은 한수를 내보이며 시간을 끌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이정도를 감춰놓았을 줄은 몰랐다.

    이건 명확히 상정외!

    "허억... 허억... 진짜 이해가 안가네. <귀족> 놈들 비밀병기라도 되는거야? 저딴놈이 왜 여기있... 이 새끼야! 빨리 뛰어! 뭐해!"

    "끄윽 다리가..."

    "아오 답답한 새끼."

    절뚝거리는 다른 쉘터민 하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걸친 군파츠가 다리에 힘을 주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이 출발했던 지점, 사슬을 감아들이고 있던 이들과 크레인들이 보인다!

    도망치던 이들중 대부분이 출발지점을 지나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이제 가장 앞에서 싸우다 후퇴한 군파츠가 마지막.

    그렇게 군파츠마저 들어온 순간.

    콰아아아앙!

    콰아앙!

    쿠르르르릉!

    "어어? 뭐해? 폭파시킨다고?"

    "엉? 당연하지. 비상사태 아냐?"

    "아니 비상사태 맞긴한데... 그래 그렇긴 한데... 하 씨!"

    자신이 통과한 지점 뒤쪽, 정확히 계산된 폭파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하는 튜브를 돌아보며 군파츠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 비상사태 맞고 폭파시켜서라도 막는게 맞다.

    그리고 지금 그게 아니면 딱히 다른 방법도 없어보였다.

    한데 왜 이리 찝찝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군파츠의 마음과 별개로 붕괴는 정확하고 신속히 진행되었다.

    콰르르르르릉....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통로.

    지하에 선 이들, 수백명의 양옆으로 가로막힌 돌무더기.

    마치 안식을 주듯 격리된 공간안에 서있던 생존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미션은 실패했으나 이게 어딘가.

    그나마 숨돌린 몇몇이 차마 포기하지 못하겠다는듯한 눈길로 그들앞에 만들어진 돌무더기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콰드드드...

    콰드드드드.....

    "어어? 어어어?"

    갑자기 돌무더기 너머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진동에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가벼운 진동이 아니다.

    심상치가 않다.

    쌓인 돌덩어리들이 드드드 떨리면서 튕겨나가고 튜브를 비롯한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것처럼 흔들린다!

    사람들이 주춤하며 돌무더기에 떨어져 한발 물러난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악!"

    굉음과 함께 터져나온 돌무더기, 그리고 밀려드는 <무언가>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내달렸다.

    그 정체는 놀랍게도 그들이 포기해야했던 캡슐!

    튜브 전체를 그득 메울 정도로 거대해보이던 캡슐 전면이 돌무더기를 박살내고 원형튜브를 따라 밀려들고 있었다.

    도망칠 곳도, 피할곳도 없이, 그들을 내몰았던 검은 바다의 해일에 휩쓸려!

    기겁을 한 이들이 미친듯이 내달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도망치던 튜브 반대편에 자리잡은건 아까 무너트린 돌무더기.

    콰드드드득!

    콰드득!

    "으아... 아아아아아..."

    구석까지 몰린 수백명의 이들이 거침없이 튜브위, 크레인들을 짓이기고 밀쳐들어오는 백색의 망치를 절망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할곳이 없다.

    초인이고 나발이고 저 육중한 금속덩어리에 뭉개진다면 그걸로 끝.

    잘 다져진 어육신세가 되어 바닥에 피칠갑을 하리라.

    이에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아버린 그때.

    쿠르르르르릉...

    "...?"

    여전히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이들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 앞에 자리잡은건 지척까지 다가온 백색의 구.

    그리고...

    스르르르르르륵...

    스르르륵...

    노도와 같이 캡슐을 휩쓸고 내달려온 검은 바다가 모조리 한곳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위.

    캡슐 위에서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는 두개 안광의 주인에게.

    잠시후.

    타탁.

    캡슐 위에서 뛰어내린, 온 전신에 검은 바다와 안개를 휘감은 붉은 안광의 주인이 그들의 앞에 섰다.

    서서히 어둠이 가시고 있었지만 여전히 상대가 인간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검게 넘실거린다.

    그런 상대를 보며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을때 어느덧 사람의 형태를 찾은 상대가 서서히 붉은 안광마저 거두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얼어붙어 침만 꿀꺽 삼키고 있는 군파츠를 향해.

    "목적을 알았으니 한번은 봐주지만... 조심해라. 나도 사람이니."

    이윽고.

    터터텅!

    터엉!

    "후우.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이래."

    튜브와 캡슐위쪽, 좁은 틈새사이.

    심상찮은 진동에 위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아린과 아너스빌이 털썩 쓰러지는 강태석을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

    지상 .

    "... 믿기지가 않는군."

    "성공했다고?"

    천막 안에 앉아있던 십수명의 남녀가 바깥, 공업단지 전체에서 퍼져나오는 소란을 들으며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정체는 간단했다.

    이번 도전의 <실패>에 배팅한 이들.

    그정도 작업을 하면 반드시 <옵저버>가 나타날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이끄는 쉘터를 참여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아래에서 참가한 쉘터 놈들이 통째로 쓸려나가면 그놈들 쉘터의 물자를 차례차례 쓸어담으면 되니까.

    한데 성공하다니.

    "... 지금 와서 페리트란 놈들 압박해보기엔 늦었겠지?"

    한 중년사내가 배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막 밖, 축제 분위기가 된 피난민들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철판까는 것도 정도가 있다.

    위험하다고 아예 대놓고 발을 빼버렸었는데 이제와서 당당히 찾아가 동등한 분배를 요구한다?

    페리트란 녀석은 둘째치고 같이 참가했던 놈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그런 중년사내의 답에 대답해주듯 들려오는 옆, 누군가의 한마디.

    "만만치 않지. 군파츠 그놈을 비롯해서 녀석을 중심으로 뭉친 쉘터들 몇개가  페리트란 쪽을 전면지지하고 있어. 우리 세력도 만만치 않으니 저들끼리만 틀어막고 나눠먹는 정신나간 짓은 안하겠지만... 아마 물자분배권이랑 우선순위는 저놈들이 가져갈걸."

    "제기랄. 환장하겠네. 아니 군파츠 그 정신나간 년은 작전 성공해도 페리트란 쉘터는 제껴버리고 자기가 맹주될것처럼 얘기하더만 왜 목줄찬 개새끼처럼 구는거야!"

    천막 안의 다른 누군가가 더욱 배아파죽겠다는듯 소리쳤다.

    물자분배권한을 쥔다는 말은 목줄을 쥔다는 뜻.

    공평하게 진행한답시고 하겠지만 말잘듣는 쉘터는 챙겨주고 말안듣는 놈들은 지급을 미루며 최대한 조일 것이다.

    거기에 그 과정에서 몰래몰래 해먹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분배의 우선순위도 그렇다.

    캡슐 안에는 평범한 물자들이 대부분이긴 하겠지만 분명 비범하고 귀한 것들도 제법 될것이다.

    그런걸 녀석들이 먼저 날름 집어먹을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뒤집힐 수밖에!

    하지만 마냥 열받아있는 이들과는 달리 몇몇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력의 판도가 너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었기에.

    이제는 얼마전까지 자신들 눈치를 살살 보기에 급급했던 페리트란의 쉘터가 아니다.

    군파츠를 비롯한 몇몇 쉘터들의 충성에 가까운 지지.

    이를 중심으로 움켜쥔 물자분배권한.

    이제 배가 조금 부르고 덜부르고의 차이가 아니다.

    고만고만한 이들이 치고 받던 와중 누군가의 세력이 마치 왕처럼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질터.

    "손을 써야겠는데..."

    "흐음."

    몇몇이  차가운 눈으로 열기어린 바깥을 훑어보던 그때.

    "저기. 리더."

    "?"

    소곤.

    천막 밖에서 들어와 조용히 속삭이는 수하의 말에 장년 사내 하나가 귀를 기울였다.

    **

    ... 일어나!

    .... 일어나라고!

    "일! 어! 나!"

    "아으... 머리아프게 무슨..."

    "아하하! 대박이라고! 대박!"

    천막안, 침대.

    띠링...

    띠리링...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강태석이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치우고는 함박웃음을 짓는 아린을 바라보았다.

    머리속으로 한가지 의문을 떠올린채.

    '성공한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강태석이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목덜미가 뜨끈거리고 뇌속에 번개가 후려치며 번쩍이던 그때.

    강태석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현재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부하임을 깨닫고는 이를 나뉘어졌다.

    하나하나가 유기조직이자 연산소자이자 신경망인 나노머신들과.

    즉 자신의 작은 뇌가 감당하기 힘든 대해의 폭풍을 왼손 안의 나노머신들과 함께 떠앉은것.

    사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밀려들어 머릿속을 폭풍처럼 헤집었으니.

    하지만 아린의 반응을 보니 일단 어느정도 성과가 있기는 한모양.

    '그리고 뇌도 안 녹아내린것 같고.'

    왼손, 자신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잠잠해져 되돌아간 나노머신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뭐가 그리 대박인데."

    그런 강태석의 한마디에.

    "아하하하! 아저씨."

    "?"

    "쇼핑가자 우리."

    "??????"

    자신의 어깨를 양손으로 덥썩 부여잡는 아린의 말에 강태석이 더욱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