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25화 (25/221)
  • 25화

    키칭...

    지하 공동망, 제 3입구.

    콰지직...

    "끄어어억..."

    대기계병기용 에너지소드를 들고 달려들었던 쉘터팀의 사내가 허공에 배가 관통된 채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했다.

    범인은 땅을 지탱하고 있던 두터운 기계팔.

    번개처럼 날아든 기계의 촉수가 그대로 구스트를 공격하려던 사내의 배를 꿰뚫은채 그 핏빛 끝자락을 자랑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딴걸 어떻게 이기라고.'

    가물가물해지는 시선속, 사내가 절망섞인 눈으로 자신을 마주보며 웃는 구스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인간이 감당할수 없는 육중한 거체, 그로부터 나오는 파괴력.

    그런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반응속도와 스피드.

    전신을 감싼 철갑 부위는 칼이건 총이건 먹히지도 않고, 그나마 약점으로 보이는 구스트마저 크롬틸 도금을 한 사이보그.

    이미 다른 팀원들은 모조리 몰살.

    마주 웃는 구스트를 보던 사내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키리리릭...

    콰자자자자작!

    "크흐... 크하후흐..."

    구스트의 의지에 따라 회전한 기계팔 끝이 걸려있던 사내를 말 그대로 <분해> 해버렸다!

    사방팔방으로 튀는 핏방울과 살점들.

    그리고 이를 모조리 후두둑 얻어 맞은 구스트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정체 불명의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갔더니 잠들어있던 녀석.

    그리고 목소리의 말대로 이 녀석은 자신에게 <힘>을 주었다.

    인간을 너무 벗어던진것 아니냐고?

    어차피 자신의 몸에서 인간이었던 부분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

    기계를 좀 더 추가해서 10%가 1%가 된들 무슨 차이란 말인가.

    얼핏 보면 집어 삼켜진것 처럼 보였지만 천만에.

    구스트의 정신은 되려 아까전, 터질것 처럼 머리가 아프던 때보다 더욱 맑았다.

    마치 자그마한 육체로 감당할수 없던 머리속의 정신이, 걸맞는 커다란 그릇을 이제야 찾은듯 말이다.

    중요한건 자신의 손에 들어온 <힘>!

    "페리트란. 크하. 올라가서도 그렇게 아까처럼 뻗댈수있나 보자고."

    치킹.

    치키킹.

    세개의 다리로 전신을 지탱하던 구스트가 자신의 나머지 다섯 기계손을 바라보았다.

    지금에라도 당장 짓쳐나가도 될것 처럼 자신감이 넘치지만, 되려 명료해진 이성이 자신의 머리를 다잡았다.

    안쪽에는 아직도 제법 많은 피난민과 쉘터민놈들이 있고.

    자신은 좀더 많은 무기와 탄약이 필요하다.

    폭탄으로 인해 아직 격리되어있는 지금이 기회.

    안에 있는, 추후 귀찮게 할지도 모르는 녀석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거나 발아래 복속시킨다!

    그리고 탄약과 무장을 잔뜩 챙겨 지상으로 올라나간다.

    위, 수많은 이들중 하나가 아닌 오롯한 주인으로서 말이다.

    이윽고.

    쿠웅.

    쿠우웅.

    쿠우우우웅.

    구스트의 육중한 기계 육체가 이끌고 어둠속, 사람들이 모여있을 곳으로 향하려던 그때.

    텅텅.

    "거기 스탑."

    "... 너. 어디서 본거같은데."

    "이 새끼는 여자밖에 기억못하나."

    리벨리온을 텅텅 두드리며 어둠속에서 나타난 강태석이 상대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텅.

    텅텅.

    어둠속에서 태연하게 걸어나온 상대를 본 구스트가 왼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본거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른쪽, 기계눈으로 봐도 마찬가지.

    키잉.

    키이잉...

    위기를 느꼈던 대상은 자동으로 기억, 인지, 발동하게 되어있는 기계눈이 상대를 봐도 평온하다.

    즉 언젠가 마주치긴 했지만 딱히 기억할 필요없는 잔챙이라는 의미.

    한데 거슬리는건 지나치게 평온한 상대의 태도.

    하지만 구스트의 상념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할일이 많고 갈길이 먼데 발치의 돌부리를 살피고 있을수는 없는일.

    키이이이잉.

    생각과 동시에 허공에 뜬 다섯개중 세개의 기계팔이 반응함과 동시에.

    투타타타타타!

    드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쏟아진 수백발의 섬광이 그대로 상대가 있던 자리를 긁어버렸다.

    단 1초만에 벌어진 일.

    어찌나 쏘아진 탄환들이 많은지 탄피가 폭포처럼 금속팔을 따라 굴러내리고 붉은 예광의 폭우가 쏟아진 자리는 콘크리트바닥들이 박살나 자욱한 먼지구름이 뭉개뭉개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철컥.

    철커덕.

    "...!!"

    "너만 가진게 있는게 아니지."

    자욱한 흙먼지속.

    키이이이잉...

    푸른 안광을 빛내며 멀쩡히 걸어나오는 흰색 갑옷의 등장에 구스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전투강갑... 3단계 재가동중.>

    빗발치는 탄환속.

    철컥.

    치이이익...

    몸에 흰 갑옷을 두르고 나온 강태석이 증기가 들이섞인 숨을 내뱉었다.

    오랜만에 전신을 감싸는 편안한 감각.

    상대, 기계병기와 마찬가지로 이계에서 온 갑옷.

    어지간한 일반적인 화기는 모조리 무시하는 상위법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걸로는 모자라다.'

    심상찮은 상황에 주춤했는지 달려들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안광의 상대를 보며 강태석이 주먹을 꽈득 쥐었다 폈다.

    총기에 어느 정도 버틸수있다 뿐이지 아직 열세임은 여전하다.

    가장 큰 문제는 레벨, 그리고 질량의 차이.

    17t에 이르는 육중한 몸체, 이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상상도 못할 거력.

    심지어 상대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금속 섬유근육은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출력을 뿜어낸다.

    상대가 지금 예상 외의 상황에 놀라서 덤비지 않고 있을 뿐, 싸우기 시작하면 그 차이는 명확히 드러날 터.

    저 여덟개의 기계팔들이 자신을 후려치기 시작하면 전투강갑은 멀쩡해도 그 안쪽, 내용물인 자신은 으깨지고 부러지며 곤죽이 된다!

    그렇기에 한가지 더.

    콰르르르릉!

    잠깐의 기묘한 대치속.

    보이지 않는 급격한 변화는 강태석의 심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묘한 마력의 흐름, 그에 의해 자극되는 전신의 혈자리들.

    태음, 곡지, 위중, 곤륜.

    수십개의 혈자리들이 마력의 흐름에 의해 자극되며 심장과 전신 혈류의 박동을 강제로 끌어올린다!

    이어 떠오르는 시스템음.

    <혈루마공... 가동합니다.>

    <주의. 이 마공을 과도하게 사용시 목숨을 잃을수 있습니다.>

    <가동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가동.

    강태석이 시스템음을 무시하고 혈루마공의 운기를 완성시키자.

    쿠르릉...!

    굵은 천둥소리와 함께 심장에서 시작된 변화가 그 즉시 육신을 넘어 바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콰드득...

    흰빛 투구에서 뿜어져나오던 푸른빛의 안광이 적색으로 변해간다.

    온몸의 바깥을 감싸고 있던 두터운 갑옷이 우그러지고 압축되며 마치 슈트처럼 전신을 압착한다.

    동시에 시뻘겋게 물드는 하얀색 갑옷.

    찰나의 사이 거대한 백색의 기사는 사라지고 시뻘건 휘광을 두른 마인만이 남았다.

    이를 완성시킨 강태석이 한발 앞으로 내딛은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득...

    "커헉..."

    내딛은 땅을 박살내며 사라졌다 나타난 강태석의 일격에 몸체, 복부를 얻어맞은 구스트가 헛숨을 토했다.

    불의의 일격.

    이어 아래에서 밀려오는 상상초월의 격통.

    총알도 버텨내는 몸체가 우그러진것도 모자라 그 거체가 움찔하며 밀려난다!

    하지만...

    "이 벌레 새끼가아아!"

    콰아아앙!

    쾅쾅!

    콰르르르르!

    투타타타타타타타타!

    구스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여덟개의 금속팔, 금속 신경이 반응하며 맹공을 퍼부어댔다.

    휘둘러지는 금속팔, 쏟아부어지는 맹렬한 탄환의 폭우, 분노한 구스트의 괴성.

    그 속에서 대지와 거체를 박차며 몰아치는 적색의 마인이 어우러져....

    쿠르르릉...

    콰콰콰쾅!

    지하공동망의 입구, 지하도 전체가 밀려드는 폭음과 진동에 그득 휩싸였다.

    **

    지하 공동망 제3입구, 바깥쪽.

    콰앙...

    콰아아앙...

    콰앙...

    드르르륵...

    "미치겠군. 지금 안쪽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빨리빨리 작업을 마쳐! 무너진 잔해들 치워!"

    바깥에 모여 작업하던 이들이 구겨진 표정으로 무너진 지하 공동망 입구,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입구를 가로막은, 수십톤에 달하는 돌무더기.

    그런 돌무더기들마저 통과하고 들려오는 커다란 진동과 굉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일이 아니라는건 확실하다.

    어느 정도냐면...  불길함에 돌을 나르고 있던 이들의 손길이 저절로 느려질정도.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사태가 심상찮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키이잉...

    콰르르륵...

    쉴새없이 돌무더기를 나르는 보행 중장비와 덤프트럭을 바라보던 페리트란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여기서 합동훈련 진행중이니 뭐니 하며 길뚫는걸 방해하던 각 쉘터의 장들.

    까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좀있다 제대로 해명해야 될겁니다."

    낮은 목소리로 씹듯 내뱉는 페리트란의 말에 멈칫하던 각 쉘터의 수장들이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니 뭐 우리도 뭔 일인지 모르는데 해명이라니. 오히려 페리트란 자네가 우리한테 해명해야하는것 아닌가? 이 3공업단지는 자네들 영역이잖나."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이번사태로 저안에 있는 우리 쉘터 인원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피해는 자네 쉘터가 보상해줘야겠어."

    이에 페리트란의 눈썹이 씰룩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않던 이들, 그중 대표격이던 중년사내 하나가 독려하듯 돌무더기 앞으로 나가 박수를 짝짝 쳤다 .

    "자자. 다들 더 서두르라고! 빨리 안쪽의 사람들을 구해내야지!"

    "..."

    "왜 표정이 그렇지? 뭔가 불만이라도?"

    "... 아닙니다."

    돌무더기를 치우던 중장비 운전자 하나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바위파편 하나를 든채 뒤쪽으로 쿵쿵 걸어갔고.

    입구, 돌무더기 앞에 선 중년 사내가 이에 만족스럽다는듯 웃었다.

    아아, 이거다.

    실로 오랜만의 감각.

    다른 놈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찍소리도 못하는.

    작은 쉘터 수백명이 아닌 수천명을 상대로 생겨나는 권력과 권위.

    예전, 도시의 정치인이던 그 감각을 떠올리던 중년 사내가 돌무더기에 손을 턱 얹으며 여유로이 작업을 감상하려던 순간.

    드드드드드드드드...

    아까전과는 또 다른, 심상찮은 진동이 중년사내가 기대려던 돌무더기 전체를 덮쳤다.

    이에 중년 사내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려던 그때.

    쿠쿠쿠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직!

    "!!!!!!!!!!!!!!!!!"

    안쪽, 돌무더기를 통째로 무너트리며 튕겨져나온 거대한 금속질 거체에 중년 사내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깔려 으깨지고 말았다.

    **

    콰아아아앙!

    돌무더기가 박살나며 격전의 배경이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둘의 모습.

    강태석도, 구스트도 둘다 만신창이.

    "이 개자식이이이이이!"

    콰아아아앙!

    쾅쾅!

    마치 대포에라도 두들겨맞은듯 움푹움푹 패인 유선형의 금속팔과 금속동체.

    얻어 맞아 형편없이 찌그러진 오른쪽 기계얼굴과 일그러진 피투성이 왼쪽 얼굴.

    이 모든것이 뒤섞인채 구스트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강태석을 미친듯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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