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21화 (21/221)

21화

"우하... 우호오오오오."

키이이잉...

수많은 수하들 앞.

붉은 안광을 번쩍거리며 에너지를 그득 충전한 사내, 구스트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느 정도냐면... 스스로의 중심을 벌떡 세운채 껄떡거리고 있을 정도로.

"그 쓸데없는건 왜 기계화를 안했지?"

"으하하. 쓸데없다니. 얼마나 많이 써먹는데. 그리고 이것까지 기계화하면 상대가 너무 불쌍하잖나."

부끄럽지도 않은지, 혹은 기분이 너무 좋아 그런지.

페리트란의 비꼬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을 팡팡 두드린 구스트가 이내 씨익 웃었다.

"자자. 자주 볼 사이인데 너무 인상쓰지 말자고. 그리고 나눈다고 뭐 티나는것도 아니잖아?"

그 말대로.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구스트는 속으로 어마어마하게 놀라고 있었다.

눈앞, 핵융합엔진에 손을 댄순간 이 조그마한 기계덩어리의 가능성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기에.

마치  무한한 창공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느낌.

그 끝도, 형체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에너지충전량은 전력을 다하면 커다란 빌딩 하나도 정전시킬수 있는 정도이거늘 이를 풀로 채웠음에도 티조차 나지 않는다.

'이걸 독점한다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핵융합엔진을 바라보는 구스트의 왼눈에서 탐욕이 감돌았다.

돈, 땅, 보물.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쥐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야말로 지위이자 힘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에너지야말로 힘이자 권력의 원천.

순간.

"구스트. 허튼생각하지 마라. 핥아먹었으면 조용히 꺼져."

"... 페리트란. 너무 건방진거 아냐? 참아주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탐욕을 가로막아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들켜서인지.

혹은 전신이 힘으로 들어차서인지.

기분좋아보이던 구스트의 왼쪽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오른쪽, 기계화된 부분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로.

"페리트란. 지금 우리가 이걸 너희거라고 인정이라도 하고있을거같아? 그냥 지금은 여기 놔두는게 <공동>으로 써먹기에 편하니까 그런거야. 분에 넘치는 보물은 화를 부르는 법 모르나보지?"

구스트의 말에 뒤의 부하들이 웃었다.

그 말대로.

자신들 쉘터는 눈앞 녀석들의 쉘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명 약하지 않은 녀석들이지만 전혀 무섭지않다.

이유는 하나.

이녀석들은 지금 너무나 적이 많으니까.

상대가 사자일지라도 사방이 적으로 그득하다면?

언제, 갑작스레 물어뜯겨 시체가 될지 모른다.

그런 구스트의 말에 페리트란이 이내 더욱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물이 뭔진 모르겠는데. 우리가 가진건 폭탄밖에 없어서."

"...?"

"한번 허튼짓 해봐. 끝나기전에 우리만 가진 않을테니말이야. 아주 이 도시채로 터트려주지."

페리트란의 협박에 구스트를 비롯한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제야 이놈이 말한 <폭탄>이 뭔지 깨달았기에.

지금 이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릴만한 물건은 단 하나밖에 없다.

키이잉...

"... 페리트란. 항상 조심해. 지켜보고있을테니."

핵융합엔진을 바라보다 상투적인 협박을 남기고 떠나는 구스트와 수하들을 보던 페리트란은 녀석들이 완전히 떠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십년은 늙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트란. 서둘러다오.'

페리트란이 핵융합엔진을 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방금것은 공갈.

태양같은 힘을 품고 있으면서도 바다와 같이 잔잔한 이 상식밖의 물건을 어떻게 터트리는지는 자신도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이 협박이 주변녀석들을 조금이라도 더 억눌러주기를 기대할뿐.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사방이 적이다."

철컥.

이에 주변에 서있던 무장민들이 굳은 표정으로 손에 든 화기를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

지하, 어딘가.

쿠르르릉!

진동속에 지하도를 통과한 강태석이 눈앞에 등장한 드넓은 공간을 바라보았다.

가로 150m, 세로 500m, 높이 100m정도 가량 되어보이는 회색질의 직육면체 공간.

길쭉해보이는 직육면체 공간의 정면에는 위로 향할수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거대한 철문으로 막힌 오르막길이 보였고.

사방 군데군데로는 정문보단 작지만 여전히 가로와 높이 10m는 되어보이는 통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그곳들도 무엇인지 모를 금속재질들로 용접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즉 강태석 본인이 들어온 통로를 제외하면 다른 곳 모두가 막힌 상태.

몰래 작업하기에는 그만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공간의 한쪽에 모여있는건 수십개의 보행로봇과 상당한 량의 금속자재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고 있는 수십명의 남녀들.

철컥.

발소리에 긴장했는지 흠칫하며 옆의 총기를 집어들던 이들은 이내 어둠속에서 나타난 강태석의 얼굴을 보고 적잖이 안심하며 총기를 내려놓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후우. 드디어 왔군. 숨어있느라 좀이 쑤셨다고."

"대단하군요. 이런데는 어떻게 찾았습니까."

강태석의 말에 앞에 선 여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페리트란이 지도보고 하나씩 들쑤신거지 뭐. 어차피 그런 커다란 걸 만들어서 지상으로 가져갈수있는 공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애초에 지상에서 만들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안하더라고."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커다란 지하공동망이라고 하더라도 이정도의 물건을 만들어 지상으로 들고갈수 있는 공간이 많지는 않다.

중앙, 핵융합엔진으로 작동되고있는 전파방해장치의 범위 안에서 찾아야한다면 더더욱.

이런곳을 적시에 찾아내고 미리 준비했다는것만으로도 페리트란의 꼼꼼함과 준비성을 알수있는 대목이었다.

저벅.

모인 남녀들을 지나 보행중장비 앞에 선 강태석이 풀쩍 뛰어올라 위가 뚫린 탑승칸에 탔다.

유리창도 없이, 단순한 노란색 철제프레임만으로 보호되고있는 구조.

사다리꼴 모양의 철제프레임에 화기를 걸어둘수있는 고리가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탑승칸 앞으로 보이는 두개의 거대한 기계팔을 보던 강태석이 시선을 돌려 콕핏 안, USB를 꽂을 수 있는 장치에 손에 들린 USB를 꽃았다.

순간.

키이이잉...

<현재 저장장치 안에 BUILD를 위한 저장데이터 하나가 존재합니다.>

<주변 기기 검색중... 49대.>

<네트워크를 이용해 설계도안을 공유할경우 공동작업이 가능해집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대답은 당연히 YES.

콕핏창에 떠오르는 시스템알림에 따라 버튼을 누르자 이어

<데이터 : 오시리스 다운로드/공유중...>

<공유 완료... 작업시간 산출중...

<모든 재료와 에너지가 원활히 수급될 경우 현재 보유한 장비로는 총 179시간이 소요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이에 강태석이 YES를 누르자 주변에 서있던 보행중장비들이 일제히 번쩍였다.

동시에 주변으로 울려퍼지는 알람음.

<현재 보행중장비, DROID는 무인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인부들은 즉시 탑승해주십시오.>

<다시한번 알립니다. 보행중장비, DROID는 무인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인부들은 즉시...>

"어우 시끄러운 녀석들."

"탄다 타, 타면 되잖아."

어차피 푹 쉬었다는듯 혀를 차며 보행중장비의 콕핏들 위로 타탁 뛰어올라타는 이들을 바라보며 강태석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런 강태석의 자리를 대신한건 아까전 앞장서 입을 열었던 여인.

타탁.

보행중장비의 어깨부분에 선 강태석의 옆, 콕핏으로 아래에서 가볍게 뛰어오른 여인이 들어와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 여인의 손에 들린건 개인화기.

여인뿐만이 아니다.

철커덕.

철컥.

각자의 개인화기를 하나, 혹은 두개씩 운전석의 철제프레임에 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이를 듣던 강태석을 향해 마찬가지로 총기를 건 여인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여기서 쥐죽은듯이 작업만 할거야. 사실 무기를 들고오긴 했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쉘터에는 정말로 여유가 없다.

위를 통제하는것도 벅차 인원을 뺄수도 없으며.

이곳에 과한 인원을 배치에 이곳을 들키는 것도 안된다.

즉 여기에 있는 이들이 현재 동원 가능한 최대 인력.

따로 무장인력없이 스스로 자체무장을 해야할 정도.

무기를 들었다지만 이는 정말 최악을 대비한 것으로 이들이 싸울일이 생기는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주변 정찰을 맡지요. 그나저나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것같습니다. 준비가 워낙 철저해서. 다른 입구도 미리 모두 막아뒀고."

강태석이 주변, 꽉 막힌 작은 통로들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정문의 거대한 철문이야 원래 있는거라지만 다른 입구들은 모조리 철판과 부스러기 자재들로 용접이 되어있는 형태다.

원래 뚫려있는 형태를 틀어막았다는 의미.

이렇게 되면 신경써야할 입구가 하나뿐이니 당연히 편해진다.

하지만 그런 강태석을 향해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

"응? 그거 우리가 해둔거 아냐."

"?"

"미리 몽땅 막혀있던데. 당신이 들어온 입구도 우리가 들어오면서 간신히 뜯어낸 거라고."

"..."

"뭐 누군가 숨으려고 틀어막으려했었나보지. 그나저나 우린 이제 작업하러 갈게."

키이잉...

키잉...

쿠웅!

대수롭지 않다는듯 대답하고 보행중장비를 몰아 작업을 하러 걸어가는 여인의 뒤.

홀로 남은 강태석이 뭔가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들어온 입구, 말대로 용접되었다가 뜯겨나간 흔적을 매만졌다.

**

구스트의 진지.

까드드득...

까드득...

천막 안의 의자에 앉은 구스트가 심히 불쾌한 표정으로 손 안의 무언가를 까드득거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거한, 구스트의 손에 들린건 수십개의 탄피들.

끼드드득...

끼드득...

구스트가 손에 힘을 줄때마다 탄피덩어리들이 형편없이 짓이겨지며 점점 더 동그랗게, 공처럼 뭉쳐지며 쪼그라들고 있었다.

더불어 옆에 서있던, 겁에 질린 수하들의 간덩어리도 점점 쪼그라들었고 말이다.

잠시후.

"야."

"네... 네."

퍼어억!

"악!"

"어떻게 됐어. 주변상황."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튕긴 탄피금속덩어리.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압측된 쇳덩어리가 구스트의 힘을 받아 날아드니 가볍게 튕긴 것도 사람이 튕겨 나갈 만한 위력이 된다.

악 소리를 내며 뒤로 퉁겨나갈뻔한 사내는 깨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애써 무시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얼타면 저기, 통통 튕겨나가며 바닥을 구르는 쇳더어리구슬이 다시 자신의 이마로 날아든다.

더 빠르게, 더 세게 말이다.

지금 중요한건 구스트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것.

"속속들이 쉘터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건 총 97개고 각자가 공업단지에 자리잡았으며..."

"..."

까득.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온 구슬을 무표정하게 잡아 드는 구스트의 행동에 수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지하 공동망 쪽에서 <술래잡기>라는걸 할 생각인가봅니다! 몇몇 쉘터들이 피난민들 대상으로!"

"술래잡기?"

마음에 드는 단어가 나왔다.

피난민.

그리고 술래잡기.

약한 놈들.

그리고 게임.

그제야 흥미가 당기는듯 얼굴이 펴진 구스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수하가 마저 천천히 설명에 들어갔다.

**

지하 공동망, 작업구역.

텅텅.

지하통로 입구에 선 강태석이 눈 앞, 단단히 막힌 금속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안으로 들어갔던 입구.

동시에 이제는 안쪽의 빌더들에 의해 막힌 장소.

<작업도중에는 막아놓는게 낫겠지. 요즘 지하공동망을 헤메는 피난민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안쪽의 폐자재들로 입구를 용접해막던 여인의 말을 떠올리며 강태석이 금속벽을 매만졌다.

그 말이 맞다.

피난민.

쉘터에 속하지 못했던 소수규모의 생존자들.

아무래도 많은 인원과 물자, 결집력을 보유한 쉘터에 비해서는 나약하고.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 모여든 이곳에서도 한층더 깊은, 이런 지하 공동망으로 숨어든다.

바깥에서 쉘터민들의 눈에 띄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당장 강태석의 시선을 끈건 다른 요소였다.

"... 역시 용접의 형태가 다르다."

끼득...

강태석이 손으로 눈앞, 금속벽의 용접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안쪽, 사방으로 나있던 지하통로를 막아두던 금속벽의 용접면들.

그리고 지금 새로 용접이 된 벽의 용접면.

명확하게 그 느낌이 다르다.

마치 다른 존재가 작업을 수행한 것처럼.

왜 이럴까 하여 강태석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던 순간.

철커덕.

"거기... 거기 누구야."

뒤에서 들려오는 총기소리와 겁먹은 듯한 목소리에 강태석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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