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전신개조를 한지 어언 2년이 다 되어가는 사이보그 사내는 세상이 썩 살기좋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구스트.
나이, 35.
그놈의 연방인지 뭔지가 범죄는 꿈도 못꾸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여 대청소를 감행하고 있으니 자신같은 이들은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지던 시절.
옆동네, 범죄자들의 국가 <부르탄>으로 도망치려면 불법개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목숨걸고 감행했는데 마침 도시가 함락되다니.
법이 없어진 세계, 손안에 들어온 힘.
기계를 피해 땅밑에 숨어살아야했지만 아랫도리는 기계화하지 않았기에 나름 취미거리 즐길거리도 있었으며.
오늘은 그런 자신에게 한층 더 아름다운 세상이 오는 날로 보였다.
넘치는 에너지에 모여드는 허접들이라니!
"1+2 행사라. 신나네. 야 이년 잡아둬."
털썩.
어깨에 들러맸던 여자를 옆의 수하녀석에게 내던진 사이보그 사내가 휘파람을 불며 폐허 사이로 걸어갔다.
**
"아주 난리도 아니네. 언니 미안. 손님대접하기 영 좋은 시긴 아니네. 아 물론 우리 잘못이야 아니지만."
"핵융합엔진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고?"
사방, 모여든 사람들과 세워진 군진들 사이로 울려퍼지는 총성.
그 속에서 폐허를 걷던 아너스빌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아린에게 되물었다.
핵융합엔진이라니.
그건 오직 연방, 혹은 귀족가만 합법적으로 소유할수 있는 물건이었다.
사실 귀족들도 연방에 의해 만들어진걸 사용할뿐,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는 대단한 물건.
애초에 연방이 온 세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원활히 통치할수 있었던 이유가 일곱 대초인들과 이 엔진 덕분이니 그럴수밖에 없다.
그런 아너스빌의 말에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짜잔. 이 아저씨가 주워왔지. 땅 밑에서."
"... 줏었다고?"
갈수록 이해안가는 것들 투성이.
그런 아린과 아너스빌의 옆을 걷던 강태석이 칼을 꺼내들었다.
스르릉...
"앞마당에서 칼뽑게 될줄은 몰랐네."
"하하. 미안한데 오늘부로 우리 앞마당으로 바뀌었거든. 남의 집 앞마당을 그렇게 지나가서야 쓰나."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오는 사이보그 사내의 등장에 강태석을 비롯한 셋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전신기계화.
왼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금속파츠와 섬유로 뒤바뀌어있었다.
사실 왼쪽 얼굴만 아니었으면 기계병기라도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
하지만 그렇기에 강하다.
<추정레벨 9>
<무장도가 높습니다.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눈 앞에 뜨는 창을 휘휘 치워버린 강태석이 손의 리벨리온을 빙글 돌렸다.
자신의 레벨은 7.
나쁘진 않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데다 무장도도 좋다.
저정도면 총알도 거의 안먹힌다고 봐야하니까.
거기에 전투강갑도 아직 과부하상태.
"우리 구역에 왔으니 초대를 해야겠지? 잠깐 들렀다가 아가씨들. 그 옆의 친구는 집가고."
빙글빙글 웃는 사내를 보던 강태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니까 말로 하긴 그른 상황.
이러고도 괜찮을것 같니 뭐니... 이런 쓸데없는 소리는 하기도 귀찮다.
키이잉...
칼을 쥔 강태석이 마주걸어오는 사이보그 사내를 향해 한걸음 성큼 앞으로 나가서려던 그때.
저벅.
"구스트. 네가 이러고도 괜찮을것 같으냐."
"... 페리트란. 하하. 이게 얼마만이야?"
사이보그 사내가 웃으면서도 일그러지는 인상을 감추지못하며 페리트란을 바라보았다.
**
저벅.
"구스트. 적당히 해라. 우리 쉘터 인원이니까."
"... 페리트란. 많이 컸네 이자식이. 샌님이었던 주제에."
인상을 일그러트리면서도 웃으려하는 사내, 구스트의 말에 등장한 페리트란이 차갑게 이죽였다.
"뭐라는거야 이 버러지 범죄자 새끼가. 운좋게 도시가 안무너졌으면 너는 그냥 우리 <도시경찰>들이 그냥 갈아죽였어."
"..."
이에 구스트의 얼굴이 거의 폭발할 것처럼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한대 치고싶은 노릇.
아니, 실제로 구스트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예전과 달리 구스트는 일개 범죄자가 아니고 페리트란은 거대한 도시 행정력의 일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퉤.
"크흐. 페리트란. 다음부터 너희 일행들 이마에는 표시라도 좀 해두고 다니라고 그래. 그래야 내가 알아보고 좀 신경쓰잖아?"
"꺼져. 아 그리고."
"...?"
"그 여자도 내려두고가."
쓰러진 사내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부하의 손에 잡힌 여인을 가리키는 페리트란의 말에 구스트의 눈썹이 꺾일수있는 한계치까지 꺾였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카아아아아악.
퉤.
"야. 놔줘."
"네?"
뻐어어어어억!
"커억..."
"놔주라고 이 새끼가. 말귀를 못알아들어."
수하의 배를 거의 터질것처럼 후려친 구스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진지 쪽으로 향했고.
스윽.
"같이 갑시다. 일단 우리쪽에서 치료해줄테니."
"... 고맙습니다."
걸어가 쓰러진 사내를 엎은 페리트란의 말에 납치될뻔하던 여인이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를 표했다.
제법 아름다운 광경.
이에 아린이 뿌듯하다는듯, 역시 페리트란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아너스빌 역시 만족스럽다는듯 웃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강태석 역시.
'마음에 들어. 다행이야.'
그런 강태석을 향해 사내를 업고 걸어온 페리트란이 짧고 굵게 물었다.
"구했나."
"구했지."
"... 역시. 일단 가지."
감격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일을 잊지 않은듯 앞장서는 페리트란의 뒤를 강태석과 아린, 아너스빌이 따랐다.
**
제3공업단지, 7섹터.
페리트란의 진지.
챠르륵...
의료용 천막안에 사내와 여인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 페리트란이 담배가 당기는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푸 숨을 내쉬었다.
천막사이, 제법 조용한 공간에 선것은 아린과 페리트란, 그리고 강태석뿐.
아너스빌도 안쪽 의료천막에 있다.
"일단 그녀에겐 간단한 검사를 진행하고 별일없으면 우리 쉘터로 받아들일거야."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석 옆, 아린이 페리트란을 보며 물었다.
"페리트란. 아까 그런 놈들이 흔해?"
"흔한 정도가 아냐 온통 그런 놈들이다."
페리트란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말 그대로 공업단지는 현재 온통 무법천지.
힘에 깨나 자신있는 쉘터는 무력을 믿고.
생존에 급급한 소규모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강한 세력들만 모였다면 모를까, 약자와 강자들이 뒤섞였기에 더욱 난장판이다.
"우리도 섣불리 움직일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중과부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어울리는 상황도 없으니까. 군터도 지금 눈코뜰새없이 바빠."
"..."
무장병사내, 군터를 언급하는 페리트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페리트란과 아린의 쉘터는 제법 강한 쉘터에 속한다.
그러니 예전에 거침없이 이곳, 제 3 공업단지로 행진하듯 도착할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이곳에 모여든 수십개의 쉘터들을 감당할수 있는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하나, 혹은 둘.
여차하면 페리트란들의 쉘터가 제압할수있는 쉘터의 숫자.
심지어 모여든 쉘터중에서는 그들의 쉘터와 대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세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뿐.
그리고 그건 페리트란의 쉘터 역시 마찬가지.
"간신히 핵융합엔진 위치를 지키고 있는것만으로도 바빠. 그나마 대부분의 에너지와 자재들을 다른 쉘터와 공유하는게 조건이지. 그래서 말인데..."
목소리를 줄인 페리트란이 강태석을 향해 속삭였다.
작고 낮게.
"설계도안을 가지고 지하로 가라. 배는 몰래 만들어야해. 준비는 다 해뒀다. 자재, 인력, 장비까지."
"... 점점 더 좋아지려하는데."
마음이 통했다.
강태석이 페리트란을 보며 웃었다.
**
지하공동망, 제 3입구.
띠링...
<설계도안을 확인합니다.>
철벅거리는 지하도속, 군용 넷북에 USB를 꽂은채 걷던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번에 무너졌던 지하 공동망과는 또 다른 입구.
지하 공동망은 광대하며 깊다.
제 3 공업단지 뿐만 아니라 온 도시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
저번에 무너졌던 곳은 그중 일부이며 지금 강태석이 향하는 곳은 또다른 지하이다.
<제법 넓은 공간이다. 몰래몰래 자재와 장비들을 옮겨뒀지. 네가 가면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작업을 시작할거야.>
페리트란의 말을 떠올린 강태석은 눈앞, 넷북에 떠오른 설계도안 데이터와 퀘스트창을 보았다.
사실 설계도안은 자신이 본다고 잘 알수있는게 아니다.
어차피 자동화 보행중장비에 넣으면 녀석들이 알아서 작업할 터.
스스로 움직이고 조립하고 분해하는 크기 3.3m의 보행로봇은 핵융합엔진만큼이나 연방의 발전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혁신작이다.
별칭은...
'건설로봇.'
예전 게임을 떠올리며 피식 웃은 강태석이 넷북에서 눈을 떼고 허공의 시스템창을 읽어내렸다.
<설계도안-오시리스>
<훌륭합니다. 기업, 칸델의 프로젝트 : 오시리스 설계도안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이 거대한 육상이동수단은 험지, 중앙대륙에서의 원활한 운행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그에 따라 타르늄 합금을 비롯한 몇가지의 최소종류 금속만으로 모든 구동계, 시스템, 내외골격을 구축, 수리, 작동시킬수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즉 핵융합엔진과 보행중장비, 몇가지의 재료만 구비한다면 반영구적인 운행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
<단 주의하십시오. 이 거대한 이동수단은 귀족들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스스로 지킬 힘과 권위, 세력을 넘치다 못해 과하게 지닌 이들 말입니다. 따라서 기본도안에 방어설비나 무기는 포함되어있지 않으며 이를 원한다면 추가적으로 구해서 무장해야합니다.>
<최종평가등급... C. 크기와 운항능력, 물자수송능력과 탑승자를 위한 편의시설 등은 뛰어나나 연방이나 귀족가, 혹은 초국적 기업들의 핵심기술들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술 및 장비들을 추가구비할 경우 등급이 올라갈수 있습니다.>
즉 만들고 수리하는데는 전혀 문제없으나 남이 때려부수는건 직접 막아야한다, 이말.
하긴 여객선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적용되어있는게 더 수상하다.
그리고...
"이정도면 충분하지."
일단은 정말 저정도면 충분하다.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강태석이 쭉 뻗은 지하도를 바라보았다.
이제 가서 합류하고 알아봐야한다.
이 배, 오시리스의 완성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쿠르르르릉!
<멸망 진행... 78%.>
불길하게 울리는 지하도로.
그위로 떠오르는 시스템창.
이를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 강태석이 더욱 깊은곳, 안쪽으로 향했다.
**
제 3공업단지 중심, 핵융합엔진 배치장소.
키이이이잉...
"오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으하하하하! 이거 섹스랑 비교가 안되는데!"
수많은 수하들 앞.
핵융합엔진에 손을 댄체, 기계화된 오른 눈에서 붉은 섬광은 번쩍번쩍거리고 있는 구스트의 굉소에 페리트란이 마음에 안든다는듯 눈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