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일순의 대치.
이어 폭풍처럼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욱!
후욱!
터어엉!
쉴새없이 날아드는 창을 쳐내며 물러선 강태석이 소녀를 들쳐멘뒤 돌아온 복도를 내달렸다.
3차강갑을 유지할 마력도 없다.
물론 지금상태로도 못싸울건 없지만 사내가 언제 버튼을 누를지 모를 상황.
1000을 센다고 했지만 만약 숨이 그전에 끊길것같다면 누를것이다.
생매장당하기 싫으면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한다!
으하하하! 사냥이다!
"망할 놈들."
터어어엉!
뒤에서 날아드는 창을 그림처럼 칼을 휘둘러 빗겨낸 강태석이 미친듯이 지하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지하.
콰르르릉!
가끔씩 울려퍼지는 진동속, 제단 위에서 흥겹게 벌어지는 파티를 내려다보던 사내를 향해 누군가 다가와 속삭였다.
소근.
"찾았다고? 도망치고 있는걸?"
수하의 말에 사내가 군침을 다셨다.
두더쥐놈들의 대장, 그놈이 아끼던 소녀.
놈의 바람대로 이 지하에서 가장 순결한 존재.
지상으로 이미 도망쳤을줄 알았는데 아직 지하에 있다니?
"... 우리의 신이 순백의 제물을 원하는가보군."
자신이 선 제단을 바라보며 웃은 사내가 아래를 향해 쩌렁쩌렁 소리쳤다.
"다들 들어라! 아직 할일이 남아있었다!"
...?
"오직 홀로 깨끗한척하는 마지막 쥐새끼가 살아있단다! 잡아와서 우리의 신에게 가장 귀한 제물로 바치자!"
우아아아아아아아!
사냥의 시간.
식육과 환락을 즐기던 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철창을 쥐곤 우르르 사방의 지하통로로 내달렸다.
**
와아아아아아아!
콰직!
"커헉..."
자신을 가로막으려던 한 실험체의 골통을 후려쳐버린 강태석이 미로처럼 뻗은 지하통로들,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동서남북, 사방팔방.
이 지하공동망의 지하정비통로로 추측되는곳 사방에서 조여들고 있었다.
생로가 없는건 아니었지만...
휘익!
퍼퍼퍼퍼퍽!
'몰아가고 있군.'
땅바닥에 내리꽃힌 창들을 피한 강태석이 소녀를 들쳐엎은채 창이 날아든곳,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절체절명의 위기.
거기에 이놈들이 자신들을 어디로 내몰아가고 있는지가 추측되었기에 더욱 거슬렸다.
목적지는 자신이 소녀와 처음 만났던 곳.
핵융합엔진과 제단.
그리고 악어 실험체들이 우글거리며 모여있는 장소.
거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내가 시간을 세던 1000이 다 되어간다.
"엔진도 못들고나가고... 완전 밑지는 장사겠는데."
크르르르릉...
어느새 자신의 뒤에 매달린채 사방, 조여오는 이들을 향해 아르릉거리고 있는 소녀를 흘금 돌아본 강태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목숨이라도 건져나가면 남는 장사라 치기로.
퍼어어어어억!
터어엉!
콰직!
날아드는 창을 그림처럼 칼로 쳐내고 단번에 거리를 좁혀 눈앞, 당황하는 상대를 후려갈겨버린 강태석이 저너머 통로끝을 바라보았다.
통로자락, 은은하게 풍겨들어오는 푸른 빛.
저곳이 아까전 엔진과 제단이 있던 넓은 공간.
이를 본 강태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곳까지만 도달하면 바깥으로의 입구가 코앞.
소녀, 크란을 업고있으면 아까전처럼 악어 실험체들도 무사히 피해갈수 있을터.
바깥은 아직 낮이라 더이상 쫓아오지 못할테니 그러면 탈출성공이다!
타타타탁!
달리는 힘에 박차를 가한 강태석이 순식간에 통로를 지나 제단이 있던 너른 공간으로 빠져나온 그때.
후우우욱...
사방에서 풍겨나오는 비릿한 향들.
동시에 동공 안으로 울려퍼지는 우렁우렁한 웃음소리.
"으하하. 반갑구나."
"..."
너른 공간.
자신이 빠져나온 공간, 주변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남녀들과 그 앞에 선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강태석이 발걸음이 멈췄다.
**
외통수.
지금 상황을 그보다 더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으리라.
타타타탁.
거의 본능적으로 주변의 이들을 피해 중앙, 높은 제단의 정상으로 올라간 강태석이 15m쯤 되어보이는 아래의 상황을 살폈다.
나가는 입구는 하나.
하지만 그곳을 포함하여 사방이 비릿한 혈향을 풍기는 이들 수백에 의해 가로막혀있다.
나갈곳은 단 하나도 없는 상황.
거기다...
크르르릉...
크아아아아앙!
피냄새를 맡고 흥분하며 서서히 중앙공동으로 몰려들고있는 악어실험체들을 본 강태석이 혀를 찼다.
쿵...
쿠웅...
가장 처음, 자신을 위기로 몰고갔던 터주대감같던 거대한 녀석마저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며 느긋하게 지하공동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어찌보면 진풍경.
우우웅...
카르르릉...
자신의 옆, 핵융합엔진이 뿜어내는 은은한 푸른빛에 비치는 지하공동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강태석과 그뒤, 매달린채 캬르릉거리고있는 크란을 향해 우렁우렁한 웃음소리가 퍼져울렸다.
"으하하하하 외부인 녀석아. 운도 좋구나. 하필 우리의 축제날 방문하다니."
으하하하하....
주변, 따라웃는 이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 사내가 다시 제단 위의 강태석을 향해 외쳤다.
"어찌보면 네놈도 억울할수도 있겠지. 그러니 기회를 주마. 네 손으로 그 계집의 목을 그어 제단에 피를 바쳐라. 그러면 너는 나갈수있게 해줄터이니."
"나갈수 있게 해준다고?"
"그래. 우리가 모시는 신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마. 우리들을 위한 이 좋은 날에 너같은 잡것의 피까지 흘려 부정타고 싶진 않거든."
캬르릉...
말은 못알아들어도 분위기는 아는듯했다.
강태석과 사내의 대화에 으르렁거리던 소녀가 슬쩍 기가죽은듯 강태석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꿈벅꿈벅거리는 커다란 두 눈.
이를 바라보던 강태석은 이내 자신의 목을 감고있던 소녀의 손을 푼뒤 옆에 내려놓고는 칼을 고쳐잡았다.
키이이잉...
"으하하!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야. 그래 일단 본인이 살아야지! 걱정하지마라. 약속은 반드시 지킬테니!"
순간.
"내가 이성적이긴 하지."
"...?"
빙글 칼을 돌려 저 멀리서 자신들에게 겨누는 강태석의 태도에 사내가 샛노란 눈을 갸늘게 떴다.
감히 저렇게 나온다고?
그런 사내를 향해 이어진 강태석의 말.
"이성적이라 그런지 계산이 철저하거든. 우선 첫번째. 목숨갚은 빚졌으니 나는 이걸 갚아야하고."
터억.
옆의 소녀를 바라보며 핵융합엔진에 손을 얹은 강태석이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두번째.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종일 고생만했는데 이렇게 손해만 보고 그냥 나갈수가 없단 말이야."
"?"
"그래서말인데... 너희가 좀 메꿔줘야겠다."
키이이이잉....
<흡성대법... 시전중.>
<현재 수준으로 감당할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입니다.>
<해당 대법의 시전을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전하시겠습니까?>
이에 동의하듯 강태석이 눈을 깜빡인 순간.
키이이잉....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소녀를 옆에 둔 강태석의 전신에서 맹렬한 푸른 빛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콰르르르르르르릉!
쿠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동공전체.
사내가 약속했던 거대하고 강렬한 폭발음이 지하를 뒤흔들며 울려퍼졌다.
**
콰르르르르릉!
쿠르릉!
우아아아아악!
갑작스런 푸른 섬광.
이어지는 폭발음, 무너지기 시작한 지하동공.
아래 모여있던 지하주민들이 패닉에 빠지는건 순식간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던 사내마저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콰르르르르릉!
콰르르릉!
<강갑 전투모드 1...2...3... 4단계. 해방.>
언제 잠들어있었냐는듯.
쩌어어어엉...
순식간에 자라 강태석의 전신을 뒤덮은 강갑이 사방으로 자신의 자태를 드러냈다.
기존의 백색이 아닌, 시퍼렇게 타오르는 푸른 광채를 휘감으면서!
그 속에서 강태석은 저도 모르게 억눌린 숨을 토해낼뻔했다.
전신에 넘쳐흐르는 에너지!
무엇이든 파괴할수 있을것같은 힘!
몸뿐 아니라 장갑 전체로 넘실거리는 격류가 질주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강태석은 이성을 다잡았다.
무엇이든 할수있을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콰르르르릉!
크란을 부탁한 사내의 준비는 호언장담대로 철저하고 빠르게 지하공간을 부숴 무너트리고있었다.
핵융합엔진을 들고나가고 싶지만 이 에너지는 철저한 파괴에만 집중할뿐, 수톤을 들어올릴 육체와 근력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오직 무너지기전에 빠져나가는데만 집중해야한다!
터터터터텅!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억!
"가자. 어서!"
발버둥치듯 내던져진 수십개의 창을 아까전과는 달리, 말 그대로 <녹여버린> 강태석이 뒤의 크란을 보며 외쳤다.
지금 빠져나가야한다.
이 격랑은 피아를 가리지않기에 아까처럼 업고 뛸수도 없다.
스스로 뛰어야한다!
하지만 순간.
아으....
"...?"
갸냘픈 두 팔을 커다란 핵융합엔진을 향해 뻗고있는 크란의 모습에 강태석이 멈춰섰다.
**
<크란. 이건 바깥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물건이란다.>
아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순 없었지만 무엇보다 이 커다랗고 파란 돌덩어리를 귀하게 여기는건 알았었다.
아빠도 죽은 지금 이건 어찌보면 자신에게 남겨진 유일한 추억이자 보석.
그러니 가지고 나가야겠다.
캬릉...
뻗은 양손으로 커다란 기계덩어리를 부여잡은 크란이 손끝에 힘을 준 순간.
우득...
우드드드득...
핵융합엔진이 연결된 바닥부분에서 굉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콰지지직!
콰드드득...
"...!!!!!!"
눈앞,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광경에 강태석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소녀가 두 팔, 두 다리를 이용해 말그대로 저 수톤짜리 기계덩어리를 <뽑아올리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수준의 괴력!
하지만 당황할 틈이 없다.
탁탁탁탁...
마치 서류더미를 껴앉은것마냥 앞이 보이지도 않게 기계덩어리를 껴앉고 뒤뚱뒤뚱 비틀비틀 입구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한 소녀를 본 강태석이 곧바로 그 옆으로 따라붙었다.
이걸 밖으로 들고 나갈 소녀를 지키기 위해!
후욱...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뛰어올라 소녀의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돌덩어리 파편을 단번에 후려쳐녹이듯 분쇄해버린 강태석이 그대로 소녀의 옆으로 내려앉으며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터어어어어어엉!
"우아아아악! 개자식아! 네가 다 망쳤다! 네가 다 망쳤어어어어어!"
난장판이 된 세상속.
살아남기 위해 갈팡질팡 흩어지는 지하주민들과 달리 증오를 그득 담아 자신에게 창을 내던진 사내의 외침에 강태석이 비죽였다.
"그러게 평소에 착하게 살았어야지. 누가 집에 폭탄을 설치하고싶진 않았을만큼."
"우아아아아악! 죽여!"
크르르르릉...
쿠아아아아아아악!
사내의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에 있던 악어들이 무섭게 달려들며 주둥이를 쩌억 벌렸다.
입구부에 있는 녀석들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육중한, 성체에 가까운 녀석들.
하지만 강태석도 그때와는 다르다.
콰르르르릉!
무너지는 파편속, 달려드는 짐승들.
그 너머 고함치는 사내와 흩어지는 주민들까지.
타타타탁.
뒤뚱거리며 입구로 향하는 소녀를 막아선채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천천히 자신의 양손을 내밀며 그 안에 전신 기운을 끌어다모으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잉...
전신의 푸른 섬광이 빨려들듯 양손에 모여 푸른 불꽃이 된다.
그렇게 갑옷이 백색이 되고 양손에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꽃만이 남은 순간.
"다음생엔 착하게 살아라."
강태석의 두 손이 맞부닥침과 동시에.
!!!!!!!!!!!!!!!!!!!!!!!!!!!!!!!!!!!!!!!!!!!!!!!!!!!!!!!!!!!!!!!!!!!!!!!!!!!!!!
소리마저 집어삼키는 시퍼런 섬광이 터져나오며 강태석이 바라보던 전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