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강태석이 어두컴컴하게 쭉 뻗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쿠르르릉!
지상에서의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다.
무장한 이들과 저격수들이 진지를 구축해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아린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전파방해장치를 설치하며 작업중 당분간 거주할 공간을 만들고 있다.
주변, 주인을 잃고 굴러다니는 신식보행 중장비들과 배의 외장골격을 구성할 타르늄합금 소재들도 시시각각 밝혀지는 중.
애초에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걸고 도시 구석구석을 헤멘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없는것 두가지.
첫번째, 그들이 타고 갈 <배>의 설계도안 데이터.
이를 보행중장비들에 입력해야 비로소 원활한 반자동 작업이 진행될것이다.
재료와 인력, 장비가 있어도 이 설계도안이 없다면 말 그대로 망치를 두드려 고철배를 만드는 셈.
그리고 두번째.
핵융합엔진.
'연료를 괴물처럼 잡아먹는 일반 엔진으로는 기계의 바다를 건널수가 없다.'
강태석이 숨을 후욱 들이켰다.
작업기간동안 바깥의 중장비들을 가동시키는데만 해도 쉘터의 연료 상당부분을 쏟아부어야한다.
그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배>를 오랫동안 움직이려면 더더욱 연료로는 택도 없는 상황.
"설계도랑 핵융합엔진 두가지는 반드시 구해와야지. 누구 시킬수도 없고."
"..."
입구까지 호위겸 따라온 무장병사내와 군인들이 침묵을 지켰다.
말 그대로다.
안그래도 이 노출된 곳에서 쉘터의 비축물자를 써가며 진행하는 이 작업에 많은 이들이 불만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한 곳으로 다른 팀들을 내려보낸다?
당장 팀장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다.
"내가 대신 사과라도 하고싶군."
"그럴거없어. 나라도 그럴텐데."
덤덤하게 대답한 강태석이 지하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여럿 움직일 필요없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핵융합엔진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는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도시 지하공동망 진입로>
<이곳은 기계병기들과 ????한 생존자들로 매우 위험합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
답은 yes.
이윽고.
후우우우웅...
통로로 향한 강태석의 전신이 빠르게 어둠속에 잠겨들었다.
**
찌직...
칠흙같은 어둠속.
키이이잉...
<강갑 제1 전투모드>
<현재 소비가능마력에 걸맞게 최적화합니다.>
<오감, 반사신경, 근력을 유의미하게 강화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창.
강태석이 그너머, 어둠임에도 제법 밝게 보이는 커다란 지하도 통로를 바라보았다.
제 1 모드.
소모마력을 현재 마력재생속도에 맞추어 안정적 기동을 유지한다.
마력스탯에 투자하여 마력총량과 마력재생속도를 증가시킨 이유.
어제처럼 외장이 모두 드러날 정도의 3 전투모드는 마력소모가 심하지만 이정도라면 무리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할수 있다.
"겉으로 안튀어보이는것도 좋고."
피부아래를 흘러다니며 전신을 강화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않는 강갑을 보며 강태석이 속으로 감탄했다.
보면 볼수록 물건이다.
애초에 플레이 당시에는 입수한적이 없던, 말 그대로 퀘스트 잠금도 안풀리고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에픽아이템이었기에 성능을 확인하는것은 강태석도 처음.
한데 초반부터 이정도라니.
역시 레벨, 컨트롤, 운영도 중요하지만 장비도 빼놓을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축적된 그 차이가 벌어지니까.
저벅.
찰랑.
예전에는 거대한 지하철과 이동캡슐이 돌아다녔을, 하지만 지금은 물이 허리춤까지 잔잔하게 차들기 시작한 지하선로를 헤치며 나아가던 강태석이 목표를 다시한번 정리했다.
첫번째, 레벨업.
두번째, 장비의 추가획득.
세번째, 설계도안의 확보.
네번째, 핵융합엔진 확인.
순간.
<퀘스트 : 선박건조-part 1. 엔진발굴.>
<이 거대한 도시지하 어딘가, 아직 작동하고 있는 핵융합엔진이 있습니다. 이를 발견하십시오.>
<이를 찾지못하거나 온전히 획득하지 못한다면 배의 완성은 꿈조차 꿀수 없습니다.>
<단 명심하십시오. 굳이 큰 배를 만들지 않아도 홀로 떠나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걸.>
"..."
마지막 문구에 강태석이 혀를 찼다.
물론 혼자 갈수야 있겠지.
타르늄을 두르고 연료만 충분히 싣는다면 평범한 차량으로도 어느정도 도시를 벗어나는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저건 함정.
그 거대한 기계벌레들의 망망대해속에 존재하는건 웜들 뿐만이 아니다.
큰 바다를 지나려면 큰 배가 있어야하는법.
하지만 일단은 당장 눈앞에 닥친 물가들부터 안전하게 건너야할것처럼 보였다.
첨버덩...
첨벙...
<도시 지하... 미지의 생명체들이 접근중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직업 : 기계사냥꾼은 화기전문가와 다르게 일반 생명체와는 전투궁합이 좋지 않습니다.>
"안다 알아."
촤르르륵.
태도-야마하를 꺼내든 강태석이 서서히 다가드는 물결들을 보며 강갑의 전투모드를 2단계를 발동시켰다.
**
쿠하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지하에서 주둥이를 쩍 벌리고 덤벼드는 무언가의 등장에 강태석이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강갑 2단계.
외장이 발생되진 않지만 근육과 내골격을 강화하고 피아래, 추가강화골조직을 구성해 전체적인 내구도와 근력을 상승시킨다.
목표는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거대한 악어주둥이!
에너지를 머금은 태도가 배배꼬인 강화근육의 에너지를 머금고 내리꽃힌 순간.
쩌어어어억!
<실험체-1141(LV. 3)을 처치하셨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3(32.09%).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실험체-1141 (체장 9m//체중 14.55t)>
:인류가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해 연구한 생체강화시술 실험체.
:나일악어를 기반으로 하며 1년의 성장을 거쳐 완성체로 자랍니다.
:육체의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생체펄스 차단피막을 만들어 기계로부터의 생존력을 대폭 상승시켰습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나 태양을 보지못한다는 단점과 1년의 수명제한때문에 연구결과는 폐기되었습니다.
꽈드드득...
"끝내주네."
위턱과 아래턱이 두쪽으로 갈라지고서도 강력한 근육으로 끝내 자신을 깨무는데 성공한 상대의 설명을 들으며 강태석이 까득 중얼거렸다.
그래, 생체펄스 차단피막과 강화된 육체덕에 스캐럽이나 다른 기계병기들에게 안갈리고 살아남은것 알겠다.
하지만 그걸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니 달가울리 없는 상황 .
쾅!
쾅쾅!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깨물고있던 턱주가리를 날려버린 강태석이 구멍뚫린 피부아래, 새하얗게 자리잡은 오징어뼈같은 조직을 바라보았다.
강갑 2단계 덕분에 근육과 혈관은 상하지 않았지만 여유부릴때는 아니다!
캬르르륵!
크아아아아악!
철푸덕!
쉴새없이 물살을 헤치며 거대한 주둥이들을 쩍쩍 들이대는 실험체들의 돌진을 피한 강태석이 빠르게 물속, 발밑의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붕 치솟아오르고는 그대로 성큼성큼 물 위를 내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우르르 몰려드는 실험체 녀석들의 등판을 통나무다리처럼.
그러면서도 칼끝은 정확하게 발 아래 자리잡은 녀석들의 척추줄기들을.
텅!
텅!
터엉!
쩌적!
쩌억!
박차며 허공으로 휘돌고 묘기를 부리듯 칼끝을 내저으며 발아래의 대지, 덤벼드는 녀석들의 목덜미를 베어낸다.
마치 한폭의 잘 짜여진 춤을 추듯, 끊임없이 허공을 박차 휘돌며.
<경험치가...>
<경험치가...>
<경험치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괜찮은데 생각보다?'
빠르게 쌓여가는 경험치에 강태석의 표정이 제법 밝아졌다.
상성이 조금 안맞아 들어오기전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싸울만하다.
이대로라면 죽치고 반나절정도는 레벨업에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순간.
쑤우우우우우욱!
"....!!!!!!"
갑자기 밑에서 치고 들어오는 거대한 주둥이에 강태석이 기겁을 하며 허공으로 뛰쳐올랐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
동시에 눈 앞으로 떠오르는 경고음.
<실험체-1141(LV. 9) : 완숙체가 나타났습니다.>
<1개월짜리 새끼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조심하십시오.>
"망할...!!"
'이게 한달짜리였다고?'
9m, 14.5t짜리 덩어리가?
하지만 이에 대처하기전.
퍼어어어어어억!
휘둘러진 꼬리에 얻어맞은 강태석이 마치 대포에 후려맞은 것마냥 훌훌 지하도의 허공을 내갈랐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크흠..."
"쉬잇. 쉬잇."
자신을 꼭 끌어앉아 감싸고있는 온기.
거기에 위쪽에서 들려오는 쉿 거리는 소리.
정신을 차린 강태석이 힘겹게 눈을 뜨며 자신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보이는건 어둠.
그리고 흐릿한 누군가의 얼굴.
누군가 자신의 위에 폭 포개얹은채 쉿쉿거리며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처음보는 인물.
하지만 일단 시키는대로 하는게 좋아보였다.
'거의 정신못차리고 어떻게든 빠져나온것같긴 했는데.'
가만히 누워 숨죽이던 강태석이 아까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얻어맞았다고 그대로 당하지는 않았다.
강갑을 3단계까지 작동시켜가며 필사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달려드는 녀석들을 베어내며 가장 위험한 지하도 구간을 빠져나왔고.
그 순간 체력과 마력이 거진 소모되며 정신을 잃기직전 비틀거리며 본능에 따라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상황.
<레벨 4 달성!>
<추가스탯 3이 지불됩니다.>
<스킬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보유한 두 스킬중 하나를 강화할수 있습니다.>
강태석이 눈앞의 창을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싸우긴 한 모양이다.
그사이 레벨이 오르고 경험치가 훅 들어차있었으니.
강태석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빠르게 이를 배분했다.
<스킬포인트 투자... Active <고폭장>을 강화하셨습니다.>
<고폭장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포인트를 계속 투자할경우 스킬 자체가 진화합니다.>
<스탯 투자... 반사신경2/기술1투자>
<강태석>
>레벨 : 4(88.09%)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정전기장(Passive)(등급-E)/고폭장(Active)(등급-E+1)
>스탯 : 근력4/반사신경3/체력3/마력5/기술3.
>무장 : 전투강갑(S)/태도-야마하/특수전투목적용배낭(Used)
이제는 반사신경과 기술도 필요하다.
반사신경 포인트가 투자되어야 육체가 움직이고 싶은대로 움직이고.
기술 포인트가 투자되어야 사용하는 기술들이 온전한 위력이 나온다.
그렇게 신변을 정리하자 어느정도 주변의 상황이 좀더 명확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둡지만 제법 넓고 포근한 공간.
자신의 위에 포개누운 누군가는 가벼웠으며 자신의 코끝을 향해 풋풋한 향기를 흘렸다.
'아이? 여자?'
그보다 좀더 주변을 파악하기로 결정한 강태석이 시선을 돌려 그 너머를 바라본 순간.
"..."
'설마 저거...?'
마치 제단과도 같이 지어진 석조건축물 위.
우우우웅!
웅!
웅웅거리며 사방으로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는 3m 크기의 커다란 기계장치에 강태석이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