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화 (1/221)
  • @ALLA

    로만의 검공

    뇌전의 왕

    환생좌

    ----------

    현재 멸망 n% 진행중

    1화

    최후의 게이머.

    강태석.

    현실이 된 게임의 인류 속을 질주하다.

    **

    영지육성형 가상현실게임, <그랜드크로스>.

    플레이어는 환상의 대륙에서 영주로서 영지를 키우고 군대를 건설하며 다른 유저들과 싸운다.

    한때 잘나가 프로리그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후 쇠락해 점차 유저가 줄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게임.

    퍼어억!

    "하긴 다른 재밌는 게임도 많은데."

    마치 장난마냥 손에 들린 거도를 퍽퍽 휘둘러 자신의 발아래 깔린, 붉은 비늘의 대지를 후려치던 청년이 하품을 내뱉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대지가 아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어떤 생명체의 시체.

    용.

    적룡, 아가스쿠스.

    18차 업데이트에서 확장된 세계관에 나왔던, 세계의 멸망을 담당하는 최종보스중 하나.

    물론 지금은 자신의 발아래 깔려 시체가 되어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곧 마찬가지고.

    "... 두놈까진 처리했는데 일곱은 너무하잖아."

    쿠르르르르릉!

    하늘 위를 바라본 청년, 강태석이 검은 번개구름들 위, 형형색색 떠있는 다섯 존재를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번개를 뿌리는 천사.

    일곱 칼을 든 신선.

    붉고 푸른 눈을 가진 마도사.

    왕관을 쓴 무심한 눈빛의 사내와 달처럼 거대한 함선까지.

    "그래도 혼자 오래버텼네."

    피투성이가 된 강태석이 붉은 비늘에 털썩 누워버렸다.

    이제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버려진 게임.

    홀로 애착을 가지고 막아왔지만 여기까지.

    되러 작정하고 멸망시키려는듯 업데이트때마다 추가된 17번의 침공을 지금까지 막아낸게 용하다.

    키이이이이잉!

    콰지지지직!

    새하얀 번개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칼, 점차 충전되는 함포의 빛이 자신을 겨누는 것을 본 강태석이 지긋히 눈을 감음과 동시에.

    !!!!!!!!!!!!!!!!!!!!!!!!!!!!!!!!!!!!!!!

    소음조차 나지않는 빛무리들이 그대로 강태석을 덮쳐지웠다.

    **

    치이이익!

    "후우."

    접속종료를 알리는 알림.

    그와 동시에 치익 열린 캡슐에서 일어난 강태석이 찌뿌둥하다는듯 우득 몸을 풀었다.

    "이젠 뭐하나."

    입맛을 다시며 열린 캡슐안에 널부러니 앉아있던 강태석의 앞으로 반투명한 메시지 창이 하나 떠올랐다.

    띠링!

    <... 그랜드크로스 서비스 공지.>

    <서버내 모든 플레이어와 NPC가 사망했습니다.>

    <이로서 가상현실게임, 그랜드크로스의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그냥 기다렸다는듯 종료하네."

    지이이잉!

    캡슐기기에서 쏘아지는 홀로그램 메세지창을 보며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정해진 수순이다.

    인기가 떨어져가던 5차업데이트쯤부터 모든 플레이어가 계정을 삭제하면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했고 8차업데이트부터는 아예 부활도 없애 죽으면 계정이 삭제되어버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나마 플레이하던 소수의 유저들이 이후 우수수 죽어나가며 계정이 삭제되었고 그뒤로 자신만이 오기반, 애착반으로 아득바득 버텨왔다.

    되려 자신만 플레이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서비스를 유지해준 회사가 신기할 정도.

    "업데이트 스케일도 끝내주고. 대체 뭐하는 회사야."

    메세지창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끝난 게임.

    숨을 길게 내쉰 강태석이 물을 마시러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순간.

    띠링!

    <이후 그랜드크로스는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로서 여러분을 찾아뵙습니다.>

    <모두 기꺼이 즐겨주시길.>

    "?????? 뭔 소리야 이거. 현실?"

    강태석이 눈을 꿈뻑이던 순간.

    파아아아아아아아악!

    ".....!!!!!!!!!"

    갑자기 어디선가 터져나온 빛.

    이어 새하얘지는 시야 속에서 강태석이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

    지이이이이잉!

    머리가 어지럽고 지끈지끈하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

    "..."

    연달아 의식이 스러졌다 돌아오는 경험을 한 강태석은 가까스로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서히 선명해지는 시야속와 이명속, 전해지는건 흐릿한 광경과 아스라한 소음들.

    키이이이이잉...

    "... 설마."

    폐허가 된 도심, 녹아내린 도로와 박살난 유리창들.

    마치 핵전쟁이라도 난듯한 광경.

    그 속에 덩그러니, 벽에 홀로 기대 주저앉아있는 강태석의 눈 앞에 새로운 창이 하나 떠올랐다.

    <1층. 멸망-2030>

    <2030년, 멸망의 위기를 겪었던 어느 현대세계를 배경으로 한 무대입니다. (NO. ADAA-1314)(TYPE : 현대)>

    <지금도 이 세계는 꾸준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이 세계를 무사히 탈출해서 다음세계로 올라가십시오.>

    <탈출조건 1. 레벨 100 달성>

    <탈출조건 2. 방주, <노아>의 탑승>

    <현재 멸망 74% 진행중...>

    콰르르릉!

    콰르르르르르릉!

    "이게 말이 되나."

    스르릉.

    손에 들린 칼 한자루를 들어올린 강태석이 저 멀리, 도심 어딘가로 멀어져가고 있는 사람들과 눈 앞의 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자신이 즐겨하던 게임, <그랜드크로스>의 특수형 스테이지.

    그랜드크로스는 멀쩡한 세상에서만 세력을 키우며 즐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망해가는 세상속에서 영지를 키우며 경쟁하는건 진정한 플레이어 실력의 척도들중 하나.

    문제는 게임에서야 지면 영지 날아가고 끝이었지만 이게 진짜 현실이라면...

    "죽는다고?"

    스르르르륵.

    사방에서 날아드는, 너무나 현실적인 찬바람과 흙먼지들을 두드려맞던 강태석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칼을 든뒤 자신의 팔에 가져다대었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통각의 제한.

    심호흡을 한 강태석이 슬쩍 칼날을 가져다댄 순간.

    스걱.

    "... 하하. 진짜네."

    살짝 베었음에도 아릿하게 치고 올라오는 통증에 강태석이 기가 막힌다는듯 하하 웃었다.

    물론 지금의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기는 하다.

    18차까지의 업데이트.

    그동안 자신은 이런 세계들을 무대로, 배경으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왔었으니까.

    한데 이게 진짜 현실이 되었다고?

    스륵.

    부우웅.

    손에 들린 칼을 휘둘러본 강태석이 머리를 붕붕 젓고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이게 꿈이라는 희망찬 가정은 잠시 접어두라고 하자.

    현실이라고 친다면... 이제는 어째야하나?

    하지만 이미 게임에 익숙해있던 강태석은 스스로, 거의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할 것들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세계, ADAA-1314.

    멸망의 원인은 2020년경, 잘못 건드려 이계의 공간과 연결되어버린 워프게이트.

    이 세계는 그 문을 통해 넘어온, 현대무기와 상식이 먹히지 않는 이계의 존재들의 의해 멸망했다.

    그것들과 싸워 이기고 방주, <노아>라는 데까지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곳, <현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게임에선 NPC였던,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은 이곳에 살아가던 원래 주민이던 이들의 도움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필요한건 그들의 <유산>.

    강태석이 결정을 내린 순간.

    <... 근방 탐색중>

    <퀘스트 : <부서진 무기고 돌파>>

    <보상 : <스캐럽> 전파방해기[email protected]>

    이정도면 충분하다.

    후웅.

    칼을 든 강태석이 심호흡을 한 뒤 먼지가 휘날리는 도심, 사람들이 도망쳐간 길을 따라걷기 시작했다.

    **

    도심 어딘가.

    콰르르르르!

    쿠콰콰콰!

    우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악!

    "..."

    길을 걷던 강태석의 눈에 저멀리, 미친듯이 소리치며 사방팔방 도심속을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피해다니는건 지하를 가로지르는 한줄기 강렬한 먼지구름.

    쿠콰콰콰콰!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 지하를 무언가 강렬하게 질주하며 길다란 흙먼지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앞,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이에 강태석이 눈쌀을 찌푸리며 심호흡을 하고 손에 들린 칼을 투창처럼 내던진 순간.

    콰아아아악!

    퍼어어어억!

    키리리리리리리릭!

    땅속에서 맹렬하게 튀어나와 사람을 갈아버리려던 머리통만한 드론이 한가운데 주둥이, 톱니바퀴 사이에 칼이 박힌채로 땅에 추락해 격렬하게 버둥거렸다.

    어찌나 그 힘이 강력했는지 주어진 철제장검이 으득거리며 우그러질정도.

    하지만 잠시 후.

    콰드드득!

    콰득!

    키르륵...

    <스캐럽(LV. 1)(TYPE-N)이 작동을 정지했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했습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13.31%).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근처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혹은 물자를 얻어낼수도 있습니다.>

    "..."

    철그럭.

    주변 사람들의 시선속, 사람 머리통만 둥근 드론의 주둥이에서 뒤틀린 칼날을 뽑아내든 강태석이 바닥의 기계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차원에서 넘어온 무인 기계살인병기들.

    지상에선 이런 것들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사람들 목숨을 위협하고.

    저 멀리, 태평양 어딘가에서는 지각을 관통하는 초거대 기계장치들이 바다와 산맥 지하를 파고들며 온 대륙과 멘틀을 뒤틀고 있다.

    현재 멸망 74%라는 공정이 그것.

    모든 과정이 종료되면 지표면위 모든 생명체는 녹아 스러지고 저 기계군대는 이 행성을 분해, 재조립해 자신들의 자원으로 활용한다.

    예전, <그랜드크로스>에서는 스스로의 영지와 군대를 키워 그런 기계군단과 대적하는 미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없는 일.

    당장은 생존이 우선.

    그리고 한시가 급하다.

    주변, 동료의 파괴를 감지한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들 터.

    키이이이잉!

    키이이잉!

    도시 사방,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한 소음에 강태석이 주변 피할곳을 둘러보던 그때.

    "저기. 이리로!"

    타타타탁!

    자신이 구해줬던, 넝마를 푹 뒤짚어쓴 누군가가 고운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훅 끌어당기며 타타타탁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띠링!

    <현지인들의 비밀생존거주구역에 진입합니다.>

    <열심히 활동을 할 경우 무기와 각종 장비, 신체개조등을 이곳에서 획득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이곳은 모든것이 부족합니다. 시간, 물자, 인력, 전기... 인심마저도.>

    우우우우웅!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덜컥거리는 진동과 명멸하는 전등속에서 옆의 여인이 뒤집어쓰고 있던 넝마를 벗으며 강태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긴 그나마 안전해. 발전기도 작동하고 있고 스캐럽 방해전파가 나오고 있으니까."

    "..."

    "아까전에 구해줘서 고마워. 난 아린이야. 이름이 뭐지?"

    "카트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강태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곳은 비슷해보이지만 지구와는 다른 평행세계.

    이 세계는 2000년쯤 모든 국가가 해체되고 하나의 통합연방으로 그러모였으며 이후 자신들만의 독자언어를 통한 표기를 사용한다.

    위대한 일원, 위대한 발전.

    하지만 그 빛나는 전성기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재앙의 문을 연게 아이러니.

    쿠르르릉...

    서서히 엘리베이터가 속도를 줄이자 전등이 한번더 명멸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이어 열린 문 너머로 들어온건 어두컴컴한 지하, 짧은 복도와 그너머로 이어진 공간들.

    철컥.

    금속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붉은머리 여인, 아린의 뒤를 따라걷자 입구에 선 무장병 사내가 지구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총기를 겨누며 험상궂게 물었다.

    "아린. 뒤의 그놈은 뭐야."

    "나 구해줬어. 됐지?"

    "..."

    아린의 말에 사내의 눈썹 사이가 한껏 좁아졌다.

    딱 봐도 됬다는 표정이 아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거리는게 할말이 많아보이는듯한 태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들어가. 그리고 회의에 참여해. 지금 중요한 얘기가 오가고 있으니까."

    "중요한 얘기?"

    "... 그래. 이곳 쉘터의 향후 운영방향에 대한 이야기."

    아린을 향한 사내의 말에 옆에서 듣고있던 강태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