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한 줄 없는 잔인한 피폐물 속에 환생했다.
이름도 언급되지 않은 단역이라 원작과 동떨어진 인생을 살 줄 알았다.
보름달이 뜨는 어느 밤, 남주가 작중에 없던 작위를 달고 그녀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후작이 당신을 대가로 내게 금전을 요구하더군요.”
수틀리면 검부터 빼 든다는 냉혈한임을 떠올리고 겁먹었던 것도 잠시.
세라엘은 부친이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해서요.”
문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그를 떠나보내면 다음 혼처는 대머리 노백작이란다.
야반도주까지 고민하던 세라엘은 결국 카에드와 북부로 떠나게 되는데….
***
“모두 우연이라 생각하십니까?”
결혼식 첫날밤, 젖은 뺨에 다정히 입을 맞춘 카에드가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이날 밤을 위해서 개처럼 살아왔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대, 대공님.”
남자의 금색 눈동자에는 음험한 열망이 그득 들어차 있었다.
일러스트: 애쉬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