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희주에게 유학은 해방이었다.
그 남자, 류이석을 만나야 했던 순간을 제외하면.
2주에 한 번씩 파리의 별장에 가면, 그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자신을 말없이 관찰했다.
그 기괴한 행위를 1년이나 지속하고 종적을 감춘 그가 스물다섯 살, 결혼 상대로 다시 등장했다.
“스물다섯까진 연희주 씨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뒀잖아. 아이를 가졌다 해도 그 정도는 내가 책임져 줄 생각이었는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재밌어. 세상에 갓 눈뜬 것처럼.”
류이석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을 앓고 있다.
그 때문에 더 미쳐 버렸다는 소문은 파다했고, 그를 둘러싼 구설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알아본다는 얼굴이 연희주, 였다.
“어떡하지. 난 연희주 씨 옆에서 숨 좀 쉬고 싶은데.”
그가 내비친 건 사랑이 아니었다. 감당하기 두려운 소유욕이다.
왜 하필 류이석의 눈에 든 게 나인 건지.
그와의 결혼만큼은 피하고 싶어 발버둥 쳐보지만,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넌 내, 빛이라니까.”
이 인연의 끝은 어딜 향하고 있을까.
일러스트: va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