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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68화 (완결) (168/168)

168화

다행히도 해로운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해로운!”

“……?”

돌아본 얼굴에 놀라움이 스친다. 그에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

“…왜 왔어?”

어디 가냐니까 딴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같이 용사님네 가게로 가야지.”

“나랑 같이 가려고?”

“응.”

내 말에 해로운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길마님,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 길마님, 지금.”

“218일 만에 돌아왔다는 거? 말해줬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 오빠랑 도하인한테 허락받았거든.”

나는 해로운의 말을 끊고는 활짝 웃음을 지어주었다.

“대신, 10분 단위로 연락하기로 했어.”

내 말에 해로운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지킬 수는 있는 거냐며 묻는 말에,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해줬다.

“길마님은 정말…….”

“대단하지?”

나는 해로운의 손을 덥석 잡고는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움찔, 커다란 손이 떨리는가 싶더니 살짝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인제 와서 부끄러워?”

해로운이 내 손을 꼭 끌어 잡고선 내 시선을 피한다.

“로운이는 언제나 부끄러워하고 있죠.”

“지랄하네. 뽀뽀고 키스고 뭐든 다 했으…….”

“길마님, 여기서 뽀뽀도 받고 싶고 키스도 받고 싶으면 계속 로운이를 놀려주세요.”

언제 내 시선을 피했냐는 듯이, 능글맞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해로운이 그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

내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나도 모르게 해로운의 이곳저곳을 때려버렸다.

“닥쳐줬잖아! 그런데 왜……!”

“악, 미안!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파드득, 몸을 떠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쭈뼛거리며 말했다.

“…한두 번은 그래도 되고.”

동그랗게 떠진 눈이 보인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해로운에게서 고개를 돌린 뒤, 웅얼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를 만나면, 그러니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그런 변명을 하며 해로운을 쳐다봤다.

나를 또렷하게 담아내고 있는 다갈색의 두 눈이 보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떨리는 숨을 다잡고선, 부끄럽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었다.

“좋아해.”

나를 마주 보고 있는 두 눈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말하고 나니 부끄럽다. 나는 황급히 해로운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말을 고쳤다.

“아니, 사랑…….”

입술에 살짝 닿는 것에 목소리가 멈췄다.

“사랑해.”

내 말을 이은 건, 해로운이었다.

들린 말에 얼굴에 홧홧하게 열기가 몰린다. 입술에 닿았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황급히 입가를 가리고는 해로운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 보람도 없이, 해로운이 그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인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야, 하운아?”

“시끄러!”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도망쳤다.

“하운아! 길마님!!”

내 뒤를 빠르게 따라붙는 해로운이 보인다.

“길마님, 그렇게 도망치시면 로운이 곤란하죠? 붙잡히면 로운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시끄럽다니까!!”

해로운한테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거다. 하지만.

“잡았다.”

“……!”

신체의 차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뒤에서 나를 끌어안는 손길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몸이 기우뚱 넘어갔다.

“야! 잠깐……!”

내 다급한 목소리는, 붉은 마법진에 삼켜져 버렸다.

머리를 감싸는 커다란 손이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바닥에 쓰러졌는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야야.”

해로운은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엔틱한 디자인이 엿보이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가게, 바로 용사님네 가게였다.

애먼 곳으로 이동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너희, 왜 그렇게 나타나니?”

나는 용사님을 향해 방긋 웃어주고는 말했다.

“그럴 일이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

“용사님은 몰라도 되는 일.”

해로운이 몸을 일으키며 말을 덧붙였다.

“알면 아주 큰일이 나는 일이 있었죠.”

그 말에 용사님께서 얼굴을 찌푸리신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는 얼굴은 덤이었다.

“일단, 길드장.”

“응?”

“잠깐만 나가 있으렴.”

왜, 라고 묻기도 전에 나는 용사님네 가게에서 쫓겨나 버렸다.

[Vai tu, Echina]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하지만 속아서는 안 된다. 저 간판의 뜻은 ‘네가 가라, 에키나’라는 뜻이니까.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코를 한번 훌쩍였다.

“도대체 뭐야.”

쫓겨난 이유를 모르겠다. 유리문을 통해 안쪽의 상황을 보고 싶어도 가게의 모든 문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결국, 나는 잠자코 용사님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응, 오빠.”

오빠한테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됐다, 이제 들어오렴.”

용사님께서 드디어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추위에 얼어붙은 어깨를 문지르며 뚱하게 물었다.

“도대체 뭐야?”

“길드장, 네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거든.”

“……?”

어리둥절해하며 가게의 문을 넘는 순간이었다.

펑―! 퍼벙―!

곳곳에서 터진 폭죽에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뭐… 뭐야?”

당황하며 머리칼에 붙은 것을 떼는데, 대공님께서 우스꽝스러운 꼴로 나타나셨다.

“환영 파티요!”

―맘마!

하림이의 뒤로 최강이 빼꼼 고개를 내밀면서 해맑게 웃는다.

“길짱님 돌아오시면 하려고 준비해 뒀었죠!”

“뭐……?”

멍하니 묻는 내게, 용사님께서 나에게만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속닥거리셨다.

“이렇게 해야, 미안해서 두 번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서 애들이 준비했단다.”

“귀여운 마음으로 봐주십시오, 길드장님.”

그 목소리를 강하수가 들었나 보다. 강하수의 말에 강인한이 피식 웃는다.

“강하수, 저 애들이 너보다 더 오래 살았던 애들이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에 강하수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거야 지난 삶이고, 지금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말이나 못 하면.”

용사님께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신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길드장님, 촛농 다 흐르고 있는데 어서 와서 불지?”

“이시온?”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가게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나는 비웃음을 한껏 보이며 이시온에게 말했다.

“너도 있었네.”

“나 역시 싫어도 귀환이니까.”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얄밉다. 뚱하게 얼굴을 찌푸리는데, 이시온이 그런 나를 보곤 말했다.

“원하면 나가주고.”

“나가줘.”

“싫은데?”

진짜 얄미운 새끼, 꿀밤을 한 대 먹여버릴까 보다.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마왕님께서 이시온의 머리를 마법으로 꾹 눌러버리고는 말했다.

“도하운아, 이놈은 신경 쓰지 말아라.”

“망할 마왕 새끼야! 마법 당장 안 풀어?!”

“어디서 검은 머리 짐승이 짖는구나.”

쌤통이다.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데, 유대공과 최강이 내게 케이크 하나를 들이밀었다.

“길마님, 여기요!”

“저랑 대공 형아가 매일 준비한 거예요! 용사님네 가게에서!!”

딸기가 가득 올려진 케이크였다. 그 가운데 꽂힌 촛불에서는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시온의 말대로 어서 촛불을 불어서 꺼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길마님은 이제 도망 못 가.

―미친놈 말은 무시하거라.

―길짱님, 웰컴!!

곳곳에 꽂혀있는 메시지 카드가 내 시선을 완전히 빼앗아 버렸다.

―길드장님, 저희 회사 곧 주식 상장할 거라서 당분간 의뢰 뛰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강하수, 닥치고 의뢰 뛰렴.

―맞아요! 우리는 2호점 내야 하는데 의뢰 뛰고 있단 말이에요!!

―유대공, 왜 ‘우리’니? 내 가게란다.

이 자식들, 메시지 카드로 이야기 나누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엄마! 림이랑 이제 매일 놀기!!

―안 돼, 나랑 놀아야 해.

―로운이 꺼져!!

점점 누구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도 잊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마지막 카드를 확인했다.

―ㅊㅋ

성의 없는 인사.

절로 웃음이 나오는 메시지였다.

“길짱님! 촛농 다 흘렀어요!”

“어이쿠, 이러다 먹을 게 없겠습니다.”

강하수의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짓고선 초를 불었다.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내게 최강이 야단법석을 떨며 물었다.

“길짱님! 소원 빌었어요?!”

“응.”

“무슨 소원이요? 무슨 소원 비셨어요?”

대공님께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용사님께서 그 시선을 보고선 웃으며 말했다.

“유대공, 빈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이뤄지지 않는다더구나.”

“헉……!”

최강도 몰랐다는 듯이 입가를 가렸다. 하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큰 애가 소원은 무슨.”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초를 친 건 이시온이었다.

나를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너 같은 성격 파탄자가 집사라니, 리카가 불쌍하다.”

“내가 뭐.”

드슬님께서 나를 향해 뾰족하게 두 눈을 세운다. 법사님께서 그것을 보고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아오, 진짜!!”

이시온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꺾였다. 나는 잘했다는 듯이 엄지를 치켜주었다. 마왕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망할, 법사 새끼야! 마법 당장 안 풀어?!”

“싫죠. 하운이가 칭찬해 줬으니 계속 그렇게 둘 거죠.”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강하수가 나섰다.

“아이고,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길드장님께서도 좀 말리시고요!”

보기 좋은데 왜 말려?

나는 싫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여 주기만 했다.

“다들 그만하고 이리 와서 케이크 먹으렴.”

“네에~!”

나는 해로운과 사이좋게 강인한이 주는 케이크를 받아들었다. 이시온은 여전히 고개가 푹 꺾인 채였다.

“웁쓰! 드슬이 형아, 왜 그러고 있어요? 목 아파요? 목 디스크?”

“아니니까 닥쳐!”

보기 좋은 광경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 내 옆에 해로운이 앉았다.

“길마님.”

“응?”

“무슨 소원 빌었어?”

곁에 닿는 온기에 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용사님 말 못 들었어?”

딸기 하나를 들어 해로운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빈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이뤄지지 않는다잖아.”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안 알려줄 거야.”

나는 해로운의 입에 딸기 하나를 더 넣어주고는 시끌벅적, 요란하기 그지없는 가게 안을 보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빈 소원은 하나.

“길짱님! 드슬이 형아가 저 괴롭혀요!”

“네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거겠지!!”

“드슬님, 애를 괴롭히다니! 아주 못된 사람이죠?”

“닥쳐, 해로운!”

귀환자의 길드가, 영원토록.

“너희, 시끄러운데 나가서 싸우지 그러니?”

“사장님, 저희는 가만히 있었는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겠지요?”

“짐은 억울하느니.”

이렇게.

“길마님, 안 먹어요? 그럼 하림이랑 제가 먹을래요.”

“이거 림이 거!”

“잠깐! 우리 하운이 거 뺏어 먹지 마!!”

바르게 크는 것이다.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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