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그래도 다들, 열심히 의뢰 뛰고 있었나 봐?”
최강은 안 그런 것 같지만 말이다. 나는 뒷말을 삼키고서 말했다.
“진작 망해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길드가? 아님, 세상이?”
이시온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이 망하면 곤란하고, 길드가 망해있을 줄 알았지.”
“그런 걱정을 했으면서 그렇게 사라졌었니, 길드장?”
용사님의 말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나를 보고 용사님이 말을 덧붙였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렴. 네가 없었어도 길드는 잘 굴러가고 있었으니.”
조금 상처다.
내가 보고 싶었다거나, 그런 말은 좀 해주지.
“그래도 역시 네가 있어야 하겠더구나.”
역시, 용사님. 내 마음을 알고 바로 말해주신다.
“용사님, 감동이야.”
“헛소리하지 말렴.”
용사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시선을 피해버리셨다. 부끄러우신가 보다. 그때, 대공님이 용사님의 말을 뒤이었다.
“사장님 말이 맞아요, 마왕님이 길드장이 됐을 때는 허구한 날 협박질이었고 법사님이 다시 길드장을 맡았을 때는 허구한 날 야밤에 청승을 떨어대셨거든요.”
우마훈과 해로운이 사이좋게 유대공을 노려본다. 둘의 날 선 시선에 유대공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용사님 뒤로 몸을 숨기셨다.
그보다 우리 마왕님… ‘언약’이라는 마법에서 알았지만, 협박이 특기인가 보다.
아니, 근데 마왕님이 길드장님이었다고?
“길드가 제대로 돌아갔어?”
내 말에 모두가 어깨를 으쓱인다. 자기네들도 나 없이 길드가 제대로 돌아간 게 신기한가 보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곤 유대공에게 물었다.
“법사님은 야밤에 어떻게 청승을 떨었는데.”
“울던데.”
“드슬님, 닥쳐.”
답해준 건 유대공이 아니라 이시온이었다. 해로운의 짜증 섞인 말에 이시온은 비웃음을 흘려줄 뿐이었다.
나는 이시온의 말에 감탄했다.
“법사님, 우셨구나…….”
해로운이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가린다. 그에 강하수가 말했다.
“그래도 술은 안 드셨습니다.”
“술 대신 담배는 하셨지만요!”
최강의 해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해로운이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무림님도 좀 닥쳐줄래?”
술 대신 담배라니.
나는 질린 얼굴로 해로운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해로운이 울상을 짓는다.
“끊었어. 잠깐 핀 거야. 진짜 아주 잠깐.”
잠깐 핀 거라도 그렇지!
“림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필 수가 있어!”
“마쟈! 로운이 나빠!!”
나는 곧장 손을 휘둘러 해로운의 어깨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해로운이 어깨를 부여잡고선 우는소리를 냈지만 무시다.
[성좌, ‘내가 용을 죽였게? 죽이지 않았게?’가 길드, 귀환(歸還)에게 보물을 차지한 용을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타난 메시지에 용사님께서 물으신다.
“누가 뛰러 갈 거니?”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지었다.
“누가 뛰러 가기는.”
이어질 말을 예상이라도 한 건지,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 소리를 가뿐히 무시하고선 영광의 검을 들었다.
“다 같이 뛰러 가야지.”
그래야 하지 않겠냐면서 물으니, 모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싫다는 소리는 안 나와서 다행이다.
보랏빛 비늘을 가진 용이 거리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그것을 향해 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투어 뛰어나갔다.
…원래 이런 애들이었나?
―키아아악!
용사님과 드슬님께서 용의 팔다리를 찢어버렸다. 그것이 도로 붙으려고 하자, 정령사님께서 활활 태워버리셨다.
―키에에엑!
마왕님께서 한번 휘두른 창에,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가 끊긴다. 그 끊긴 소리 가운데서 손가락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붉게 펼쳐진 마법진이 이내 벼락을 내리쳤고, 그것을 뚫고서 무림님이 주먹 쥔 손을 휘둘렀다.
퍼억―!
주먹질 한 번에, 용의 대가리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흩뿌려진 피를 고스란히 받고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너희들, 언제 이렇게 합을 맞춘 거야?”
“그러게요? 딱히 맞춘 적이 없는데, 신기하네.”
유대공의 말에 강하수가 내 뺨에 묻은 피를 운디네를 불러 닦아주며 말했다.
“이게 다 마훈 군 덕분입니다. 마훈 군께서 길드장님과 해로운 놈이 없던 동안에 얼마나 우리를 굴려댔던지…….”
“칭찬 고맙도다.”
“…….”
강하수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우마훈을 쳐다본다. 우마훈은 그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응?”
용사님께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할 일은 끝난 것 같은데.”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내가 용을 죽였게? 죽이지 않았게?’ 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가 나타났다.
나는 보상 아이템을 길드의 창고에 깊숙이 넣어 두고는 말했다.
“그럼, 나머지는 뒤에 오는 사람들한테 맡길까.”
때를 맞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도 있겠다. 나는 모두를 돌아보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돌아가자.”
도움이 필요하면, 센터가 또 염치없게 연락하겠지!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옮겼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용사님, 미워…….”
내가 돌아가고자 한 곳은 용사님네 가게였다.
모두와 함께 그간의 회포나 풀려고 했더니, 용사님께서 내 목덜미를 잡고서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길드장, 집에 가서 얼굴이나 비추고 오렴.’
집에 가서 얼굴이나 비추고 오라니, 그게 말이 쉽지. 그보다 게이트 때문에 집에 있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자 해로운이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해?”
“내가 먼저 돌아왔잖아.”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하준 형님이랑 하인 도련님께 찾아갔거든. 사과하고, 또 빌려고.”
“뭘?”
묻는 말에 해로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너랑 함께 돌아오지 못한 것, 그리고 너를 그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게 만든 것.”
너무나도 담백한 목소리였다.
“…오빠랑 도하인은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그래도 그러고 싶었어.”
나를 보는 눈에 후회가 가득 서려있다. 그것도 잠시, 해로운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결과적으로, 하인 도련님께 한 대 맞았지.”
“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해로운의 두 뺨을 붙잡았다.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아니, 물론 때릴 곳이야 많지만……!”
“…길마님, 나 걱정해 주고 있는 거 맞지?”
나는 그대로 해로운의 뺨을 꼬집어버렸다.
“너는 그걸 맞고만 있었어?!”
“그럼, 어떻게 해. 우리 미래의 처남을 때려?”
“이, 미친.”
울상이 가득한 얼굴에, 나는 해로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러버렸다.
“억……!”
해로운이 가냘픈 비명을 내고는 옆구리를 부여잡는다. 그 모습에 속이 시원해졌다.
“길마님, 제발……! 나를 좀 소중하게 여겨줘!!”
“싫어.”
가운뎃손가락을 한 번 날려주고는, 곧장 눈에 익숙한 저택으로 걸어갔다.
오빠와 도하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우리 집.
한숨을 크게 내쉬고, 초인종을 누르려는 찰나였다.
“아오, 진짜! 모처럼 쉬나 했더니!!”
그 소리와 함께 피할 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피할 새도 없었다는 말은, 그대로 문에 얼굴을 박아버렸다는 말이다.
“길마님!!”
“…길마님? 헉, 도하운?!”
반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지만 인사할 겨를 따윈 없었다.
나는 그저 얼굴을 부여잡고 끙끙 앓아댈 뿐이었다. 그런 나를 도하인이 붙잡고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도하운? 너야? 너 맞아?!”
“맞아, 이 새끼야!!”
그리고 너는 좀 맞아라!
나에게 꿀밤을 얻어먹은 도하인이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선 내게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는다.
“도하운, 너……!”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대신, 안긴 품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하인아.”
나는 도하인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너는 미안할 짓만 꼭 골라서 하더라.”
꼭, 끌어안는 손길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네가 이해 좀 해줘.”
“그래,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 줘야지.”
도하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꼼꼼히 나를 살피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도하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형한테 혼날 각오는 되어있겠지, 누나?”
아, 그건 좀.
하지만 어차피 맞게 될 매, 미리 맞는다고 나쁠 건 없었다.
도하인의 연락이 가고 나서 몇 분 지나지 않아, 오빠가 땀이 가득 맺힌 얼굴로 나타났다.
“…하운아.”
부르는 목소리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주었다. 오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다음부터는 어디 갈 때, 꼭 이야기해 줘야 해. 알겠지?”
“…응, 오빠.”
오빠가 내 뺨을 조심스레 잡고선 웃음을 짓는다.
“그래, 오빠랑 약속했어.”
“응.”
오빠의 뒤로, 해로운이 조용히 우리 집을 나서는 게 보였다. 나는 해로운이 사라진 곳을 한 번, 오빠를 한 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오빠, 나 잠깐 다녀올 곳 있어.”
“가기는 어딜 가!!”
도하인이 버럭 소리 지른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는 뚱한 얼굴을 보였다.
“그런 얼굴 보여도 안 돼! 절대 안 돼!!”
발광하는 도하인을 말린 건 천사 같은 우리 오빠였다.
“자, 여기 오빠 폰. 하운이 폰은 정지됐거든.”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에 폰을 쥐여주었다.
“10분에 한 번씩 하인이 폰으로 연락해야 해.”
보내주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오빠는 내가 어디로 향할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지, 하운아? 안 그러면 바로 찾으러 갈 거야.”
그렇게 찾으러 가면 한 달간 외출 금지라면서, 오빠는 무시무시한 말을 덧붙였다. 나는 오빠가 쥐여준 폰을 꼭 끌어 쥐며 활짝 웃었다.
“응, 다녀올게!”
그렇게 사라진 사람을 붙잡으려 집 밖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