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18. 귀환(歸還)
능글맞게 웃고 있는 얼굴을 그대로 밀어버렸다.
모래사장에 처박힌 해로운이 우는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히잉, 하운이 너무하죠.”
“어쩌라고.”
나는 손등을 들어 뺨을 박박 문질렀다. 이렇게라도 해야 뺨에 닿았던 감촉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내가 해로운의 눈에는 우습게 보이나 보다. 키득거리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다 닦으면 한 번 더 해줄게.”
“…….”
하기만 해봐, 주둥이를 그냥 찢어버릴 거다.
그런 소리 없는 경고를 해로운을 향해 보낼 때였다.
후웅―!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곧이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맘마!!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우리의 맘마 몬스터.
“림아……!”
하림이었다.
그 위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인사한다.
“돌아왔네, 길드장님.”
“이시온?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내가 여기서 나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안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가 드래곤과 함께라니, 무슨 저런 조합이 다 있나 싶었다.
무엇보다…….
“림이한테 브레스 맞은 곳은 이제 괜찮나 봐?”
“시끄러! 그때 일을 왜 상기시키는 거야?!”
이시온이 버럭 소리 지르는 것과 동시에 하림이의 몸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뭐야? 야! 너 왜 이래?!”
드래곤 슬레이어님의 당혹감에 잠긴 목소리도 잠시.
“엄마! 엄마아!!”
단숨에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하림이가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려 하림이를 안아 들었다.
“우리 림이, 많이 컸네?”
“웅! 림이 많이 컸어!!”
발음도 꽤 정확해졌다. 나는 하림이의 말간 뺨에 입을 맞추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 상황에 해로운과 이시온은 웃지 못하고 있었다.
이시온은 하림이의 폴리모프에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모래사장에 추락해 버렸다.
“아쉽다, 림이한테서 떨어지는 거 사진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닥쳐, 길드장님.”
이시온이 모래를 툭툭 털며 사납게 얼굴을 찌푸린다. 그 얼굴에 나는 한껏 비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때였다. 뭔가 고민 중인 것 같던 해로운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야, 림이 칭호는 바꿔야 할 것 같아. 무조건.”
“인제 와서?”
“진작 바꿔야 했어.”
“실패했잖아.”
오빠한테 엄마니, 아빠니, 하는 하림의 모습을 들켰을 때, 하림이의 호칭을 바꾸고자 했었다.
말했다시피 실패했지만.
내 말에 해로운이 버럭 소리 질렀다.
“억지로라도 바꿨어야 한다고!”
이시온이 저 새끼 왜 저러냐는 얼굴로 나를 본다. 나 역시 모르겠으므로 얼굴을 찌푸리곤 해로운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저렇게 다 큰 아들 둔 적 없단 말이야!!”
이 미친 새끼가!
나는 그대로 다리를 들어 해로운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아악! 내 다리! 내 발목!!”
앓는 소리를 무시하고선 이시온에게 다가갔다.
“…저 새끼가 뭐라고 한 거야?”
“신경 쓰지 마. 헛소리한 거니까.”
나는 방긋 웃어주고는 하림이에게 물었다.
“림아, 네 아빠한테 가는 중이었지?”
“웅! 아빠 쩌기!!”
림이가 가리킨 곳에 득실거리고 있는 몬스터 떼가 보인다. 그곳에서 번쩍거리고 있는 금색 마법진도 말이다.
우리 대공님, 고생 중이겠네.
“가자, 림아.”
“로우니는?”
“알아서 오겠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내 말에 하림이가 곧장 폴리모프를 풀고선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나는 하림이의 도움을 받아 널찍한 등에 올라타고선 비늘 하나를 잡았다. 그러곤 출발을 하려는데 불청객이 있다.
“너는 왜?”
“왜기는 왜야, 원래 얘랑 같이 움직이고 있었던 건 나거든.”
이시온이 불퉁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조심스레 내게 묻는다.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 거야?”
“응?”
“너는…….”
삼킨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렇기에 방긋 웃으며 답해줬다.
“두 번째잖아.”
이시온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 얼굴을 외면하며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싫어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더욱이 우리 길드의 막내님께서 의뢰를 실패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란다. 길드의 큰 어른으로 상황을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림아, 가자.”
―맘므아!!
커다란 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기 무섭게 격한 바람이 인다. 그에 해로운이 꼴사납게 뒤로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길마님!!”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가뿐하게 무시했다.
“길드장님, 해로운 새끼 진짜 버리고 가는 거야?”
“응, 진짜 버리고 갈 거야.”
내 말에 이시온이 꼴 좋다는 듯이 웃는다. 변함없이 사이좋은 길드원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다들 메시지 하나를 안 보내?”
“그건…….”
이시온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나오는 말은 결국 없었다.
“왜 말을 하려다가 말아?”
“해로운 새끼한테 물어봐.”
“……?”
우리 법사님께서 애들한테 뭔 짓을 했나 보다. 내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해로운에게 메시지를 보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에에엑!!
아가리를 벌리며 날아오는 것들이 보였다. 이시온이 검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림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
―맘므아!!
와우, 우리 림이 나이스.
브레스 한 번에 공중에 길이 뚫렸다. 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림이 잘했어.”
―맘마!
기분 좋다는 듯이 림이가 웃는다. 그것도 잠시, 다시금 몰려오는 몬스터 떼에 림이는 다시 브레스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키야아악!!
―끼에엑!!
끝이 없다.
―맘마……!
림이도 지치나 보다. 성장했다고 해도 돌도 안 지난 애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눈앞에 나타난 푸른 창을 노려봤다.
[Main]: 신살자(봉인)
[Sub]: 글로리아의 귀환자(Ex), 회귀자(봉인), 성녀(봉인), 검성(봉인), 살인귀(봉인), 전장의 승리자(봉인), 전장의 학살자(봉인), 전장의 배신자(봉인), 절대 선(善)의 지배자(봉인), 절대 악(惡)의 지배자(봉인), 종말의 구도자(봉인), 종말의 인도자(봉인), 글로리아의 배신자(Ex)
신살자가 봉인당한 거야 그렇다고 치자, 성녀와 검성은 왜 또 봉인당한 건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는데, 이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잠깐……!”
붙잡을 새도 없이, 이시온은 드래곤이 우글거리고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다.
저 미친 새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해로운 데리고 올걸!!”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데, 반가운 메시지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성좌, ‘12가지 과업을 이룩한 자’가 길드, 귀환(歸還)에게 우리에서 벗어난 사자를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나이스, 별님!!”
별님께서 말한 사자는 아무래도 지상에 있는 것 같았다. 유대공이 그 사자와 대치 중인 것 같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Main]: 신살자(봉인)
신살자의 칭호가 여전히 봉인된 상태인 것을 보고 곧장 자리에 앉았다.
“시발! 의뢰도 받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사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글로리아의 완전 소멸이 확인되었습니다.】
글로리아를 죽여, 그가 가졌던 힘을 취했었다. 그랬는데 그 힘이 완전히 소멸됐으니…….
“사슬은? 그 망할 것도 없어졌나?”
그건 아닌 모양이다.
다만, 사슬이 묶고 있는 것은 글로리아에서의 기억뿐인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머리를 끌어 쥐었다.
“빛 좋은 개살구네.”
자조적인 웃음을 흘러나온다. 그래도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사용할 수 있는 칭호를 찾고자 했다.
[Sub]: 성녀(봉인), 검성(봉인)
성녀의 봉인이 풀리면, 검성의 봉인이 풀린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아래를 흘긋거렸다.
떨어지면 죽지 않을, 딱 그 정도의 높이였다.
여기서 문제라면, ‘성녀’의 봉인이 풀린다고 해도 내가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가다.
성녀의 힘은 글로리아에게서 받은 힘이었기 때문이다.
“괜찮겠지.”
그렇다고 해도 분리된 힘이다. 글로리아는 내게 줬던 힘을 다시는 거둬가지 않았다.
내가 그 목숨을 끊어버리는 순간까지도, 그는 내 힘을 그대로 뒀었다.
나는 찬찬히 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맘마?! 맘마!!
그러곤 곧장 아래로 몸을 움직였다. 하림이가 다급히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면, 법사님이라거나 법사님이 해결해 주겠지.
그렇게 차체 위로 추락했다.
“……!”
격하게 몰려오는 고통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칭호, ‘성녀(聖女)’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칭호, ‘성녀(聖女)’의 권능이 개방됩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곧장 온몸을 치유했다. 다행히도 성녀의 힘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시발! 더럽게 아파……!”
부러졌던 뼈가 맞춰지는 감각은 굉장히 불쾌했다.
보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더니, 이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짜증스레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는 차체에서 내려왔다.
[성검(聖劍), ‘영광의 검’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립니다.]
손끝에 잡히는 검의 손잡이를 단숨에 뽑아 드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러기 무섭게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길마님……!”
“대공님, 오랜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입고 있던 옷이 넝마가 되어있다. 유대공이 코를 훌쩍이는가 싶더니 내게로 손을 뻗는다.
“흐어어엉!!”
“대공님, 스톱.”
그 손을 막아버린 건 해로운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운이 너무하죠. 그렇게 매몰차게 가버리다니.”
“…시끄러.”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고는 내 귓가에 속닥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내리다니. 우리 길마님, 로운이가 심장 쫄려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죠?”
“그건…….”
“칭호의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말 하기만 해봐?”
다갈색 눈에 새겨진 붉은 마법진이 보인다.
“그 칭호, 내가 다시 봉인시켜서 아주 그냥 꽁꽁 묶어버릴 테니.”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