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하아…….”
북쪽에 다다를수록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쌓인 눈에 계속해서 걸음이 멈췄고, 불어오는 칼바람에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으스러진 팔을 잘라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대로 뒀으면 썩어버렸을 텐데.
억지로 내디딘 걸음에 무릎이 휘청거린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꾸라져 버렸다.
해로운이 봤으면 뭐 하냐면서 놀려댔을 거다.
방정맞기 그지없었던 얼굴을 떠올리자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웃음 끝에서 슬픔이 덮쳐온다.
“미안해…….”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 더는 휘두를 수 없는 영광의 검을, 북쪽의 끝에 주둔 중인 마왕군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들이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도록 오염은 시켰을 거다. 글로리아의 종들은 그것을 보고 경악했겠지.
그 꼴을 보고 싶었는데…….
얼어붙은 몸이 더는 움직이지가 않는다.
흐릿해지는 의식을 몇 번이나 다잡고자 했지만, 두 눈은 자꾸만 감겼다.
가느다랗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불어오던 겨울의 시린 바람이 멈췄고, 눈이 덮인 땅이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이 아래로 추락한다. 억지로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에서 보이는 건 눈부신 빛이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것.
덜컥 겁이 난다. 이 끝이 정말 마지막일까 봐.
“…안 되는데.”
탁하게 내뱉어진 숨이 나의 끝이었다.
* * *
【글로리아의 완전 소멸이 확인되었습니다.】
【불완전하게 재구축된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 *
【귀환을 환영합니다.】
검게 물든 시야에 나타난 메시지 하나. 그것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
손과 발이 움직이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에게 죽음은 완전한 끝이 아닌, 반복되는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야… 여기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낙엽이 물들어 있는 공원, 그 한가운데 자리한 놀이터.
나는 모래사장에서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곧장 머리를 부여잡고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를 누군가 끌어안는다.
“늦었어.”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귓가를 간질거리는 그 목소리에 파르르, 입술이 떨렸다.
머리를 강하게 울렸던 통증도 눈이 녹듯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 남은 건 당혹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거 같아?”
해로운이 능글맞은 얼굴로 내게 묻는다.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지금까지 꿈을 꾼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들리는 말이 있었다.
“이제 길마님이라고 불러도 돼? 이름으로도 부를 거지만.”
처음 만났을 때, 아니.
글로리아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해로운은 나를 불렀었다.
‘길마님! 나야!!’
바보 같은 새끼.
머리를 울렸던 통증이 가시자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도하운!!’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 손을, 잡지 않고서 떠났었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진다.
나는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무시하고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어차피 네 마음대로 부를 거잖아, 이 망할 새끼야.”
내 말에 해로운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래도 허락은 받아야지. 그보다 망할 새끼라니, 로운이 상처받았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일그러진 얼굴이 구겨져 버렸다.
“내가 뭐라고 나를 찾으러 온 거야. 그 빌어먹을 세계까지.”
“우리를 일하게 만드시고, 구르게 만드시는 우리의 하나뿐인 길드장님이시잖아.”
그러니 찾으러 간 거라면서, 해로운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셔틀은 주인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어, 하운아.”
“…진짜 바보 같은 새끼.”
“그래도 예뻐해 줘요.”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말에 웃음이 나온다. 실없는 나의 웃음소리가 쌀쌀함을 머금은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나는 계절이 두 번은 지난 것 같은, 나의 세계를 두 눈에 담았다가 해로운을 보며 물었다.
“나와 똑같이, 회귀를 반복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내 말에 해로운이 “역시 그랬구나.”라면서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몇 번이고 똑같이 행복하게 살았겠지. 그리고 그런 걸 왜 걱정하죠, 길마님?”
남자의 얼굴이 가까이 닿는다.
“너는 ‘신살자’잖아.”
잊고 있던 칭호가 떠올랐다. 이를 상기해 준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신을 죽여 돌아오신 우리 길마님께서… 죽어버린 신의 농락에 또 당할까 봐?”
내가 글로리아를 죽여 돌아온 것을 알다니, 우리 해로운 새끼는 모르는 게 뭘까 싶었다.
간단하게 유추가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해로운의 입에서 들으니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죽어버린 글로리아의 힘이 네게 있었지?”
“……!”
정말로 소름이 돋아버렸다.
반복되는 회귀를 끝내기 위해 나는 글로리아를 죽였다.
수십, 수백 번을 도전한 끝에 취한 목숨이었다. 그렇게 죽은 신을 산산이 조각내어 그 힘을 취했다.
취한 후에는 영광의 검을 쥐어 내 목을 찔렀었다.
빌어먹을 세계에 미련 따윈 없었으니까. 그렇게 맞이한 ‘죽음’이 귀환의 조건일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고는 내게 묻는다.
“그래서? 이제는?”
글로리아의 힘이 아직도 내게 있느냐는 물음일 것이다. 그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신살자’의 칭호는 봉인된 상태였다. 시야 앞에 뜬 상태 창이 조금은 어색하다.
만져볼까 하여 손을 드는데, 해로운이 내 손을 끌어 쥐고선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다.
“미안해.”
들린 말에 숨이 멈췄다. 어깨에 닿아있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다.
“죽지 말아 달라고 해서, 그런 이기심을 부려서…….”
해로운은 나를 죽이려고 했었다. 함께 돌아가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끝내 나를 죽이지 못했고, 내게 죽지 말아 달라는 말까지 남겼다.
귀환의 조건은 ‘죽음’인데도.
“많이 보고 싶었어, 하운아.”
무어라 대답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져가기만 했다.
나는 해로운의 품에 눈물을 닦아내고선 입을 꾹 다물었다. 해로운이 내 머리칼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혼자서 끌어안지도 말고.”
장담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길마님, 대답.”
재촉하는 목소리에도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러자 해로운은, 그대로 나를 꼼짝달싹도 못 하게 끌어안고는 귓가를 간질거렸다.
“대답 안 해주면 평생 이러고 있을 거야.”
“아, 진짜……!”
능글맞기 그지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해로운의 얼굴을 밀어내며 소리 질렀다.
“알았어! 알았다고!!”
해로운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내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는 웅얼거렸다.
“내가 한 번 해봤으니까, 두 번도 괜찮을 거로 생각했거든?”
해로운에게서 이어질 말이 예상되는 건 왜일까.
“근데 아니더라.”
해로운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곤 말을 덧붙였다.
“한 번이면 족했던 거였어.”
울음기가 섞여있는 듯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해로운을 바라보았다.
쾅― 콰광―!
그 순간 느닷없이 공원을 크게 울린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해로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으며 그를 끌어안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로운.”
“응?”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번쩍이고 있는 금색의 마법진이 보였다. 유대공의 마법진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가을의 스산한 바람 소리 말고도 다른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말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해로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해로운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해로운!!”
불안감이 밀려온다.
내 안에 있는 ‘글로리아’의 힘을 좇아 이 세계로 넘어온 성하와 신관들은 사라졌다.
그러니 차원 관리자인지 뭔지 하는 새끼가 준 의뢰 역시 사라졌을 거다. 어떠한 페널티도 발생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곳곳에 열려있는 저 게이트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해로운이 내게서 불안감을 읽었는지,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게 말이야, 우리의 무림 제일 고수님이 의뢰를 대차게 실패하셨지 뭐야?”
“그럼…….”
“너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야, 하운아.”
들린 이름에 안도하며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고로 길마님은 214일 만에 돌아오신 거야. 나는 194일.”
글로리아에서는 한 계절밖에 지내지 않았는데!
1년이 지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애타게 찾아댔을 오빠와 도하인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해로운이 말했다.
“아닐 수도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여보세요, 마왕님?”
우마훈에게 진언을 보내는가 보다. 해로운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길마님이 사라진 지 지금 며칠째지? 정신없는 거 알겠지만, 답 좀 해줘. 메시지로.”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해로운이 나를 보며 말했다.
“214일이 아니라, 218일이래.”
“…….”
눈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이 얄밉다. 그에 와락 얼굴을 찌푸리는데 메시지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신살자’가 귀환했습니다.】
진작 나타날 것이지.
괜히 뚱해하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난 것이 사라지기 무섭게 해로운이 말했다.
“지금 정신없고, 하준 형님이랑 하인 도련님 보러 가고 싶겠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모르겠다.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서 해로운을 쳐다봤다. 그러기 무섭게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내 시야를 가렸다.
【‘길드장’의 직위가 ‘불멸자’에게서 ‘신살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반가운 메시지인지는 모르겠다. 그보다 뭐? 불멸자?
경악 어린 눈으로 해로운을 쳐다보는데,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으며 내 뺨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일해주세요, 길마님.”
“……!”
이 빌어먹을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