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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62화 (162/168)

162화

바체의 겨울은 춥다.

근처에 바다를 끼고 있어, 불어오는 해풍이 매섭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숲에서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가씨, 안 살 거요?”

“다른 가게 좀 보고 올게요.”

가게의 주인이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젓는다. 나는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걸음을 돌렸다.

상인들의 도시, 바체.

신전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곳이라 했으나,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북쪽 신전 측에서 바체로 신관분들을 더 보낸다더군.”

“성기사님들도 함께라지?”

“저번 달에는 남쪽 신전 측에서 신관분들이 왔던 것 같은데…….”

“왜 이 도시로 다들 모이시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들린 말에 표정을 굳혔다.

‘내가 바체에 머물고 있다는 건 모를 텐데…….’

하지만 모를 일이다.

지난날에 도와준 모녀.

아이의 어머니는 내 정체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녀가 내가 가르쳐준 오른쪽 길이 아닌, 왼쪽 길로 향하여 신전으로 갔다면?

그렇게 신전에 도착해 나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면?

불유쾌한 생각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보다 그거 들었는가? 이번에는 성하님도 함께 올 거라는 소문이 있어.”

“성하님께서는 플로유에서 심신을 안정시키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셨나?”

“사실, 플로유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문은 거짓이었고 북쪽 신전에 몸을 의탁 중이셨나 봐.”

들려오는 이름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성하가 바체에 올 거라는 소문은 소문으로 그칠 거다.

아니, 그쳐야만 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성하가 바체에 온다면? 나의 흔적을 이미 찾은 거라면?

‘떠나야 할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자꾸만 초조해졌다.

‘해로운한테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무슨 말을 꺼내든, 해로운은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다. 그것이 불편했다.

“우리 아가씨, 여기 계셨네.”

흠칫, 몸을 움츠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해로운이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내 앞에 서있었다.

맑기만 한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필요한 건 다 샀어?”

“응! 같이 가주지, 우리 아가씨 너 못됐죠.”

시끄럽다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선 다른 말을 내뱉었다.

“다음에는.”

“응?”

“다음에는 같이 가줄게.”

떠나지 않을 거다.

성하는 바체에 오지 않을 거고, 소문은 소문으로 끝날 거다.

안일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 * *

“날이 갈수록 추워지네.”

해로운이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내리던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있다.

아래로 떨어지고 있기는 하나, 멈춰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속도가 느렸다.

해로운은 허공에서 멈춰버린 작은 알갱이들을 손으로 치워내며 수풀을 헤쳐나갔다.

최근 며칠, 시든 풀을 푹 삶아 끓여 먹기만 했다.

‘돈 없어. 아껴야 해.’

도하운의 말에 해로운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었다. 돈이 없다니 벌어오겠다고 했지만, 도하운의 대답은 ‘NO’였다.

그렇게 묵묵히 풀만 끓여 먹은 지 일주일이 지나자, 해로운은 자리를 박차고 숲으로 나왔다.

“사냥하고 올게!!”

그 말만을 남기고 말이다.

‘그런데 사냥감이 없네.’

해로운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울상을 지었다. 추운 겨울날에, 다들 잠이라도 자러 간 건가 했다.

‘왜 이런 건 지구랑 닮아서는.’

해로운은 떠나온 세계를 떠올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였다.

“도와… 도와주세요…….”

“……?”

잘못 들은 걸까.

하지만 허공에 멈춰있던 눈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하운이 근처에 있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해로운은 경계심 어린 얼굴로 총을 쥐었다.

‘근처에 도하운은 없어.’

그 기척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해로운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도와주세요, 제발… 아무나 좋으니까 좀…….”

앳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온다.

도하운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던 세계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해로운은 그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며 수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히익……!”

먼저 보이는 건, 검은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이의 말간 얼굴이었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에, 해로운은 쥐고 있던 총을 아래로 내리고는 물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니?”

“엄마… 엄마가…….”

더듬더듬 이어지는 말을, 해로운은 묵묵히 기다렸다. 아이가 코를 한번 훌쩍이더니 물기 젖은 목소리를 뱉어냈다.

“엄마랑 아빠가 저랑 제 동생을 버렸어요. 제가, 성녀님이랑… 성녀님이랑 같은 색을 가졌다고.”

아이의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에 해로운은 미간을 좁혔다.

아이가 검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예상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그렇다고 하니 속이 쓰렸다.

“그래, 일단은…….”

“바체로 가야 해요!”

아이가 해로운을 절박하게 붙잡으며 말을 쏟아낸다.

“동생이 엄마랑 아빠를 찾겠다고 바체로 갔어요! 동생도, 저랑 같아요!! 성녀님이랑……!”

“같은 색을 지녔다고?”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 한 번에 눈물 한 방울이 아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해로운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말했다.

“동생은 괜찮을 거야. 내가 찾아줄게.”

“형이 어떻게요? 우리 동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잖아요.”

“너랑 똑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며? 그럼 금방 찾을 수 있지.”

바체에 남아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도하운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없었다.

해로운의 말에 아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같이 갈래요. 가야 한단 말이에요……!”

해로운은 아이에게 이유를 묻는 대신, 붉은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 안쪽에서 나온 새 한 마리에, 아이가 입술을 오므린다.

“신기해?”

“네……!”

해로운이 잔잔히 미소를 짓고는 나타난 새를 날려 보냈다. 도하운에게 자신의 말을 전해주기를, 그리 부탁하면서.

“형은 마법사예요?”

“응.”

그에 아이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두 눈을 반짝반짝거렸다.

“다른 마법사분들이랑 다른 것 같아요! 마법사분들은 다들 푸른색 마법진을 그리셨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랑 다르거든.”

“어떻게요?”

“더 잘났어.”

“……?”

아이가 뭐 이런 뻔뻔한 사람이 다 있지, 라는 얼굴로 해로운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해로운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색깔 있어? 그 머리카락을 그대로 드러내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색깔로 바꿔줄게.”

“백색이요! 하얀색!!”

해로운이 아이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아이의 머리칼을 따라 붉은빛이 번져나가는가 싶더니, 아이의 검은 머리칼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우와아!”

해로운이 방긋 웃고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생이 집에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요! 동생한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아이가 그 손을 잡고서 해맑게 말했다.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는 중앙 신전의 독실한 신도분이셨거든요! 지금은 북쪽으로 넘어가셨지만!”

중앙 신전.

해로운이 아이를 향해 경계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이는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두 분께서는 매해 공물을 바치셨는데, 그 기록이 각 신전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아요.”

“…용케도 그런 걸 아네?”

“제 꿈이 성하님처럼 되는 거거든요!”

활짝, 웃음을 짓는 얼굴에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 성하님께서, 네가 가졌던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 중이란 것은 알고?”

“…….”

시무룩한 얼굴에 해로운이 이마를 짚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너무 예민하게 굴어버렸다.

“성녀님과 오해가 풀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네 부모가 너와 동생을 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도 괜찮아요.”

어깨를 힘없이 축 늘어뜨린 모습에 해로운은 곧장 아이를 안아 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휘―익.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드러난 광경에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뭐예요? 형, 지금 뭐 하신 거예요?”

“마법.”

원래 아이와 함께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해로운은 아이에게 동생을 찾아줄 겸, 도하운이 없는 또 다른 곳도 지금처럼 시간이 흘러가고 있나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안 판다니까?! 깎는 것도 안 돼!”

“단골손님한테 너무한 거 아니에요? 조금만 더 깎아줘요!”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왁자지껄, 중앙 광장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목소리에 해로운의 두 눈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우와아! 형은 진짜 다른 마법사분들보다 훨씬 더 대단하신 분이었구나!!”

“…알아줘서 고맙다.”

해로운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에서 해로운은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집은 어디야? 동생은 어떻게 생겼고?”

“집은 중앙 광장에서 동남쪽으로 다섯 블록만 가면 되고요, 그리고 동생은…….”

아이가 검지를 들고서 해로운의 뒤로 뻗었다.

“저렇게 생겼어요.”

그 말에 해로운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가리킨 사람은, 그에게 꽤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도하운?”

허망하게 부르기 무섭게, 날카로운 뭔가가 심장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쿨럭, 해로운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것을 뱉어내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이가 푸른 눈을 휘게 접으며 웃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성하님은…….”

살갗을 파고든 것이 뽑힌다. 그와 동시에 해로운의 몸이 기울어졌다.

“해로운!!”

도하운의 목소리 끝으로, 아이가 해로운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아이로도 변할 수 있고, 노인으로도 변할 수 있으며 청년으로도 변할 수 있답니다.”

해로운이 가쁜 숨을 내쉬며 시선을 올렸다.

백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가 잔잔히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또한, 성별 역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요. 글로리아 님께서 내려주신 안배 덕에.”

“망할 새끼가……!”

목소리를 높이기 무섭게, 핏물이 토해졌다. 해로운은 심장이 타들어 가는 감각에 바닥을 긁었다.

성하가 가엾다는 듯이 그를 보고는 일그러진 얼굴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지요, 성녀님.”

“성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시린 바람을 타고 광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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