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60화 (160/168)

160화

17. 어렵지 않은 줄 알았는데 어려웠다.

겨울이 끝났다.

우마훈은 머리칼에 떨어진 꽃잎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를 떼어내 준 건 강하수였다.

“의뢰도 안 뛰고 뭐 하고 계시나 했습니다.”

우마훈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강하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강하수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이곳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까, 마훈 군?”

“둘이 아니다.”

강하수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우마훈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놀이터를, 아니 그 너머를 보며 말했다.

“내가 기다리는 건, 도하운이뿐이니라.”

“해로운 씨가 섭섭해하겠군요.”

“그놈이 말이냐?”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요.”

까르르,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둘 사이에 내려앉은 적막을 깨트린다. 강하수가 아이들이 뛰노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감독님께서 섭섭해하셨습니다. 종방 파티에 안 오셨다고요.”

“무사히 마쳤으면 그만이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종영했다.

시청률, 27.3%

케이블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며 온갖 기사가 났었다.

“서하 씨도 찾아오셨답니다.”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

소중한 사람의 친구. 그 이름에 우마훈이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달라더군요. 자기 연락은 안 받는다고.”

우마훈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무슨 염치로 연락을 받겠는가.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마훈 군, 그런 얼굴 하지 마십시오.”

“…정령사 놈아.”

“안 그래도 우중충한 사람인데, 그런 얼굴을 보이니까 주변 공기가 내려간 것 같단 말입니다.”

“칭찬이느냐?”

강하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실프를 불러냈다. 살랑이며 일어난 바람이 주변 공기를 환기한다.

일어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선 사라진다. 강하수는 우마훈과 같이 물끄러미 놀이터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안 귀찮습니까?”

“짐을 귀찮게 굴고 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구나, 정령사 놈아.”

“아니요, 저 말고요.”

우마훈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그 얼굴에 강하수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저희를 캐내려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도하운은 ‘귀환(歸還)’을 알리는 기자 회견을 열었었다. 비록, 게이트로 인해 엉망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도하운은 길드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게 알려줬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던 아웃브레이커 게이트가 잠잠해지자, 이들은 자신들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하수는 이에 대해 묻는 것이다.

뒤를 캐려는 그들이, 귀찮지 않냐고 말이다.

“형님께서 알아서 잘 처리 중이니라.”

“우마한 길드장님께서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군요.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형님께서는 영광으로 생각 중일 테다.”

안 그럴 것 같은데.

강하수가 뒷말을 삼키며 미소 지었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훈 군.”

“묻지 말거라.”

하지만 우마훈은 도하운 다음으로 강하수의 말을 듣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답지 않게 기억력이 좋은 우마훈이 뒤늦게 말을 고쳤다.

“듣고 판단하겠느니라.”

그 말에 강하수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길드장님께서 돌아오실 거로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을.”

“저는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강하수가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놀이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보고 있는 건 놀이터가 아니다.

강하수의 시선은, 우마훈과 같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있었다.

“길드장님께서 어떤 세계를 겪고 오셨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만…….”

강하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모두를 잃지 않았다면, 그 세계에서 평생 머물렀을 겁니다.”

그만큼 행복했습니다.

덧붙여 들린 말에 우마훈이 입매를 굳혔다.

“속 편한 생각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하수가 머물렀던 세계는 전쟁도, 약탈도 없었다. 당연히 마왕도 없었고, 그를 처치하기 위한 용사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강하수는 모두가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 옆에 앉아있는 우마훈만 하더라도, 마신이니 뭐니 지독한 놈에게 걸려있었다지 않은가.

놀이터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서 자리를 떠난다. 강하수도, 우마훈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다시 찾아온 적막.

우마훈이 이를 깨뜨렸다.

“도하운은 돌아올 것이다.”

“그러시겠죠. 언제가 됐든, 결국은 돌아오실 겁니다.”

사람은 결국 죽지 않느냐면서, 강하수가 웃음을 지었다.

“허락되지 않은 삶도 있지.”

“……?”

의문을 표하는 얼굴에 우마훈은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잠시.

“…저놈은.”

다가오는 이를 보고선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우마훈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한 남자가 멈춰 서있었다.

강하수가 그런 그를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지 팀장님?”

“죽었다더니.”

“오, 이프……! 아니, 이게 아니라.”

강하수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됐던 겁니다!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우마훈은 심드렁한 얼굴만 보였다. 그런 그에게 지한결이 고개를 꾸벅인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꺼지거라.”

“할 말은 하고 가야 해서요.”

지한결이 지친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염치없지만 들어주십시오.”

* * *

파삭―!

장작 하나가 허공에서 반으로 쪼개진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코코아 잔을 쥐고선 말했다.

“이 세상에서 마법으로 장작을 패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두 동강이 났다. 마력을 얼마나 정교하게 제어하면 저렇게 쪼개나 싶었다.

“그치? 나 대단하지?”

으쓱대는 어깨가 꼴 보기 싫다. 나는 코코아를 한 입 머금고는 말했다.

“칭찬한 거 아니야.”

“…로운이는 가진 걸 최대로 활용하는 중인데, 칭찬 좀 해주시면 좋겠죠.”

시무룩한 얼굴을 보이는 꼴이, 마치 간식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보였다.

해로운이 처연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아이, 잘한다.”

“영혼을 좀 담아서 해주면 안 될까요, 하운 씨?”

“응, 안 돼.”

해로운을 놀리는 동안, 따뜻하게 데워진 코코아가 식어버렸다. 나는 잔을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할 준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바체에.”

나와 해로운이 정착한 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속이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둘이서 살 수 있는 곳.

나는 로브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먹을 거 다 떨어졌잖아.”

“사냥해 올게.”

“사슴 고기는 이제 질려. 그리고 너는 네 할 것 해야지.”

장작이나 패라는 내 말에, 해로운 뒤로 쌓여있던 장작이 일제히 두 동강이 났다.

“너…….”

“같이 가도 되지?”

싱글벙글, 능글맞게 웃으면서 묻는 소리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해.”

“앗싸! 데이트!!”

“데이트 아니거든.”

내가 짜증을 내거나 말거나, 해로운은 순식간에 겉옷을 챙겨 입고는 말했다.

“가시죠, 아가씨.”

그 말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걸어서 30분인 거리를, 해로운은 참 쉽게도 이동했다.

해로운이 내 외모를 바꿔주고는 말한다.

“나는 하운이의 영원한 포털 셔틀이니까.”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나는 해로운의 얼굴을 살짝 밀어냈다. 그에 해로운이 우는 소리를 내었다.

“하운이는 나를 밀어내지 말아 달라!”

“시끄러.”

그때였다.

“꺄아아악!!”

광장을 울리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람다! 람다!! 우리 애는 성녀님이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야!!”

잠깐 잊고 있던 이름이 들린다.

“글로리아 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마왕군에 빌붙은 것을 아직도 ‘님’자 붙이며 칭송하고 있다니.”

조소가 섞인 목소리에 여인이 울며 빈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죽으라면 죽을 테니, 아이는 놓아달라고.

기사의 손에 머리칼이 잡힌 아이는 울고 있었다.

나와 닮은 점이라고는,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다는 것뿐인데도 아이는 ‘성녀’라며 끌려가고 있나 보다.

“죽여라. 이 계집은 끌고 가고.”

기사가 아이를 들쳐 멘다. 다른 기사는 아이의 어머니를 향해 검을 뽑았다.

“엄마! 엄마!!”

“람다!!”

광장에 모여있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기사를 말리려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한껏 숙이고선, 그 광경을 지나칠 뿐이다.

검을 뽑아 든 기사가 아이의 어머니를 베어버린다.

광장을 적시는 피, 아이는 그것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꿈이었으면 하나, 현실이다.

“후드, 잘 여며야지.”

내 앞에선 해로운이, 광장에 펼쳐진 풍경을 막아버린다. 그러나 귓가에는 여전히 비명이 들려왔다.

“…어차피 네가 마법 걸어줬잖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그래도.”

해로운이 잔잔히 미소를 그린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아이의 비명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이를 들쳐 멘 기사가 기절이라도 시킨 모양이다.

대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성녀 하나 잡겠다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잡아들이고 있다지?”

“람다만 불쌍하게 됐지.”

해로운의 귀에도 저 말들이 들리고 있겠지.

하지만 해로운은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말을 꺼냈다.

“…너는 참 이상해.”

“뭐가?”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아? 내가 ‘성녀’인 걸 알잖아.”

“그전에 도하운이지.”

“성녀든, 도하운이든. 둘은 같은 사람이야.”

“그래서?”

묻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외면하는 게 어때서.”

그렇게 말하는 해로운의 얼굴은, 괴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 너한테는 저 모녀를 구할 힘이 있어. 그런데?”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말했다.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부 구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저 모녀를 구할 힘은 나한테도 있어.”

어깨에 손이 닿았다. 해로운은 그대로 나를 끌어안고선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는 같이 외면 중인 거야.”

비겁하게.

덧붙인 말은 없지만, 그 말이 들린 것 같았다.

벌어진 모든 상황이 내 탓이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구할까?”

“……?”

검에 베인 여자는 광장 바닥에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여인을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엾다면서, 다들 혀만 차고 있을 뿐이다.

성기사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차마 나서지는 못하고 입만 나불대는 작자들이 역겹다.

나 역시 그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데도.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구할 힘이 있는데, 써야 하지 않겠어?”

해로운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돈다. 그에 나는 미소를 그렸다.

“무서우면 나 혼자 가고.”

“그럴 리가 없죠!!”

붉은 마법진이 떠올랐다가 모습을 감춘다.

“어? 어어?”

“뭐야! 람다 어멈 어디로 사라진 거야?”

람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나는 여미고 있던 후드를 풀고선 여인의 상처를 치료했다.

여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목소리를 뱉어낸다.

“…성녀님?”

들린 목소리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잔잔히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겨울을 머금은 바람이 인다. 그것이 멈췄을 때는, 나는 여인과 함께 숲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한테는 내가 다녀올게.”

“…뭐?”

나의 질문은 해로운에게 닿지 못했다.

떠난 자리에 다시금 바람이 분다.

‘우리는 같이 외면 중인 거야.’

그렇지 않다.

외면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리가 서로 함께이지 않았다면 너는 아이를 구했을 거다.

그리고 나는.

아이도, 쓰러져있는 아이의 어머니도 끝까지 외면했을 거다.

서로 헤어지는 것이 좋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이내 생각을 지우고는, 자괴감 어린 웃음을 흘렸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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