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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59화 (159/168)

159화

여관으로 돌아오고 나니 어느새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게 돌아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야. 그보다 필요한 건 다 샀어?”

“응, 하운이 덕분에 다 샀지!”

해로운이 산 것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는 내게 묻는다.

“아침은?”

“안 먹었어. 점심도 딱히 생각 없어.”

“그러면 안 되죠! 사람이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어야지!!”

해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몇 분이 지나 해로운이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뭔가가 담긴 그릇이 들려있었다.

“수프 좀 얻어 왔어. 이거 먹으면서 앉아있어.”

“너는?”

“저는 아침을 워낙 든든하게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죠.”

“나도 딱히…….”

생각 없는데.

하지만 해로운은 기어코 내 손에 수프가 담긴 그릇을 쥐여주었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던 약초를 가지고 무언가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기구를 가지고 약초를 만져대는 솜씨를 보니, 한두 번 해보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해로운이 내 시선을 의식한 모양인지 방긋 웃으며 말한다.

“내가 약초를 잘 다뤄. 다루던 것들이랑은 모양새가 달라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재주가 많네.”

해로운이 어깨를 으쓱인다.

“재주가 많아야 하지 않겠어?”

우리 세상으로 치면, 절구와도 같은 기구에 약초를 빻은 해로운이 이내 걸쭉하게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그래야 네가 나를 안 버릴 거 아니야.”

그렇게 웃음을 흘리고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나있는 곳에 약을 발라준다. 다정하기 그지없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안 버린다고 했잖아.”

“…….”

해로운의 시선이 물끄러미 나에게로 향한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말한 적 없으면 지금 말할게.”

해로운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는 것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나는 너 안 버려.”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해로운이 애달프게 웃음을 짓는다. 기뻐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약속 꼭 지켜줘.”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뜻 모를 웃음을 짓고 있는 해로운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야말로 나를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그릇에 담긴 수프를 비우고는 저무는 중인 해를 해로운과 함께 구경했다. 광장에서 노예 하나의 화형식이 이뤄졌다는, 들뜬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무시했다.

외면하기로 한 이상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반복되는 회귀에 정한 규칙이었다.

그렇지마는…….

“안 자?”

“잘 거야.”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누운 해로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자.”

“어디 가려고?”

다급하게 나를 붙잡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바람 좀 쐬려고.”

“같이 가.”

“안 돼.”

단호하게 말하고는 나를 붙잡고 있는 해로운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곤 해로운의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해로운이 이불을 발로 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용수철이 튀어 오른 것 같은 몸짓이었다.

“금방 돌아올 거야. 애처럼 굴지 말고 먼저 자.”

이번에도 싫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면 성녀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해로운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너 올 때까지 안 자고 있을 거야.”

“그러시든가.”

나는 해로운의 머리를 가볍게 건드리고는 후드를 뒤집어썼다.

달칵, 닫히는 방문 사이로 해로운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했다.

“애를 두고 외출하는 것 같네.”

오빠도 이랬을까.

불현듯이 떠오르는 그리운 이의 얼굴에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훗날 나를 위협할 아이템을 얻게 되는 정보 길드를 습격했을 때, 미처 제거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놓쳤다는 거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봐 제일 먼저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그가 어디로 몸을 피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여관을 나와 곧장 지하로 향했다. 내 뒤를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누구인지 알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라고 했는데.”

말 한번 지독하게 안 듣는 놈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하에 난 수로를 걸었다.

찰박거리며 발을 적시는 물이 불쾌하다. 그리고.

“흐… 흐아악……!”

겁에 질린 얼굴을 보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벌인 습격에서 도망친 사람.

정보 길드의 수장이 안쪽으로 달려가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년이 나타났다! 그년이 나타났어!!”

그 말에 안쪽에서 여럿이 뛰쳐나왔다. 각자 챙겨 든 무기는 덤이다. 나타난 이들은 수장이 고용한 바체의 거지들이었다. 이번에는 챙긴 돈이 있나 보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영광의 검을 들었다. 바체의 거지들이 내게 달려들기 전에, 먼저 그들을 베어 넘겼다.

순식간에 숨이 끊어져 버린 그들의 모습에 정보 길드의 수장이 악에 받친 목소리를 내뱉는다.

“왜……!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잘못한 거 없어. 곧 할 거라서 문제지.”

하얀 검에 맺힌 핏물을 털어내고는 수장에게 다가갔다. 찰박거리며 물이 튈 때마다, 수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사… 살려줘……! 뭐, 뭐든 다 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안 돼.”

수장의 말을 단호히 끊고는 영광의 검을 치켜들었다.

“너를 살려주면 내가 죽거든.”

이번 삶은 어떻게든 끝까지 갈 거다. 죽어서 다시 회귀를 했는데, ‘해로운’이 없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턱, 막히는 숨을 억지로 내뱉으며 치켜든 검을 휘둘렀다.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몸뚱어리가 실이 끊어진 장난감처럼 보인다.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이 역겹기 짝이 없다.

“…도하운.”

그런 나를 해로운이 부른다. 기척을 숨기며 다가오던 남자를 향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실망했어?”

“…….”

해로운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실망했어도 떠나지 마.”

일그러지는 얼굴에 더없이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나를 버리면 안 돼.”

해로운이 나를 버리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초연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왕군을 향해 떠날지. 아님, 되돌리기 위해 죽고자 할지.

되돌리는 것을 선택했는데, 회귀 후에 해로운이 없다면 그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나 죽으려고 할 거다.

“응? 알았지?”

그러니까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나는 해로운에게 빌었다.

* * *

쏴아아―

해로운은 흐르는 물에 몸을 씻기면서 짙게 밴 피 냄새를 지워내고자 했다.

도하운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검을 든 것을 볼 줄을 몰랐다.

그리고 해로운은 그걸 막지 못했다.

아니, 막지 않았다.

‘비겁한 놈……!’

숱하게 들어왔던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해로운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젖은 벽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가 막는다고 될 일이었을까.”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곤란해졌을 거다.

도하운은 회귀자니까.

몇 번의 삶을 반복한 건지 모르나, 그녀는 미래를 그린 뒤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일 테다. 그걸 방해할 수는 없었다.

‘정말?’

해로운이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진 뒤,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이 세상은 도하운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즉, 도하운이 사라지면 무너질 세계라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하운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 이 세상이 아닌,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애초에 그걸 위해서 찾으러 온 거잖아.’

귀환의 조건은 죽음.

이를 상기해낸 해로운이 표정을 굳히고서 욕실을 나섰다.

젖은 머리칼을 말릴 생각도 없이, 그는 그대로 도하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하운은 넓은 침대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곤히 잠든 얼굴이 보기 좋다. 그러나 해로운은 그녀의 가녀린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하운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마법을 펼치고서, 그렇게 가녀린 목을 조이고자 했다.

“…….”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해로운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잠들어 있는 도하운의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

굳게 닫혀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걷어진다. 해로운은 도하운의 두 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그에게 도하운이 묻는다.

“안 죽여?”

“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해로운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소중한 이의 목숨을, 이 손으로 끝낼 수가 있을까.

그것이 도하운에게 구원이 될지라도 해로운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울먹였다.

“내가 어떻게…….”

너를 죽일 수 있겠냐고, 해로운은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도하운은 뺨 위에 닿는 것을 느끼다 말없이 해로운의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었다. 다정스레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해로운의 웃음이 일그러진다.

“우리 그냥 여기서 살까?”

돌아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응? 하운아.”

묻는 목소리에 도하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해로운을 끌어안았다. 품에 가득 안기는 온기에 해로운은 결국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도하운이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서 살자.”

들린 말에 해로운이 젖은 눈을 들어 도하운을 바라본다. 도하운이 그 시선을 마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너랑 나 둘이서, 여기서 살자.”

내뱉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부딪쳐 온다.

도하운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해로운의 머리칼을 끌어 쥐며 입술을 벌렸다.

충동적으로 한 자신의 선택이, 부디 옳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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