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해로운이 도하운을 찾아 떠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 이틀이 지나 일주일을 넘어 한 달이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귀환의 길드원들은 누군가를 피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거기 멈춰.”
“…….”
최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뿐인 가족인 할머니의 퇴원 수속을 위해 병원에 찾아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망했다.’
최강은 들려온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멈추란 말 안 들려?”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날 선 목소리에 최강은 결국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최강이라고 했지, 너.”
“…네, 맞아요. 오랜만이에요, 도하인 부길드장님.”
돌아본 곳에는 도하인이 서있었다. 그렇게 귀환의 모두가 피해 다녔던 도하운의 쌍둥이 남동생, 하운의 부길드장이기도 한 도하인이 말이다.
최강은 도하인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며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무림제일고수| : 썸바디 헬프미!!
|용사| : 무슨 일이니?
|무림제일고수| : 길짱님네 동생 분께 잡혀써여ㅠ
|용사| : 힘내렴.
그 말을 끝으로 올라오는 메시지가 없다.
‘못된 사람들……!’
최강은 눈물을 머금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는 사이, 최강의 코앞까지 다가온 도하인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누나 어디 있어?”
“네?”
“우리 누나 어디 갔냐고!”
“저는, 그게…….”
길게 말을 흐리는 목소리에 도하인이 최강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디 갔냐고! 길드원이면 알 것 아니야!! 도하운, 어디 갔어!!”
다그치는 목소리에 최강은 입만 뻐금거렸다. 차마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만하거라, 도하운이의 동생 놈아.”
“……?”
“마왕 형아!”
그런 최강을 도와준 건 우마훈이었다.
최강이 뒤늦게 ‘마왕’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는 것에 헛숨을 들이켜 마셨으나 우마훈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강의 멱살을 잡고 있던 도하인의 손을 억지로 떼어낼 뿐이었다. 잡힌 손에 도하인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사납게 물었다.
“너도 알고 있지? 우리 누나 어디로 갔는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모른다.”
“하… 이것들이 쌍으로……!”
도하인이 우마훈의 손을 뿌리치며 이를 으득 갈았다. 당장에라도 공격을 가할 기세였지만, 우마훈은 태연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해줄 수 있겠구나.”
우마훈은 도하운과 닮은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도하운은 돌아올 거다.”
“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1년 동안 사라졌던 사람이 또 행방을 감췄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사라진 거였다.
‘왜?’
잃었던 배서하의 팔은 말끔히 돌아와 있었다. 도하운의 짓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이었다. 도하인은 도하운이 가진 성녀의 힘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왜?’
그렇게 친구를 치유해 줬으면서, 왜 사라진 건지 도하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라진 누나를 떠올리니 괜히 울음이 나오려고 한다.
도하인은 두 눈에 힘을 주며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무색하게도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말이다. 우마훈이 이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울지 말거라. 꼭 도하운이가 우는 것 같아서 보기 싫구나.”
“안 울거든?”
도하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가를 세게 닦았다. 그것만으로는 진정이 안 돼서 우마훈에게서 고개를 홱 돌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도하운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하운의 우는 모습이라곤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우마훈은 다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도하인을 달래듯이 말했다.
“도하운이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었느냐.”
다소 뒤늦은 대답이 이어졌다.
“믿으니까.”
“나라고……!”
“너 역시 도하운이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마훈이 도하인의 말을 끊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계속 기다려 보아라, 도하운이의 동생 놈아.”
도하운은 돌아올 테니.
덧붙여 들려오는 말에 도하인은 우마훈을 한번 노려보고는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그 뒷모습에 우마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 형아, 알 럽유. 형아 덕분에 살았어요.”
구세주라니 뭐니, 떠들어대는 목소리에 우마훈이 닥쳐달라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이를 알아먹을 최강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왕 형아는 여기 왜 온 거예요? 어디 아프세요?”
나불대며 묻는 목소리에 우마훈이 간단하게 대꾸해 주었다.
“병문안.”
“병문안?”
“네가 알 것 없느니라.”
그 순간, 둘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성좌, ‘맹덕이를 저주하는 신의’가 길드, 귀환(歸還)에게 ‘만드라고라’를 채집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
도하운이 사라지기 무섭게 지고하신 별들의 의뢰가 물밀 듯이 귀환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의뢰를, 귀환은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의뢰를 강제할 도하운이 없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였고, 최강의 눈앞에는 우마훈이 있었다.
그렇기에 최강은 어색하게 웃으며 우마훈에게서 등을 돌리려고 했다.
“저는 할머니 퇴원 때문에…….”
“다녀오거라.”
어깨를 잡는 손에 최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왜 하필 마왕 형아를 여기서 만나서는……!’
길드장을 맡게 된 우마훈은 의외로 길드를 잘 굴리고 있었다.
“짐과 언약을 맺고 싶은 게냐?”
길드원들에게 협박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최강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형아가 가면 되잖아요!”
“병문안 가야 하느니라.”
“의뢰 뛰고 가면 되잖아요!”
“그럼 너도 의뢰 뛰고 네 할 일을 하러 가면 되지 않으냐.”
어? 그것도 그렇네?
할 말을 잃은 최강이 두 눈을 멍하니 끔뻑였다. 우마훈은 그런 최강의 어깨를 투박하게 몇 번 두드려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마왕(길드장)| : 무림 놈이 의뢰를 뛰러 간다고 했느니라.
“아니, 잠깐……!”
나타난 메시지에 최강이 다급하게 우마훈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정령사| : 일이 바빠 의뢰를 뛰러 갈 수 없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무림 제일 고수님―^^
|드래곤슬레이어| : ㄱㅅ
|북부대공| : 고마워욤!!
|용사| : 사고 치지 말고, 잘 뛰고 오렴.
연이어 나타나는 메시지에 최강이 뻗었던 손을 내리며 코를 훌쩍였다.
“…길짱님, 보고 싶어요.”
도하운 역시,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우마훈과 같은 방법을 취했을 거다.
“진짜 보고 싶다…….”
최강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마는.
* * *
“……?”
“왜 그래?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거 없어.”
누군가 내 욕이라도 하고 있나 보다. 괜히 귓가가 간지러워서 귀를 만지작거리는데, 해로운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나를 본다.
걱정이 가득한 시선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래도 걱정되죠.”
“그럼, 계속 걱정해.”
해로운이 매몰차다면서 징징거렸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도착한 곳이 있었다. 흐르는 강을 사이에 끼고서 형성된 도시.
“하운 씨, 여긴 어디야?”
“바체.”
“바체?”
“상인들의 도시야. 신전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곳 중 하난데…….”
말을 멈추곤 해로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응?”
“도시에 잠깐 들를까, 아님. 이대로 지나갈까?”
나 혼자였으면 지나갔을 거다. 아님, 훗날 나의 안위를 위협할 놈들을 제거하러 잠깐 들르거나.
해로운은 내가 던진 질문에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들르자. 며칠 머무르면 더 좋고. 어차피 날도 늦었잖아?”
그렇게 웃음을 짓는 시선의 끝은 나의 발목을 향해 있었다. 성녀의 힘으로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남겨진, 그 발목에 말이다.
감춘다고 한 건데 그새 들켰나 보다. 나는 괜히 바짓자락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도시에 들를 필요는 없어.”
“굳이 하운이 때문은 아닌데.”
“…….”
능글맞게 웃고 있는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다. 그보다 호칭 좀 통일해 줬으면 좋겠는데…….
“왜? 왜 그렇게 봐, 하운아?”
“아니, 아무것도.”
눈앞의 남자는 곧이곧대로 내 말을 들어줄 놈이 아니었다. 그런 착한 놈이었으면 입 좀 닥치라는 말을 진작 들어줬을 거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뒤 해로운에게 말했다.
“네가 선택한 거야.”
“……?”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벌여도 입 다물라는 말이야.”
해로운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그것도 잠시.
“…알았어.”
들려오는 대답에 만족해하며 바체로 향했다.
바체가 신전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고는 해도, 글로리아의 보호 아래에 있는 땅이다.
즉.
“거기, 둘. 후드를 벗도록.”
중앙 신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예삿일로 여기는 곳이 아니란 말이었다.
바체의 관문을 지키는 병사가 내 얼굴이 그려진 수배지를 들고 다가온다. 해로운이 그 종이를 보고는 내게 속닥거렸다.
“우리 하운이의 미모를 못 담았네. 내가 다시 그려줄까 봐.”
“시끄러.”
해로운의 옆구리를 찌르고는 후드를 벗었다. 이 순간만큼은 해로운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통과!”
얼굴 위에 덧씌운 마법으로, 이렇게 간단히 관문을 통과해 버리니 말이다. 분명, 관문에 마력을 탐지하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을 텐데…….
“저딴 걸로 내 마법을 잡아내려고 하다니.”
해로운의 마법은 그보다 한 수 위인가 보다. 어쨌든, 편하게 바체로 들어온 우리는 곧바로 숙소를 잡았다.
“…방이 하나뿐이라고?”
“그래도 두 사람이 쓰기에는 넓은 방이랍니다. 침대는 하나뿐이지만요.”
“…….”
넓은 방인데, 침대는 왜 하나뿐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고는 여관의 주인에게 값을 냈다. 다른 곳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해로운이 속닥거린다.
“불편하면 로운이가 바닥에서 잘게요.”
처연한 얼굴로 잘도 말한다 싶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주인에게서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하운아, 화났어? 나 바닥에서 잔다니까? 응?”
옆에서 쫑알거리는 목소리에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말했다.
“화 안 났어.”
“진짜?”
“진짜.”
뭔가 애를 달래는 기분이라 안심하라는 듯이 말을 덧붙여 줬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한 침대에서 남자랑 자는 게 뭐 대수라고 내가 화를 내?”
“…한 침대에서 내가 아닌 남자랑 자본 적 있어?”
“아니, 없는데.”
어릴 적에는 동생과 한 침대를 쓰기는 했지만, 걔는 ‘남자’라고 부를 수 없는 생명체였다. 눈에 띄게 안심하는 해로운을 무시하며 나는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넓은 방만큼이나 침대 역시 두 사람이 눕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광의 검을 한 번 휘둘러, 침대 위에 어렴풋한 흔적을 새기고서 해로운에게 말했다.
“이 선 넘어오면 넘어온 만큼 베어버릴 거야.”
해로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떨리는 거 보여, 하운아?”
“안 보여.”
보인다고 해도,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