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대답 안 하지?
불유쾌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하지만 우마훈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벤치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죽겠다.’
그 옆에 앉아있는 최강은 죽을 맛이었다. 할머니 병문안을 오는 게 아니었다면서 최강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왕 형아, 여기서 계속 그러고 있을 거예요?”
“…….”
고개라도 끄덕여 주면 좋을 텐데, 우마훈은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최강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길짱님이 마왕 형아 이러고 있는 거 알면 속상해할 텐데.”
길짱님.
우마훈은 최강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았다. 그렇기에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떨궜다.
그에 최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짱님, 마왕님 우시잖아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신 거예요?’
신살자의 부재로 길드장이 교체된다는 메시지를, 최강 역시 확인했다.
‘…마왕 형아 역시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렇게 우시는 거겠지.’
비단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최강은 우마훈의 깊은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였다.
―무림님, 마왕님이랑 같이 있어? 같이 있지?
“왓 더, 퍽!!”
요란한 목소리에 우마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최강을 쳐다봤다. 최강이 그 시선을 무시하며 소리 질렀다.
“사형! 놀랐잖아요!! 진언은 왜 날려요!!”
사형이라면 해로운을 말하는 걸 거다. 우마훈이 난데없이 해로운을 찾는 최강에게 멍하니 물었다.
“미쳤느냐……?”
“미친 게 아니라 사형한테 진언 날리는 중이에요!”
최강이 씩씩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대답을 하라며, 재촉하는 메시지에 최강이 뚱한 얼굴로 답을 보냈다.
|Pr. 무림제일고수| : 같이 있어요―ㅅ―
“역시 같이 있었구나.”
“와 씨, 깜짝아!!”
붉은빛이 허공에 흩뿌려진다. 포털을 타고 나타난 해로운의 모습에 최강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는 물었다.
“도… 도대체 제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해로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왕님을 이 병원에서 만났었거든. 계속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무림님은 여기 왜 있어?”
“저요? 저는 할머니가 여기 입원해 계셔서…….”
말을 흐리는 목소리에 해로운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할머님께서 오늘 일어났던 게이트에 휘말리셨나 봐?”
“네?”
“게이트 말이야. 게이트.”
들린 단어 하나에 우마훈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진다. 해로운은 이를 봤으나, 최강은 이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아니고요. 미끄러지셔서 팔이 부러지셨거든요. 연세가 있으셔서 입원하신 것뿐이에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해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마왕님.”
해로운의 부름에 우마훈이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서 해로운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는다.
“꼴사납게 울고 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짓고 있는 웃음이 더욱 짙어지며 다소 날 선 목소리가 이어졌다.
“길마님 찾을 생각 해야지, 왜 그러고 있어?”
한심하다는 듯이 보는 얼굴에 화는 나지 않았다. 대신 우마훈은 물을 뿐이었다.
“찾을 수는 있느냐.”
“찾아야지.”
단호한 목소리에 우마훈이 느릿하게 말하였다.
“…하나 길드장은 이제 네놈이 아니더냐.”
찾을 수 없는 곳에 갔으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에 해로운이 묻는다.
“그렇게 생각해?”
도하운이 정말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간 것 같으냐고 묻는 말이었다. 해로운은 또한 물었다.
“나를 길드장이라고는 여기고?”
“…….”
“아니잖아.”
해로운뿐만이 아니다.
귀환의 모두가 자신을 ‘길드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여긴다면 진작 길드장이니 뭐니 그렇게 불렀을 거다.
귀한이 길드장으로 여기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도하운.’
사라진 이의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려본 해로운이 우마훈에게 손을 내밀며 미소를 그린다.
“마왕님, 이번 한 번만 나 좀 도와줄래?”
그래야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덧붙인 말에 우마훈은 내민 손을 잡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장서 거라.”
우마훈의 말에 해로운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 * *
해로운이 우마훈과 최강을 데리고 에키나로 향했을 무렵이다.
[의뢰가 종료되었습니다.]
지한결은 시야 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마른 입술을 달싹이는 중이었다.
“…어떻게?”
대상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한결은 방금 막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어진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
‘도하운 씨가 성하를 죽였어? 신관들도?’
그렇지 않고서야 저 메시지가 나타날 리가 없다.
‘그리고 도하운 씨도…….’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지한결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하나, 막상 들이닥치고 나니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일어났군.”
“…도빈 씨.”
지한결이 얼굴을 덮고 있던 손을 내리고서 도빈을 쳐다봤다.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나 했더니, 하늘에서 뚝 떨어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도하운의 기자 회견이 예정되어 있던 날에 지한결은 도빈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사이비] : 센터에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와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도빈은 지한결의 건방지기 짝이 없던 메시지를 떠올리고는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사이비도 하늘은 날 수 없더군.”
그에 지한결이 처연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원래 평범한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그보다…….”
해로운을 불러달라는, 그 말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사이비?”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한결이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해로운이 아닌, 귀환의 그 누구도 부를 수가 없다.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약속해. 다음 세계에서는 나한테 알은척하지 않기로. 나뿐만이 아니야.’
원망이 섞여있던 목소리.
‘우리 모두에게 알은척하지 마, 빌어먹을 새끼야.’
그 위로 다른 이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해로운의 큰 실수였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자신은 돌아와서는 안 됐던 사람이었다.
해로운의 생각대로 자신에게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동생을 주시하며 무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결국, 제 손으로 바꾼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글로리아를 따르는 신관들이 죽어버리고, 동생의 흉내를 내던 가증스러운 성하가 죽어버렸다.
도하운은 의뢰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지한결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사이비,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런 얼굴로 잘도 괜찮다고 지껄이는군.”
“…….”
지한결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자신을 더욱 꼴사납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고.
그에 도빈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라.”
“…네?”
“그런 얼빠진 대답하지 말고, 할 일이 있다면 하라는 말이다.”
할 일이라니, 그런 것 따윈 없다. 있었으나 하지 못하여 남에게 미뤘고 그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도빈이 지한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이 몸에게 감추는 것이 있다면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지한결. 김 실장이 그러다 위염이 도져서 말이다.”
김 실장이 위염이 도진 이유는 도빈에게 하고 싶은 욕을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해서였다.
도빈이 이를 알 리가 없겠지마는.
하지만 도빈의 말에 지한결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도빈에게 감추는 것이 있으나, 그에게 말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말해야 할 대상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뭐?”
약속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고 있는 건 지한결뿐이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그 약속을 어기자며, 지한결은 몸을 일으켰다. 그런 지한결을 도빈이 말렸다.
“나갔다 오겠다니? 사이비, 네놈이 며칠 만에 일어난 줄은 알고 하는 소리인가?”
“모릅니다. 하지만 만나러 가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의뢰가 종료되었다고 하나, 드는 확신이 있었다.
‘도하운 씨는 죽지 않았을 거야.’
자신이 곧 ‘글로리아’라고 했던 말.
도하운은 분명 이를 이용해서 글로리아의 모두와 함께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걸 거다.
‘알려야 해.’
지한결은 그렇게 도빈을 뿌리치고는 집을 나왔다.
자취를 감춰버린 도하운이 어디 있을지는 쉽게 예상이 갔다.
‘글로리아.’
보내졌던 세계, 그리고 떠나온 세계.
도하운은 그곳에 있을 거다.
* * *
해로운은 눈앞에서 벅찬 숨을 내쉬고 있는 남자를 무심하게 쳐다봤다. 그러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아냥거렸다.
“실종됐다더니 다행이네. 우리 길마님께서 걱정 많이 했거든.”
“…도하운 씨가, 제 걱정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어? 말만 그랬다는 거지.”
날 선 목소리에 지한결은 입을 다물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고요한 거리에 느닷없이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강인한의 가게 안쪽에서 들려오는 강하수의 비명에 지한결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 얼굴에 해로운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강 대표님 엄살이 심해서 저러는 거야.”
얼마나 심하면 저런 소리를 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저… 해로운 씨.”
“도하운 때문에 찾아온 거지, 회귀자 씨?”
“……!”
찾아온 이유를 맞췄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까지 맞췄다. 지한결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갈색 눈에 붉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왜? 도하운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잠재우고는 말했다.
“지난 세계에서 당신이 말해주지 않은 게 있습니다.”
해로운이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지한결은 말했다.
“귀환의 조건이었죠.”
지한결의 말에 해로운이 웃음을 흘렸다.
눈앞의 회귀자가 이 상황에서 귀환의 조건에 대해 운운하는 이유가 뭘까.
‘도하운이 떠나온 세계에 있기 때문에.’
해로운은 간단히 답을 유추하고선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 말해줄까?”
“네?”
“귀환의 조건 말이야.”
해로운이 성큼, 지한결 앞에 다가서고는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죽으면 돼.”
“……?”
혼란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에 해로운이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말했다.
“죽음이라고.”
지한결의 두 눈에 경악이 깃든다. 해로운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어느새 강인한의 가게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잦아들어 있었다. 우마훈이 강하수에게 걸려있던 언약을 모두 해제시킨 것이리라.
이제 남은 건 하나.
귀환의 하나뿐인 길드장님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