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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53화 (153/168)

153화

【‘성문(星門)’ 개방】

성문.

글로리아 내의 어디든 마음대로 불러올 수 있는 성스러운 문.

불러온다고 하여, 그곳이 땅 위에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딛고 선 곳을 주위로 하나의 공간이 형성되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에 제한은 없었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야 한다.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Gloria)’의 ‘중앙 대신전’을 불러옵니다.]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Gloria)’의 ‘북쪽 신전’을 불러옵니다.]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Gloria)’의 ‘남쪽 신전’을 불러옵니다.]

북쪽에 이어,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까지.

메시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잊고자 했던 마을과 도시의 이름이 차례대로 눈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파괴됐던 세계가 빠르게 복원되기 시작한다.

어지럽게 뒤바뀌는 광경에 시야가 흐릿하게 물들어진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너지는 몸.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몸을 묶고 있던 사슬이 완전히 풀어져 있다. 그 위로 나타난 것은 붉게 빛나는 메시지 창.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의 세계가 불완전하게 재구축되었습니다.]

성하를 비롯한 신관들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다고 인지할 틈도 없이, 흐릿하던 시야가 검게 물들어졌다.

* * *

[칭호, ‘9서클 대마법사’가 강제적으로 변경됩니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자 변경된 칭호가 보인다. 해로운은 소리 없이 웃었다. 허탈함이 깃들어 있는 웃음이었다.

꿈을 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도하운이 떠났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일그러진 얼굴에 울음이 비친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강하수.”

해로운이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물었다.

“왜 하필 여기야.”

“제집은 환자를 눕힐 곳이 못 돼서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로 데려왔다고 하더구나.”

강인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해로운이 누워있는 곳은 강인한의 가게, 에키나의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창고였다.

도하운이 집을 나와 잠시 동안 몸을 피했던 곳.

맞은편에 도하운이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데, 누워있는 건 다른 사람이다.

“유대공에게 고마워하렴.”

강인한이 유대공의 담요를 바로 덮어주며 말을 이었다.

“널 치료한다고 없는 마력 모두 끌어다 썼거든.”

어쩐지, 내상을 입은 몸이 이상하게 가볍다 싶었다.

해로운이 붉게 짓눌려 있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어?”

“하루도 안 지났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해로운이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고선 몸을 일으켰다. 먼저 보이는 건, 잘 정돈된 각종 기자재였다.

“용사님, 우리 나가고 나서도 꾸준히 청소하셨나 봐?”

“길드장이 언제 또 가출할지 모르니까 매일 청소하고 있었단다.”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그보다 해로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도하운에 관한 거라면 나중에.”

지금 그 이름을 말하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것 같았다. 해로운이 떨리는 손을 주먹 쥐며 이를 악물었다.

“물론, 길드장에 관한 것도 물어볼 생각이란다.”

지금은 묻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에 해로운이 강인한을 쳐다본다. 강인한이 문가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이시온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그 자식 이야기는 왜 나와?”

“유대공이 데리고 왔으니까.”

해로운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공님이 그 망할 새끼는 왜 데리고 온 걸까.’

이시온을 떠올리자 심기가 불편해진 해로운에게 강인한이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으려고 드니?”

의문은 금방 해소됐다.

‘시전자를 죽이지 않는 한 풀 수 없어.’

죽였나 보다.

온몸의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해로운이 입매를 비틀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강인한은 해로운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로운.”

불린 이름에 해로운이 감정을 갈무리하고서 묻는다.

“그래서 드슬님도 여기 있다는 거네?”

“그렇단다.”

해로운이 두 눈을 휘게 접었다.

“용사님, 이렇게 길드원들이 모여있어서 어떻게 해? 장사할 수 있겠어?”

“있을 것 같니?”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강하수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제가… 나갈 때 회사 식구들 마실 음료를 주문할 테니…….”

“나 죽으라는 거니?”

회사 식구들이라니.

100명은 훌쩍 넘을 텐데, 그 많은 사람이 마실 음료를 혼자 어떻게 만들라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길드장이 있었으면 아주 재미있어했을 거란다, 그 말.”

강인한의 말에 강하수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강인한은 짧게 혀를 찼다.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대화가 이렇게 조용해진다.

강인한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해로운에게 물었다.

“길드장은 안 죽은 거지?”

“죽기는 누가 죽어.”

짓씹듯이 내뱉은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안 죽었어.”

보지 못했으니 확신한다.

“어떻게든 찾아서 데리고 올 거야. 내가, 도하운을 찾을 거라고.”

그리고 다시는 떠나지 못하게 만들 거다.

자신의 목숨을 빌미로 협박하든, 방을 만들어 잡아 가두든. 미움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거다.

떠나지 말아 달라고 빌었음에도, 그렇게 붙잡았는데도 자신을 버린 사람이기에.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이 격해진다.

해로운이 입술을 꾹 깨물며 붉은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그런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네가 무슨 수로.”

“…이시온.”

“네가 무슨 수로 길드장님을 찾아서 데리고 올 건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용케도 접시 물에 코 박고 안 뒈지셨네? 나라면 쪽팔려서 혀를 깨물어서라도 죽었을 텐데.”

“닥쳐.”

이시온이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해로운의 말대로 이시온은 혀를 깨물어서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엘로시아를 닮은 마법진이 그를 막았었다.

닮은 거라고는 금빛을 이루는 색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엘로시아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괜히 짜증이 인다.

이를 표출하기도 전에 강인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해로운, 이시온. 둘 다 그만하렴.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니?”

“용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강인한과 강하수의 말에 이시온과 해로운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하운이 본다면 너희가 애새끼들이냐면서 혀를 차댔을 거다.

‘맞아, 그랬을 테지.’

강인한이 이 자리에 없는 도하운의 존재를 애써 지워내고는 해로운에게 물었다.

“하지만 해로운, 이시온의 말이 맞단다. 무슨 수로 길드장을 찾겠다는 거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명확한 방법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해로운은 도하운을 찾고자 방법을 탐색 중이었다.

분노를 억누르고,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렇게 머리를 구르고 있었다.

‘도하운 혼자서 사라진 게 아니야. 도하운을 데리고 간 새끼가 있었어.’

분명, 모시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성녀’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른 사람은, 이전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의 촬영장을 습격한 놈이었다.

‘도하운은 어떻게 그 새끼를 불러들인 거지?’

성녀의 힘으로? 아니면, 신살자의 힘으로?

뭐가 됐든 간에 칭호 안에 담긴 힘으로 그를 불러들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한테는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그런 힘이 있다면, 신나게 써댔을 건데. 무엇보다 진언을 날리지 못한다고 했었다.

진언.

해로운이 이를 떠올리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도하운, 어디 있어……?”

떨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푸른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대상, ‘신살자’가 닿지 못할 곳에 있습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울컥, 감정이 차오른다.

닿지 못할 곳이라니. 그런 곳 따위 존재할 리가 없다.

해로운은 핏물이 맺힐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강하수를 보며 물었다.

“정령사님, 바람은 어디든 닿잖아. 그렇지?”

“그렇습니다만…….”

그에 애달프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해로운 씨. 실프 님의 도움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을, 강하수가 끊었다.

“보지 못하셨습니까? 제가 길드장님과 언약을 맺는 것을요.”

이어진 목소리에 해로운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잠자코 이를 듣고 있던 이시온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철저하게도 사라지셨네.”

이시온의 말대로다.

떠나고자 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런 식으로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너 나 없이도 잘할 수 있지?’

못한다고 했는데. 너 없이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 말로는 부족했나 보다.

해로운이 찬찬히 숨을 내쉬며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렸다. 그러곤 강하수에게 말했다.

“파기하면 되잖아.”

“…무엇을 말입니까?”

“언약.”

알면서도 뭐 하러 묻느냐면서 해로운은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마왕님의 마법이잖아. 파기하면 돼.”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미심쩍어하며 묻는 말에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음을 짓는다.

“그게 안 된다고 해도, 억지로 부서뜨리면 되는 일이야.”

해로운의 말에 이시온이 몸을 크게 떨었다. 세뇌에 걸려있을 적, 최강의 주먹에 거하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로운은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 마왕님은 없지?”

“없단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강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혼자서 도하운을 찾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좋겠다.

해로운은 우마훈이 어디서 꼴사납게 울고 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마왕님, 내가 찾으러 가기 전에 용사님네 가게로 오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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