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서하.
나와 도하인의 하나뿐인 친구, 배서하.
아무리 밀어내도 기어코 다가와서는 결국 우리 쌍둥이의 곁을 차지했던 나의 친구.
1년 만에 돌아온 나를 끌어안고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어댔던 소중한 친구가 다쳤단다.
“도하인! 서하 어디 있어!!”
사람들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법사님의 포털을 타서 응급실에 도착했다.
“…도하운, 너.”
도하인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 시선에 답해줄 정신 따윈 없었다.
“서하 어디 있냐고!”
내 친구의 안부를 살피는 게 더 중요했다.
하지만 도하인은 서하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내 손목을 잡고선 곧장 응급실을 나갔다.
“도하인!”
“배서하 지금 수술 들어갔어.”
들린 말에 벌어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수술을 왜 들어가? 크게 다친 곳은 없다면서?”
도하인이 내 손목을 놓고는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할 말을 찾지 못해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다쳤길래?”
“아니야, 그리 크게 안 다쳤어.”
“거짓말하지 마!!”
도하인이 입을 뻐금거리다가 결국 다문다. 그 모습에 나는 도하인을 붙잡고서 서하에 관해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다쳤길래 그래? 왜 말을 안 해주는 건데!!”
“…많이 안 다쳤다니까.”
도하인이 나를 떼어놓고선 내 뒤를 보며 말했다.
“우리 누나 좀 부탁할게요.”
“네, 도련님.”
뒤늦게 따라온 해로운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선 속삭인다.
“서하 씨 괜찮을 거야. 도련님께서도 많이 안 다쳤다고 하잖아.”
“…거짓말하는 거야.”
많이 안 다쳤다는 애가 수술실에는 왜 들어가냐고. 치밀어 오르는 성난 목소리를 억누르곤 물었다.
“여기, 수술실이 어디지?”
“도하운.”
“투명화 마법 좀 걸어줘, 법사님. 서하 좀 보러 가야겠어. 지금 당장.”
“도하운!”
해로운이 내 어깨 부근을 잡고선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정해.”
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어르듯이 달래는 목소리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서하 씨 괜찮을 테니까, 진정 좀 하라고.”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선 고개 숙였다. 그런 나를 해로운이 조심스레 안는다.
“서하 씨 기다리자.”
머리칼에 닿는 손길이 느껴진다.
“같이 기다려줄게, 응?”
“…그래 줘야지.”
웅얼거린 목소리에 해로운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해로운을 밀어내고선 괜히 코 아래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서하는 괜찮을 거다.
그래야 했다.
수술실 앞에서 서하를 기다리며 이번에 일어난 게이트에 관해 많은 걸 듣게 됐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촬영 중이던 배우가 사람들을 많이 구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었다.
마왕님께서 왜 게이트가 일어난 곳에 계시는가 했더니, 드라마 촬영 중이었나 보다. 왜 하필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촬영하던 곳에서 게이트가 열린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질 때였다.
“서하야……!”
서하의 부모님께서 도착하셨다.
어정쩡하게 일어나, 두 분께 다가가려는데 수술실의 불이 꺼졌다. 이내 문이 열리더니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보이는 의사가 튀어나왔다.
“배서하 씨, 보호자 분 계십니까?”
보호자를 찾는 목소리에 서하의 부모님께서 한달음에 달려가신다.
“죄송합니다, 잘린 팔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네……?”
오염도가 워낙 심각했고, 잘린 단면이 깔끔하지 못하여 붙일 수가 없었다는 말에 서하의 부모님께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셨다.
그런 두 분을 일으켜 세운 건 언제 왔는지 모를 도하인이었다.
“하운의 힐러들이 책임지고 살피겠습니다.”
살핀다는 말이 고작이었다.
서하의 부모님께서는, 그 말에도 고맙다는 듯이 다시 한번 더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셨다.
그 울음소리가 허망하게 내 귓가를 울린다.
“길마님.”
부르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들고선 말했다.
“서하에게 데려다줘.”
해로운은 아무 말 없이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도하인이 힘을 쓴 건지, 서하는 1인실에 홀로 누워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의 옆에 앉고는 붕대가 감긴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권능, ‘치유’가 활성화됩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길마님.”
“할 수 있어.”
느리게나마 되돌릴 수 있었다.
해로운에게 아무도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한 뒤에 성녀의 힘을 쏟아냈다.
잘린 곳을 재생시키는 건, 몇 배나 많은 힘이 들어간다. 일주일은 쥐 죽은 듯이 자야 피로한 몸이 회복될 정도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니…….”
잠들 새도 없이, 나는 떠날 테니.
잠결에 잠긴 목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미소가 일그러졌다.
“나 안 죽었지?”
“…응, 안 죽었어.”
왜 하필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촬영하던 곳에서 게이트가 열린 걸까.
게이트(Gate).
어느 순간 갑자기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해도, 최근 들어 나타나는 것들은 그 양상이 달랐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것 같나요?
소리 없이 전해졌던 물음이 떠오른다. 드라마 촬영장에 성하가 와있었을 거다.
그런 성하를 잡고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수록,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운아.”
쏟아부은 성녀의 힘에, 다시 자라난 서하의 팔이 내게로 움직인다. 서하는 그렇게 내 손을 힘주어 잡고선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나 운이 때문에 다친 거 아닌데. 운이가 그런 얼굴 할 필요 없는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서하의 이마에 다시 손을 얹었다.
[권능, ‘안식’이 활성화됩니다.]
고르게 내뱉어지는 숨에 서하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때문에 다친 게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기다란 상처를 남긴 것만 같다.
크게 숨을 들이켜 마셨다가 찬찬히 내쉬며 백색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언제든지 찾아와요, 성녀님.’
뺨에 닿았던 손길이 생각난다.
‘당신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저희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그들 역시 마음만 먹으면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 안의 ‘글로리아’의 흔적을 쫓아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떨리는 손을 주먹 쥐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를 데리러 와.”
그들에게 닿았을까.
닿았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잠든 서하의 얼굴을 두 눈에 담고는 병실을 나왔다.
이번 게이트로 다친 사람은 서하였다. 다음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다음’에는 성녀의 힘을 사용하기도 전에 그 누군가가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수야 없지.
다행히 병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로운이 맡은 바를 잘하고 있나 보다.
“앞으로도 쭉…….”
잘했으면 좋겠다고, 그리 생각하며 목적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 걸음이 멈춘 것은, 온몸이 흠뻑 젖은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우마훈.”
지키지 못했다면서, 내게 사과를 전했던 남자.
“왜 그런 꼴로 서있어.”
깊게 팬 상처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힘이 풀리려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우마훈에게 다가갔다.
“배서하는…….”
“괜찮아.”
우마훈의 뺨에 손을 얹고선 미소 지었다. 아파도 참으라고, 그렇게 말하곤 성녀의 힘을 베풀었다.
순간 드는 현기증에 쓰러질 뻔했지만, 우마훈을 지지대 삼아 잡고선 말했다.
“너 때문에 다친 거 아니야.”
마왕님께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그런 마왕님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미소 지었다.
“마왕님 때문에 다친 거 아니니까, 그런 얼굴 보이지 마.”
“그럼, 너는?”
우마훈이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너는 왜 그런 얼굴을 보이는 것이냐.”
그에 답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널찍한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는 말할 뿐이었다.
“우마한 길드장님께서 걱정하시겠다. 어서 돌아가 봐.”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달싹이는 입술을 무시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마왕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나온 밖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어디야?
나타난 메시지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도하운, 어디냐니까?!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실없는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길드장님?”
그러나 마주한 얼굴에, 나는 입을 다물고는 표정을 굳혔다.
* * *
“도하운……!”
해로운이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병실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불현듯이 느껴진 불안감만 아니었더라면 착실히 그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배서하의 병실에서 도하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너 나 없이도 잘할 수 있지?’
느닷없이 떠오른 목소린 도하운의 것이었다.
떠올린 목소리에 해로운이 이를 으득 갈고선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불안해하며 곳곳을 헤집었다. 그러다가 만난 우마훈을 보며 해로운은 나지막하게 물었다.
“도하운 만났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러나 침묵은 곧 긍정이라, 해로운은 물었다.
“이번에도 안 잡았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우마훈이 허탈하게 웃는다.
“내가 어떻게 도하운을 잡을 수 있었겠느냐.”
게이트가 열린 곳에 우마훈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또한, 그곳에 도하운의 친구인 배서하가 있었다는 것 역시 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잡았을 거야.”
우마훈이 작게 몸을 떨고는 해로운을 쳐다봤다. 해로운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말했다.
“잡았을 거라고.”
자꾸만 사라지려는 그 몸을 붙잡고는 빌었을 거다.
제발, 사라지려 하지 말라고.
꽁꽁 묶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붙잡아 빌었을 거란 말이었다.
해로운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우마훈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누군가의 흔적을 무시하며,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