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50화 (150/168)

150화

볕 좋은 오후.

우마훈은 두 눈을 감고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심히 옮겨! 그거 비싼 거야!!”

“저기 뒀던 소품은 어디 갔어? 누가 좀 찾아봐!”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모두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졌다.

“마훈 씨! 잠깐 나와주세요……!”

오직 우마훈만이 여유로웠다.

나와 달라는 말에도 우마훈은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그런 우마훈을 잡아끈 것은 드라마의 촬영 감독인 나 감독이었다.

“마훈 씨! 비켜달라는 말 못 들었어?! 애들 방해하지 말고 어서 나와!”

“비켜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와달라고 한 것이느니라.”

어쨌든 똑같은 말 아니냐며, 한 소리를 하려던 나 감독은 이어진 우마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짐이 왜 방해가 되느냐? 짐을 방해한 것은 오히려 저자들이니라.”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광합성 중이었는데, 저자들이 이를 방해했다면서 우마훈은 근엄하게 말했다.

“자르거라.”

“뭘 잘라!! 마음 같아서는 마훈 씨를 그냥 확……!”

잘라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어!

나 감독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켰다.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빈 씨도 마훈 씨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고맙도다.”

“…칭찬으로 들려?”

“칭찬 아니냐?”

우마훈의 말에 나 감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답이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 촬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였다.

“나 감독님.”

“아이고, 지 작가! 무슨 일로 여기를 다 왔어?”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어요. 그보다 커피 좀 드셔요.”

웃으면서 커피를 건네는 이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의 대본을 집필한 지여일이었다.

나 감독이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걸 뭐 하러 사와!”

“그러면서 받고 있지 않느냐, 나 감독이여.”

“마훈 씨, 제발 그 입 좀……!”

나 감독이 욱, 치미는 감정을 가까스로 갈무리하고는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닥쳐주면 안 될까?”

“지금 짐에게 닥치라고 한 것이냐, 나 감독아?! 짐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도하운이뿐이니라!”

“여기서 그 사람이 왜 나와!!”

나 감독이 답답한 속에 가슴을 두드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마훈은 나 감독을 향해 뚱한 얼굴을 보이곤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 작가야.”

“네?”

지여일은, 아니. 그 몸을 차지하고 있는 성하는 긴장했다. 눈앞의 남자는 어떤 질문을 던질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하가 긴장 어린 얼굴을 숨기고서 미소를 지을 때였다.

“도하운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

“이전에 보니, 도하운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느니라.”

그에 성하가 미소를 지었다.

우마훈이 말한 ‘이전’은, 도하운에게 자신이 성하임을 드러냈던 날일 거다.

그날의 일을 떠올린 성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예요.”

“친구인 것이냐?”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단호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대답이었다. 우마훈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긴, 도하운이에게 친구는…….”

그러다 누군가를 보고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배서하가 아니냐!!”

멀찍이서 촬영을 구경 중이던 배서하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우마훈은 그런 배서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배서하야, 오랜만이구나. 짐을 보러 온 것이냐?”

너무 놀라 도망치지 못했다.

‘그냥 갈걸!’

잠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드라마 촬영 중이라고 해서 구경하고 있던 게 잘못이었다.

‘연극 한다던 운이 친구가 저 드라마에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을 알아보고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배서하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그… 그냥 촬영 구경 중이었는데?”

“짐을 구경 중이었구나.”

“아니! 촬영 구경 중이었다니까?!”

우마훈이 어찌 됐든 자신을 구경 중이었던 게 아니냐는 얼굴을 보였다.

배서하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운아! 네 친구 진짜 이상해!!’

배서하 역시 도하운의 친구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배서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마훈이 물었다.

“헌데, 도하운이는 보이지가 않는구나.”

“하운이는 갑자기 왜 찾아?”

“너는 도하운이의 친구이지 않으냐?”

“친구라고 매일 붙어있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

배서하의 말에 우마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서하는 정말 이상한 친구라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곤 속삭였다.

“어서 촬영이나 하러 가. 사람들 다 너를 보고 있잖아.”

“짐의 외모를 모두가 알아주고 있다니, 형님이 크게 기뻐할 것이니라.”

미쳤나 봐.

배서하가 짜게 식은 눈으로 우마훈을 쳐다보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우마훈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를 봤기 때문이었다.

“마훈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촬영장 함부로 이탈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도빈의 매니저, 김 실장이었다.

도빈이 돌연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서 멋대로 잠적하였고, 그 때문에 김 실장은 도빈이 복귀할 때까지 우마훈을 맡게 되었다.

급히 다가온 목소리에 우마훈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함부로 이탈한 것이 아니니라. 나 감독과 지 작가가 보는 앞에서 배서하를 만나러 온 것뿐이니라.”

“나 감독님과 지 작가님이 지금 어떤 얼굴인지 안 보여?!”

한 명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고, 한 명은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우마훈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말했다.

“김 실장아, 저 두 사람이 어떤 얼굴인지 보이지 않는 게냐?”

김 실장이 가슴을 여러 번 두드리고는 우마훈의 손목을 잡았다.

“어서 돌아가기나 하자! 저기, 실례했습니다.”

배서하를 향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서하는 괜찮다며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운이한테 전화해야지.’

연극 한다던 친구가 오늘 이랬다면서, 모조리 일러바칠 거다.

그때였다.

“잠깐……!”

다급한 목소리에 배서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보이는 것은 크게 입을 벌린 몬스터였다.

쿠웅―!

붉게 물들어진 하늘에, 곳곳에서 비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우웅―

울리는 진동에 화면을 켜니 주문했던 책장이 배송을 시작했단다.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틀 만에 상품이 준비되다니.

빠른 일 처리에 감탄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린다.

[중앙 재난 안전 대책 본부]

금일 18시 23분경, 서울 종로구 일대에 게이트 발생.

인근 주민들은 즉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긋지긋한 게이트.

그 망할 것들을 데리고 알아서 사라져줄 테니, 인제 그만 좀 열렸으면 했다.

“내가 다녀올까?”

“응……?”

해로운이 내 어깨에 몸을 기대어 자고 있던 이시온을 보고는 바로 말을 바꿔버렸다.

“아니다. 대공님이 가는 게 좋겠어. 대공님, 어서 다녀와.”

“싫은데요?!”

하림이랑 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느냐면서 유대공은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그에 해로운이 웃으면서 말한다.

“하림이는 내가 대신 봐줄게.”

“시러! 리미는 로우니 시러!!”

하림이가 유대공과 똑같이 고개를 격하게 젓는다. 그 모습에 해로운이 상처 입은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림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내가 너한테 가져다 바친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데!!”

아마 도하인이 더 많이 가져다 바쳤을 거다.

어쨌거나 서로 가기 싫다면서 미루는 보기 좋은 광경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겼다. 그러다가 장난기가 가득한 해로운의 말에 손을 들었다.

“대공님, 아니면 하림이랑 같이 게이트에 놀러 가는 건 어때? 가서 브레스 쏘면서 놀면 아주 재밌겠죠!”

“그게 할 말이야?!”

“악……!”

해로운의 등을 소리 나게 때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탓에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던 이시온이 옆으로 쓰러져 버렸지만, 알 바 아니었다.

“포털 열어.”

해로운이 뚱한 얼굴로 붉은 마법진을 그려낸 순간.

|Pr. 정령사| : 게이트가 열린 곳에 마왕님이 계십니다―^^

반가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Pr. 정령사| : 마왕님께서 처리 중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쉬고 계십시오―^^!

마왕님께서 어쩌다 게이트에 휘말리셨나 싶었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나는 유대공 옆에 털썩 주저앉고선 해로운에게 포털을 닫아달라 했다.

“안 가?”

“마왕님이 계신대.”

내 말에 해로운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마왕님께서 제대로 처리 중이실까? 로운이는 마왕님이 게이트보다 더한 사고를 치고 계실까 봐 걱정되죠.”

마왕님의 전적을 살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눈앞의 해로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웃으면서 말했다.

“너보다는 잘 처리하실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지금까지 법사 혼자서 처리한 몬스터들이…….”

“시끄러!!”

하림이가 가지고 놀고 있던 장난감 하나를 해로운의 입을 향해 던졌다. 해로운이 이를 가뿐하게 잡고선 비딱하게 웃는다.

“리미 거!!”

“아야! 알았어, 줄게!!”

안타깝게도, 하림이의 공격은 피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게이트가 열린 곳에 마왕님이 계신다니, 게이트는 금방 닫힐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지나지 않아 게이트가 소멸됐다는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마왕님께서 아주 잘 처리하신 모양이다.

그러나.

|Pr. 마왕| : 미안하도다, 도하운아.

“……?”

나타난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이트를 처리하다가 무슨 사고라도 쳤나 보다.

그래도 게이트를 닫은 게 어디냐고, 괜찮다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Pr. 마왕| : 제대로 지키지 못했느니라.

“뭐……?”

해로운과 유대공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별일 아니라고 답해주고 싶은데, 울리는 휴대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별안간 드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고는 화면에 떠오른 것을 확인했다.

[하인] : 서하가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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