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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49화 (149/168)

149화

쿠웅.

멍한 정신을 일깨우는 둔탁한 울림에 고개를 들었다.

오빠와 해로운이 내 책장을 옮기는 중인데, 그걸 옮기다가 뭔가 잘못됐나 보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괜찮아?”

내 말에 해로운과 함께 책장을 옮기고 있던 오빠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하운아. 해로운 씨가 힘이 영 없네.”

그 말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해로운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하준 형님! 이런, 책상쯤! 손짓 한 번으로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데……!”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들기나 하라며, 오빠가 해로운을 타박한다.

내가 옮긴다고 했는데, 굳이 해로운과 함께 책장을 옮기고 있는 오빠였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하운아.”

“응.”

나는 오빠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이니까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그런 내 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도와줘ㅠ! 책장 더럽게 무겁죠!!

|Pr. 신살자(길드장)| : 바빠.

|Pr. 9서클대마법사| : •́ㅿ•̀

|Pr. 9서클대마법사| : 바쁘기는 뭐가 바빠! 지금까지 소파에 앉아있기만 하던 사람이!!

나는 나타난 메시지를 무시하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책장에서 빼낸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이걸 다 어떻게 치우지, 고민하다가 나를 도와줄 사람을 불렀다.

“대공님!!”

…은 하림이랑 같이 용사님네 가게에 알바 뛰러 가셨지. 뒤늦게 이를 깨닫고선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이시온을 부를까 했지만,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그 자식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내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가 있었으니.

“아직도 정리 안 했어?”

“도하인.”

우리 동생님이셨다.

길드에 업무 보러 간다더니, 그새 돌아왔나 보다.

어엿한 직장인이신 동생님께서 척척 방 안으로 들어오신다. 나는 그런 동생을 향해 올망졸망한 눈빛을 보냈다.

“도와줘요, 동생님. 누나 혼자 정리하기 빡세죠.”

“그러게, 멀쩡한 책장은 왜 갑자기 바꾼다고 그래?”

툴툴거리면서도 바닥에 놓인 책들을 한 줄로 쌓기 시작하는 도하인이었다.

나는 도하인 옆에서 버릴 책과 놔둘 책을 구분해 주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변화를 줘야, 내 일상이 변한 것 같단 말이야.”

“나 참.”

귀환을 알리는 기자 회견을 연 보람도 없이, 모두가 게이트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회견장에서 열린 것 말고도 규모가 1급인 게이트가 두 개나 더 열렸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등급의 게이트가 자주 열리다 보니, 곳곳에서 나라가 망한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도하운! 이건 왜 버려?!”

우리 집은 평화롭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도하인이 다시 내게 건네준 것은 사진첩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가 담겨있는 사진첩.

“…책인 줄 알았어.”

되도 않는 변명을 하고는 도하인에게서 사진첩을 받아 들었다.

“사진 함부로 버리면 큰일 나는 거 몰라? 소중히 좀 여겨!”

미신을 지껄이는 도하인에게 혀를 한 번 내밀어 주었다. 그에 도하인이 얼굴을 찌푸린다.

“어휴, 쟤가 길드장은 무슨.”

“그러는 자기는 오빠 빽으로 부길드장 된 거면서.”

“아니거든!!”

빼액 소리 지르는 도하인을 향해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내 손짓에 도하인이 혀를 차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언제는 도와달라고 했잖아!”

“쉬고 싶죠.”

입술을 삐죽이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도하인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형한테 해로운 좀 쫓아내자고 해야겠어.”

“해로운은 왜?”

“네가 그 자식한테서 이상한 거 배워먹었으니까!!”

버럭 지르는 목소리에 어깨를 한번 으쓱여 줬다.

도하인은 기필코 해로운을 쫓아내고 말겠다며 방을 나갔다. 조용해진 방에 나는 침대 위에 풀썩 몸을 눕혔다. 그러기 무섭게 폰이 울린다.

[서울 시청]

신도림역, 몬스터 사체 수거 완료되었습니다. 이용에 참고해 주십시오.

일어난 게이트로 인해 피해를 보았던 지역이 하나둘, 복구되고 있었다.

완전히 복구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일어났을 때보다는 복구가 빠를 거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묻혔던 이야기가 밖으로 꺼내질까…….”

우리에 관한 이야기나, 혹은.

―센터 제1팀, 지 씨의 행방 묘연한 가운데…….

지한결에 관한 이야기나.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지기를 바랐다.

“지한결이 실종됐다니…….”

별다른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봤자 머리만 복잡해질 테니까.

그렇게 두 눈 위에 팔을 얹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길마님!”

오빠와 함께 책장을 버리러 갔던 해로운이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는?”

“도련님이랑 이야기 나누고 있죠.”

해로운을 쫓아내겠다느니 뭐니 하더니 진짜로 그럴 건가 보다.

도하인이 오빠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해로운은 웃는 낯으로 내게 폰을 내밀었다.

“그보다 이것 봐봐, 로운이가 길마님한테 어울리는 책상을 찾아왔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잘도 말한다 싶었다. 뭘 찾아왔나 싶어 봤더니, 아동용 책상이었다.

나는 은근슬쩍 내 옆에 앉은 해로운을 발로 차 밀어버렸다.

그렇게 세게 민 것도 아니었는데, 해로운은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아! 기껏 찾아줬더니!!”

“그게 찾아준 거야?!”

그래도 찾아준 거, 하림이를 위해 주문했다. 이제 슬슬 한글을 공부해야 할 생후 한 달이었다.

배송지를 입력하는 내게 해로운이 뚱하게 묻는다.

“길마님, 대공님이랑 하림이, 여기서 영원히 지내게 할 생각인가요. 이거 나갈 때 짐이란 말이죠.”

“어련히 알아서 들고 나가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곤 내 옆을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앉아봐, 뭐가 좋은지 좀 봐줘.”

내 말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해로운이 실실 웃으면서 올라왔다. 그러곤 내 옆에 풀썩 누워버렸다.

“뭐야?”

“길마님도 누워있는데, 로운이도 누울 거죠.”

턱을 괴고선 나를 보는 얼굴에 시선을 돌려버렸다. 대신, 휴대폰의 작은 화면만을 보며 책장을 검색해 댔다.

“이거 어때?”

“길마님, 책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잖아.”

“읽고 싶었던 책들 새로 사서 채워 넣을 거거든.”

“정말?”

묻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해로운이 그런 나를 보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책도 안 읽으면서.”

“…이제부터 교양을 쌓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지키는 사람 못 봤죠.”

이 망할 해로운 법사님이?

나는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고선 해로운을 향해 발을 들었다.

“안 도와줄 거면 꺼져!”

“또 때리죠!!”

우는소리를 내는 것은 잠시였다. 해로운이 내 발목을 잡곤 여상하게 웃는다.

“나는 너 없으면 안 돼.”

다갈색 두 눈에 온전하게 담긴 나의 모습에 숨이 막힌다.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의문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너 나 없이도 잘할 수 있지?’

잊어줄 것이지.

그 말을 품에 안고 있었나 보다. 해로운이 내 발목을 놓아주고선 몸을 일으킨다.

“그보다 길마님, 크기도 안 재보고 주문하려고 했죠. 바보죠.”

“…바보?”

해로운이 그런 말 한 적 없다면서 펄쩍 뛰었다.

뻔뻔하기도 하지.

해로운은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줄자를 들고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마님, 책장 넓이하고 높이가 어떻게 돼? 좀 보자.”

내가 보여준 화면에, 해로운이 줄자를 가지고 크기를 재기 시작했다. 혼자서 줄자를 잡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물었다.

“도와줘?”

“안 도와줘도 돼. 나는 9서클 대마법사거든.”

스스로 저렇게 부르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보다.

어떻게 혼자서 줄자를 잡고 크기를 잴까 했더니 붉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길마님, 그런데 방 더럽게 넓다.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과분한 것 같죠.”

“하나도 안 과분하거든. 그보다, 어때? 책장 주문하면 돼?”

“돈은 있고?”

그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카드 하나 풀어줬지롱.”

“우리 하준 형님, 마음도 참 고우시지. 단단히 속을 썩인 길마님께 또 카드를 쥐여주시다니.”

침대 위에 놓인 베개를 해로운의 얼굴을 향해 던져줬다. 망할 법사 놈이 날래게 그걸 피해버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책장 하나를 새로 주문하고는 침대 위에 다시 몸을 눕혔다. 해로운이 그런 내 옆에 자리를 붙이고 앉는다.

이번에는 눕지 않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로운 법사님.”

“이름이랑 그렇게 붙여서 불러주지 않았으면 하죠.”

그 말에 키득거리며 웃고는 해로운이 원하는 바를 들어줬다.

“해로운.”

이름을 불린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내가 어디 있든 찾을 수 있어?”

“당연하지.”

곧장 돌아온 대답이었다.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으며 내게 묻는다.

“길마님, 혼자 의뢰 안 뛰고 사라지시려고? 어림도 없지.”

내려오지 않는 의뢰를 들먹이며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잔잔히 미소를 그렸다.

“내가 이 세계에서 없어져도?”

“…….”

“다시금 애먼 곳에 날아가도?”

해로운이 얼굴이 일그러진다.

“찾을 거야.”

해로운이 몸을 살짝 숙이고선, 내 손등 위를 자신의 손으로 덮어버렸다.

“찾을 거라고.”

그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찾을 거야. 알겠어?”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꽉 끌어 쥐는 힘에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해로운이 그런 나를 보며 빌기라도 하듯,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없이 사라지려는 생각하지 마, 도하운.”

그에 알겠다고 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답하면, 해로운을 기만한 것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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