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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45화 (145/168)

145화

“꺼지렴.”

아니나 다를까. 용사님은 우리를 반기지 않으셨다.

용사님의 축객령에 나는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꺼진다고 꺼질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왕님과 법사님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다. 나는 이시온을 데리고 둘이 있는 쪽으로 가며 용사님께 물었다.

“용사님, 대공님은 이제 알바로 안 써?”

“쓰고 있단다. 안 그래도 물어볼 게 있는데, 유대공 그 새끼 지금 뭐 하고 있다니?”

“응?”

“말도 없이 알바를 빠졌단다.”

그 말에 나는 놀라 물었다.

“대공님께서 그러셨다고? 림이 때문에 그러나?”

이번에는 용사님께서 놀라 내게 물었다.

“하림이한테 무슨 일 생겼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고, 림이 지금 자고 있을걸?”

자는 애를 혼자 둘 수는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며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에 용사님께서 얼굴을 찌푸리신다.

“애가 지금 몇 살인데 혼자 못 둬서 난리라니.”

하림이는 생후 한 달도 안 됐다.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용사님께 말했다.

“대공님께 진언이라도 날리지 그랬어?”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단다.”

나는 가게를 한번 둘러보았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다 빠졌단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나는 그렇냐면서 웃어줬다. 그렇게 이시온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보다 사이좋게 다들 무슨 일이니?”

“마왕님과 이야기 좀 나누려고 왔답니다.”

“…강하수, 너도 왔었니?”

“네, 오랜만입니다.”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뒤늦게 가게로 들어선 정령사님께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인다.

그에 용사님은 얼굴을 와락 찌푸리셨다.

“오늘 장사 빨리 접을 거란다.”

그러니까 어서 주문하고 꺼지라면서 용사님은 툴툴거렸다. 나는 법사의 옆자리에 앉고선 모히또로 주문을 통일시켰다.

“계산은 현금으로.”

돼지불고기 집에서 쓰지 못했던 신사임당 두 장을 꺼내 용사님께 건네주었다. 용사님께서 이를 받아들며 입꼬리를 올린다.

“길드장, 잔돈 안 줘도 되니?”

“될 것 같아?”

용사님께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방으로 가셨다.

“법사는 모히또 싫어하죠.”

“사주는 대로 처마셔.”

법사님께서 뚱하게 입술을 씰룩인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시하며 마왕님께 물었다.

“우마한 길드장이 예상 질문들 뽑아줬지?”

“뽑아줬느니라.”

마왕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종이 여러 장을 꺼내 내게 건네줬다.

“많이도 뽑아줬네.”

“형님께서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그랬느니라.”

나는 우마한 길드장이 뽑아줬다는 질문들을 읽으며 마왕님께서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살폈다.

A. 짐은 네 녀석에게 질문을 허락한 적 없느니라.

“…….”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벼봤지만, 보이는 답은 변함이 없었다.

“마왕님, 이거 우마한 길드장한테 안 보여줬어?”

“보여줬느니라.”

“우마한 길드장이 뭐래?”

“기자 회견 날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고 그랬느니라.”

우마한 길드장님께서는 마왕님을 포기하셨나 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른 질문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정상적인 답이 하나는 있을 거다.

A. 짐에게 감히 질문을 한 것이느냐?

없다. 마왕님은 답이 없는 새끼였다. 알고 있었는데 잠깐 잊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끌어 쥐고선 앓는 소리를 한번 내었다. 해로운과 강하수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이것 좀 봐봐.”

나는 둘에게 마왕님의 답이 적혀있는 것들을 내밀어 주었다.

“오, 마왕님 완전 대단하죠.”

“참신한 대답들이군요.”

해로운과 강하수의 말이 칭찬인 줄 알았나 보다. 마왕님께서 가슴을 펴고선 뿌듯한 웃음을 보인다.

환장하겠다, 정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마왕님께 말했다.

“이것들 다 고쳐.”

“짐의 우문현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냐, 도하운아?”

우문현답은 무슨…….

“마음에 안 드니까 싹 다 고쳐, 알겠지? 고치기 싫으면 기자 회견 날에 입도 벙긋하지 마.”

마왕님이 시무룩한 얼굴을 보인다. 그래도 이건 마왕님을 위한 일이었다. 더 나아가 우리 길드를 위한 일이었고.

“이대로 말하면 실검 1위 장악하겠죠. 실검이 귀환으로 아주 활활 불타오르겠죠.”

나는 나불거리는 법사의 입을 한 대 때려주었다. 찰싹, 울리는 소리에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시온이 물끄러미 나를 본다.

“왜?”

“…한 대 더.”

이시온의 말에 강하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 법사 놈의 입을 한 대 더 때려주시지요.”

“정령사님, 너무하죠!!”

“바깥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밖에 없는데 왜 저렇게 유난인가 싶었다. 법사님도 나랑 똑같이 생각하셨나 보다.

“정령사님을 정령사님이라고 부르는 것뿐인데,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 그럼 법사는 정령사님을 어떻게 불러야…….”

“오, 이프리트시여! 마음대로 부르십시오, 마음대로!!”

정령사님께서 백기를 드셨다.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정령사님께 물었다.

“법사 새끼 한 대 더 때려줄까?”

“길마님, 너무하죠!”

“부탁드립니다, 길드장님.”

정중한 목소리에 나는 법사를 한 대 때리고자 손을 들었다. 하지만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게도 용사님께서 내가 주문한 모히또 여러 잔을 가지고 오셨다.

그 바람에 나는 손을 내리고선 잔을 들었다.

“길드장님, 법사 놈 안 때려주시는 겁니까?”

“안 때릴래. 생각해 보니, 내 손만 아플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내 몫의 잔을 단숨에 비웠다.

“어쨌든! 마왕님, 알겠지?”

“알겠느니라…….”

답을 고치겠다는 것인지, 고치는 대신 말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시온 앞에 놓인 잔을 들고선 이를 홀짝였다.

“이야기 다 끝났습니까?”

“응, 마왕님이랑 이야기 나눠. 혹시 자리 비켜줘야 하는 거야?”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 감독님께서 마왕님께 배역 하나를 추천해 주셨는데…….”

강하수의 말에 해로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감독님께서 마왕님께 배역을 하나 추천해 주셨다고? 어떤 드라마를 망하게 하려고 그러죠.”

나는 법사의 등을 한 대 때리고선 정령사님께 물었다.

“마왕님이 마음에 드셨나 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추천해 주신 배역이 하고픈 말은 모조리 하고 다니면서 눈치는 또 더럽게 없는 재벌 2세거든요.”

“마왕님께 잘 어울리는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정령사님께서 미간을 살포시 좁힌다.

“사실, 저도 마왕님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마왕님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것 같아서요.”

마왕님께 타격을 입을만한 이미지란 것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정령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왕님은 신인 배우신데, 안 좋은 쪽으로 이미지가 잡히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반쯤 남은 모히또를 단숨에 비운 뒤 활짝 웃음을 지어주었다.

“우리 마왕님이 누군데! 재앙의 주둥아리를 가진 분이잖아? 어떤 이미지가 잡히든, 마왕님은 그 주둥아리로 이미지를 타파하실 거야! 그치, 마왕님?”

“그러하도다.”

정령사님께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본다. 법사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왕님이 그 배역을 맡아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면서 웃었다.

마왕님께서 그 배역을 맡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보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 * *

찾아온 금요일, 지여일은 이른 아침부터 외출할 준비를 했다. 지한결이 그런 동생이 신기하다는 듯이 묻는다.

“오늘 일찍 일어났네?”

“오늘 도하운 씨 기자 회견 있는 날이잖아.”

그 말에 지한결이 멈칫했다가, 느릿하게 물었다.

“…진짜 가려고?”

“왜? 가면 안 돼?”

“그건 아닌데…….”

지한결이 말을 흐리곤 동생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여일이 웃으며 말했다.

“실물 영접 하고 싶은데, 늦게 가면 얼굴 보기 힘들 것 같아서. 사람들 많이 몰릴 것 같단 말이야.”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 도하운이 기자 회견을 열 거라는 정보가 일파만파 퍼져있었다. 지여일의 투정 어린 목소리에 지한결이 미소를 지었다.

“회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줄까?”

“그래 줄 수 있어?”

“아니, 없지.”

“오빠!”

지여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지한결을 쳐다봤다. 그에 지한결이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우마훈 씨도 오늘 기자 회견장에 같이 나타날 텐데, 우마훈 씨에게 한번 연락해 보는 건 어때? 자리 좀 만들어달라고 말이야.”

“우마훈 씨 전화번호 없어.”

“그럼, 나 감독님께 여쭤봐.”

지한결의 말에 지여일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괜찮아, 멀리서 얼굴만 봐도 좋을 것 같거든.”

“정말?”

묻는 목소리에 지여일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는 한데 조금 무서워서.”

“무서워? 뭐가 무서워?”

지한결의 물음에 지여일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 게 있어.”

대답을 피하는 동생의 모습에 지한결이 입매를 굳혔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묘하게 들떠 보였기 때문이다.

들뜬 게 맞을 것이다. 왜 저런 얼굴을 보이는 건지, 지한결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글로리아.’

멀리서 얼굴만 봐도 좋다는 건 거짓말. 눈앞의 동생은 도하운에게 어떻게든 접근하려 할 거다.

그 사실에 헛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지한결은 불편하게 올라오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고선 동생에게 물었다.

“…데려다줄까?”

“아니, 괜찮아.”

동생이 현관문을 열고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빠는 출근해야지.”

저녁에 보자는, 그런 인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찾아온 고요에 지한결이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지여일에게, 아니. 성하에게 정보를 흘린 것이 잘한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드는 의문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성하는 오늘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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