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내가 길드원들을 데리고 간 곳은 삼 대가 함께 운영 중인 돼지불고기 집이었다.
“소고기가 먹고 싶죠.”
“네 돈으로 사 먹어.”
법사의 의견은 간단히 무시하고, 나는 종업원을 불러 돼지 불고기 7인분을 먼저 주문했다. 5인분을 주문할까 했지만, 암만 봐도 부족할 것 같았다.
상이 차려지는 동안에 마왕님의 휴대폰이 계속해서 울려댔는데, 전화를 건 상대는 나 감독님이나 우마한 길드장인 것 같았다.
“짐은 도하운과 함께 있느니라.”
라는 말 한마디에 전화가 뚝 끊겨버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차려진 상에 나는 불을 올리고는 돼지불고기가 익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법사 새끼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법사는 지금 사이다가 먹고 싶죠. 아이 라이크 구연산.”
그 말에 나는 콜라를 주문했다.
이름과 맛이 다를 뿐, 구연산이라는 성분이 들어간 것은 똑같으니 상관없을 거다.
“…아임 헤이트 콜라.”
주는 대로 처마실 것이지, 말이 많다. 그보다 법사 새끼, 무림이한테 안 좋은 것만 배웠다. 나는 법사의 잔을 제외한 모두의 잔에 콜라를 따라준 뒤 남은 것들은 모두 내 잔에 따랐다.
법사가 그런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보며 묻는다.
“…길마님, 왜 법사는 안 주죠?”
“콜라 싫어한다며? 물이나 마시세요, 법사님.”
법사님께서 시무룩한 얼굴로 이시온의 잔을 뺏어갔다. 멍하니 있던 이시온이 사라진 잔에 느릿하게 고개를 든다.
“…내놔.”
“싫죠. 이거 이제 법사 거죠.”
이시온이 눈살을 찌푸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콜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콜라를 가지고 온 종업원이 돼지불고기가 담긴 솥뚜껑 불판을 한번 휘저어 주고는 말했다.
“이제 드셔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것에 군침이 절로 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이시온의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익은 돼지불고기를 덜어주었다.
“먹어.”
먹으란 말에 그제야 젓가락을 드는 이시온이었다.
“너희도 빨리 그릇 내놔.”
마왕님과 법사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그릇을 준다. 나는 열심히 드라마 촬영하고 온 마왕님께 고기를 듬뿍 담아줬고, 법사님에게는 야채를 듬뿍 담아줬다.
“뭐 하는 짓이죠, 길마님.”
“고기만 먹으면 안 돼, 몸에 안 좋아.”
“그렇게 말하는 길마님의 그릇에는 왜 고기뿐이죠.”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충분히 건강하거든.”
‘성녀’의 칭호를 달고 있는 몸이다. 이를 알고 있을 법사가 뚱한 얼굴로 야채를 콕 집어 먹었다.
“부족하면 말해. 5인분은 더 시켜 먹을 수 있으니까.”
수중에 있는 돈은 신사임당님 두 장, 넷이서 한 끼를 먹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
신선한 상추에 밥 한 숟갈을 크게 뜬 뒤, 불고기를 가득 올려 입에 넣었다.
“하림이도 데리고 올걸. 림이 고기 좋아하는데.”
“대공님은 생각 안 해?”
“내가 대공님 생각을 왜 해? 하림이 맘마나 잘 챙겨줬으면 좋겠네.”
원래 오늘 일정에는 유대공도 함께였지만, 하림이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같이 오지 못했다. 하림이 맘마 잘 챙겨줬냐고 메시지를 보내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에 즐거워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돌연 마왕님께서 내게 물었다.
“도하운아, 여기가 지금 어디느냐?”
“여기? 가게 이름 물어보는 거야?”
마왕님께서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마왕님께 메뉴판을 내밀어 주었다.
“거기에 가게 이름 적혀있어. 그런데 가게 이름은 왜? 다음에 우마한 길드장이랑 같이 오려고?”
마왕님께서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게의 이름을 찍고선 고개를 젓는다.
“그럼, 가게 이름은 왜 찍는 거야? 누구한테 보내주려고?”
“정령사 놈에게 보내주려고 하느니.”
“정령사님한테? 왜?”
“지금 어디냐면서 짐을 귀찮게 해대고 있느니라.”
마왕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그릇에 불고기를 듬뿍 올려줬다. 산처럼 쌓인 것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마왕님, 너무 많은데.”
“도하운아, 너는 좀 먹어야 하느니라.”
“맞아, 길마님. 길마님은 좀 먹어야 해.”
그러면서 야채를 올려주는 법사님이셨다. 나는 법사 새끼를 한번 노려본 뒤 마왕님께 물었다.
“마왕님, 혹시 정령사님이랑 저녁에 약속 있었어?”
“없었느니라.”
“그런데 정령사님이 왜 그래?”
“짐도 모르겠느니라.”
마왕님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그 얼굴에 해로운이 내게 말했다.
“길마님, 지금 법사의 감이 말하고 있죠.”
“뭐를?”
“정령사님께서 이곳에 올 것이라고 말이죠.”
“…….”
법사님의 감이 부디 틀리기를 바라면서, 나는 종업원을 불러 돼지불고기 5인분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 새끼들, 너무 잘 먹는다.
그렇게 고기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사이, 누군가 가게 문을 확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마훈 군!!”
정령사님이셨다. 망할 법사 새끼의 감이 맞아버렸다.
정령사는 놀라 자리에 멈춰 선 종업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마왕님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무시할까 했지만, 정령사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길드……! 도하운 양!!”
“안녕, 강 대표님.”
네가 앉을 자리는 없단다.
“다들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 저녁 먹고 있잖아.”
내 말에 강하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저녁 먹고 있는 것 압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마훈 군께서 왜 당신과 저녁을…….”
“내가 보고 싶어서 왔대.”
“네?”
“그래서 저녁 같이 먹는 중.”
정령사님께서 그게 무슨 개가 사람 말 하는 소리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나를 쳐다봤자, 내가 해줄 대답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밖에 없었다.
“짐이 도하운이와 저녁을 먹는 것에 불만이라도 있느냐, 정령사야.”
“밖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부르라니까요! 그보다 불만이요? 네! 있습니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마왕님께서 미간을 좁힌다.
“정령사 놈아, 짐과 저녁을 먹고 싶었느냐?”
“오, 이프리트시여! 이야기가 왜 그렇게 튀는 겁니까!! 오늘 저녁에 나 감독님과 저녁 약속 있었지 않습니까!!”
“나 감독과의 약속보다 도하운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했느니라.”
“환장하겠네!”
나 감독한테서 왜 그렇게 전화가 오나 했더니, 마왕님께서 약속을 파투 내셨나 보다.
나는 남은 고기들을 박박 긁어 쌈을 싼 뒤, 정령사에게 건네줬다.
“이거 먹고 화 좀 풀어.”
“화 안 났습니다!”
난 것 같은데.
정령사는 씩씩거리면서 내가 싸준 것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정령사님, 저녁 안 드셨으면 여기 앉아. 길마님이 사주는 저녁이거든.”
“그렇게 부르지 좀 마십시오! 남들이 들을까 무섭단 말입니다!”
조금 전에 이프리트를 찾으신 분께서 잘도 말한다 싶었다. 정령사는 법사가 끌어준 의자에 자리를 잡은 뒤 젓가락을 들었다.
“먹을 게 없군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돼지불고기 5인분이 불판 위에 올려졌다. 나는 종업원에게 밥 한 공기를 추가로 주문하고서 집게를 들었다.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오, 대표님 완전 멋있죠! 솔선수범하여 집게를 드시는 대표님이라니! 로운이는 본 적이 없죠!!”
정령사는 질색하면서 해로운의 말을 무시했다. 그렇게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내 그릇에 덜어준 뒤 정령사가 말했다.
“제 몫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너희가 먹는다면 얼마나 많이 먹는다고.”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곧 후회했다. 망할 길드원 새끼들은 5인분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뒤에 8인분을 하나 더 주문했다.
통합 20인분.
이 새끼들, 그동안 굶고 다녔었나 보다.
신사임당 두 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에 나는 결국, 강 대표님의 카드를 긁었다.
“언젠가 갚을게.”
“평생 갚지 않으시겠다는 말이군요.”
들켰다.
나는 배시시 웃음을 지어주고는 해로운에게 말했다.
“이시온 좀 데리고 가.”
“길마님은?”
“나는 마왕님이랑 이야기 나눌 게 있거든.”
“마왕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려고 그러십니까? 급한 일이 아니면 제가 먼저 마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나 감독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아, 드라마 촬영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마왕님과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급하다면 급한 거야. 기자 회견 준비 잘하고 있는지 좀 보려고.”
“이틀 후가 기자 회견이었지요?”
“응, 해로운이랑은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마왕님이랑은 제대로 못 해서.”
우마한 길드장이 잘 봐주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 말에 정령사님께서 작게 숨을 내쉰다. 정령사님도 마왕님과 이야기를 꼭 나눠야 하나 보다.
“마왕님이랑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나누지는 않을 거야. 기자 회견 준비 잘하고 있는지만 보고 바로 헤어질 거거든.”
“짐은 헤어질 생각이 없느니라.”
마왕님의 말은 간단히 무시했다. 정령사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말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는다.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갈래? 나 대화 끝내고 나서 왕님이랑 바로 이야기 나누면 되잖아?”
“좋습니다. 오늘 중으로 꼭 끝내야 할 이야기라서 말입니다.”
“잠깐만.”
마왕님의 의사 따윈 없이 정령사님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법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법사도 같이 갈 거죠.”
그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시온이랑 같이 돌아가라니까?”
“싫죠. 그리고 드슬님 지금 길마님 옆에 찰싹 붙어있죠.”
법사님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이시온이 내 옷자락을 잡고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그 시선이 무척이나 처량하게 느껴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냥 다 같이 가자.”
부디 용사님께서 우리를 반기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