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14.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 때.
을지로에서 일어났던 소동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혔다. 일주일 정도 지났으니, 잊힐 만도 했다. 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잊지 않는 것이 있었다.
|Pr. 정령사| :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으십니까―^^?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하수가 말한 ‘준비’란 귀환을 알리는 기자 회견에 관한 것이다.
서울 곳곳에서 게이트가 열린 지 일주일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심심하면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거렸다.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그럴 일이 없어질 거라는 것이었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기자 회견 날은 금요일로 잡았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이번 주 내로 촬영이 들어간다고 해서 금요일로 결정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쪽에서 실컷 언론 플레이를 하는 중인데, 부디 우리에 대한 관심이 저 기사들로 묻혔으면 한다.
참고로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금요일로 잡겠다는 내 말에 오빠와 도하인이 왜 하필 금요일이라고 물었었지.
“금요일하면 뭐가 떠올라?”
“불금.”
“그러니까 금요일로 잡은 거야.”
“……?”
내가 기자 회견 날을 금요일로 잡은 이유.
그건, 불금이라는 말에 걸맞게 성공적으로 기자 회견을 마치고 용사님네 가게에서 술을 마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용사님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다가오는 기자 회견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그러니까 정령사님은…….
|Pr. 신살자(길드장)| : 바쁘니까 ㄲㅈ
|Pr. 정령사| : 안 바쁘신 것 다 압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알기는 뭘 알아? 나 진짜 바쁘거든?
|Pr. 정령사| : 해로운 놈이 길드장님께서는 지금 유○브로 고양이를 보는 중이라는데 말입니다―^^?
나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의 기사를 읽는 중인 해로운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해로운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왜?”
“정령사 새끼랑 연락 중이야?”
“아니.”
방긋 웃으며 하는 거짓말에 나는 손을 들어 해로운 새끼의 이마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려줬다.
“아프죠!!”
아프라고 때린 거였기 때문에 사과는 안 했다.
“가만히 있는 법사를 이렇게 때려버리다니 길마님 너무하죠!”
법사 새끼가 우는 소리를 낸다. 나는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선 정령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유○브로 고양이를 보는 건 해로운 새끼야.
사실 내가 보는 게 맞았다.
|Pr. 정령사| : 오, 이프리트시여! 그걸 제가 믿을 것 같습니까?
|Pr. 신살자(길드장)| :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우리 집에 와서 확인이라도 하려고?
그래 주면 좋겠다. 앞에 쌓인 서류들 정령사 새끼한테 넘기게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나 보다.
|Pr. 정령사| : 길드장님께서 아니라는데 믿어야지요―^^!
같잖은 눈웃음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걸 말이다. 나는 입술을 한번 씰룩이고는 정령사 새끼한테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어쨌든, 기자 회견 열심히 준비 중이니까 도와줄 거 아니면 꺼져ㅎㅎ!
|Pr. 정령사| : 아이고, 알겠습니다―^^!
이를 끝으로 정령사님으로부터 날아오는 메시지가 없었다.
“진짜로 꺼지냐…….”
할 말이라도 있어서 연락한 줄 알았더니, 그냥 나를 놀리려고 연락했었나 보다.
“누가 꺼졌는데?”
“네가 연락 중이던 정령사 새끼님이요.”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해로운 법사님께서 두 눈을 끔뻑인다. 그러고는 실실거리면서 웃는데, 뺨을 꼬집어주고 싶었다.
그냥 꼬집을까.
“엄므아!”
하지만 하림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바람에 해로운 법사 새끼의 뺨은 꼬집어주지 못했다.
품에 안긴 하림이가 뚱한 얼굴로 손가락을 든다.
“쩨가 리미 또 괴룝혀써!!”
―웨옹.
꼬리를 바짝 세우며 리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를 유대공이 따르고 있었고.
나는 하림이의 짧은 손가락을 잡고선 물었다.
“림아, 리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번에도 꼬리 가지고 장난친 거야?”
하림이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린다. 아무래도 리카의 꼬리를 가지고 장난치다가 또 긁혔나 보다.
“어디 긁혔어?”
“여기!”
하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바닥을 보여줬다. 꽤 깊게 긁힌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럴 때는 하림이가 드래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웨옭.
그런 드래곤을 긁는 리카도 참 대단했고.
“유대공, 너는 애가 다칠 때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유대공이 나에게서 리카를 안아 들며 뚱하게 말했다.
“저도 리카한테 긁히고 있었거든요? 길마님이야말로 애가 다칠 때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일하고 있었잖아.”
유대공의 두 눈에는 테이블 앞에 놓인 서류가 보이지 않나 보다.
“이시온은?”
“여기.”
“……!”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이시온이 내 손을 조심스레 잡는다.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바람이라도 쐬라고 정원에 내보냈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바빠?”
이시온은 여전히 나를 ‘엘로시아’로 인식 중이다. 성하의 세뇌가 풀리지 않는 한, 계속 이럴 거다.
나는 이시온에게 잡힌 손을 빼내고선 말했다.
“금방 끝낼 테니까 대공님이랑 같이 놀고 있어.”
대공님께서 질색하는 얼굴을 보인다. 대공님의 품에 안겨있는 하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시온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니, 말하려고 했다.
“드슬님, 대공님이랑 같이 놀고 있으라잖아.”
해로운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이시온을 놀리듯이 말한다.
“우리 길마님은 나랑 일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어서 가줬으면 하죠.”
그에 이시온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린다. 나는 해로운의 머리를 밀어내며 이시온에게 말했다.
“대공님이 싫으면 리카랑 놀고 있어.”
―웨오옹.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리카가 이시온의 발목에 얼굴을 비빈다. 이시온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선 리카를 안아 들고 걸음을 옮겼다.
“대공님, 너도 하림이랑 같이 놀고 있어.”
“리미는 엄므아랑 놀 거야!!”
나는 하림이의 코를 톡톡 건드리고선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지금 바빠. 일 빨리 끝낼 테니까 아빠랑 놀고 있어.”
하림이의 호칭을 고쳐주는 건 실패로 끝났다.
‘엄마’니, ‘아빠’니 하림이가 그런 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도하인이 두 눈을 부릅뜨지만…….
브레스를 쏘아대면서 싫다고 하는데, 이걸 억지로 고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림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대공의 품을 파고들었다. 떼를 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진짜 일해야지.”
“우리 길마님 거짓말하죠.”
“시끄러.”
나는 앞에 놓인 서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기자 회견 중에 나에게 날아들 질문을 정리한 것이었다.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길마님?”
“이미 대비했거든.”
나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보이며 서류를 뒤져 종이 하나를 해로운에게 보여줬다.
내가 보여주는 것에 해로운이 미간을 살포시 좁힌다.
“…조금만 고쳐보자, 길마님.”
“왜? 이상해?”
“이상한 건 아닌데…….”
문제가 될 법한 대답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해로운은 펜을 들어 적혀있는 것들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예상 답안지는 이러했다.
―Q. 도하운 길드장님께서는 최근까지 각성자인 것을 숨기고 계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장에서 일어난 테러를 계기로 각성자가 됐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를 알릴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것뿐이다.
해로운이 수정한 답안지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이렇게 답하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장에서 일어났던 테러에서 무슨 영향을 받은 건지 묻지 않을까?”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답할게.”
“네가?”
“응, 정령사님네 회사에서 있었던 일 기억해?”
정령사님네 회사라면 ‘H-Entertainment’를 말하는 것일 테고, 거기서 일어난 일이라면 ‘돌발성 적합자 심사’를 말하는 것일 거다.
“아.”
왜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나 싶었더니, 해로운은 ‘돌발성 적합자 심사’ 도중에 끼어든 것으로 유명세를 탄 적이 있지?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해로운에게 물었다.
“믿어도 돼, 법사님?”
“당연히 믿어도 되죠.”
나랑 똑같은 웃음을 보이는 해로운이 영 미심쩍다.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서 쳐다보니, 해로운이 뚱한 목소리를 내었다.
“법사를 믿어달라.”
“지랄.”
나는 가볍게 대꾸하고선 다른 질문들로 눈을 돌렸다.
―Q.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A.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었다.
―Q. 괴수종 중에서 상대하기 가장 어렵다는 드래곤을 어떻게 잡은 건가?
“잘.”
“아니야, 길마님!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죠! 밑에 적어준 거 있잖아! 그거 봐야지!!”
실수로 내가 적었던 답을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해로운이 열심히 수정해 둔 것을 읽었다.
A. 약점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공략했을 뿐이다.
간결하게 정리된 답에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 해로운 새끼, 회사를 허투루 다닌 건 아닌가 보다.
―Q. 이전에 열렸던 게이트들을 모두 닫은 장본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어떻게 수행한 건가?
얼굴이 찌푸려진다.
“닫아줬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말이 많아.”
“길마님! 그거 아니라니까!!”
해로운이 황급히 자신이 수정한 답안을 읽게 했다.
A. 이번 게이트는 특이하게 몬스터를 낳는 모체(母體)가 존재했다. 자세한 것은 센터에게 물어보기를 바란다.
은근슬쩍 센터에게 답을 넘기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센터는 지금 한창 게이트가 열린 날에 대해 추궁을 받는 중이다. 늑장 대응을 했다면서 말이다.
그날 센터에 있었던 장본인으로 말하자면, 센터는 결코 늑장을 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국가 기관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욕먹기 참 좋은 곳이니까 말이다.
더 욕먹기를 바라면서 나는 질문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
―Q.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내가 못 본 질문이었다. 또한, 아무런 답도 적혀있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건 길마님이 원하는 대로 답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해로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런 걸 물어볼까?”
“물어볼걸.”
제목으로 써먹기 좋은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서 해로운은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니, 도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뜻일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상은,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사람들.
A. 국뽕을 느끼게 해주겠다.
그 사람들에게 보내는 깔끔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