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속보] 을지로 일대에서 소동… 미등록 헌터로 추정.
초록 창에 뜬 뉴스 속보에 해로운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대공님, 을지로에서 소동이 있었다는데 말이야.”
“네.”
“왜 소동을 일으킨 사람이 우리 길마님 같지?”
해로운의 말에 잠든 하림이를 안고 있던 유대공이 ‘음’ 하고 소리를 낸다. 그런 유대공을 보며 해로운이 물었다.
“내가 너무 유난인 걸까?”
“그런 거 같아요. 의뢰가 들어온 것도 없는데, 길마님이 사고를 칠 게 뭐가 있겠어요?”
유대공의 말에 해로운이 뉴스가 떠있던 화면을 껐다.
의뢰.
언제인가부터 들어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 의문에 도하운은 뭐라고 대답했더라?
‘별님들께서 바쁜가 보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저렇게 대답했었다.
‘이유를 알고 있는 거 같은데.’
해로운이 화면이 꺼진 폰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법사님, 할 일 없으면 바닥이나 좀 닦아주세요.”
“대공님이 하면 되잖아.”
“림이 보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유대공은 울다 지쳐 잠든 하림이의 얼굴을 해로운에게 보여줬다.
“아니면 법사님이 림이 좀 안고 있어 주시던가요.”
해로운은 상큼한 얼굴로 거절했다. 그러곤 고양이와 함께 소파에 파묻혀 있는 이시온을 가리켰다.
“드슬님도 할 짓 없어 보이지 않아?”
“고양이 돌보고 계시잖아요.”
이시온은 리카의 꾹꾹이를 받으며 잠들어 있었다. 해로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유대공을 쳐다봤다.
“그럼, 무림님은?”
“사고만 칠 것 같아서 안 돼요. 그리고 무림님은 지금 바쁘잖아요.”
해로운은 소파 아래에 눕고서는 열심히 폰을 두드리고 있는 최강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진 최강은 해로운이 깔아준 모바일 게임에 열중 중이었다.
“…그래, 바빠 보이기는 하네.”
“그러니까 어서 바닥 좀 닦아주세요.”
먼지는 로봇 청소기가 열심히 먹었으니, 바닥만 닦으면 된다면서 유대공은 해로운에게 걸레를 쥐여주었다.
해로운이 손에 쥐어진 걸레를 저 멀리 던지고는 말했다.
“법사 바쁘죠.”
“안 바쁘잖아요!!”
유대공은 하림이가 깰까 싶어 소리를 잔뜩 죽이고선 외쳤다. 그에 해로운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누구, 우리 길마님 본 사람?”
해로운은 같은 장소에 모여있는 유대공과 최강, 이시온 그리고 어디 있는지 모를 도하운을 제외한 모두에게 진언을 날렸다.
“설마… 지금 진언 날리신 거예요?”
유대공의 떨떠름한 물음에 해로운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에 유대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때, 해로운의 시야 앞에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Pr. 정령사| : 이 망할 해로운 놈이! 놀랐잖습니까!!
|Pr. 마왕| : 해로운 놈아, 죽고 싶은 게냐.
해로운은 강하수와 우마훈에게 자주 써먹는 이모티콘을 보낸 후, 둘의 답장을 기다렸다.
해로운에게 답장을 보낸 건 강하수뿐이었다.
|Pr. 정령사| : 길마님은 조금 전까지 저랑 계셨습니다만.
나타난 메시지에 해로운이 미간을 좁혔다.
|Pr. 9서클대마법사| : 지금은?
|Pr. 정령사| : 친구분이랑 약속이 있으시다며 가셨답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해로운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친구라…….”
해로운은 도하운에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지 생각해봤다.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
회사원 헌터 H 씨로 데뷔하게 된 게이트에서 자신이 구했던 사람이었다.
‘배서하라고 했었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해로운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선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을지로에서 일어난 소동은… 길마님은 관계가 없는 건가?’
유대공의 말대로 너무 유난인가 싶었다.
‘어쨌든, 길마님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
해로운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나 나타난 메시지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Pr. 용사| : 길드장이라면 지금 우리 가게 앞에 있구나.
|Pr. 9서클대마법사| : ?
|Pr. 용사| : 친구랑 같이 놀러 온 것 같은데, 그보다 해로운.
|Pr. 9서클대마법사| : 넵! 용사님!!
|Pr. 용사| : 한 번만 더 진언을 날리면 네 멱을 따버릴 거란다.
|Pr. 9서클대마법사| : •́ㅿ•̀
강인한에게서 도하운의 정보를 얻은 해로운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법사님? 어디 가요?”
유대공의 말에 게임에 열중 중이던 최강이 고개를 들었다.
“사형? 웨얼 유 고잉?”
해로운이 최강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유대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애들 잘 보고 있어, 대공님.”
“네? 뭐라고요?”
유대공은 ‘애들’의 범주가 너무 넓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받아줄 상대는 이미 포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 * *
[Vai tu, Echina]
눈에 너무나도 익숙한 간판에 나는 떫은 감을 베어 문 것 같은 얼굴로 서하에게 물었다.
“기껏 온 것이 또 여기야?”
“그동안 오고 싶었는데 휴업하고 있어서 못 왔단 말이야!!”
서하는 우는 소리를 한번 내고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들어가자, 운아!”
“잠깐만…….”
잠깐은 없었다.
딸랑,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고 서하는 활짝 웃으면서 외쳤다.
“사장님! 영업하고 있죠?”
“네, 영업하고 있어요.”
용사님께서는 바닥에 쏟아진 음료를 닦고 있었다. 용사님이 서하를 보고는 웃는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지웠다. 용사님, 너무 티 나게 싫어하잖아.
서하의 눈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나 보다.
“그쵸? 너무 오랜만이죠? 몇 번 왔었는데 휴업 중이라고 해서 돌아갔었어요.”
넉살 좋게 용사님께 말을 건네고 있으니 말이다. 서하의 말에 용사님께서 다시 웃음을 짓는다.
“그동안 일이 좀 많았거든요. 원하는 자리에 앉아 계세요.”
창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용사님이 메뉴판을 들고 오셨다.
|Pr. 용사| : 길드장, 림이가 너 보고 싶다고 울어댔었단다.
나타난 메시지는 덤이었다. 나는 용사님을 흘긋거리고는 답장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알아, 지금도 울고 있다더라고.
용사님이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는 듯한 얼굴을 보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말했다.
“나는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우니! 커피 좀 그만 마셔!!”
그러면서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배서하 씨였다. 용사님께서 우리가 말한 것들을 받아 적고는 메뉴판을 집어 든다.
“오늘은 서비스로 드릴게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세요.”
“헉, 정말요?”
“네, 단골손님께 드리는 서비스예요.”
서하가 까르르 웃고는 용사님께 묻는다.
“술은요? 술은 안 되나요, 사장님?”
“술은 저녁에만 파는 거 알잖아요. 그리고 대낮부터 술은 몸에 해로워요.”
사근사근 말하는 게 내가 아는 용사님인가 싶었다. 그보다 서비스라니.
|Pr. 신살자(길드장)| : 나중에 나한테 받아먹을 생각 아니지, 용사님?
용사님께선 내 메시지를 간단히 무시하셨다.
“꺄아! 서비스로 해주신데, 운아! 여기 오기를 잘했지?”
“그렇게나 좋아?”
“당연하지! 그보다 우리 운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 언니에게 말해봐.”
언니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배서하는 나보다 생일이 느리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에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그간 있었던 일을 몇 개 빠뜨리고는 말해줬다.
“그걸 믿으라는 거야?”
이야기 중간중간에 서하가 의구심 가득하여 물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여 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가 주문한 음료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인 뒤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서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힘들었지! 온갖 방송국에서 연락 와서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알아?”
그래도 지금은 잠잠하다면서 서하는 키득거렸다.
“하준이 오빠랑 하인이가 힘 좀 쓴 것 같더라고.”
친구의 입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이름에 나는 애써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미안해.”
“네가 미안해할 게 뭐가 있어? 하준이 오빠랑 인이한테 잘해주기나 해.”
나는 소리 없이 웃어줄 뿐이었다. 서하가 그런 나를 미심쩍게 쳐다봤지만, 이도 잠시.
“사장님께서 서비스랍니다.”
알바생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꾸벅였다.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서하가 알바생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뻐금거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원 헌터 씨다!”
서하의 말에 해로운이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보인다.
“와우, 그 호칭 정말 오랜만이죠.”
그러고는 가져온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다. 달칵, 접시가 놓이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선 두 눈을 부릅떴다.
|Pr. 신살자(길드장)| : 너 뭐야;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Pr. 신살자(길드장)| : 아니, ㅅㅂ;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냐고;;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모르는 게 없죠!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모자 아래 가려진 내 표정을 보기라도 한 건지, 해로운이 웃음을 흘리곤 내 옆에 앉는다.
“같이 놀아도 될까요, 서하 씨?”
“네? 네… 상관없는데.”
“아니, 안 돼.”
내 단호한 거절에 해로운이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하나를 내 입에 억지로 넣어준다.
“된다고요, 아가씨? 우리 아가씨, 포용력이 장난 아니라니까.”
난데없이 나온 ‘아가씨’ 소리에 서하가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입안에 넣어진 케이크를 억지로 삼키고는 말했다.
“회사원 헌터 H 씨가 지금 헛소리하는 거…….”
“자, 하나 더 드셔요. 우리 아가씨, 많이 먹고 키 커야죠.”
케이크가 다시금 입안으로 들어와 내 목소리를 틀어막는다. 뱉어내기에는 너무나도 맛난 것에 나는 우물거리며 해로운을 노려봤다.
해로운이 내 시선에 보란 듯이 눈웃음을 지어준다.
망할 법사 새끼였다.
* * *
피 내음이 가득한 방에 누군가 들어왔다.
“마몬, 상처는 어떠십니까?”
“덕분에 안 괜찮아.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성녀를 보러 간 거야?”
짜증이 섞인 물음에 단테가 인자하게 미소를 짓는다. 나오는 답은 없었다. 마몬이 그 얼굴을 보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녀에게 목이라도 내주려고?”
“글쎄요. 그럴 생각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단테.”
마몬이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끊고서 말을 이었다.
“나는 널 찾아 사방을 헤집고 싶지 않아. 성녀에게 아무리 목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죽는 건 그 몸뿐인 걸 알잖아?”
글로리아가 내린 마지막 축복.
그 축복 덕분에 글로리아를 쫓아 이곳에서 다시금 살게 되었다.
단테가 이를 떠올리고는 입꼬리를 올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몬. 차지한 몸이 꽤 마음에 들어서 성녀님께 쉬이 이 목을 내어드리지는 않을 거랍니다.”
도하운에게 했던 말을,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하면서 단테는 그렇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