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38화 (138/168)

138화

강하수가 나를 팩트로 조져버리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도하운 양? 저분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지 않을 겁니까?”

나는 어깨에 얹어진 강하수의 손을 쳐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가 알아서 좋을 건 없는 새끼. 무시해, 그냥. 그게 네 신상에 이로워.”

“너무하십니다, 성녀님.”

“성녀……?”

단테의 말에 강하수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Pr. 정령사| : 성녀라니요?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겼다. 강하수에게는 상대방의 ‘Hidden status’를 확인하는 능력이 없나 보다.

|Pr. 신살자(길드장)| : 내 칭호 중 하나.

|Pr. 정령사| : 그걸 저분께서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도 나오는 답이 없어서 나는 설명하는 대신 강하수의 질문을 무시하기로 했다.

“도하운 양.”

강하수가 답을 촉구하는 듯이 나를 부른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에서 사고 친 새끼야.”

“네?”

“이시온이랑 같이 촬영장 테러했던 놈이라고.”

내 말에 강하수가 두 눈을 끔뻑였다. 놀랐나 보다.

그래도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려는데, 강하수가 내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나를 자신이 있는 쪽으로 끌어당겼다.

“강하수……?”

“무슨 염치로 찾아왔답니까. 센터에 자수라도 하려고요?”

강하수의 질문에 단테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단테는 순식간에 이를 지우고선 말을 이었다.

“그보다 성녀님을 놓아주시지요. 불경스럽게 뭐 하는 짓입니까.”

“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더욱 놓아줄 수 없겠습니다?”

강하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웃음을 보였다.

정령사님께서 보여주는 비웃음에 단테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린다.

저건, 심사가 뒤틀렸을 때 단테가 짓는 표정이다.

나는 내 팔을 붙잡고 있는 강하수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 저 새끼 너무 자극하지 마.

|Pr. 정령사| : 좋게좋게 말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전혀 아닌데.

나는 강하수의 옷깃을 잡아 아래로 숙이게 만들고는 속닥거리며 물었다.

“강 대표님, 바쁘지 않아? 나랑 이러고 있어도 돼?”

“업무가 바쁘기는 합니다만, 길드장님과 이러고 있을 시간은 된답니다.”

그러고는 옷깃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조심스레 쥐고선 말했다.

“그보다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길드장님. 사람들 눈이 많은 게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들 눈이 많기는 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선 우리 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강하수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서는 구시렁거렸다.

“너 때문이잖아.”

강하수가 그게 왜 자신 때문이냐면서 어깨를 으쓱인다. 그러면서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 하고는 내게 물었다.

“계속 여기 계실 겁니까? 제가 자택으로…….”

“이상하군요, 이상합니다.”

“……?”

단테가 강하수의 말을 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성녀님께서는 쉬이 남을 곁에 두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남을 곁에 둔 적도 있었어. 네가 기억할까 모르겠지마는.”

“그런 적이 있다면 제가 분명 기억했을 겁니다. 성녀님의 곁을 지키는 건 언제나 저였으니까요.”

그걸 지켰다고 하는 게 맞을까.

이를 으득 갈고서는 잡지 못했던 검을 다시 손에 쥐려고 했다. 그런 나를 막은 건 강하수였다.

“길드장님,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지 마십시오.”

수십 명이 멈춰 서 있는 거리.

나는 검을 쥐려고 했던 손을 주먹 쥐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람들을 휘말려 들게 할 수는 없었다. 동요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영광의 검을 쥔 것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파지직―!

일던 전격이 영광의 검에 막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꺄아악!”

“으아아악!!”

까맣게 타들어 간 가로수가 거리를 덮쳤다. 다행히 깔린 사람은 없으나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거리.

도망치지 않은 건 나와 강하수, 그리고 비딱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단테였다.

“전과 달리, 그 곁을 내어드리고 있다니…….”

푸르게 이는 마법진이 보였다.

도대체 신관 새끼가 어떻게 마법을 쓰고 있는 거야?

이런 내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단테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제가 그 곁을 차지해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글로리아께 먹히는 순간까지 영원히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미친 새끼가…….”

당연히 대답은 노였다.

“길드장님.”

“주변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줘.”

검을 쥐고선 한 걸음 내디뎠다.

[권능, ‘전진(前進)’이 활성화됩니다.]

나타난 결계를 단번에 깨뜨리고선 단테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죽어, 단테.”

“그럴 순 없지요. 차지한 몸이 꽤 마음에 들어서 말입니다.”

우리 주위로 강풍이 휘몰아친다. 차단된 바깥에 안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를 가까스로 피해낸 단테가 황홀하다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몸을 놀린다.

단테는 예나 지금이나 날랬다. 더욱이 따라잡기 버겁게 마법을 쏘아대는 것이 성가셨다.

하지만.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나는 그 행위를 간단히 멈추게 하고서는 중력에 짓눌린 단테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검이 닿으며 불유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를 즐거이 들으며 웃음을 지었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네 번째 족쇄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묶여있는 ‘기억’이 요동칩니다.]

글로리아의 중앙 대신전을 나서는 길이 떠올랐다. 그 길은, 내가 딛고 서있는 이 거리와 비슷한 곳이었다.

‘그런 적이 있다면 제가 분명 기억했을 겁니다. 성녀님의 곁을 지키는 건 언제나 저였으니까요.’

단테의 말이 맞다. 그는 언제나 내 곁을 지켰다.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을 꺾고, 자연스레 치유된 것을 다시 한번 더 꺾고.

그 행위를 반복해가며 내가 대신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나를 지켰었다.

영광의 검을 얼마나 일찍 손에 넣는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다.

내가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안 성하가, 영영 그것을 찾을 수 없게 숨겼을 때는 혀를 깨물고선 죽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지겨운 새끼들.”

내가 딛고 서있는 곳이 어딘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글로리아인지, 겨우 돌아와 일상을 누리고 있던 나의 세계인지.

하나 분명한 건.

“죽어, 제발.”

단테를 비롯한 중앙 대신전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죽였을 때는, 언제나 이렇게 강풍이 휘몰아쳤다는 거다.

치켜든 검을 누군가 붙잡았다.

“길드장님, 그만.”

“놔.”

“이곳은 당신이 있었던 곳이 아닙니다. 남을 함부로 죽여도 되는, 그런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불안정하게 호흡이 떨리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바깥은 차단된 상태, 그렇다고 하나 이곳은 내가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러니.

“여기가 아니면 된다는 거네?”

“…네?”

강하수의 손을 뿌리치고선 웃음을 지었다.

[절대 권능, ‘성문(星門)’이 활성화됩니다.]

강하수가 불러일으킨 바람이 멎는다. 대신, 나타난 건 파편 조각이 곳곳에 흩어져있는 파괴된 신전이었다.

【 ‘성문(星門)’ 개방.】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Gloria)’의 ‘중앙 대신전’을 불러옵니다.]

중력에 짓눌러있던 단테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그 웃음소리를 흘려들으며 강하수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죽여도 된다는 거지?”

할 말을 찾는 듯, 달싹이는 입술이 보인다. 그에 눈웃음을 지어주고는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이를 휘두르지 못했다.

파괴된 신전 위로 푸르게 이는 마법진이 보였다. 누군가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성녀님, 우리가 향수병에 허덕이고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이렇게 고향을 보여주시는 거래?”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마몬이 눈앞에 나타났다. 단테를 짓누르고 있던 성역은 사라진 뒤였다.

“마몬!!”

부르기 무섭게 마몬이 단테를 둘러업고서는 내게서 빠르게 멀어진다. 놓칠세라 사슬을 움직여 그들을 붙잡고자 했다.

“길드장님!”

“놔! 제발 좀 방해하지 말고 놓으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강하수가 방해한다.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서는 영광의 검을 억지로 놓게 했다.

그사이, 빌어먹을 신관 새끼들은 푸른 마법진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놓쳤다. 또 놓쳐버렸다.

핏물이 나올 만큼 입술을 꾹 깨물고선 강하수를 노려봤다.

그냥 죽여버릴까.

“…아.”

일순 드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길드장님.”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해 보고자 했다.

파괴된 신전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거리를 덮친 가로수만이 보일 뿐이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정신을 일깨우는 그 소음에 막혔던 숨을 억지로 토해내고선 입가를 가렸다.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칭호, ‘신살자(神殺者)’가 네 번째 족쇄를 견고히 다집니다.]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서, 그 기억에 휘말려서 먹힐 뻔했다.

“길드장님.”

“벗어나자.”

강하수의 어깨를 끌어 잡고선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여기서 벗어나자, 강하수 씨.”

시야가 흔들린다.

강하수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겉옷을 벗어 머리 위에 덮어주고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힘없이 이끌려가며 엉망이 된 거리를 쳐다봤다.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져 있다. 그 광경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글로리아를 따르는 망령이 한 짓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왜…….

내가 벌인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끔찍하고 또 끔찍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