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
‘그분들께서도 나서려고 했습니다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졌던 세상에서 돌아온 지한결은 그렇게 말했었다.
‘대신관들 때문에?’
‘네.’
글로리아의 신관들에게는 하늘의 눈을 가리는 힘이 있었다. 글로리아를 끔찍하게도 사랑하는 그들이, 위대하신 하늘의 눈을 가리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힘을 이 세계에서 사용할 줄은 몰랐지. 통할 줄도 몰랐고 말이야.
어찌 됐든, 글로리아의 신관들은 분명 그 힘을 사용해서 별들의 눈을 가리고 있을 거다.
“길마님, 왜 대답이 없어?”
답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내었다.
“별님들께서 바쁜가 보지.”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해로운을 쳐다봤다. 해로운이 내가 마셨던 잔에 입을 대고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그렇지 않아, 길마님?”
“뭐가.”
“용사님네 마왕님께서 등장하셨을 때도, 서울 곳곳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지.
해로운이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이고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의뢰가 안 들어오고 있잖아.”
해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식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이시온은 다 먹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길마님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당연히 생각하지.”
나는 해로운에게서 김치를 빼앗아 들고는 이시온에게 내밀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응?”
해로운이 미소를 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괜히 심드렁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하늘에 계시는 별님들께 ‘똑똑,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건 그렇지.”
나는 이시온의 잔에 물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의뢰 없는 걸 즐겨.”
“맞아요, 사형! 들어오는 의뢰가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귀환의 길드원 중, 드슬님과 함께 가장 적게 의뢰를 뛴 무림님께서 잘도 말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먹는 중에 일 이야기는 하지 마요! 부정 탄다고요!!”
“무림님, 다 먹고 나서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래도요! 그리고 드슬이 형아는 아직 다 안 먹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슬님께서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신다.
“다 먹고 일어나, 이시온.”
그러나 내 말에 다시 자리에 앉는 드슬님이셨다.
“와우, 드슬이 형아가 언제부터 이렇게 길짱님 말을 잘 들었나요?”
“그럴 사정이 있다니까. 나는 잠깐 밖에 나갔다 온다.”
“그 꼴로요?”
“내 꼴이 뭐 어때서.”
나는 무림님의 이마를 가볍게 때려주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챙겼다.
세수는 고양이 세수다.
“길마님! 같이 가!!”
해로운 법사님께서 무슨 일로 조용하나 했다. 나는 신발을 구겨 신으며 간단히 거절했다.
“안 돼.”
“포털 셔틀 안 필요하나요?”
“응, 오늘은 안 필요해. 그러니까 너는 무림님이랑 놀고 있어.”
드슬님과는 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나간다는 말에 얌전히 불어터진 라면을 먹고 있던 드슬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슬… 아니, 이시온. 자리에 앉아서 라면 먹어.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이렇게 말하면 이시온은 정말 ‘얌전히’ 저 자리 그대로 앉아있을 거다.
그렇기에 나는 현관문을 열며 말을 덧붙였다.
“여기 있는 녀석들 귀찮게 하면서 얌전히 있어.”
“그게 뭐야!!”
해로운 법사님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오늘은 법사님과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포털을 열어달라고도 할 수 없었다.
어디 가는지 알면, 해로운은 무조건 따라오려고 할 테니 말이다.
나는 아침 해가 쨍한 거리로 나서며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 대상은, 센터였다.
* * *
따르릉―
울리는 전화를 누군가 급하게 받아 들었다.
“네, 잠시만요. 지 팀장님! 이수혁 팀장님께서 서류 확인 좀 부탁드린답니다!”
“아… 무음 모드로 해놓아서 이 팀장님 전화를 받지 못했네요.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네! 서류는 최대한 빨리 확인해 달라는데요?”
“알겠다고도 전해주세요.”
지한결이 속해있는 1팀의 막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한결은 날아온 메일을 열어보고는 마우스 커서를 내렸다.
현장 일을 겨우 끝내고 나니, 서류 작업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한결은 피곤한 눈가를 한번 문지르고선 다시 화면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지한결의 팀원이 웃으면서 물었다.
“팀장님,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지한결의 팀원 역시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한결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요즘 일이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해도 오늘 야근이신 거 아시죠? 팀장님 먼저 퇴근하기 없기예요.”
지한결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내린 시선에 화면에 뜬 메시지 하나가 보였다.
[도빈 씨] : 강 대표님이 이상하시다. 알고 있는 정신과 의사 없나, 사이비?
지한결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곤 메시지를 보낸 상대에게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전화를 받아 들었다.
―사이비?
“서 교수님이라고 한 분 알고 있습니다만… 강 대표님이 어떻게 이상하다는 겁니까, 도빈 씨?”
―나를 자꾸만 피하고 계신다.
“도빈 씨를요?”
―사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떨거지 녀석들도 말이다.
지한결은 도빈이 말하는 ‘떨거지 녀석들’이 누구일까 고민해 보았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H-Entertainment’에 함께 소속되어있는 다른 연예인들을 말하는 걸 거다.
‘그러고 보니…….’
지한결은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린 날, ‘H-Entertainment’에서 목격됐다던 불기둥을 떠올렸다. 이를 상기해 낸 지한결이 잔잔히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내버려 두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상심이 크신 모양이네요.”
―도대체 상심을 받을 일이 뭐가 있다고…….
도하운이었다면, 너 때문이라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지한결은 도하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도빈의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강 대표님께서 최근 들어 많은 일에 휘말리셨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힘드신 건 아닐까요?”
―그런 걸 수도 있겠군. 그보다 사이비.
“네, 도빈 씨.”
―그 이후로 글로리아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입을 다물었다. 도빈이 자신에게 강하수가 이상하다는,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은 이를 묻기 위해서였을 거다.
지한결은 말을 고르다가 피곤한 낯을 문지르고는 답했다.
“없었습니다.”
―그렇군…….
도빈은 자신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면서 성난 목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이 몸은 촬영이 있어서 이만 전화를 끊어야겠군.
“네, 들어가세요.”
지한결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뚝, 전화가 끊겼다. 지한결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폰을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으려고 했다.
[도하운 씨] : 나와.
나타난 메시지에 지한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팀장님?”
지한결의 팀원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지한결은 이미 복도로 급히 걸음을 옮긴 뒤였다.
* * *
뛰어왔나 보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지한결을 향해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
“…도하운 씨.”
지한결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 나는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네 동생은 구할 수 없어, 알지?”
지한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이를 놓고는 느릿하게 목소리를 낸다.
“…압니다.”
핏줄이 돋을 만큼 주먹 쥐고 있는 손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게 네 동생이 ‘성하’라는 것을 숨긴 이유는, 구하고 싶어서야?”
지한결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없다.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말을 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네 동생을…….”
말을 잠시 멈추고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니, 성하를 대신 죽여줬으면 해서?”
역시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한결에게서 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그렇게 주문한 잔이 나오기까지 한참 침묵하던 지한결은 주문한 음료가 나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도하운 씨, 당신은…….”
지한결이 마른 입술을 달싹이고는 말을 잇는다.
“형제 중 한 사람이 ‘성하’라면, 당신은 쉽게 그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까?”
웃음이 절로 나오는 질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야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줘야 했던 걸까.
지한결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서는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에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네 동생은 구할 수 없다고.”
그러니 죽일 거다.
“나는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거야.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 계속 매달려 있을 수는 없잖아.”
지한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까?”
“글쎄, 왜일까.”
사실, 내 손으로 도하인과 오빠를 죽이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못해서 잃어 보고, 잃기 위해서 포기도 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다.
대의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키는, 그런 건 아니다.
나는 기꺼이 대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럼, 지한결. 다시 물어볼게.”
지한결이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성하를 죽여줬으면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