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분명, 해가 저물고 있을 때 해로운의 방에 들어온 것 같은데…….
“왜 밤이야?”
창밖이 어둑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해로운 법사님께서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대신 드슬님의 고양이가 몸을 둥글게 말고는 잠들어 있었다.
뭐야, 얘는 언제 들어온 거야?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리에 없는 길드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해로운?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님.
|Pr. 신살자(길드장)| : 야.
보내는 메시지에 돌아오는 답이 없다. 열이 펄펄 끓는 상태로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다가 다시 문을 닫았다.
거실 소파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길드원 한 명을 봤기 때문이다.
잠깐,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길짱님…….”
“흐아아악!!”
“악! 마이 이얼즈!!”
문 앞에 서계셨던 무림님이 귀를 부여잡고 펄쩍 뛴다. 나 역시 펄쩍 뛰었다.
“이 미친 새끼가! 앞에 그렇게 서있으면 어떻게 해! 심장 떨어질 뻔했네!!”
“길짱님이야말로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형 데리고 온다고 했던 사람이 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고!!”
“그건……!”
할 말이 없다. 내 비명에 잠에서 깬 고양이가 웨옹, 하고 울면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리카를 안아 들고선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자고 싶어서 잤나. 피곤해서 잤지.”
“어쨌든 잤잖아요! 저를 드슬이 형아랑 단둘이 남겨두고 잔 거잖아요! 길짱님 너무해! 유 쏘 베드!!”
드슬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쌓인 게 많나 보다.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무림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잔뜩 심통이 난 무림님께서 골골송을 부르는 고양이처럼 웅얼거렸다.
“제가 드슬이 형아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 아세요?! 계속 죽이려고 들어서 계속 때려눕혔다고요!”
“그래서 드슬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데?”
무림님이 내가 나오기 편하게 문을 열어젖히고는 손가락을 들었다.
드슬님께서는 소파에 놓인 쿠션에 파묻혀 계셨다. 양손을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은 꼴이, 꼭…….
“…죽은 거 아니지?”
죽은 사람 같았다.
내 말에 무림님께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아니에요!”
“아니면 아닌 거지. 소리는 왜 그렇게 질러? 너 때문에 리카 놀랐잖아.”
―웨오옹!!
리카가 품에서 버둥거린다. 내려달라는 뜻인가보다.
언제는 안아달라면서 오더니, 주인 닮아서 순 자기 멋대로다. 바닥에 내려간 리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드슬님이 계시는 소파 쪽으로 갔다.
그러고는.
“크흡……!”
풀쩍 뛰어 드슬님의 명치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드슬님께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지하에서 언제 올라온 거야? 법사님은?”
“지하에서 올라온 지는 한 시간 정도 됐고, 오늘 여기서 자고 가래요.”
“뭐? 누가?”
“길짱님네 형님이요.”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빠가 집에 왔어?”
“네, 지금 사형이랑 같이 지하에 계시는데요?”
망했다.
“벽에 금 간 거… 오빠도 봤어?”
“당연히 봤죠!! 이거 누가 그런 거냐고 물어서, 제가 길짱님을 좀 팔았어요! 괜찮죠? 오케이하죠?”
하나도 오케이하지 않다. 이 빌어먹을 무림이 새끼야.
나는 무림님의 머리를 강하게 쥐고선 한 번 흔들었다.
“아! 왜 그래요!!”
“몰라서 묻냐!”
“예쓰!!”
그래, 내가 얘랑 무슨 말을 하겠다고 이러고 있냐.
나는 무림님의 이마에 딱밤을 놓아준 뒤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드슬님 깨지 않게 조용히 있어. 깨어나면 다시 기절시키고.”
리카를 품에 안고서 자는 게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무림님께 한 번 더 드슬님이 깨어나면 기절시키라고 당부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으… 왜 이렇게 추워?”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가?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것 같다. 지하에 창문이라고는 달려있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곧장 멈춰 섰다.
“법…사님?”
해로운이 무릎을 꿇고서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오빠가 앉아있었다.
“하운아, 일어났어?”
“응? 어… 일어났는데…….”
“그럼, 여기 해로운 씨 옆에 와서 앉아.”
벽을 부순 걸로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나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는 해로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혼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얼굴로 앉아있는 해로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오빠, 화 많이 났어?
해로운이 나를 쳐다본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벽은 말끔하게 고쳤지?
|Pr. 9서클대마법사| : 정면을 한번 봐주세요, 길마님. 여기 부서진 곳이 보이나요?
말끔하게 고쳐줬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나는 눈살을 한번 찌푸리고는 오빠를 향해 방긋 웃어보았다.
“오빠, 미안해.”
“아니야, 하운아. 그보다 최강 군과 함께 있는 사람은 이시온 씨라고 했지? 당분간 같이 지내야 할 거라고 해로운 씨가 말하던데…….”
“응! 사정이 있어서 며칠만 같이 지낼까 하는데, 괜찮지?”
“물론, 괜찮지. 남는 방이야 많고.”
오빠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다행이다. 화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런데 하운아, 해로운 씨는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아.”
“응?”
“하준 형님! 저희 집 아직 무너진 그대로인데!!”
오빠가 그건 네 사정이고요, 라는 얼굴로 해로운을 쳐다본다.
해로운의 집은 석촌동에 있는데, 이번에 무너지면서 유물이 발견됐단다. 그거 조사해야 한다고, 아직 집을 복구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제가 쥐여준 주식 있지 않습니까? 그거 몇 주 팔고, 집 구해서 나가세요.”
해로운이 충격을 먹은 얼굴로 오빠를 쳐다본다. 오빠는 그 시선에 방긋 웃음을 지어줄 뿐이었다.
그보다, 해로운. 오빠한테 뭘 받아먹었나 했더니…….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하준 형님 좀 말려줘ㅠ! 이러다 법사 길바닥에 나앉겠죠!!
|Pr. 신살자(길드장)| : 집주인은 오빠인걸.
|Pr. 9서클대마법사| : 그래도ㅠ!!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나는 아무런 힘이 없소이다.
그렇게 해로운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는데, 오빠가 미소를 그리며 내게 말했다.
“하운이는 성인이지?”
“응? 그… 그렇지……?”
내 일에 책임은 제대로 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어엿한 성인이었다. 비록, 집도 없고 차도 없지만 어쨌든 만 19세를 넘긴 성인이다.
오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하운아. 외간 남자랑 같이 그렇게 자고 있으면 안 돼. 특히 옆에 있는 사람과는 더더욱. 오빠가 그런 쪽에서는 보수적이거든?”
“……?”
“하운이가 좋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오빠는 해로운 씨를 받아줄 수 없구나.”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리인가 싶었다. 당황하여 입만 뻐금거리고 있는데,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해로운이랑 같이 자고 있는 걸, 오빠가 봤나 보다.
그 사실을 상기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당연히 아무 일도 없어야 하지 않겠니, 하운아.”
주변의 온도가 삽시간에 내려간 것만 같았다. 오빠는 두 눈을 부릅뜨고선 해로운을 노려본다. 해로운은 그 시선에 더더욱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 새끼야! 그렇게 있지만 말고 뭐라 변명이라도 해봐!!
묵묵부답이다.
나는 머리를 헤집고선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오빠! 나랑 해로운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하늘에 맹세코, 절대로!”
해로운이 작게 움찔거리고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오빠를 향해 절절한 눈빛을 보냈다.
오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묻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고 있었던 거니, 하운아?”
“해로운이 아파 보여서 간호해 주려고 한 거야! 이시온이 해로운을 조금 다치게 했거든!”
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치게 했지만 나았으니 된 거다.
“정말이니, 하운아?”
“응! 정말이야!!”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옆에 있는 해로운 새끼와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했고, 오빠는 그에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하운! 왜 사람이 늘어났어! 이시온인가 뭔가 말고도 한 명 더 늘어났잖아!!”
도하인이 쿵쾅거리며 내려온 것은 그때였다.
“뭐야, 해로운 왜 저러고 있어?”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도련님. 곧 나갈 사람이거든요. 와, 신난다. 쫓겨난다.”
“……?”
도하인이 저 새끼 미쳤냐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여 줄 뿐이었다.
“하인아, 부탁한 것은?”
“형 부탁인데, 모두 처리하고 왔지.”
도하인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씨익 웃음을 짓는다.
“도하운, 기자들 섭외 모두 끝났어. 네가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불러내서 말하고 싶은 거 말하면 돼.”
서울 곳곳에서 게이트가 열린 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이대로 정체를 숨기고 사라져도 좋을 거다.
하지만…….
“응, 고마워.”
더 큰 사건 사고에 휘말려서 정체를 드러낼 바에야, 지금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숨길 건 숨기면서. 그렇게 ‘귀환(歸還)’을 내보이는 거다.
[차원 관리자, ‘X’가 침입한 ‘글로리아’와 그 휘하 별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모두 소멸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 실패 시: 이 세계의 파멸 그리고 멸망.
길드장으로서 할 일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