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결과적으로, 법사님의 마법은 제대로 먹혔다.
“엘로시아…….”
깨어난 드슬님이 절절한 목소리로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으니 말이다.
“저기… 이시온……?”
눈물이 가득 찬 눈이 나를 쳐다본다. 저 눈에 나는 ‘엘로시아’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겠지.
드슬님께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드슬님께서 여기서 더는 망가지지 않을 거다.
“드슬님, 나는 보이지도 않나 봐?”
“……?”
드슬이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린다. 해로운은 벽에 기대고는 비딱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드슬님께서 해로운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구?”
“…….”
벽에 기대고 있던 해로운이 삐끗거리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길마님, 나 드슬님 한 대만 때려도 돼?”
“안 돼.”
아픈 사람이야, 참아.
덧붙이는 말에 법사님께서 우는 소리를 내셨다.
“법사도 아픈 사람이죠.”
“그러니까 가서 쉬라니까.”
“싫어.”
뚱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뭐라고 토를 달려는 것도 잠시, 내 허리를 끌어안는 손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보고 싶었어… 이렇게 두 손으로 안고 싶었어…….”
“…….”
빠져나갈 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며 이시온의 흐느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시온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어줬다.
머리에 닿는 손길에 이시온이 몸을 움츠린다. 그것도 잠시, 그는 내 손목을 조심스레 잡고선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오싹하게 이는 감정과 함께 드는 것은 죄악감이었다.
이시온에게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누군가 나를 잡아끌었다.
“가서 쉬라고? 내가 어떻게 그래?”
해로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정신 나간 놈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딱히 무슨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시온이 굳게 입술을 다물고선 해로운을 노려본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해로운에게 잡힌 손목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나 안 놓아주면 드슬님께서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내가 아닌, 너한테.”
해로운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드슬님을 쏘아보고는 내 손목을 놓아줬다. 나는 열이 닿았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해로운에게 말했다.
“그보다 너 진짜 쉬러 가봐. 안 좋으면 나 부르고.”
“길마님은 뭐 하려고? 저 자식이랑 같이 있을 거야?”
해로운의 삿대질에 이시온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나를 안으려 드는데…….
나는 이시온의 이마를 가볍게 밀며 말했다.
“그건 아니고, 나는 무림님을 부르려고.”
“무림님은 왜?”
드슬님께서 이마를 밀어내고 있는 내 손을 잡고선 입을 맞추려고 한다.
아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잡힌 손을 주먹 쥐고는 해로운의 말에 답해줬다.
“드슬님께 걸린 마법들 풀어야지.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지금 상태로 짐작해 보건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협하려고 들면 이시온은 물불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검을 휘두르려고 들 테다.
평소의 이시온이라면 상관없지만, 세뇌도 걸려있고 온갖 마법도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막는 게 쉽지 않을 거다.
“그리고 강제로 부수지 않는 한, 풀기 힘들 것 같다며.”
그러니 세뇌는 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시온의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마법들은 억지로라도 풀어야 했다.
“엘로시아…….”
이시온이 주먹 쥔 내 손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감싸고서는 나를, 아니. 제 연인을 부른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게 보기가 퍽 안쓰러웠다.
결국, 나는 주먹 쥔 손을 풀고서는 말을 이었다.
“힘 하나는 최고인 놈이 무림님이잖아.”
“그러니까 무림님을 이용해서 드슬님께 걸려있는 마법들을 푸려고?”
“응.”
강제로 마법을 부숴버리면 시전자에게 큰 무리가 간다. 나는 이를 상기해내고는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몬이 걸어놓은 마법인지, 단테가 걸어놓은 마법인지 모른다. 어쩌면 성하가 걸어놓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몬이면 어떻고, 단테면 또 어떠리. 그리고 성하면 또 어떠한가.
마법이 강제로 부서질 때, 시전자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어디 한번 겪어보라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나 마디 사이로 느껴지는 입술의 촉감에 짓고 있던 웃음이 비딱하게 일그러졌다.
하루라도 빨리 성하 새끼를 족치러 가야겠다.
|Pr. 신살자(길드장)| : 무림님, 지금 ㅇㄷ?
그 전에 먼저 드슬님에게 걸린 마법부터 처리하고.
우리 길드의 막내, 무림 제일 고수님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 오셨다.
길치인 줄 알았더니, 같이 떠들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무림님은 헤매지 않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
“왓츠 업! 길짱님!! 그보다 집 완전 좋네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해로운은 무림님이 오기 전에 방으로 들여보냈다. 나는 무림님의 가방을 받아들고선 손짓했다.
“월세 낼 돈 있으면 말해. 오빠한테 말해서 방 하나 마련해 줄게.”
“학생한테 돈이 어디 있어요! 길짱님 너무해!!”
“시끄러, 따라오기나 해.”
무림님을 데리고 간 곳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도하인의 스킬 연습장이었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곳이었다.
각종 기자재가 놓인 가운데서 드슬님께서 멀뚱히 서계셨다.
“내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드슬님.”
“…응, 엘로시아.”
옆으로 거미가 지나가는데도 두 눈을 끔뻑이고 있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드슬이 형아? 드슬이 형아가 여기 왜 있어요? 어디냐고 계속 묻던 게, 길짱님 집이 어디냐고 묻던 거였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멀뚱히 서있는 드슬님을 불렀다.
“드슬님, 아니. 이시온.”
내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드슬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와우. 드슬이 형아가 웃었어. 그것도 길짱님을 보면서 웃었어. 꿈인가? 잇츠 드림?”
무림님께서 떨떠름한 얼굴로 뺨을 꼬집으신다. 드슬님은 그런 무림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내 손을 조심스레 잡고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고는 드슬님의 품에 몸을 맡겼다.
“…두 사람 다 왜 그래요? 이거 꿈이죠? 꿈 맞죠?”
“꿈 아니야.”
“그럼 뭐 잘못 먹었어요? 겨울에 식중독이라도 걸린 거예요?”
겨울에 식중독도 웃긴 말이지만, 성녀가 식중독이라니. 누가 들었으면 코웃음을 칠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러는 거예요? 저 지금 닭살 돋았다고요!!”
무림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북북 긁으셨다. 나는 그런 무림님을 보며 심드렁한 얼굴을 보였다.
“무림님,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거든.”
“부탁이요?”
어리둥절한 얼굴에 나는 내 머리칼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드슬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시온을 있는 힘껏 때려줘.”
“…왓?”
무림님께서 두 눈을 끔뻑이더니 빠른 속도로 내게서 멀어졌다.
“길짱님, 미쳤어요?! 얼 유 크레이지?!!”
외치는 소리는 덤이었다.
미쳤느냐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목소리에 나도 질세라 버럭 소리 질렀다.
“안 미쳤다, 이 자식아!! 어서 쳐달라니까!!”
“뭘 쳐달라는 거예요! 사람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는 거 몰라요?!”
“잘 아는 인간이 정령사님께 그렇게 주먹을 휘둘렀냐!!”
나는 관악산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 잊지 않았다. 내 말에 무림님께서 입을 뻐금거린다.
할 말이 없나 보다.
“그건 정령사 형아가 내 주먹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란 믿음에 그런 거죠! 지금 드슬님을 봐요! 저 형아가 제 주먹을 맞겠어요?!”
굳은살 박인 무림님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기 무섭게, 나를 안고 있던 드슬님께서 눈 깜짝할 속도로 움직였다.
후웅, 허공을 베는 소리에 나는 경악하며 외쳤다.
“이시온!!”
“엘로시아에게 그 더러운 손가락 내밀지 마.”
가까스로 검을 피한 무림님께서 얼굴을 찡그린다.
“엘로시아? 엘로시아는 또 누구예요?”
“너는 모르는 사람! 그보다 무림님, 드슬님 좀 봐봐!! 맛이 가도 단단히 간 것 같지 않아?!”
무림님께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쥐고 있는 드슬님의 손을 주먹 쥐어 가볍게 때렸다.
“윽……!”
가볍게 때렸다고는 하지만, 우드득― 하고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드슬님께서 검을 놓치고는 제 손을 움켜쥔다.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한 것처럼, 주먹으로 드슬님 좀 가볍게 때려줘. 원래 고장 난 물건은 주먹으로 고친다거나 그런다고 하잖아?”
“드슬님은 물건이 아니잖아요!!”
“비유를 들어본 거지.”
드슬님께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선 무림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무림이가 곤란하다는 듯이 뺨을 긁적이고는 주먹을 쥐며 자세를 취했다.
“저 길짱님만 믿고 때릴 거예요. 알았죠?”
“너무 믿지는 말고.”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시온이 바닥에 떨어졌던 검을 주워 무림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무림이는 몸을 가볍게 틀어 드슬이의 검을 피하더니 그대로 주먹 쥔 손을 뻗어 드슬이의 명치 부근을 강하게 때렸다.
퍼억, 경쾌하게 울리는 파열음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가볍게 때려달라고 했는데.
멍하니 입을 벌리는 것도 잠시, 허공에 뜬 드슬님께서 벽에 처박히는 소리에 나는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노오옵! 드슬이 형아! 괜찮아요?! 얼 유 오케이?!!”
전혀 오케이한 것 같지가 않았다. 벽에 말 그대로 처박힌 드슬님께서는 정신을 잃은 듯했다.
나는 입을 뻐금거리다가 드슬님께 다가갔다. 다행히, 어디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보이지 않았다. 드슬님 몸에 걸려있는 마법이 완충재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쿨럭…….”
아닌가. 드슬님 몸에 걸려있던 마법들 모두 파괴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