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 망할 자식아!!”
마몬의 우는 소리에 단테가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그럼, 상처를 치료하는데 아프지 않겠습니까?”
“살살하라고, 살살!”
단테는 그 말을 착실히 지키지 않았다. 빨간약을 길게 난 상처에 꾹꾹 힘주어 누를 뿐이었다.
“아아악!!”
고통에 찬 목소리에 단테가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왜 저를 두고 가십니까? 성녀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에 라헬만 데리고 가다니 너무하십니다.”
마몬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라헬만 데리고 간 거 아니거든? 시온 씨도 같이 간 거 몰라?!”
“알지요. 그러니까 왜 저만 두고 가셨냐는 말입니다.”
마몬이 얼굴을 찌푸렸다.
글로리아의 중앙 신전 제2위(位)의 ‘단테’를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야 뻔했다.
“너라면 성녀에게 기꺼이 목을 내줄 것 같아서 그랬지. 그랬을 거 아니야?”
마몬의 말에 단테는 부정하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마몬이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라헬은?”
“저기 계십니다. 커튼으로 몸을 빙빙 둘러싸고는 벌벌 떨고 계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마몬?”
날 선 목소리에 마몬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단테는 마지막으로 마몬의 상처에 빨간약을 꾹꾹 눌러주고는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마몬, 당신께서 잘못한 일입니다.”
“내가 뭐.”
불퉁한 목소리에 단테가 한쪽 눈썹을 들썩이고는 물었다.
“라헬은 성하님보다 더 온전치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찾자마자 성녀님께 데리고 가십니까?”
라헬을 찾은 건, 이시온을 센터에게서 빼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우연이라면 우연, 필연이라면 필연. 어쨌든, 질긴 연으로 이어진 만남이었다.
마몬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라헬을 흘긋거리고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데리고 가고 싶어서 데리고 간 줄 알아? 저 녀석이 가고 싶다고 한 거야.”
라헬은 ‘성녀’라는 이름에 두 눈을 뒤집고서는 데리고 가 달라며 마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졸라댔었다. 떠오르는 기억에 마몬이 불쾌하다는 듯이 눈가를 찡그렸다.
“그래서 시온 씨는 어디다 버리고 왔습니까?”
“버리고 온 게 아니라, 뺏긴 거.”
“준 게 아니라요?”
“…….”
마몬이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단테를 노려봤다. 단테는 그 시선에 즐거워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성하님께 한 소리 들으시겠군요, 마몬.”
마몬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툭, 떨어진 과자가 도하인의 발에 밟혀 바스라졌다.
“너… 도하운, 너……!”
도하인이 왜 집에 있는 걸까.
도하인은 우리 길드와 관련해서 추측성 보도를 쏟아낸 언론사를 뒤집어엎으러 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는 변명거리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
망할,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해로운, 그리고 이시온.
우리 셋 모두 그리 좋은 몰골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당장, 정신을 잃은 이시온을 부축 중인 해로운의 하얀 셔츠는 핏물이 묻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검은 옷이라 다친 티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 다친 곳도 이제 다 나았고.
“너 옷이 그게 뭐야!!”
티가 다 나나 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쏟아내기로 했다.
“길드원들이랑 다툼이 좀 있었어.”
“다툼?”
“응, 그게 드라마 보면 그런 거 있잖아.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우는… 뭐 그런 거.”
이시온을 부축 중이던 해로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낸다. 도하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걸 믿으라고?”
“믿어주면 안 될까요, 동생님?”
“장난해, 도하운?”
도하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해로운 씨는 또 왜 그런 겁니까?! 그 사람은 또 누구…….”
도하인이 말을 멈추고는 해로운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해로운이 부축 중인 이시온에게 말이다.
“이 사람, 그 남자잖아?”
“누구?”
“너랑 같이 드래곤 새끼 잡은 놈!!”
우리 하인이, 머리도 좋지. 그런 건 빨리빨리 잊어주면 좋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른대로 말해, 도하운!!”
바른대로 말하면 이시온의 목숨이 온전치 못하게 될 거다. 나는 우리 하인이를 전과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방긋 웃었다.
“말했잖아. 길드 내부 권력 다툼이 있었다니까?”
“고작 여덟 명 아니야? 여덟 명이서 무슨 권력 다툼을 한다고!!”
“그런 게 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길드가 좀 특별하잖아.”
특별하기는 특별했다.
|정령사| : 해로운 놈아, 괜찮습니까?
|정령사| : 드래곤 슬레이어님이 미치셨다니, 조금 전에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반응을 해드리지 못했군요―^^
|무림제일고수| : 저는 학교라서여!
|무림제일고수| : 학교ㅌㅌ하고 시퍼욤ㅠ
|마왕| : 짐은 오수에 들고 있었느니라.
…너무 특별해서 문제였지.
나도, 해로운도 짜게 식은 얼굴로 눈앞에 뜨는 메시지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런 우리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도하운!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는 거야? 너 지금 메시지인가 뭔가 하고 있지?! 해로운 씨, 당신도요!!”
“네? 아니에요, 도련님! 여기, 이 사람이 조금 무거워서…….”
해로운이 처연한 얼굴을 하며 도하인을 쳐다본다. 일주일간 야근에 찌든 얼굴을 한 해로운의 모습에 도하인이 움찔거렸다.
“그… 괜찮아요? 그 사람도, 해로운 씨도요. 도하운은 말해봤자겠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달라.”
“형한테 전화하기 전에 조용히 해, 도하운.”
오빠한테 전화하면 난리가 날 테니 나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일단, 그 남자는… 제 방에…… 아니, 해로운 씨. 해로운 씨 방에다가 눕히는 게 좋겠네요.”
“안 돼, 해로운 지금 아파.”
“멀쩡해 보이는데……?”
“아플 예정이야.”
“……?”
도하인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무시했다.
이시온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해 줬다고 하나, 분명 독이 묻어있었을 거다. 지금이야 멀쩡해 보이지만, 머지않아 끙끙 앓아댈 게 분명했다.
도하인은 미심쩍은 얼굴로 해로운에게서 이시온을 안아 들고선 내게 물었다.
“유대공 씨랑 하림이는 어디 갔어? 하림이는 괜찮아?”
“하림이는 괜찮아. 유대공 안부는 안 물어봐?”
“내가 뭐 하러.”
도하인은 짜증스레 답하고는 이시온을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혀주었다.
“힐러 불러줘?”
“아니, 괜찮아. 그보다 계속 집에 있을 거야?”
“응.”
그 대답에 나는 그대로 도하인의 뒷덜미를 잡았다.
“뭐? 야! 도하운!! 뭐 하는 짓이야?!”
“오빠가 오늘 일이 많은 것 같더라고. 부길드장님께서 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해로운이 옆에서 그래야 할 것 같다면서 맞장구친다. 거기에 더해 마법을 부려주기까지 했다. 내가 도하인을 끌고 가기 편하도록 말이다.
“도하운, 야!! 해로운 씨! 도하운 좀!!”
“도련님, 저는 힘이 없죠.”
“힘이 없기는……!”
벌컥, 열린 문에 나는 그대로 도하인을 바깥에 내동댕이쳤다.
“도하운!!”
그러곤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아버렸다. 해로운이 도하인이 열지 못하도록 마법을 부려준다.
나는 그런 해로운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줬다.
쾅쾅, 울리는 소리와 나를 다급하게 찾는 도하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도하인, 가서 오빠나 도와주라니까? 우리 불쌍한 오빠, 야근하게 내버려 둘 거야?”
오빠를 들먹이자 그제야 조용해지는 도하인이었다.
그렇게 도하인을 물리친 뒤, 나와 해로운은 이시온에게 찾아갔다.
곤히 잠든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지만, 나는 이 새끼의 인성이 천사와는 거리가 멀 다는 것을 안다.
“이시온한테 걸려있는 마법, 알 수 있어?”
내 말에 법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여러 개가 걸려있는데, 알 수 있는 건 신체 강화 마법뿐이죠.”
그러니까 내가 검에서 그렇게 밀렸지.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해로운에게 물었다.
“그 마법들, 풀 수 없어?”
“강제로 부수지 않는 한, 풀기 힘들 것 같은데.”
해로운의 다갈색 눈동자에 붉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세뇌도 되어있는 것 같은데? 우리 드슬님, 이상한 거 많이 묻혀왔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픽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되어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되어있을 거야.”
“응?”
“세뇌되어 있을 거라고.”
나는 의자를 끌어 앉고서는 이시온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악몽을 꾸라고는 했지만, 진짜 악몽이라고 꾸고 있는 건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이시온에게 안식을 선물해 주며 입을 열었다.
“해로운, 내가 기억 하나 보여 줄 테니까 이시온이 나를 그 여자로 인식하게 만들어줘.”
“응……?”
나는 이시온의 손목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주며 덧붙여 말했다.
“이시온한테 걸린 세뇌가 좀 복잡한 거라서.”
“풀 수 없는 거야?”
“시전자를 죽이지 않는 한 풀 수 없어.”
이시온을 이렇게 만든 건 ‘성하’일 거다. 남의 기억을 들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문제라면, 성하의 세뇌는 성하가 죽지 않는 한 풀리지 않는다는 거다. 성하가 풀어줄 수는 있지만, 그 성격파탄자가 풀어주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이시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이시온이 그토록 갈망하던 이의 얼굴로 그를 보듬어줄 수밖에 없다.
…이시온에게는 꽤 잔인한 일이 될 테지만.
식은땀에 푹 젖은 이시온의 머리칼을 가지고 장난치는데, 해로운의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 시전자를 잘 아나 보네.”
잘 알지.
나는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는 다른 것을 물었다.
“그래서 해줄 거야, 안 해줄 거야?”
“당연히 해줘야죠, 길마님.”
이시온과 마찬가지로 식은땀에 푹 젖어있으면서, 해로운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대답을 피한 내게, 다른 것은 묻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