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푸른빛이 도는 가느다란 것이 유대공의 몸을 묶고 있었다. 그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듯, 끙끙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이시온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유대공!!”
해로운이 유대공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을 끊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한눈팔아도 되나 봐?”
“……!”
그러나 날아든 것에 마법을 부리려던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해로운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붉은 마법진을 펼쳐 들었다.
“너, 이 새끼가…….”
유대공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가는 도하운에 의해 자신의 신변이 온전치 못할 거다. 파지직, 붉게 튀는 전기에 마몬이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맞았다가는 죽겠군.’
죽어도 상관없는 몸이기는 하지만, 그랬다가는 곤란해할 사람이 있었다.
마몬은 내리치는 전격을 피하며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해로운이 줄행랑을 치는 마몬의 뒷모습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급히 유대공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에 이시온이 무슨 짓이라도 벌였으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일어났었지만 듬직한 길드장님께서 이를 막아내고 계셨다.
끼긱, 도하운이 힘에서 밀리는 모습에 해로운이 가볍게 손을 까닥였다.
우웅, 붉은 마법진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붉은 전격이 곧장 이시온을 향해 내리쳤다.
“윽……! 해로운!!”
문제라면, 도하운이 조금 휘말렸다는 거였다.
* * *
따끔하게 통증이 일었다.
“길마님!!”
“엄므아! 괜차나?!”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대충 괜찮다면서 손을 흔들어줬다. 유대공의 몸을 묶고 있던 것들은 영광의 검에 의해 끊긴 지 오래였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이시온의 검이 유대공의 목을 베어버렸을 거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괜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유대공을 질책했다.
“유대공, 너는 해로운한테 마법 수업 받고 있다며? 그러는 놈이 이상한 거에 당하려고 해.”
내 말에 하림이가 대공님의 품을 파고든다. 대공님이 그런 하림이를 쓰다듬으며 뚱하게 말했다.
“마법이 순간적으로 안 되는 걸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그래도 저 많이 발전했거든요?”
“전혀 발전 안 한 거 같은데.”
“아니거든요!!”
나는 날아드는 날카로운 것들을 가볍게 쳐낸 뒤 웃음을 지으며 유대공을 쳐다봤다.
【HIDDEN STATUS OPEN】
[Main]: 북부 대공(Ex)
[Sub]: 엘리시온의 귀환자(Ex), 테이머(S), 6서클 마법사(A), 플러팅의 귀재(A)
칭호 중 하나가 바뀐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5서클 마법사였던 것 같은데…….
“그래, 발전하기는 했네.”
나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대공님을 칭찬해 주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그러기 무섭게 검이 맞부딪쳤다.
나는 유대공에게 하림이와 함께 빠져있으라며 눈치를 준 뒤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드슬님, 어쩌다 그렇게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
반응이 없다.
그보다 신체 강화 마법이라도 쓴 건지, 막아서고 있는 검이 점점 밀리기 시작한다.
타앙―!
울린 총성에 이시온이 몸을 뒤로 틀었다. 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곧장 그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나타나 손목을 묶어버린 것에 검은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아오, 시발!!”
손목을 묶고 있는 가느다란 실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잠시, 날아든 단검이 손목을 묶고 있는 것을 끊었다.
용사님의 검이었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내 목을 향해 들어왔던 검을 막아냈다.
끼기긱, 불유쾌한 소음에 나는 눈가를 찡그렸다.
“드슬님, 아니. 이시온.”
역시 이번에도 반응이 없다.
초점이 나간 검은 눈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진리의 눈’을 사용하며 웃음을 지었다.
“너 그러다 법사님께 혼난다?”
초점이 나가있던 검은 눈이 나를 본다. 그 반응에 나는 그대로 다리를 들어 이시온의 복부를 강하게 차버렸다.
“……!”
고통이 꽤 클 텐데도 검을 놓치지 않는 것을 칭찬해 줘야 할지. 그런 이시온을 향해 붉은 전격이 내리쳤다.
이시온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게 해로운이 묻는다.
“길마님, 다친 곳은?”
“없어. 그보다 이시온한테 속박 마법 좀 걸어줘. 또 움직이면 귀찮아져.”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번 더 진리의 눈을 사용했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엉망이 된 거리를 둘러보는데, 후미진 골목에서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벌벌 떨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웃으며 그대로 걸음을 내디뎠다.
[권능, ‘전진(前進)’이 활성화됩니다.]
뒤집어쓴 후드 사이로 붉은색이 도는 갈색 머리칼이 흘러내린 것이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으나, 유대공을 묶었고 나를 묶었던 그 빌어먹을 실과도 같은 것을 만들어낸 새끼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떨고 있었다.
“누구야.”
“으아악!!”
목소리로 보니 여자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영광의 검으로 여자의 후드를 벗겨내며 미소 지었다.
“단테? 마몬? 아니면 라헬?”
딱딱,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에 나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단테라면 미친놈처럼 웃어댔을 테고, 마몬이라면 온갖 욕을 쏟아부었을 테니…….”
이가 맞부딪치던 소리가 멈췄다.
“라헬이구나, 너.”
“…오랜만이에요, 성녀님.”
겁에 질려있던 여자가 돌연, 미소를 그리며 내게 인사했다. 동시에 예의 그 실과도 같은 것이 내 몸을 묶어버렸다.
내 몸을 묶고 있는 건, ‘사슬’만으로도 충분한데!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자 했다.
하지만.
“글로리아 님께 자유를 주세요, 성녀님.”
뒤에서 지는 그림자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깻죽지를 파고드는 검이 느껴졌다. 쇄골 아래, 그 밑까지 파고든 검에 울컥 피가 토해졌다.
망할, 드슬이 새끼!
“아아, 심장을 찌르시지.”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이를 악물며 영광의 검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
아래로 누르는 중력에 라헬도, 이시온도 비틀거린다.
나를 묶고 있는 것이 느슨해졌다. 나는 어깻죽지 아래로 박힌 검을 억지로 빼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신관 새끼와 대화를 나누려던 내가 어리석었지.
신력밖에 사용할 수 없는 신관 새끼가, 어떻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더니 말이다.
나는 땅에 떨어진 영광의 검을 쥐고선 라헬을 향해 들어 올렸다.
“죽어, 라헬. 네가 좋아하는 글로리아의 손에 죽어버려.”
겁에 질린 눈이 보인다. 그러나 웃고 있다.
미치광이 신관이 지어주는 웃음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검을 내리찍었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파지직, 튀는 전격이 눈부시다.
들려오지 않는 비명에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위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성녀님, 오랜만.”
저 새끼는 또 뭐야.
라헬을 옆구리에 끼고서 손을 흔들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단테일까, 아니. 마몬일 거다.
나는 나를 묶고 있는 사슬을 움직여 마몬을 잡고자 했다.
“흐아……! 으… 으윽……!”
그러나 들려오는 고통에 찬 신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성역에 짓눌리고 있던 이시온이 제 목을 피가 나도록 긁는 것이 보였다.
“실패할 것 같으면 죽으라고 했거든.”
자기가 한 건 아니라며, 마몬은 덧붙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 피가 나도록 제 목을 긁고 있던 이시온이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법사 새끼는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망할.”
나는 마몬을 한번 노려보고는 이시온을 향해 달려갔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길드원, 눈앞에서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이시온의 손목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슬로 묶어버리고는 상처가 난 목에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이시온, 정신 차려봐. 내 목소리 들려?”
“엘로, 시아……. 엘로시아가…….”
안 들리나 보다.
나는 이시온의 두 눈에 손을 얹고서는 다시 한번 더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권능, ‘안식’이 활성화됩니다.]
부디, 악몽을 꾸기를 바라며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길마님, 무사해?”
그러다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너……! 내가 분명 드슬이 새끼한테 속박 마법 걸라고……!!”
뚝뚝, 셔츠를 타고 떨어지고 있는 것에 말문이 막혔다. 길게 난 상처에 붉게 물든 하얀 옷이 보였다.
해로운이 허탈하게 웃더니 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아 버렸다.
“무사하네. 괜히 걱정했잖아.”
“해로운, 너…….”
“괜찮아, 지혈 마법으로 피는 멎게 했어. 근데 내 몸에는 내가 힐을 못 쓰거든. 그러니까 길마님이 힐 좀 해줘. 로운이 진짜 아프죠.”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는 건가 싶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해로운에게 다가갔다.
“바로 오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어버렸지 뭐야. 드슬님이 거기서 검을 휘두를 줄 몰랐죠. 이렇게 다친 거, 로운이 탓 아니죠.”
변명하듯이 나불대는 입에 나는 닥치라는 뜻으로 해로운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해로운은 내 손목을 조심스레 잡아 자신의 입에서 떼어내고는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대공님께 힐을 써달라고 할까 했는데, 혹시 모르잖아. 그러니까 마력 아끼고 있으라고 했지.”
나는 해로운의 입을 막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하얀 셔츠를 걷어 올리고는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꽤 깊게 난 상처가 점점 아물어가는 것이 보였다.
“길마님, 궁금한 게 있는데.”
“아무것도 안 말해줄 거야. 계속 궁금해 해.”
“셔츠는 왜 걷은 거야? 로운이 맨살을 보고 싶었나요?”
나는 빠르고 강하게 해로운의 명치를 한 번 때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독에도 당한 것 같지만, 그건 근성으로 이겨내 보라지.
해로운이 쿨럭거리면서 옷을 추스른다. 그러면서도 실실 웃는 게 보기 싫었다.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해로운의 발을 가볍게 차며 말했다.
“사람들 오기 전에 드슬님이 부순 거 다 복구시켜 놔.”
“…조금 전의 다정했던 길마님이 보고 싶죠.”
“그런 길마님 없으니까 빨리 복구나 시켜.”
마몬은 놓쳤다. 라헬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머지않아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아가든, 그쪽이 찾아오든.
그러니 그때는…….
“길마님, 드슬님은 어떻게 할 거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불유쾌한 생각은 접어뒀다. 그 대신 말했다.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