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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26화 (126/168)

126화

지한결이 쓰러져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어야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지한결은 자신이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착각했다.

‘오빠? 왜 그런 얼굴이야?’

그 잠깐의 시간에서 동생을 봤기 때문일 거다.

“이 망할 해로운 놈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를 좀 갖추십시오!”

그렇기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지한결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제 뺨을 타고 흐르던 것을 조금 늦게 인지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예우를 갖춰줄 정도로 로운이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죠.”

“친절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지한결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는 고개를 돌렸다.

찢긴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 중인 남자 둘이 보였다.

한데 모인 시체에 화르륵, 불이 붙는다. 그에 지한결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짓입니까!!”

“어, 일어났네.”

“지금, 뭐 하는……!”

“뭐 하긴, 수습해 주고 있잖아.”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입을 뻐금거렸다. 미노타우르스를 거대한 암석으로 짓이겼던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불만이면 여기서 썩게 놔둘까?”

“…….”

지한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체가 타들어 가는 썩은 내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은, 보는 사람을 절로 기분 좋게 만드는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서.”

“양해를 구할 게 뭐가 있어.”

남자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두면 몬스터들이 몰려올 거라서 말입니다. 양해를 좀 해주시기를…….”

“…강 대표님?”

지한결이 남자의 말을 끊고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분명 지한결이 아는 남자였다.

“강하수 대표님, 맞으시죠?”

남자의 이름은 강하수.

헌터의 신분으로 연예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모인, ‘H-Entertainment’라는 중견 연예 기획사의 대표이사였다.

지한결의 말에 강하수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옆에 있던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제 얼굴에 마법 안 걸어놨습니까?”

“깜빡했다.”

“오! 이프리트시여!!”

“지금이라도 걸어줄까?”

“그걸 말이라고!!”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지한결은 두 눈을 끔벅이기만 했다.

강하수가 성을 낼 때마다 동료들의 시체에 붙은 불이 거세졌다.

‘설마, 강 대표님이…….’

강하수는 숱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각성자라고 증명을 받은 일반인이었다. 그런 그가 각성자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억을 좀 어떻게 지워줄 수 없겠습니까?”

“곤란하죠. 잘못 건드렸다가 백치되기 십상이죠.”

“지금까지 잘도 그래 왔지 않습니까!”

“로운이 마력 없죠.”

“지랄하지 마시고요!!”

나누는 이야기를 보아하니, 각성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 ‘무언가’가 뭘까.

지한결은 머리를 굴려보려고 해도 지끈거리는 두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보다 어떻게 할래?”

“…네?”

“그쪽, 센터 소속인 거 같은데. 센터로 돌아갈 거야?”

날아든 질문에 지한결은 타들어 가고 있는 동료들의 시체를 두 눈에 담았다.

여기서 답은 하나였다.

센터로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동료들의 가족에게…….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한결은 핏물이 말라붙은 손을 들어 입가를 매만졌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빛은 검붉었다. 지한결이 검붉은 빛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파편 하나에 발을 올렸을 때.

“…….”

지한결은 무너져 내린 세상을 마주 보게 되었다.

검붉은 하늘에 몬스터가 비행하고 있다. 그 몬스터에 매달린 사람이 반으로 갈라져 땅으로 추락한다.

지한결이 허망하게 그 모습들을 눈에 담았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들어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을 거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에 세상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어떻게 할 거냐니까? 센터로 돌아갈 거야?”

재촉하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센터는 괜찮습니까.”

“아니?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진 지 오래죠.”

남자가 슬프다는 듯이 울상을 짓는다. 그 얼굴에서 슬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정에 지한결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들과 함께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울상을 짓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강하수가 미안하다는 듯이 지한결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곤란…….”

“좋아.”

남자가 강하수의 말을 끊고서는 지한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는 못해.”

“길드… 말입니까?”

“응, 길드.”

남자가 지한결에게 손을 내밀며 눈웃음을 지었다.

“나사 하나씩 빠진 애들이 모여있는 길드.”

보이는 웃음이 자조적으로 느껴졌다. 지한결은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다가 핏물이 메말라 붙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

그러기 무섭게 해로운이 그 손을 잡아끌었다.

“환영해.”

섬뜩하리만치 울리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황급히 제 손을 빼내었다. 해로운은 그에 작게 웃음을 흘리곤 걸음을 돌렸다.

“정령사님, 돌아가자. 애들한테 신입 한 명 데리고 간다고 말 좀 해주고.”

“신입은 무슨…….”

강하수가 동정 어린 시선을 지한결에게 보냈다. 지한결은 그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남자가 말한 ‘정령사’라는 호칭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의문도 잠시.

붉게 빛나면 나타난 것에 지한결이 다급한 얼굴로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도하운과 무슨 사이입니까?”

“응? 도하운?”

“그 여자와 무슨 사이냐고요!”

남자는 그에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말했다.

“29년 모태 솔로 인생에 나한테 여자가 어디 있어.”

그러고는 지한결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건 마법진이야.”

“마법진?”

“판타지 소설 안 읽어 봤어? 마법사들 있잖아.”

남자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그 마법사거든.”

자신을 마법사라고 소개한 남자의 이름이 ‘해로운’이라는 것을, 지한결은 다소 뒤늦게 깨달았다.

‘이름이 아니라 형용사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강하수가 처음 그를 불렀을 때도 ‘해로운 놈’이라고 했다. 해로워서 그렇게 부르는가 싶었더니 진짜 해로운 놈이라서 그렇게 부른 거였다.

“궁상맞게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지한결이 화들짝 놀라고는 고개를 들었다.

“용사…….”

“강인한.”

“강인한 씨.”

강인한이 뺨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지한결에게 물었다.

“강하수, 그 인간과 같이 나간 줄 알았더니?”

“강 대표님께서 해로운 씨와 움직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남은 거니?”

“네.”

해로운은 지한결에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보다는 불편한 사람이 맞을 거다.

환영한다면서 손을 잡을 때는 언제고, 해로운은 지한결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냈다. 그런 지한결을 챙겨준 건 길드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귀환이라고 했던가.’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다.

차원 이동을 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누가 듣는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면서 코웃음을 칠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한결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보니?”

“아니요, 아무것도요.”

귀환의 길드원들은 각성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상태 창’이 보이지 않는데도, S급 각성자 못지않은 실력으로 세상에 쏟아지고 있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었다.

어쩌면, S급 각성자보다 뛰어난 실력으로 말이다.

그러니 지한결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망할, 드슬이 새끼!!”

돌연, 붉은 마법진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해로운이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강하수가 거세게 기침을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강 대표님!”

지한결이 놀라 강하수에게 달려갔다. 해로운이 짧게 혀를 차고선 강하수를 살피기 시작했다.

강인한이 해로운에게 붕대를 던져주며 물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그 새끼가 또 나타났었나 보구나.”

“나타났기만 했을까 봐? 지한결 씨, 거기 좀 누르고 있어줘. 망할, 힐이 안 먹혀.”

해로운이 강하수의 어깨 부근을 강하게 누르며 외쳤다.

“용사님! 대공님 좀 불러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색 마법진이 펼쳐졌다. 유대공이 왜 진언을 날리냐면서 호들갑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대공은 강하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그 즉시 힐을 시전했다.

“그래도 대공님 마법은 먹히네.”

아물어가는 상처에 해로운이 안도하며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길마님 오늘은 토벌하러 안 나간다면서요!”

“그렇지. 토벌하러 안 나갔지. 대신 토벌당할 뻔해서 문제였지.”

해로운이 겉옷을 벗어 강하수 위에 덮어주고는 중얼거렸다.

“망할 새끼가… 홀려도 적당히 홀려야지…….”

“……?”

가까이 있던 지한결이 그 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었다.

지한결과 눈이 마주친 해로운이 눈웃음을 짓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공님, 정령사님 좀 살펴봐 줘. 나는 바깥 좀 살피고 와야겠다. 용사님은 애들한테 오늘 일찍 돌아오라고 해줄래? 괜히 불안하네.”

“네가 하면 될 것을.”

“귀찮죠.”

해로운은 그대로 가게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기 전, 지한결에게 따라오라며 눈짓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지한결이 고민하다가 해로운을 따라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드슬이 새끼 욕한 거? 아니면, 따라 나오라고 한 거?”

“둘 다 말입니다.”

해로운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드슬이 새끼를 욕한 건, 우리 정령사님 보면 알잖아? 그리고 따라 나오라고 한 건…….”

해로운의 시선이 지한결에게로 향했다.

“지한결 씨, 혹시 동생 있어?”

“…네?”

“동생 있냐고.”

의외의 물음에 지한결이 멍하니 입을 뻐금거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답이었다.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었다. 눈가에 자리한 짙은 그림자가 그에 따라 휘어진다.

“동생 간수 잘했어야지.”

“그… 그게 무슨…….”

해로운은 지한결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 준 뒤 그에게서 걸음을 옮겼다. 지한결이 황폐한 거리를 걸어가는 해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여일이… 여일이를…….”

해로운에게는 닿지 않을 목소리였다. 지한결이 황급히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보이는 시스템 창이 있었다.

[차원 관리자, ‘X’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확인하지 못했던 의뢰.

지한결이 입술을 달싹이고는 ‘YES’를 눌렀다.

[차원 관리자, ‘X’가 침입한 ‘글로리아’를 비롯한 그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 실패 시: 이 세계의 파멸 그리고 멸망.

글로리아.

지한결은 두 눈에 담기는 이름을 기억에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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