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속보] 하운, 이대로 몰락하는가?
도하준 길드장과 도하인 부길드장의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위 사건을 위임받은 센터(Center)가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중략)…결국, ‘화랑’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던 길드, ‘하운’의 두 주인은 재산에 눈이 멀어 서로를 죽인 것으로…….
지한결은 기사를 읽는 것을 그만뒀다. 여기서 화면을 내려봤자, 속만 쓰릴 뿐이었다.
가는 길마다 도하준과 도하인을 욕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그깟 재산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서로를 죽였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낄낄거리기도 했다.
“결국, 그 재산은 어떻게 되는 거래?”
“하운 쪽 길드원들이 나눠 가져서는 다 튀어버렸다는데?”
지금도 그랬다.
지한결은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겨울이 지나가고 하늘은 잔뜩 흐렸다.
“지 팀장님도 한 대 피우실래요?”
“아니요, 저는 됐습니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였다.
지한결은 팀원들에게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고는 걸음을 돌려버렸다.
한강 대교 인근에 나타났다던 1급 게이트가 도착하기도 전에 닫혀버리면서 여유 시간이 생겼다.
지한결은 입안에 감도는 씁쓸함을 다른 것으로 삼키고자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
아니, 들어서려고 했다.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어깨에 닿을까 싶을 정도의 짧은 머리카락.
골목길을 돌면서 보인 얼굴은, 비가 내리던 날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여자였다.
도하운.
어렵지 않게 여자의 이름을 떠올린 지한결이 편의점 문을 도로 닫고서는 뜀박질을 시작했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과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지한결은 도하운이 사라졌던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들어선 곳에서 보이는 거라곤 전봇대 아래에 놓인 쓰레기봉투뿐이었다.
지한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잘못 본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도하운은 분명 자신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에 도하운이 보내던 건 인사였다.
지한결이 이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하운 씨! 여기 있는 거 다 압니다!!”
도하준과 도하인이 왜 실종 상태였던 도하운을 계속 그 상태로 뒀는지 모른다.
하지만 도하운은 분명 돌아왔다.
“도하운 씨!!”
그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나, 도하운은 그 형제들과 함께였다.
지한결이 확신에 찬 얼굴로 다시 한번 도하운의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실수한 거야, 너.”
그 입을 막는 손이 있었다.
굳은살 따윈 느껴지지 않는 고운 손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도하운이, 그때와 같이 초췌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지한결에게 말했다.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른 거, 실수한 거라고.”
도하운의 손은 지한결의 입술을 부드럽게 닫아 내리며 떨어졌다. 지한결이 황급히 도하운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나고는 입을 열었다.
“도하준 길드장님과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 죽은 것.”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나, 순간 강하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알고 계십니까.”
이를 물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렇기에 끝을 내뱉은 지한결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도하운이 이를 즐겁게 듣고서는 대답했다.
“응, 알고 있었는데?”
도하운은 그렇게 답하며 지한결을 향해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와서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였는데, 그걸 모르고 있을까 봐?”
“……!”
“친절하네. 그걸 알려주려고 이렇게 쫓아오고.”
나긋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지한결은 자신도 모르게 인벤토리를 열어 검을 빼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거 뽑지 마.”
돌연, 몸을 옥죄는 목소리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지한결이 헛숨을 들이켜 마시며 도하운을 쳐다봤다.
도하운의 두 눈은 그때와 똑같았다. 빛이라고는 전혀 듣지 않는, 검은 두 눈. 그 두 눈 속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도하운이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듯이 말했다.
“…지한결 씨?”
들린 이름과 함께 지한결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인벤토리를 닫아버렸다.
도하운이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성하가 네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거든. 다행히도 정답이었나 보네.”
도하운이 잘게 떨리고 있는 지한결의 손을 쥐었다.
“내가 ‘검’을 싫어해.”
지한결은 억지로 맞잡고 있는 손을 흘긋거렸다.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손이었다.
마치, 시체의 손을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에 지한결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렇게 무어라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였다.
도하운이 쥐고 있던 지한결의 손을 놓으며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무 베였거든. 이 망할 것의 손에.”
“……?”
그 말이 끝이었다.
도하운은 한 걸음 물러나는가 싶더니, 푸르게 빛나는 진(陳) 안으로 사라졌다.
지한결이 붙잡을 새도 없었다.
“…도하운 씨?”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한결이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거라곤, 전봇대 아래에 놓인 쓰레기봉투뿐이었다.
“도하운 씨!!”
불러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놓쳤다.
그 사실에 지한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한결은 한 손을 들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였다.
“지 팀장님!”
한 대 피우지 않겠냐고, 담배를 건네던 신입 팀원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동생분께 사고가 났답니다!!”
지한결이 그 말에 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화면에 뜬 것에 지한결은 팀원이 붙잡을 새도 없이 대로로 달려나갔다.
* * *
―다음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케이블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고 있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 중에 일어났던 사고로 인해…….
지한결이 방송을 끄고는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한쪽 손에 붕대를 감고 있던 지여일이 지한결의 시선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오빠가 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다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말하는 거야?”
“죽은 사람도 있다며?”
“…….”
지한결이 입을 꾹 다물고선 지여일을 노려봤다. 지여일이 그 날 선 시선에 멋쩍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나 감독님, 돌아가셨지?”
지한결은 대답 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빠.”
“…그래.”
지한결이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하필, 폭탄이 터지던 곳 근처에 계셔서 돌아가셨대.”
“나도 같이 있었는데…….”
음울한 목소리에 지한결이 지여일의 위로 이불을 끌어 올려줬다.
“신경 쓰지 마, 여일아.”
그러고는 붕대가 감긴 손을 조심스레 잡고는 말했다.
“살았으니 된 거야.”
붕대가 감겨있어서일까. 동생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없다.
시체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에 지한결이 당황하는 사이, 지여일이 자신의 오빠에게서 제 손을 빼내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
또한, 들려오는 목소리가 왜인지 동생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 하나뿐인 가족, ‘지여일’이 맞는데도.
“살았으니 된 거겠지?”
묻는 목소리에 지한결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여일이 잔잔히 미소를 그렸다. 그녀의 미소에 거북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지한결은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 이만 일어나 보겠다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감독님 일은 너무 생각하지 마.”
“생각 안 해.”
지여일이 여전히 미소를 그린 얼굴로 말했다.
“다녀와, 오빠.”
지한결은 그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주고는 다소 바쁜 걸음으로 지여일의 병실을 빠져나왔다.
‘도하운’이란 여자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잊고선 말이다.
그렇게 지한결은 센터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에도, 지한결은 늦은 시간까지 센터에 남아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돌아간 지여일의 병실에 지여일은 없었다. 대신 남아있는 건, 한쪽 손에 감겨있던 붕대뿐이었다.
“…여일아?”
지한결은 병원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여일을 불렀다.
“지여일! 여일아!!”
그럼에도 지여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여일!!”
지한결의 목소리가 복도를 허망하게 울렸다.
* * *
하나뿐인 가족이 실종됐다.
“찾을 수 없다더라.”
모든 인력을 동원해 들은 말이었다. 지한결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하운은요.”
“지 팀장.”
“도하운, 그 여자랑 같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한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기에는, 센터의 상황이 너무나도 흉흉했기 때문이다.
분기에 한 번씩, 대상자를 정해 열리는 ‘정기적 적합자 심사’와는 다르게 때를 정하지 않고 열리는 ‘돌발성 적합자 심사’가 곳곳에서 열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열린 심사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 누구도 온전치 않았다. 모두가 미쳐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
그들을 잡아두는 수용소도 한계.
“이번에 종로 쪽에서 던전 터졌다는데 들었어?”
“이수혁 팀장이 지원 나갔다가 죽었다지?”
더욱이, 아웃 브레이커 던전도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라진 가족, 지여일을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한결은 검을 들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서 던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몰랐다.
그 던전이 ‘최악’이라 불리는 이중 던전일 줄은.
고작 B급이라며 여유롭게 행동했던 게 문제였다.
던전을 공략하기 무섭게 나타난 S급 보스 몬스터에 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썰려나갔다.
근근이 쓰러뜨렸더니 몬스터는 다시 나타나 거대한 창을 들었다.
[측정 불가, ‘미노타우로스’가 침입한 불청객에 분노합니다!]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휘하 팀원들은 모두 죽은 지 오래. 지한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선 검을 들었다.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자신의 목을 향해서.
[차원 관리자, ‘X’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의뢰란 것이 날아든 것은 그때였다. 나타난 푸른 시스템 창에 지한결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콰광―!
던전이 요란하게 울렸다.
“봐봐, 내 말 맞지?”
웃음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뒤로 거대한 창을 들고 있던 미노타우로스가 암석에 짓이겨지는 게 보였다.
지한결이 멍하니 시선을 올렸다. 나타난 남자가 지한결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살아있는 사람 있다니까.”
다갈색 눈동자에 붉은 마법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며, 지한결은 그대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