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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24화 (124/168)

124화

지한결에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 살 아래의 여동생인 ‘지여일’뿐이었다.

부모의 얼굴은 모른다. 어릴 적에는 기억했던 것 같지만, 셈을 할 줄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서 자연스레 그 얼굴들을 잊어버렸다.

어차피 자신과 여동생을 고아원에 버리고 간 사람들, 잊어도 상관없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세상이 격변하던 순간.

부모란 이들이 죽었다면서 그 유골함이 제게 내밀어졌을 때, 지한결은 그것들을 내쳤다.

지여일은 알 수 없게 말이다.

어차피 가족은 지여일 한 명뿐이었다. 죽은 이들을 ‘가족’이라면서 받아들일 아량은, 지한결에게는 없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을까.

지한결은 두 번째 삶을 시작하는 지금에도 생각한다.

* * *

“드라마 제작 확정됐다며.”

세상의 격변과 함께 지한결은 각성자가 되었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심사를 통과한 까닭이다.

지한결의 말에 지여일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운 좋게 화랑이 투자해 주기로 했어.”

“화랑이?”

“그쪽 길드장 동생이 우리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나 봐.”

지여일의 말에 지한결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우마한 길드장한테 동생이 있었던가…….”

지한결은 그렇게 말을 흐리면서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도하준 길드장한테는 있었던 거 같은데.”

“도하인 부길드장?”

“도하인 부길드장 말고도 한 명 더. 도하인 부길드장이 쌍둥이라고 들었거든.”

그에 지여일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비각성자인 지여일은 지한결이 이야기해 주는 ‘헌터’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호기심 가득한 동생의 얼굴에 지한결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신경은 쓰지 마.”

“오빠는 대답하기 곤란하면 꼭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더라.”

지한결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출근한다.”

“다녀와.”

지여일은 쥐고 있던 젓가락을 까닥거리며 지한결에게 인사해 주었다. 지한결이 그런 동생에게 작업 중간중간에 스트레칭 잊지 말고 꼭 하라면서 잔소리를 시전했다.

“어서 출근하기나 해!”

지한결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즐겁게 흘려듣고는 집을 나섰다.

지한결은 6년 전, 강남 일대에서 열렸던 ‘돌발성 적합자 심사’의 유일한 생존자로 심사를 통과한 이후, 센터의 헌터로서 일하는 중이었다.

그 나름대로의 속죄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양분으로 삼아 얻은 힘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비록, 야근이 일상인 철 밥통이라고는 해도 지한결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여일아?”

그날의 일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평소와는 달리 야근이 없던 날이었다. 지한결은 난데없이 쏟아진 비에 흠뻑 젖은 몰골로 불 꺼진 집에 조심스레 들어왔다.

동생이 피곤함을 못 이겨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건가 싶어서.

“지여일?”

하지만, 집 안 어디에서도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갔나?”

지한결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불 꺼진 거실에서 들려오는 벨 소리에 흠칫 놀라며 전화를 꺼버렸다.

“제발 폰 좀 챙겨 다니라니까.”

돌아오면 잔소리를 한 번 더 해야겠다 생각하며, 지한결은 집 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전등을 켰다. 그러나 나가있는 전등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슬리퍼를 신었다.

그렇게 전등을 사러 나간 길이었다. 지한결은 가로등 아래서 지여일을 발견했다.

“지여일!”

지한결의 목소리는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삼켜지고 말았다. 지한결이 몇 번 더 동생의 이름을 부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지여……!”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흐려졌다. 지여일의 앞에 체구가 작은 여자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지여일과 대화 중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꽤 초췌한 낯의 여자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

지한결과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여자는 웃는 낯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러나 이는 잠시뿐. 여자는 지여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선 지한결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지여일이 지한결을 보고선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가족?”

“네, 가족이에요.”

그러나 여자의 물음에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뿐인 오빠더군요.”

“없었으면서.”

“지금은 있네요.”

“안 귀찮아?”

“귀찮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지여일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지한결이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여일아.”

“오빠, 오늘은 빨리 왔네?”

“원래 이 시간이 마쳐야 하는 시간이야. 그보다 그쪽은…….”

여자는 자신을 소개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눈웃음을 지은 채 지한결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 웃음이 왜인지 소름이 끼쳐 지한결은 여자의 시선을 피하며 지여일에게 말했다.

“친구면 집에 데리고 와서 이야기하지.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탁 트여있는 게 좋잖아.”

“……?”

여자가 지한결의 말에 끼어들고선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을 지한결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나 비 좋아해.”

빛이라고는 들지 않는 것 같은 검은 동공에 잔뜩 당황한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지한결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름을 모를 여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여일이 친구… 맞으십니까?”

여자는 그에 답하지 않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지어줄 뿐이었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느껴진 경고였다. 지한결이 굳은 얼굴로 지여일을 제게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세찬 빗줄기를 뚫고 들리는 이름이 있었다.

“도하운!!”

익숙한 목소리에 지한결이 두 눈을 끔뻑였다.

“도하인 부길드장……?”

그에 여자가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우리 가족은 참 귀찮아…….”

작은 목소리라고는 하나, 지한결에게는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잔뜩 화난 얼굴로 나타난 도하인은 그대로 ‘도하운’이라 불린 여자의 팔을 끌어 잡고선 사라졌다.

“오늘 본 건 모른 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한결 팀장.”

경고와도 같은 부탁을 지한결에게 남기고서 말이다.

“여일아.”

“응?”

“저 사람, 친구 맞아?”

여자는, 도하인에 의해 검은 세단에 밀어 넣어지고 있었다. 지여일이 그 모습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응, 친구 맞아.”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지한결이 이를 미심쩍게 여기며 말했다.

“너무 가깝게는 지내지 마. 위험한 사람인 거 같아.”

지여일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쥐고 있는 우산이 다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여일아?”

“그렇게 보였어?”

돌연, 지여일이 웃음을 멈추고선 물었다. 그 물음에 지한결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여일은 입꼬리를 올리고선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가자, 오빠.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

지여일의 말에, 지한결은 그제야 자신의 몰골이 물에 흠뻑 젖은 생쥐와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한결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동생의 곁을 따라붙었다.

여자는, 도하인과 함께 검은 세단을 타고 빗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한결은 여자와의 만남이 그대로 끝일 줄 알았다.

“도하준 길드장님께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위독하답니다! 지금 △△대학 병원이라는데,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도……!”

“도하인 부길드장님은요!”

“행방이 묘연하답니다!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 도하준 길드장님을 공격한 것 아니냐는 말도…….”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지한결이 신경질적으로 부하의 말을 끊었다.

도하준과 도하인, 두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끈끈한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형제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려 들었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지한결이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도하준 길드장님께서는 어디서 발견되셨답니까.”

“자택에서 발견되셨답니다. 비서분께서 발견하시고는 곧장…….”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도 자택에 함께 계셨다고 합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하운 쪽에서 저희 쪽에 은밀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지한결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도하준과 도하인, 게이트 발생 시에 최우선으로 차출되는 전력인 S급 각성자였다.

그런 둘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지 팀장님!”

현장으로 나간 헌터와 연락 중이던 이가 급히 지한결을 불렀다.

“도하인 부길드장이 자택 근처에서 발견됐답니다!”

“상태가 어떻답니까.”

“…그게, 이미…….”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고요를 깨고서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도하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 하운을 이끌던 두 사람의 죽음에 무성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진실을 규명하는 목소리에 하운은 입을 닫을 뿐이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건 센터였다.

“형제 싸움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도하준 길드장과 도하인 부길드장이 그렇게 됐단 말인가, 지 팀장?”

“…….”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에 센터의 늙은 관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고. 도하인 부길드장이 도하준 길드장의 것을 탐낸 거야.”

“그러다 도하인 부길드장이 도하준 길드장을 죽여버렸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지레 겁을 먹어서 도망쳐 버린 거지.”

죽어버린 건, 그 과정에서 입은 부상 때문이라며 늙은 관료들은 낄낄거렸다.

지한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선 두 손을 주먹 쥐었다. 그러다 떠오르는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물었다.

“도하운은 어디 있답니까.”

“음?”

“도하인 부길드장의 쌍둥이 말입니다.”

도하운.

그 이름을, 왜 이제야 떠올린 건지 모를 일이었다.

지한결의 말에 늙은 관료들이 얼굴을 찌푸리고선 저들끼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화면을 두드리고선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하운’이라…….”

“도하준 길드장에게 여동생이 있었군.”

그것도 잠시, 늙은 관료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실종된 지 오래라는군. 찾아봤자 뭐 하려고 그러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만났었단 말입니다!”

“지한결 팀장.”

늙은 관료들이 제각기 다른 얼굴로 지한결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 골치 아픈 상황, 쉽게 풀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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