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해로운이 우마훈을 놓칠세라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렇게 뛰쳐나가자마자 보이는 건, 조명이 나가기 직전의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는 도하운이었다.
“도하…….”
“길마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해로운이 우마훈의 말을 끊고 도하운에게 다가갔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우마훈은 간단히 무시하고선 말이다.
“하준 길마님이 지금 길마님 찾고 계시고 있죠? 도련님께서는 길마님이 길 잃은 건 아닐까 아주 걱정이시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도하운은 묵묵부답이었다. 적어도 시끄럽다는, 그런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해로운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도하운에게 한 걸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길마님?”
“해로운.”
가까이 다가온 해로운에게 도하운이 한걸음 성큼 다가섰다. 좁혀진 간격에 해로운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도하운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포털 열어.”
“응……?”
“지금 당장, 지한결 그 개새끼가 있는 곳으로 포털 열라고.”
“…길마님.”
도하운은 울지 못해 웃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해로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렇기에 말했다.
“싫어.”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 보낼 수 없어서.
* * *
“해로운.”
“무슨 일인지 말해줘, 길마님. 포털은 듣고 나서 열어줄게.”
돌아온 대답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유를 설명해 줄 시간 따윈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여유가 들지 않았다.
“네가 열어주지 않는다면 됐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해로운의 옆을 지나갔다.
“우마훈, 포털 좀 열어줘.”
“도하운!”
그런 나를 해로운이 잡는다. 나는 붙잡힌 손목을 한 번 보고선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해로운 법사님께서 꽤나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해로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놔.”
“못 놔.”
곧장 들려오는 대답에 짧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권능, ‘성언(聖言)’이 활성화됩니다.]
“이 손 놔, 해로운.”
“……!”
손목을 붙잡고 있던 커다란 손이 떨리는가 싶더니 나를 놓아준다.
당혹감이 가득한 두 눈에 경악이 언뜻 내비친 것 같다. 왜 자신이 내 손을 놓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당황해하는 듯했다.
나는 그대로 해로운에게서 걸음을 돌렸다. 그러기 무섭게 우마훈이 내 앞을 막아섰다.
“도하운아.”
오늘 참, 여러 번 내 이름을 듣는구나 싶었다. 가족이 아닌, 길드원에게서 말이다.
나는 피곤한 낯을 한 번 문지르고는 말했다.
“마왕님, 나 마왕님한테 힘쓰기 싫은데.”
“힘 같은 거 쓸 필요 없느니라.”
“……?”
마왕님 옆으로 검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역시, 우리 마왕님이다. 내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는, 참 바보같이 착한 사람.
마왕님께서 나를 두 눈에 담고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네 말이라면 뭐든 따른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랬던가.”
“그랬느니라.”
마왕님께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지나가기 편하게 길을 비켜주었다.
“지한결, 그놈에게로 향하는 포털인지는 알 수 없느니라.”
“괜찮아. 잘못된 길이라면 바로잡으면 되니까.”
나는 축축, 처지는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야 했다.
“도하운!!”
나를 붙잡는 목소리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걸음을 멈추고선 고개를 돌렸다.
해로운 법사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외친다.
“하준 형님이랑 도련님한테는 어떻게 설명하려고!”
그 소리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설명할 게 뭐 있어.”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금방 돌아올 건데.”
검은 마법진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나의 이름을 부르는 해로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았다. 그러기도 전에, 포털이 닫혀버렸지마는.
* * *
“…도하운.”
부르는 목소리가 버석하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해로운은 도하운이 사라진 곳을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돌연, 우마훈을 보며 소리 질렀다.
“너는 애를 그렇게 보내면 어떻게 해!!”
“도하운이가 가겠다는데, 말릴 이유라도 있느냐?”
“…….”
그 말에 해로운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마훈의 말대로 말릴 이유라고는 없다. 구태여 이유를 찾자면,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여 잡고자 한 것뿐이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니까.
그러니까…….
“해로운 법사 놈아, 네 녀석이 도하운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은 모르느니라.”
해로운은 드러나는 표정 없이 우마한을 바라보았다. 우마한이 그런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와서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하나, 도하운이는 네 보살핌 따윈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로운은 눈가를 살짝 일그러뜨리고는 우마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마훈의 말에 별다른 말은 내뱉지 않았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마훈은 어딘가 분해 보이는 해로운의 얼굴을 보며 잊은 사실을 상기해 주듯이 말을 건네었다.
“같은 귀환자라는 걸 잊지 말거라, 해로운 법사 놈아.”
우마훈의 말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는 그대로 해로운을 지나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해로운이 홀로 남아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우마훈이 열어젖혔던 유리문이 닫하기 전, 유대공이 이를 다시 열고선 바깥으로 나왔다.
“법… 로운이 형!!”
들린 이름에 해로운이 흠칫, 몸을 떨고선 고개를 돌렸다.
유대공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해로운에게 물었다.
“마왕님이랑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거예요? 길마님은요?”
해로운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쥐어 짜내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몰라.”
“네?”
“모른다고.”
해로운 그 대답을 끝으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붙잡히지 말 걸 그랬다. 처음 얼굴을 보았을 때, 잘난 포털을 타고 그대로 도망칠 걸 그랬다.
“내가 왜 그랬을까.”
뭉개진 발음이 손가락 틈새를 타고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자신보다 오래 이세계 머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런 호기심에 붙잡혀 줬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해로운이 얼굴을 덮었던 손을 내리고선 허탈한 목소리로 유대공에게 물었다.
“응, 대공님?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
유대공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뻐금거리기만 했다.
그 얼굴에 해로운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돌렸다. 도하운의 모습은, 여전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도하운 씨?”
가장 먼저 보인 건, 당혹감으로 물든 지한결의 얼굴이었다.
“글로리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다음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도비 새끼였고.
나는 둘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곧장 손을 들어 지한결의 멱살을 잡아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윽……!”
“글로리아! 이게 갑자기 무슨 경우 없는……!”
그러기 무섭게 도비 새끼가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도비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서 말했다.
“닥치고 있어, 도빈.”
“이 몸이 네 녀석의 말을 들을 이유 따윈 없다만.”
“그럼 듣게 만들면 되겠네.”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짓고선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지한결이 내 손목을 붙잡고선 외쳤다.
“도빈 씨! 글로리아의 입을 막으십시오!”
지한결의 말에 도비 새끼가 당황해하는 사이, 나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힘주어 목소리를 내뱉었다.
[권능, ‘성언(聖言)’이 활성화됩니다.]
“도빈, 그대로 입 다물고 자리에 앉아.”
넘어졌던 의자가 바로 세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지한결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한결과 이야기를 끝마칠 때까지 그러고 있어.”
성언의 힘이 제대로 먹혔는지, 도빈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나는 그에 만족해하며 내게 멱살이 잡힌 남자를 두 눈에 또렷하게 담아냈다.
“…도하운 씨!”
“급할 때는 ‘글로리아’라고 부르고, 아닐 때는 ‘도하운’이야? 참 제멋대로 부르네.”
지한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 역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씹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를 속였었어.”
“속인 적 없습니다!”
“아니, 속였어.”
나는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목소리를 이었다.
“성하에 대해 모른다며, 너.”
“…….”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지한결의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나를 노려보고 있던 두 눈도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그 시선에, 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모른다고 했잖아.”
“…도하운 씨.”
“그런데 왜 내 앞에 나타나.”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지한결의 손이 기어코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지한결을 벽 쪽으로 한 번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선 소리 질렀다.
“왜 내 앞에 나타나냐고, 왜!!”
“저는… 그러니까, 저는…….”
더듬더듬, 이어지지 못하는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보니 성하가 뒤집어쓴 껍데기와 참으로 닮은 얼굴이란 게 실감이 났다.
다만, 다르다면.
‘여기서 소란을 피우시려고요, 성녀님?’
성하는, 자신의 멱살을 쥔 내 손을 내가 먼저 놓게 만들어버렸다는 거다.
떠오르는 불유쾌한 기억에 나는 이를 악물고선 말했다.
“네가 아는 모든 걸 말해, 지한결. 내가 주는 마지막 기회야.”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했잖아?”
‘글로리아’와 그 휘하의 것들.
그것들은 이 세계로 넘어온 ‘신관’을 말하는 것이다. 별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존재는, 그것들밖에 없을 테니.
“그 말이 나를 기만한 게 아니라면, 아는 사실 모두 그대로 토해내라고.”
최후에 소멸당해야 하는 것이 ‘글로리아’인 나라는 것을, 지한결은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눈앞의 남자는 내게 의뢰를 보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