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린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거기 조심히 옮겨!!”
사람들은 차츰 무너졌던 일상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건, 지한결과 그의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이야, 여기는 정상적으로 영업해서.”
“그러게.”
동생의 말에 지한결은 간단히 대꾸하고는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너는?”
“언제나 같은 거.”
간결한 대답에 지한결은 연갈색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내린 동생을 쳐다봤다.
바깥을 구경 중이던 지한결의 동생, 지여일이 그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아무것도. 해산물 로제 파스타 하나 추가할게요.”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뉴판을 가져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그걸 막은 건 지여일이었다.
“제가 해산물을 못 먹어서요. 감베리 파스타로 바꿔주실래요?”
지여일은 그렇게 메뉴를 주문하고는 웃는 얼굴로 지한결을 타박했다.
“오빠, 나 해산물 못 먹는 거 알면서 그걸 주문하면 어떡해?”
그에 지한결이 미안하다며 멋쩍은 얼굴을 보였다. 지여일은 이를 웃어넘기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반파된 건물이 순식간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지여일의 두 눈에 들어왔다.
“헌터들은 참 신기하다니까.”
“응?”
“저렇게 무너진 건물을 단번에 복구하다니 말이야. 오빠 직장 동료분들 중에서도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 있어?”
“아니, 없어.”
지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그 고갯짓에 지여일이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정말?”
“응, 정말로.”
돌아온 대답에 지여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흥미를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지한결이 그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일아, 오늘 약속 있다고 했지?”
“응, 나 감독님이랑 미팅.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 재개 건으로 이야기 나눌 게 있어서. 어제도 말한 거 같은데…….”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지한결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요새 바쁘잖아. 자주 깜빡해서 그래.”
“그러다 깜빡하면 안 되는 것도 깜빡하겠네.”
그 목소리 끝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한결은 입을 다물고선 동생을 바라보았다. 지여일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에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오빠는 오늘도 야근이지?”
“…응.”
짤막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종업원이 서비스라면서 샐러드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지여일이 포크를 들고선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에 지한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서울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린 지도 일주일, 나는 법사님께서 마력을 회복하기 무섭게 부려먹기 시작했다.
“길마님, 좀 쉬면 안 되나요?”
“안 돼.”
“법사 지금 너무 무리했죠.”
“거기서 더 무리해도 돼.”
“…….”
법사님께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에 나는 활짝 웃음을 지어줄 뿐이었다.
길드와 관련하여 온다던 연락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대신, 센터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만 들어왔을 뿐이었다.
“길짱님~! 포대 자루 다 옮겨주고 왔어요! 이제 뭐 하면 되나욤?”
그렇기에 이렇게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는 중이었다. 얼굴도 그대로 드러내면서 말이지.
나는 해로운을 가리키며 무림님께 말했다.
“해로운의 어깨 좀 주물러줘. 힘을 좀 쓰셨다고 힘들다고 하시네?”
“오케이!!”
공결 처리돼서 신이 난 무림님이 곧장 법사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기 무섭게 법사님께서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무림님께서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사형, 엄살이 왜 그렇게 심해요? 저 힘 하나도 안 주고 있단 말이에요.”
“아픈 걸 어떻게 해!! 길마님! 나 그냥 일할래!!”
“잘 생각했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줬다. 그 고갯짓이 불만이었는지 법사님께서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인다.
나는 키득거리며 법사의 머리를 헤집어주었다.
법사가 몸을 움츠리더니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죠, 길마님? 길마님 뭐 잘못 먹은 건 아닌가 법사 지금 굉장히 두렵죠.”
아니, 이 새끼가.
나는 법사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성과의 접촉이 마력 회복에 빨리 된다면서요, 법사님. 그래서 이렇게 해주고 있는 거잖아.”
“아.”
“아?”
법사나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인다.
“거짓말이었어?”
“아니! 대공님도 말했잖아! 심적으로 편한 사람이 있으면 마력 회복 빠르다고!!”
“그렇게만 말했지, 이성과의 접촉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
망할 법사님께서 내 시선을 피하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나는 곧장 법사님의 머리칼을 잡아 쥐고선 흔들어댔다.
“거짓말이었지?! 망할 해로운 새끼야!!”
“악! 아악! 길마님! 법사 이러다 탈모 오겠다! 탈모!!”
“오든가!!”
“안 되죠! 로운이 머리카락 소중하죠!!”
법사가 내 손목을 붙잡고선 울먹인다. 코를 훌쩍이는 모습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법사의 머리를 놓아주었다.
“사형, 괜찮아요? 길짱님 손에 사형 머리카락 있어요.”
나는 손을 탈탈 털어내고는 법사에게 두 손을 쫙 펼쳐 보였다.
“이제 없어.”
“…길마님 진짜 못됐죠.”
나는 쫙 펼쳐 들었던 두 손을 중지만 남겨 두고선 접어 들었다. 당연히, 맛있는 엿은 법사님을 향한 채였다.
“빨리 건물들 복구나 시켜.”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림님께 부탁했다.
“무림님, 법사님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어깨 한 번 더 주물러줘.”
법사님께서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라며 펄쩍 뛰신다. 그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었다.
법사가 불퉁한 얼굴로 완전히 무너져내린 건물로 걸음을 옮긴다.
붉은 마법진이 건물 잔해 주위로 펼쳐지는가 싶더니, 곧 짜 맞춰지듯 건물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법사님, 이렇게 복구시킨 것들 안전한 거 맞지?”
“길마님, 나 못 믿어?”
“응, 못 믿어.”
나는 완전히 복구된 건물을 주먹을 쥐어 가볍게 두드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골치 아파진단 말이야. 여기 같이 있는 헌터들, 센터 쪽 사람들인 거 알지?”
내 말에 법사님께서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린다.
“그러게 하준 형님이랑 같이 움직이자니까.”
“그쪽으로는 대공님 보냈잖아. 그리고 이쪽 피해가 제일 심각하다고 했거든?”
“그래서 나를 데리고 온 거란 말이지?”
돌연, 법사가 고개를 숙이고선 나와 눈을 맞추었다.
“응? 길마님.”
법사 새끼는 뱃속에 능구렁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법사의 이마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너만 데리고 온 거 아니거든. 저기 무림님은 안 보여?”
무림님께서는 센터 쪽에서 나온 헌터들의 요청에 따라 유리 조각 같은 위험한 것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아니, 잠깐!!
“무… 아니, 최강! 장갑 끼고 해야지! 위험하게 그걸 손으로 만지고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법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일하고 있어, 법사님.”
그러고는 지나가는 헌터에게서 장갑을 얻어 무림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내게서 장갑을 받아든 최강이 해맑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이런 거 필요 없는데요, 길짱님?”
“필요 없어도 껴. 이 망할 인간들이 애한테 장갑도 없이 유리를 만지라고 한 거야?”
나는 주변의 헌터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짜증스레 말을 내뱉고는 무림이의 손을 살폈다. 상처 하나 없이 아주 고운 손이었다.
무림님이 내게서 손을 빼내고는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보인다.
“제 말 맞죠? 저는 이런 거 필요 없다니까요! 맨손으로 유리 만져도 노 프라브럼!”
“그래도 끼라고 분명히 말했다.”
“쳇.”
무림님께서는 뚱한 얼굴을 보이고는 두꺼운 목장갑을 손에 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고 툴툴거렸지만, 내 알 바가 아니었다.
|Pr. 북부대공| : 길마님, 하준 길마님이 언제 돌아올 거냐는데여?
난데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놀란 눈을 했다가 대공님께 답장을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제 곧 갈 거야, 왜?
|Pr. 북부대공| : 돌아오는 길에 같이 만나서 저녁 먹자고 전해달래여!
나는 법사님과 무림님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ㅇㅋ
|Pr. 신살자(길드장)| : 다 끝내고 연락 줄게. 그보다 폰으로 하면 될 것을 왜 메시지를 보낸 거야? 오빠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려고?
|Pr. 북부대공| : ㄱㅊ! 여기 우마한 길마님 계시는데, 우마한 길마님이 우리 채팅에 대해 하준 길마님한테 말해버렸거든여ㅎㅎ
“…….”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왜인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나는 바닥에 놓여있던 물병을 들며 대공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우마한 길드장한테 제발 입조심 좀 하라고 해줘.
마왕님의 주둥아리는 우마한 길드장한테 배워온 게 아닐까 싶었다. 대공님께서는 내가 보낸 메시지에 동그라미 하나만 보내고는 답장을 끝마쳤다.
이럴 때 정령사님께서는 진언을 날리셨을 텐데…….
아쉽다. 나도 진언 날리고 싶어.
나는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고는 반쯤 남아있던 물을 꿀꺽 삼켰다.
“어, 그거 내가 마셨던 건데? 길마님, 지금 법사랑 간접 키스 중이죠?”
“푸훕!!”
저 망할 법사 새끼가!!
마시던 물을 뱉어내고는 주먹을 들자 법사가 키득거리며 날래게 몸을 피한다.
진짜, 저 망할 해로운 법사님을 어쩌면 좋지?
나는 무림님에게로 도망친 법사 새끼를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는 한 입 마시면 끝일 물병을 쳐다봤다.
“…짜증 나게.”
버릴까 했지만 아깝다. 그렇기에 마셨을 뿐이다.
해로운의 입이 닿았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