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안 그래도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뭐라고? 엄마?”
“그리고 아빠? 누가? 네 옆에 앉아있는 유대공 씨가?”
도하인의 날 선 시선에 유대공이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나 역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오빠, 그리고 도하인.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
“맞아요! 그게 있잖아요!”
“얘가 드래곤이거든? 오빠도 봤잖아! 얘 등에 타기도 했잖아!!”
내 말에 오빠가 하림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림이가 그 시선에 내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그런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림이가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됐거든. 그래서 말이 좀 서툴러! 좀이 아니라 많이!”
“원래 애는 태어난 지 한 달이면 말을 못 해, 멍청아.”
“시끄러.”
나는 도하인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하림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하림이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방긋방긋 웃어댔다.
그래, 하림아. 우는 것보다야 웃는 게 낫지.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하림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있잖아! 알에서 처음 본 게 나라서 그런 거지!”
“알에서… 그래, 드래곤도 파충류……. 파충류인가?”
오빠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옆에서 도하인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유대공 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이유는?”
“육아를 제가 하고 있거든요.”
유대공의 말에 도하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보인다. 그 얼굴에 나는 하림이를 도하인에게 내밀어 주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하림이 좀 봐봐! 귀엽지 않아? 하림아, 삼촌이야. 삼촌.”
“누구보고 삼촌이라는 거야? 드래곤이라면서?! 드래곤이 얼마나 위험한……!”
“삼쵼.”
“생물이 아니네. 그래, 왜.”
도하인이 내게서 하림이를 안아 든다. 그러고는 헤벌레 웃는데, 꼴이 참 가관이었다.
어쨌든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유대공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Pr. 신살자(길드장)| : 하림이 호칭 좀 고쳐야겠다.
|Pr. 북부대공| : 싫어할 텐데여;
|Pr. 신살자(길드장)| : 싫어해도 어쩔 수 없어.
귀환을 대대적으로 알리기로 한 이상, 하림이도 어떻게든 알려지게 될 거다.
드래곤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텐데, 그 드래곤이 나한테 엄마라고 하는 걸 사람들이 들어버리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질색하는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고는 오빠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빠, 하림이랑 어떻게 한강까지 오게 된 거야?”
“하림이가 ‘엄마’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아빠’도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고.”
오빠가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뜻 모를 웃음을 짓는다. 대공에게는 그게 오싹하게 느껴졌나 보다. 새파랗게 질려서는 벌벌 떠는데,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대공의 앞으로 걸음을 옮겨 오빠의 시선을 차단하고는 하림이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도하인의 품에 안겨있던 하림이가 냉큼 내게로 안겨 들었다.
“엄므아! 바께 리미 맘마!!”
“잠깐만.”
‘엄마’라는 소리에 도하인과 오빠가 심기 불편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하림이가 커다란 두 눈을 끔뻑이며 둘을 쳐다보자, 두 사람은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이 하림이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하림이를 살폈다.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
|Pr. 북부대공| : 알아써여! 하림이 호칭 고칠게여! 고치면 되잖아여!
|Pr. 신살자(길드장)| :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왜 성질이야?
나는 내 뒤에 서있는 대공을 흘긋거리고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하림이가 특이하기는 하지만, 한강에서 오빠랑 나타났을 때 성체로 나타났었잖아?
|Pr. 북부대공| : 그랬져.
|Pr. 신살자(길드장)| : 그런데 폴리모프한 인간의 모습은 왜 여전히 어린아이지?
대공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없다.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코앞에서 보이는 얼굴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말이다.
대공은 넘어지려는 내 팔을 잡아주고서는 하림이를 내게서 안아 들었다.
“아쁘아!”
“응.”
그러고는 뺨에 하림이의 얼굴을 비볐다.
|Pr. 북부대공| : 지금 모습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여?
하림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대공을 껴안았다. 대공이 그런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눈웃음을 지었다.
|Pr. 북부대공| : 사랑받기 딱 좋잖아요.
그런 이유에서인가 싶었다. 나는 대공의 품에 안겨있는 하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하림이가 내게 손을 뻗으며 외친다.
“엄므아! 리미 맘마 바께에!!”
“그래, 나가보자.”
나는 그 작은 손을 잡고서 걸음을 옮겼다.
하림이가 말한 ‘맘마’는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참새 한 마리였다.
우마한이 다시 둥지로 올려주기 위해 나무를 타는 것을 보며 나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공의 품에 안겨있는 하림이가 군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리미 맘마…….”
“저건 먹는 거 아니야, 림아.”
하림이를 달랜 건 오빠였다. 하림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오빠에게 묻는다.
“왜 맘마 아니야? 새! 치킨!!”
“…….”
오빠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유대공을 한 번, 그리고 나를 한 번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둥지 위에 새를 올려다 주고 내려온 우마한에게 물었다.
“우마훈은요?”
“그 새끼 근황은 왜 물어봐?”
“도하인, 여기 너만 있는 거 아니거든? 자라나는 애들 안 보여?”
도하인이 유빈이와 하림이를 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우마한이 그 모습에 비딱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내게 답해주었다.
“근신 중입니다.”
“근신이요?”
“네, 동네를…….”
우마한이 답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흐린다. 그 대답을 이어준 건 유빈이었다.
“삼쵼이 우리 집하고! 이웃집하고 다 무섭게 만드렀거든요!!”
“…네, 유빈이 말대로 마훈이 그 녀석이 사고를 하나 쳐서…….”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님께서 대충 무슨 사고를 쳤는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우마한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고생이 많네요, 우마한 길드장님.”
내 말에 우마한 길드장이 유빈이를 안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신살자님께서도 제 동생 녀석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신살자?”
“…….”
유빈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우마한에게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알아줘서 고마운데요, 제발 그 ‘신살자’라는 소리 좀 그만해 주면 안 될까요?”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우마한에게 부디 노력해 달라며 환하게 웃음을 지어주었다. 나름대로 상냥하게 웃어준 건데, 우마한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그 길로 길드 일을 처리하러 가봐야겠다며, 유빈이를 데리고 우리 집을 떠나버렸다.
“길마님은 웃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뭐?”
“길마님이 웃으면 꼭 사고가 일어나서…….”
“죽을래? 그 사고가 내가 일으키는 거야? 너희가 일으키는 거잖아!!”
대공님께서 내 말을 못 들은 척 하림이를 보듬어 안고는 집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야! 유대공!”
“쉿! 법사님 깨겠어요!!”
그 말에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그뿐. 나는 법사가 깨는 걸 원치 않았기에 아무 말도 않고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대공이 그런 나를 보며 키득거린다. 하림이도 뭐가 좋은지 배시시 웃음을 보인다.
대공이 그런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길마님, 많이 웃어줘요.”
“조금 전에는 웃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더니.”
“좋을 것 같다고 했지, 웃지 말아 달라고는 안 했잖아요?”
대공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림이와 똑같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길마님이 사고 쳐도 우리가 해결하면 되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사고 안 친다니까!!”
저 망할 새끼! 프란체스카를 외쳐대면서 내 의뢰 방해한 건 잊었나 보다.
나는 한 손을 번쩍 들고서는 대공의 등을 소리 나게 때려버렸다. 쫘악, 울리는 소리에 하림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쁘아, 마자따!!”
대공이 등을 어루만지며 투덜거린다.
“너희 엄마가 때렸어, 림아.”
“마즐 짓 해서 마즌 거 아냐?”
“…….”
“우리 림이, 똑똑하네? 맞아, 너희 아빠 맞을 짓 해서 맞은 거야.”
나는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키득거렸다. 그보다 맞을 짓 해서 맞은 거 아니냐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하림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용사님네 가게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사장님한테 TV 없애 달라고 해야겠어요.”
“가게 무너지면서 이미 없어졌잖아.”
“요번에 가게 다시 세우면서 최신식으로 들여놓을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용사님은 지금 한창 가게를 복구 중이라지.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그렇게 대공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도하인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와서 저녁 먹어!!”
“유대공 씨도 와서 먹어요.”
하림이가 대공의 품에서 내려와서는 도하인에게 달려간다.
“삼쵼~!”
“응, 우리 림이. 림이는 여기 와서 이거 먹자. 삼촌이 저번에 던전 돌면서 얻어온 고기인데…….”
도하인은 이중인격인 게 분명하다.
무릎을 굽히고선 하림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도하인의 모습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대공이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고는 물었다.
“법사님 깨울까요?”
“자게 내버려 둬. 자야지 마력 회복이 빨리 된다며?”
법사님이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휴대폰이 웅웅 울렸다.
[010―■X■X―X□X□] : 의뢰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지한결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화기애애하게 식탁에 앉아있는 우리 가족을 쳐다봤다. 그 앞으로 푸른 시스템 창이 나타나 시야를 방해한다.
[차원 관리자, ‘X’가 침입한 ‘글로리아’를 비롯한 그 휘하 별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모두 소멸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 실패 시: 이 세계의 파멸 그리고 멸망.
“…….”
시간제한이라고는 없는 의뢰였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후자에 더 가까운 의뢰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지한결에게 의뢰를 확인했다는, 아주 간단한 답장을 보내고는 화면을 껐다. 그러기 무섭게 다시 한번 더 폰이 울린다.
[010―■X■X―X□X□]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타난 메시지를,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았다.
“도하운, 빨리 와! 형이랑 나는 저녁 먹고 길드로 가야 한다고!!”
도하인의 재촉에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