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우수수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는 몬스터의 아가리에 검을 찔러놓고는 몸을 틀어 다가오는 드래곤을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끼에에엑!!
둔탁한 울림과 함께 거무죽죽한 핏물이 드래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길드장님!”
다른 곳에서 몬스터들을 불태우고 있던 정령사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기 무섭게 검은 핏물을 쏟아내던 드래곤의 몸에 불길이 붙었다.
―끼아아악!
드래곤은 듣기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런 드래곤을 향해 누군가 총을 쏜다. 머리에 명중한 총탄에 드래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기 무섭게 내 앞으로 장난기 가득한 메시지 하나가 나타났다.
|Pr. 9서클대마법사| : 아래쪽은 우리에게 맡겨주시죠!
쉬고 있으라니까.
나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몬스터에게서 검을 뽑아 들었다. 뽑힌 검에 몬스터의 몸이 기울어졌다.
나는 허공에 발을 딛고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길드장님, 끝도 없습니다만.”
“그러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보상 아이템으로 소환해 낸 ‘좌천사의 1개 군단’이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싸움을 질질 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운아!!”
“…오빠?”
느닷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잘못 들었나 했지만, 저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맘마!!
“…림이?!”
하림이었다.
“하운아! 괜찮아?!”
하준이 오빠가 하림이를 타고선 나타났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가까이 다가온 모습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품에 가득 안기는 귀여운 우리 하림이는 어디 가고…….
―맘마! 맘므아!!
빌딩 하나는 가볍게 무너뜨릴 정도로 거대한 맘마 몬스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뻐금거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랍니까?”
나오지 않는 내 목소리를, 강하수가 대신하여 말해주었다. 그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선 나는 하림이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가 왜 하림이랑 같이 나타나?! 하운은!!”
“하운은 괜찮아. 그보다 이름이 리미가 아니라 하림이었구나.”
오빠가 하림이의 동그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기분 좋은지, 하림이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쳐 들었다.
―맘마!
하림아, 밑에서 대공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게 들리지 않니?
오빠는 그러고는 하림이의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빠는 허공에 잘만 떠있었다.
“하운아.”
“응?”
“하림이가 왜 너를 ‘엄마’라고 부르는지는 나중에 물어볼게.”
“…….”
굉장히 뭣 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하림이가 나를 찾아대서 이곳으로 온 듯싶었다. 하림이는 오빠가 내리기 무섭게 대공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오빠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왜, 유대공 씨가 ‘아빠’인지도 나중에 물어보도록 할게.”
아무래도 싸움을 최대한 질질 끄는 게 내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한강대교가 무너졌다가거나 하는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싸움을 더 끌었다가는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를 일이었다.
“길마님!”
그 순간, 마력이 고갈돼서 쉬고 계시던 대공님이 하림이를 타고 나타나셨다.
“그쪽 쓸어버릴 거예요! 나오세요!!”
“뭐……?”
멍하니 되물었지만, 크게 입을 벌리는 하림이의 모습에 나는 곧장 오빠의 손을 잡고선 몸을 틀 수밖에 없었다.
―맘므아아!!
후웅, 지나간 바람에 북서쪽에 있던 몬스터 무리가 단번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오빠가 침을 꿀꺽 삼킨다. 나 역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망할 대공 새끼를 향해 소리 질렀다.
“야! 휘말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나오라고 미리 말했잖아요! 그대여, 이제 저쪽으로 가시게나!!”
―맘마!
저 미친 새끼, 하림이한테 ‘그대’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대……? 지금 애한테 뭐라고……?”
“잘못 들은 거야, 오빠.”
나는 오빠의 어깨를 한 번 다독여 주고는 시원하게 뻥 뚫린 하늘을 쳐다봤다.
브레스가 대단하기는 대단하구나,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돌연 붉게 물들어 있는 하늘에 푸른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건…….”
글로리아의 마법진이었다.
멍하니 두 눈만 끔뻑일 때, 푸른 전격이 몬스터를 향해 내리쳤다.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오빠가 황급히 나를 붙잡고선 방어진을 펼쳤다. 그럴 필요도 없이 나와 오빠의 주위에 형형색색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괜찮아?
|Pr. 북부대공| : 이게 무슨 난리래여?
|Pr. 마왕| : 도하운아, 위험한 듯하니 그만 내려오거라.
파지직, 이는 전기가 각기 다른 색을 가진 결계에 부딪혀 사라졌다.
“하운아,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떨떠름하게 답해주고는 마법을 펼친 망할 새끼를 찾고자 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눈가를 잔뜩 찡그리고선 쳐다보자, 드라마 촬영장에서 드슬이 새끼를 데리고 도망갔던 칼 단발의 남자가 눈에 들었다.
그런 남자를 잿빛으로 머리를 물들인 남자가 끌고 간다.
“…저 새끼들이.”
“하운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오빠는 내려가는 게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하운아.”
오빠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선 나를 본다. 그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
|Pr. 북부대공| : 넹!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은 어때? 괜찮으셔?
|Pr. 북부대공| : 네넹! 괜찮으셔여! 지금 저랑 계시는데여?
다행히도 조금 전의 공격에 휘말리지 않았나 보다. 나는 오빠를 흘긋거리고는 대공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럼 여기 와서 우리 오빠 좀 데리고 가.
|Pr. 북부대공| : 길마님은여?
|Pr. 신살자(길드장)| : 나는 할 게 있어서 안 돼.
답이 돌아오지 않아 다시 메시지를 보내려는 찰나, 대공에게서 답장이 돌아왔다.
|Pr. 북부대공| : ㅇㅋ알겠어여;
|Pr. 북부대공| : 위험한 짓은 하지 마세요ㅠ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
“응?”
“미안해.”
“뭐……?”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힘을 실어 오빠의 어깨를 살짝 밀어주었다.
떠밀린 오빠가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그런 오빠를 대공과 정령사가 낚아챘다.
―길마님! 미쳤나요!! 제가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미쳤습니까, 길드장님!!
요란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오빠는 어떻게든 내 곁에 남아있으려고 할 거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나는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돌리고는 질질 끌고 있는 싸움을 단번에 끝내줄 길드원님을 불렀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Pr. 신살자(길드장)| : 마력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Pr. 9서클대마법사| : 일주일 정도?
|Pr. 신살자(길드장)| : ????
|Pr. 신살자(길드장)| : 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려?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대마법사죠ㅠ그만큼 회복해야 할 마력이 엄청 많죠ㅠ
암만 마력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마력을 회복하는 데 그렇게나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럼, 무너진 건물들 복구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회복하는 데는?
|Pr. 신살자(길드장)| : 그 정도의 마력을 회복하는 데는 얼마나 걸려?
|Pr. 9서클대마법사| : 3일 정도?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이 도와주면 좀 더 빨리 회복할 수도 있고. 그런데 길마님.
|Pr. 신살자(길드장)| : 왜?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머릿속에는 법사 일 시키려는 생각밖에 없죠ㅠ?
|Pr. 신살자(길드장)| : 빨리 메테오나 날려.
|Pr. 9서클대마법사| : •́ㅿ•̀
어처구니가 없다는 의미가 담긴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곧 붉은 하늘에 그보다 색이 진한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번에 난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 뒤, 신살자의 힘을 사용했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제한 없이 풀어낸 힘이 아군과 적군의 행동에 제약을 가했다.
그와 함께 붉은 마법진에서부터 어른 주먹만 한 운석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건 메테오가 아니라, 우박이잖아.”
“조절한 거죠.”
“?!”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해로운 법사님께서 나를 끌어안고선 마법진을 펼치셨다.
쏟아지는 운석에 곳곳을 얻어맞은 몬스터들이 한강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소환해 낸 병사들은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하늘을 뒤덮었던 것들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길마님, 이거 돈 주고도 못 볼 광경이다?”
짓궂음이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너한테 돈 주고 보여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다시 볼 수 있어?”
“글쎄,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맑게 개고 있었다.
《칭호, ‘전장의 승리자’가 사슬 아래 봉인되었습니다.》
푸르게 나타난 시스템 창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길짱님! 길짱님, 저거 봐요!!”
아래에서 들려오는 명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두두, 맑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는 헬기가 보였다.
“헬기예요, 헬기!!”
무림이가 다가오는 헬기를 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 댔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가 뒤늦게 ‘헬기’라는 단어를 인지했다.
“법사, 헬기가 왜 갑자기 등장해?”
“촬영하려고?”
“왜?”
법사가 왜 그런 걸 묻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무너진 한강대교를 한 번, 쑥대밭이 된 한강 공원을 두 번 그리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배를 드러내고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하림이를 세 번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시발…….”
다가오는 헬기는, 대한민국 대표 공영 미디어 K□S의 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