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쿠르릉,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한강대교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강대교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건물 위에 올라가 있던 마몬이 이를 보고선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와우, 저거 꽤 중요한 다리로 알고 있는데 무너뜨려도 되는 건가?”
그에 단테가 미소가 만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역시 우리 성녀님, 화끈하신 건 변함없군요.”
단테의 말에 마몬이 희미하게 보이는 동작대교를 가리키며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두 번 화끈했다가는 저 다리도 무너뜨리겠는데?”
단테가 마몬의 말을 무시하고선 뒤쪽에 서있는 여자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성하님. 성녀님을 도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리 잘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단테의 말에 마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성하님. 괜히 도와드렸다가 우리 정체만 발각될 겁니다.”
“글쎄요.”
단조로이 울린 그 대답은 성녀를 도와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단테의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고, 괜히 성녀를 도와줬다가 정체만 발각될 거라는 마몬의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연갈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여자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선 붉게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
단테와 마몬이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기 무섭게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쩌적, 금이 간 곳 안에서 수를 세기 어려운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금방 하늘을 뒤덮고 말았다. 그 모습에 여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죽은 어미의 복수를 위해 자식들이 찾아왔나 보네요.”
불쌍하게도.
덧붙이는 말에, 단테와 마몬은 그저 성녀가 있을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 * *
시발.
차갑기 그지없는 한강 물에서 얼굴을 빼꼼하게 내미니, 보이는 건 하늘을 뒤덮고 있는 수천 마리는 족히 넘을 몬스터 떼였다.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길드장, 지금이 웃을 때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용사님께서 무너진 다리의 파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용사님,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 그러니까 웃을 수 있을 때 웃어둬야지.”
“지금은 오던 복도 날아갈 것 같구나.”
용사님께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런 용사님의 손을 잡고선 무너진 다리의 파편 위로 몸을 옮겼다.
용사님이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며 내게 물었다.
“저것들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니, 길드장?”
“글쎄…….”
망할 마법사들에게 한 번 더 메테오를 날려달라고 할까. 그러면 금방 해치울 것 같은데.
나타난 몬스터들은 무슨 영문인지, 공격 태세만 갖추고 있지 우리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즉, 지금이 단번에 쓸어버릴 기회였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언제 왔는지 모를 대공님께서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참고로 제 마력은 이제 바닥이에요, 길마님.”
대공은 해로운의 옆구리에 달랑 들려있었다. 그 우스운 꼴에 용사님께서 눈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유대공, 왜 그러고 있니?”
“두 발로 서있기도 힘들어서요.”
“마법은 잘만 사용하더니.”
“그 마법 때문에 이렇게 된 거거든요!”
“왜 성질이니?”
용사님의 말에 대공이 불퉁하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에 해로운이 깐족거리며 대공을 놀려댔다.
“대공님, 약골이죠.”
대공이 해로운을 째려본다. 해로운은 그 시선이 우습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것으로 신경전을 벌이려는 길드원들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물론, 말로만 그렇다는 거다.
어디 내놓으면 부끄러울 길드원들을 자랑스러워한다니, 내 생애 그럴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선 해로운 법사님께 물었다.
“해로운, 너는 어때? 조금 전에 썼던 그거, 한 번 더 쓸 수 있겠어?”
“메테오? 쓸 수는 있는데, 그럼 무너진 것들을 복구시켜주지 못하겠죠.”
“…….”
해로운의 말에 나는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출퇴근을 책임지던 한강대교는 끊어진 지 오래였고, 사람들의 안락한 산책길이었던 한강 공원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일단… 알았어…….”
해로운의 마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도하운아.”
우리한테는 마왕님이 계시니까!
마왕님께서 물에 흠뻑 적셔진 생쥐 꼴로 어깨 위에 무림이를 얹고서 나타나셨다.
마왕님께서 내 앞에 서시더니 무림이를 바닥에 성의 없이 내려놓고는 말했다.
“짐이 망할 무림 놈을 구하고 왔도다.”
“잘했어, 마왕님.”
나는 마왕님을 칭찬해 주고는 우리를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마왕님, 저것들 한 번 더 공격해 줄 수 있겠어?”
“흐음.”
마왕님께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말했다.
“짐의 마법은 오히려 저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 같으니라.”
몇몇이 자신과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그럴 것 같다면서, 마왕님은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그럼, 복구는?”
“이렇게 말이냐?”
마왕님의 손짓 한 번에 무너진 다리가 순식간에 도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둥둥 떠있던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건 우리가 앉아있던 곳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강대교 이용하는 사람들은 마왕성 공략하러 가는 기분이겠구나.”
디자인이 꽤 조악했다.
용사님의 말대로 마왕성 공략하러 가는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한강대교 남단과 북단, 각 입구에는 커다란 해골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마왕님, 원래대로 되돌려 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 말에 마왕님께서 뚱한 얼굴로 다리에 걸린 마법을 도로 풀었다.
제자리를 찾아간 파편들이 다시 물 위에 둥둥 뜨는 것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짐의 마법이 별로였느냐, 도하운아?”
“그건 아니었는데…….”
차마, 마왕님의 디자인이 별로라서 그랬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망할 해로운 놈이 참지 못하고 입을 나불거렸다.
“마왕님 디자인 완전 구렸죠?”
“……!”
해로운 마법사의 말에 마왕님께서 두 눈을 부릅뜬다.
나는 해로운의 등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려주고는 모여있는 길드원에게 말했다.
“다들 그럼 쉬고 있어. 내가 처리하고 올게.”
“길짱님이 처리하고 오신다고요? 어떻게요?”
무림님께서 콜록거리며 물을 토해내고는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셨다.
“무림님, 한강 물 많이 마셨나 봐?”
“저 수영 못하거든요. 물이랑 안 친해서……. 그래서, 길짱님. 혼자서 처리하고 오신다고요? 도대체 어떻게요?”
나는 무림님에게 성녀의 힘을 한 번 사용해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알아서 잘 처리하고 올 거야.”
“……?”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림님께 웃음을 지어주고는 누가 잡을세라 곧장 자리를 박찼다. 향하는 곳은 정령사님이 계시는 곳이었다.
정령사님께선 한강 아래로 잠기려는 나무 주변을 얼려 붙이는 중이셨다.
그렇게 해달라고 말도 안 했는데, 척척 일을 해내고 있는 정령사님이 참 대견했다.
“정령사님!”
“…길드장님?”
정령사가 나를 보고선 희게 질린 얼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왜 또 부르십니까! 아니, 왜 오는 겁니까! 저 바쁩니다! 오지 마십시오!!”
“싫어!”
나는 정령사님께 간단히 대꾸해 주고선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랑 저기 좀 가자, 정령사님!!”
“저기요?”
정령사가 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장난하십니까!! 법사라든지 해로운이라든지 해로운 법사라든지 있잖아요! 왜 저를 데리고 가시려는 겁니까!!”
“해로운은 마력 아껴야 해.”
그에 나는 가볍게 답해주고선 정령사의 뒷덜미를 잡았다. 내게 붙잡힌 정령사님께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으하하학!!”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강하수가 점점 가까워지는 몬스터를 보고는 기겁하며 내 손을 붙잡았다.
“장난하십니까! 우리 둘만으로는 저것들 처리 못 합니다!! 못 한다니까요?!!”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내가 우리 둘이서 처리하자고 할까 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내, 공간이 어그러지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내가 몬스터들을 처리하라며 내보냈던 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길드 보상 아이템 좀 사용했지.”
나는 강하수를 놓아주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강하수가 내게 잡혔던 뒷덜미를 어루만지며 입술을 씰룩였다.
“생각 없이 행동하시는 줄 알았더니…….”
“뭐라 했냐.”
일자로 입을 다무는 정령사님을 보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어쨌거나, 이제 저 망할 몬스터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나는 모여든 병사들 앞에서 손을 비스듬히 들었다. 내 손짓에 맞추어 텅 비어있던 병사들의 두 눈이 붉게 번쩍인다. 그에 나는 비스듬히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해.”
그 즉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앞다투어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덧씌워지는 기억이 있었다. 애써 이를 지워내고선 영광의 검을 뽑아 들었다.
《칭호, ‘검성(劍城)’의 봉인이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칭호, ‘전장의 승리자’의 봉인이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못 이기면 쪽팔려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거다.
그렇기에 꼭 이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