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 *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으허! 송충이! 송충이이!!”
―큐?
송충이를 닮은 충왕종은 짧은 목소리를 끝으로 강렬한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타다닥, 타들어 가는 소리에 강하수가 징그럽다면서 펄쩍 뛴다.
‘그러면서 잘도 구우시네.’
‘천직이야.’
‘우리 대표님 부업은 세○코였어.’
그렇게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대표님! 조심하십시오!!”
도빈이 답지 않게 몸을 날려 강하수를 아래로 깔아뭉갰다. 난데없이 도빈의 아래에 깔린 강하수가 뒤늦게 정신을 챙기고선 두 눈을 끔뻑였다.
“도비 군… 갑자기 왜……?”
하지만 도빈은 답하는 대신 허공을 노려볼 뿐이었다.
도빈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이 무기를 챙겨 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균열 때문이었다.
공간이 어그러지는가 싶더니, 곧 그 속에서 수를 가늠하기 어려운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또 무슨 몬스터야.”
어떤 것은 말을 타고 있고, 어떤 것은 두 발로 서있다.
중요한 건, 하나같이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선 텅 빈 두 눈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텅 빈 두 눈에 붉은 기운이 감돌자, 들리는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인간들에게 해로운 것들을 처치하라.
“……?”
―처치하라.
나타난 것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허공에 쿵, 소리가 나도록 찧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앗싸, 강 대표님 찾았죠~!”
“해로운?!”
회사원 헌터 H 씨가 바닥에 누워있는 강하수의 뒷덜미를 잡고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표님?”
도빈의 황망한 목소리에 뒤이어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이 곳곳에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표님! 대표님이 납치당하셨다!!”
쏟아지는 몬스터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한편, 강하수는 있는 힘껏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해로운!!”
“강 대표님 안전하고 빠르게 모시고 있는 중이죠!”
“뭐가 안전하게 모시는 중이라는 겁니까!”
빠르게는 모시는 중이란 소리였다. 강하수가 해로운의 뺨을 뒤로 밀어내면서 소리 질렀다.
“당장 회사로 데려다주십시오, 이 망할 해로운 놈아!!”
“그건 곤란하죠!!”
해로운이 강하수의 손길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햇볕에 반짝이고 있는 강물이 보였다.
“도착했죠?”
“……?”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해로운은 강하수를 붙잡고 있는 손을 떼어버렸다.
“흐아아악! 망할 해로운 놈이!!”
* * *
“와우.”
치솟아 오르는 물보라에 작게 내뱉은 감탄사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님을 제외한 귀환의 모두가 모여있는 곳은 한강대교였다.
동작대교로 갈까, 한강대교로 갈까 했는데 이곳으로 오기를 잘한 것 같았다. 명소도 이런 명소가 없었다.
그렇게 정령사님께서 만들어 내시는 물보라를 구경 중인데,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법사 도착! 정령사님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왔죠!!”
“저게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온 거니?”
용사님의 말에 법사가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나는 다리 난간에 몸을 걸치고서는 법사를 타박했다.
“너는 애를 저렇게 떨어뜨려 버리면 어떻게 해?”
“강 대표님이 계속 법사를 때려대서 어쩔 수 없었죠.”
맞은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잘도 말한다 싶었다.
“길마님, 호 해줘.”
“꺼져.”
나는 질색하는 얼굴을 보이고선 한강 아래에 줄기를 뻗고 있는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았다.
성인 남성 서른 명은 족히 달려들어야 둘레를 잴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나뭇가지 곳곳에 매달려 있는 열매 안에 몬스터가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왕님, 정령사님께 저 커다란 나무 좀 불태워 달라고 해줄래?”
“정령사 놈아, 도하운이가 저 커다란 나무를 불태워 달라고 하느니라.”
마왕님께서 말을 끝내기 무섭게 얼굴을 가득 찌푸리신다.
“왜 그래? 정령사님이 싫다고 하셔?”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무에는 곧장 커다란 불이 붙었다. 내 물음에 마왕님이 귀를 만지작거리고는 말했다.
“이 망할 정령사 놈이 짐에게 듣기 싫은 비명을 질렀느니라.”
아, 그런 거였어?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마왕님께 말했다.
“마왕님이 이해해. 마왕님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런 거니까.”
“그런 거라면 도하운아, 너에게도…….”
“하면 죽는다.”
마왕님의 말을 가볍게 끊고서는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나무에 불이 붙은 꼴을 보니, 꼭 정월 대보름날에 달집 태우는 모습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대공이 하림이도 데리고 올 걸 그랬다고 말한다.
교육상으로도, 정서상으로도 그렇게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나무가 불에 타 죽기를 바랐다.
“길짱님, 그런데요.”
“응?”
“길짱님이 정령사 형아한테 진언을 날리면 되는데 왜 마왕 형아한테 부탁해요?”
무림님의 시답잖은 질문에 나는 심드렁하게 답해줬다.
“나는 진언을 못 날리니까.”
“헐? 진짜요?”
“그런 거였어요, 길마님?”
무림님과 대공님께서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이내 서로 눈을 마주한다. 그러고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게, 어떻게 봐도 수상쩍은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주먹을 쥐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대교 아래서부터 빠르게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키야아악!!
곧장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향해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르고는 무림님과 대공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진언 못 날리는 거로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무림님. 그리고 대공님.”
“…….”
내 주먹질에 추락한 몬스터가 한강 아래로 떨어지면서 크게 물이 튀었다.
무림님과 대공님께서 멍하니 입을 벌리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신다.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그에 씨익 웃음을 짓는데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장님!”
정령사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난간 아래로 몸을 빼니, 한강 위에 걸음을 딛고 서있는 정령사가 보였다.
“이상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요?!”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변화가 일어났다.
―우오오오!!
한강대교가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얼얼한 귀를 붙잡고선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그 와중에 법사님께서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셨다.
“나무가 아니라 소였나 봐, 길마님.”
소의 울음소리라고 하기에는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였다. 암만 소가 울어도, 손톱을 세워 쇠를 긁는 것만 같은 소리를 낼 수는 없잖아.
돋은 소름을 박박 문지르는데, 무림이가 해맑게 웃음을 터트리며 나무를 가리켰다.
“길짱님! 저거 봐요! 나무가 직립보행해요!!”
“직립보행……?”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무림님의 말대로 나무가 수면 위로 줄기를 올리고선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난간 위로 다리를 올리고선 외쳤다.
“뭍으로 올라가기 전에 잡아야 해!! 강하수! 한강 물 얼려!!”
“그게 쉬운 줄 압니까!!”
파도가 이는 것처럼 출렁이던 한강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게 보였다. 나는 그대로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길드장!!”
“애가 왜 저렇게 막무가내야!!”
뒤를 따라붙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일이 반응해 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영광의 검을 쥐고선 허공을 박차 내달렸다.
―우오오오!!
불유쾌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온다.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선 검을 휘둘렀다. 푸르게 인 궤적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갈라냈다.
“길드장!”
“열매 안에 몬스터가 있어! 그것들 처리해야 해!”
뒤를 따라붙은 용사님께 정보를 건네주고는 속도를 빨리하여 허공을 박차 올랐다.
이름 모를 나무는 얼어붙은 줄기를 어떻게든 빼내고자 버둥거리는 중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그대로 검을 꽉 쥔 채, 아래를 향해 움직였다.
뾰족하게 날 선 나뭇잎이 살갗을 스친 끝에 나뭇가지에 검이 정통으로 꽂혔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파지직, 푸르게 이는 전격이 커다란 나무를 내리치며 듣기 좋은 소음을 만들어 냈다.
콰광―!
―우오오오오!!
그 소리 끝에 들려오는 나무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나는 얼굴을 사납게 찌푸리고선 수풀 밖으로 몸을 움직이고자 했다.
“길드장! 나 죽이려고 작정했니?!”
“용사님!”
“대공의 마법이 없었다면, 세상 하직했을 거란다!!”
용사님께서 내 뒷덜미를 잡고선 수풀을 헤치기 시작했다. 용사님의 옆구리에는 무림님도 계셨다.
무림님께서 나를 보고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길짱님, 너무해요. 구이가 될 뻔했다고요.”
그 소리에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너는 언제 들어온 거야.”
그렇게 우리 셋은 수풀 속에서 사이좋게 빠져나왔다. 용사님이 나를 얼어붙은 한강 위에 내려주고선 묻는다.
“끝난 거니?”
“아마도.”
‘끝났다’고 하면 저 빌어먹을 나무 새끼는 일어날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애매모호하게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얼음 위에 대(大)자로 쓰러져 있던 무림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물었다.
“확실하게 끝내고 올까요?”
“어떻게?”
“주먹으로 완전히 부서뜨리는 거죠!”
아무리 저 나무 새끼가 유해 식물이라지만 너무하다 싶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데, 하늘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거, 유대공의 마법 같지 않니?”
“사형의 마법도 있는데요.”
“마왕님도 계시네.”
왜인지 불안하다.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했고, 사이좋게 얼음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재주껏 피해.
망할 법사 새끼의 메시지가 나타난 건 그 순간이었다.
정령사님께서 얼음 위를 달려오고 있는 우리를 보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길드장님? 용사님? 무림 제일 고수님? 세 분, 왜 그렇게 뛰어오시는…….”
콰과과광―!!
들이닥친 바람이 정령사님의 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말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집어삼켜 버렸다.
“으허헉! 실프시여!!”
휘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빌어먹을 길드원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