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푸르게 휜 궤적을 따라 몬스터들이 갈라져 나갔다.
―캬르륵!
―캬륵! 캬르르!
그것들 뒤로 또 다른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마치 나를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쿠웅, 울리는 진동과 함께 나를 향해 달려들려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크륵… 크르르……!
강도가 약했나 보다. 입가에서 끓어오르는 거무죽죽한 피거품이 보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강도를 높여 성역을 발휘했다.
―!!
또 한 번 울리는 진동과 함께 짓눌러진 몬스터들은 비명 한 번 못 내고 사방으로 터지고야 말았다.
“도하운! 괜찮아?!”
“괜찮으니까 밖으로 나오지 마.”
신살자의 힘을 아낌없이 발휘 중인데도 남은 몬스터가 아직도 수십, 수백 마리였다.
―꾸룩! 꾸루룩!!
―끼에에엑!
아니, 수천 마리는 되는 것 같다.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선 영광의 검을 고쳐 잡았다.
“혼자서 저 많은 걸 어떻게 잡으려고?”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러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니까?”
“싫어. 밖에 나와있을 거야.”
도하인은 그렇게 고집을 부려가며 내 곁에 서고야 말았다. 나는 도하인을 흘긋거리고는 불퉁하게 말했다.
“휘말려도 난 모른다.”
“내가 괜히 하운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는 줄 알아?”
“응. 오빠 백으로 부길드장 된 거 아니냐?”
“아니거든?!”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고는 곧장 자리를 박차 수천 마리의 몬스터 떼를 향해 달려나갔다.
“도하운!”
도하인이 뒤늦게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도하인이 나를 따라잡기 전에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며 신살자의 힘을 발휘했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파지직, 이는 전격이 삽시간에 주위로 퍼져나갔다.
“으악!”
도하인이 짧은 비명을 지르곤 걸음을 뒤로 물리는 게 보였다.
그러게, 그냥 안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꼭 고집을 부려서 다치려고 그래요.
나는 쓰러진 커다란 몬스터 위로 사뿐히 내려앉고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말했잖아. 휘말려도 난 모른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는 무슨 그런 위험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거 스킬 아닌데.”
“어쨌든!!”
씩씩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쿠구궁―!
“!!”
몸을 가누기 힘든 커다란 땅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하운, 뒤!!”
도하인의 말에 황급히 뒤를 돌리니, 땅을 뒤덮고 있는 붉은 마법진이 보였다.
“…미친.”
땅을 뒤덮고 있는 붉은 마법진이 눈부시게 번쩍이는가 싶더니, 땅이 단계적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끝이 아주 뾰족하게 말이다.
“도하운!!”
그리고 그것은 내 코앞에서 멈춰버렸다. 뾰족하게 끝이 선 것에 배가 뚫려버린 몬스터가 끊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것도 네가 한 거야?”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도하인도 침을 꿀꺽 삼키며 내게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는 말했다.
“아니, 저건 법사님이.”
“법사?”
나는 이 미친 마법을 발휘한 법사님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법사님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건.
“예에!!”
뾰족하게 솟구쳐 오른 땅을 단번에 부서뜨려 버리는 무림 제일 고수님이셨다.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영광의 검을 휘둘러 어떻게든 파편을 피해보고자 했지만…….
“으헉!”
“도하인!!”
안타깝게도 도하인을 지켜주지 못했다. 주먹만 한 파편에 이마를 얻어맞은 도하인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나는 그런 도하인의 몸을 황급히 붙잡고선 곧장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웁쓰! 밑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요?!”
저 망할 무림이 새끼가!!
당장에라도 무림이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도하인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상처가 그리 깊게 나지 않았는지 금방 치료가 되었다.
“도하운, 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 힘 그만 사용해.”
“진짜? 진짜 괜찮아?”
“응, 봐봐. 다 나았잖아.”
그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선 빼액 소리를 질렀다.
“망할 무림이 새끼야!!”
“길짱님?! 길짱님이다!! 사형! 여기 길짱님 계세요!!”
바닥을 굴러다니는 파편 뒤로 무림이가 해맑게 웃으며 나타났다. 그 뒤로 해로운 법사님께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둘에게 성큼 다가가서는 무림이의 귀를 있는 힘껏 꼬집어 당겼다.
“악! 아악! 길짱님! 인사가 왜 이렇게 거칠어요?!”
“너 때문에 도하인이 다칠 뻔했으니까 거칠지!!”
도하인이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쏘리! 쏘 쏘리!!”
무림이 새끼가 울상을 가득 지으며 두 손을 싹싹 빈다. 그 모습에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무림이 새끼를 놓아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무림이가 코를 훌쩍거리며 해로운의 뒤로 숨어버렸다. 날래기는 정말 날랜 무림님이셨다.
해로운이 그런 무림이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내게 말했다.
“길마님, 애한테 너무하죠.”
“너무하기는. 그보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거야?”
“응.”
그 경쾌한 대답에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선 엉망이 된 주변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거 네가 다 복구시켜 줄 거야?! 사고도 정도껏 쳐야지!!”
그러자 법사 새끼가 펄쩍 뛰며 외쳤다.
“어쩔 수 없었죠! 몬스터들 너무 많았죠!!”
“맞아요! 너무 많았단 말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난리를 부려서 그나마 정리된 거다, 뭐!!”
난리를 부린 걸 알기는 하나 보다. 그보다 무림이 저 새끼, 또 은근슬쩍 말을 놓으려고 하네?
나는 무림이를 한 번 쏘아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정리가 된 건 좋은데 말이야…….”
“아직 정리된 건 아니란다, 길드장.”
“……?”
난데없이 들려오는 용사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용사님께서 센터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파편을 치우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선 물었다.
“용사님, 용사님은 무슨 사고를 치셨어?”
“나는 창고 하나를 날리기만 했…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니, 길드장?”
“아니야, 중요한 거야.”
나도 정도껏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용사님. 이 자식들, 도대체 건물 몇 채를 부숴먹고 있는 거지.
센터 뒤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있는데, 용사님께서 같이 온 직원을 향해 말했다.
“말해보세요. 저 녀석이 저희 최고 책임자랍니다.”
“내가?”
용사님께서는 내 말을 무시하고선 직원을 향해 말해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용사님의 말에 직원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게이트가 열린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라 총 열다섯 곳으로 모두 1급입니다.”
“와우, 대한민국 망했어요~!”
나는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들어 무림이에게 닥치라며 이것을 던져 주었다. 물론, 무림이는 이를 간단하게 피했다.
센터의 직원이 울상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생성되는 중으로, 생성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오, 나라가 웬일로 일을 했죠.”
이번에는 법사에게 닥치라며 돌멩이 하나를 던져주었다.
센터에서 나온 직원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터트리고는 물었다.
“그 장소가 어딘데요?”
“한강입니다.”
“한강……?”
“네. 한강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나타난 거대한 나무로부터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생성되는 중입니다.”
몬스터들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니, 달갑지 않은 나무였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식물을 유해 식물이라고 하던가?
나는 입가를 한 번 만지작거리고서는 센터의 직원에게 물었다.
“저희한테 그걸 말해주는 이유는, 그 나무를 어떻게 해줬으면 해서죠?”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면목이 없다는 듯이 직원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겠어요.”
“네?”
“알겠다고요.”
내가 거절이라도 할 줄 알았나 보다. 잔챙이 처치보다는 당연히 윗대가리 처치인데 말이다.
“도하운, 가려고?!”
“응, 우리 하인이는 여기 있어.”
“징그럽게 뭐라는 거야!”
오랜만에 애정을 담아 불렀더니, 도하인 이 망할 동생 새끼가 질색하는 얼굴을 보인다.
하지만 그뿐.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도하인은 온갖 아이템을 내 손에 쥐여주고선 말했다.
“다치면 안 되는 거 알지?”
“안 다쳐.”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센터의 직원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나무를 처리하러 가주신다고 해서 감사합니다만…….”
직원은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른 곳의 피해 상황이 현재 워낙 심각해서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 나무를 처리하러 가시기 전에, 다른 곳도 좀 도와주십사…….”
“…….”
그러니까 잔챙이들도 처치해 주고, 윗대가리도 처치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센터의 직원이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하지만, 다르게는 도와줄게요.”
“네……?”
나는 멍하니 되묻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을 길드의 창고를 열어보았다.
[S급, ‘하늘에서 떨어진 좌천사’의 1개 군단의 지휘권]
보상 아이템을 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