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11. 뭐든지 적당히가 좋다
강하수는 고민 중이었다.
“대표님!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곧 방벽이 부서질 거예요, 대표님! 그러니까 어서 도망치세요!!”
H-Entertainment로 대피한 사람들과 소속 연예인들 앞에서 힘을 드러낼지, 아니면 힘을 숨기고선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지. 그렇게 고민 중에 나타난 도하운의 메시지에 강하수는 결정했다.
‘대피하자.’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마음껏 사고 치라는 도하운의 말을, 강하수는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도하운이라면 누구 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책임져야 할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할 거다.
‘그리고 그 제물은 해로운 법사 놈이나 나겠지.’
그렇기에 강하수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이 대표님을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람들 안전도 생각해서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누가 갈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의 물음에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침묵을 깬 건 강하수의 뒤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이 몸이 대표님과 함께 가겠다.”
“!!”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강하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도비 군!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습니까?!”
“사이비를 만나기 위해 나갔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돌아왔습니다.”
“사이비요?”
강하수가 놀라 물었지만, 도빈은 입을 꾹 다물고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 동료 연예인들을 향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네놈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이 몸이 지하 주차장까지 이동해 이렇게 올라와야 했다.”
“……?”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연예인들이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뭐야? 왜 짜증을 내는 거야?’
‘몬스터들이 입구로 들어오려고 하니까 막은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참자. 또라이잖아. 또라이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도비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또라이여서가 아니라 기껏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받은 얼굴이 땀에 젖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방벽이 쿵쿵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표님!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도비! 지금 당장 대표님과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든 어디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벽이 부서지고 말았다.
―쉬이이익!!
나타난 것은 기다란 더듬이가 달린 충왕종이었다.
먹잇감을 찾는 듯이, 더듬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꿈틀대자 강하수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런 강하수의 손목을 도빈이 붙잡고선 말했다.
“대표님, 가셔야 합니다.”
그 소리에 강하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하지만, 그때.
“꺄아아악!”
“흐아악! 거미! 거미가!!”
먼저 도망치던 사람들에게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하수가 자신은 괜찮으니, 어서 사람들을 도우러 가라고 도빈에게 말하려고 할 때였다.
―삐이이이!
“……?”
새가 지저귀는 것과도 같은 울음소리에 강하수가 고개를 들어 올렸고.
툭.
농발거미를 닮은 커다란 거미가 강하수의 이마에 안착했다. 그 모습을 본 도빈이 빠르게 강하수에게서 멀어졌다.
“도비! 대표님을 지키라니까!!”
“시끄럽다! 이 몸의 손에 저런 거미를 묻힐 수는……!”
도빈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니, 잇지 못했다.
홧홧하게 일어난 불길이 강하수를 집어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대표님!”
“누구 물 좀 끼얹어 봐!!”
그 불길이 강하수가 일으킨 것이란 것을,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세기가 약해진 불길이 강하수의 이마에 안착한 커다란 거미를 불태워 버렸고,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강하수가 이마를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악!!”
“대, 대표님?”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강하수는 허공에 큼지막한 물방울 만들고선 얼굴을 집어넣었다.
“…….”
모두가 그 모습에 숨을 죽였다.
강하수는 물방울 속에서 얼굴을 빼내고서는 물기를 세차게 닦아내며 외쳤다.
“이프리트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강하수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 *
―끼에에엑!!
기다란 발톱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하게 통증이 이는 것과 동시에 뺨에 난 상처가 아물었다.
그러기 무섭게 박쥐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야악!
박쥐처럼 생겼지만, 확연히 다른 생김새였다.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가고일’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나는 허공에서 몸을 틀며 뾰족하게 선 송곳니를 피했다. 그와 함께 찌그러진 쇠막대기를 들고선 크게 휘둘렀다.
까앙!
경쾌하게 들리는 소리가 참으로 흥겹다. 나를 향해 달려들던 가고일은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휘파람을 한 번 불어주고는 손에 쥐고 있던 쇠막대기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안 되겠네.”
완전히 반으로 꺾인 게, 아무래도 더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끼에에엑!
―캬악!
남은 몬스터는 아직 수십 마리.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선 열심히 날갯짓 중인 몬스터 떼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열심히 날갯짓 중이던 몬스터들이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날아들었고.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선 발아래를 쳐다봤다. 나를 중심으로 아래쪽이 완전히 짓뭉개져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법사님께 나중에 복구해 달라고 하면 되니까…….”
비록 지금은 저 안쪽에서 붉은 마법진을 번쩍이며 몬스터를 퇴치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콰과광―!
나는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를 뒤로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별관이었다.
본관보다는 낮게 지어진 건물 위로 몬스터가 우글거리며 모여있는 게 보였다.
성역을 썼다가는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이 너무 컸다. 그렇기에 나는 허공을 박차고선 주먹을 높게 들었다.
―우룩?
닭처럼 생긴 몬스터 하나가 나를 알아차렸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얼굴에 나는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고서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그와 동시에 난데없이 주먹을 얻어맞은 몬스터가 날아갔고, 파지직 이는 전격이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졌다.
―욳이오!!
닭들은, 아니. 몬스터들은 그렇게 날갯짓 한번 못 해보고 쓰러져 버렸다.
나는 괜히 어깨를 꾹꾹 눌러준 뒤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는답시고 입구에 세워져 있는 벽이 보였다. 도하인의 스킬 중에 이런 게 있었던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벽을 가볍게 두드려 보았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려 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흐음.”
나는 입가를 한 번 만지작거리고선 이번에는 주먹이 아닌 발을 들었다.
안쪽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이대로 기다릴 수 없었다.
“도하인, 나 들어간다.”
부디 내 말이 도하인에게 전해졌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대로 발에 힘을 실어 넣어 벽을 차버렸다.
쿠르릉―!
산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입구를 막고 있는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나는 잔해를 슥슥 치우고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에 목을 노리는 검에 어깨를 바짝 세울 수밖에 없었다.
피하지는 않았다.
“…도하운?”
그야, 나를 노린 건 도하인이었기 때문이다. 몬스터인 줄 알았나 보다.
나는 허공에서 멈춘 검을 슬쩍 밀어내며 웃음을 지었다.
“무사해 보이네, 도하인.”
“너……!”
도하인이 숨을 한껏 들이켜 마시는가 싶더니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나를 끌어안아 버렸다.
“어… 하인아……?”
너, 우니? 우냐?
잘게 떨리고 있는 어깨를 보니, 진짜 울고 있는 것 같다.
“도하인, 울어?”
“시끄러!”
도하인이 코를 한 번 훌쩍이며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내 어깨를 세게 잡고선 흔들기 시작했다.
“도하운, 너는 본관에 얌전히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위험하게 바깥으로 나온 거야!! 방벽은 또 어떻게 부순 거야!!”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왜 이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 나는 대답 없이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래?”
나는 웃는 얼굴을 싹 지우고선 어깨를 으쓱였다.
도하인은 불퉁한 얼굴로 나를 한 번 보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세게 닦아냈다. 그 모습에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도하인을 놀려댔다.
“도하인, 울었지? 운 거 맞지?”
“시끄럽다니까.”
뚱한 얼굴을 보니 놀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몬스터가……!”
“으아악! 안쪽으로 도망쳐!!”
도하인이 황급히 나를 자신의 뒤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기에 나는 되레 도하인을 내 뒤로 숨기고선 도하인이 쥐고 있던 검을 빼앗아 들었다.
“어……?”
“도하인, 이거 비싼 거지?”
“비싼… 거기는 한데, 잠깐만! 도하운!!”
나는 그대로 있는 힘껏 검을 휘둘러 버렸다.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던 두더지같이 생긴 몬스터가 검을 휘두른 궤적에 따라 반으로 갈라졌다.
바닥을 적시는 거무죽죽한 핏물을 밟으며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영광의 검보다는 못하네.”
나는 도하인에게 검을 넘겨주고선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검을 뽑아 들었다.
허공에서 나타난 검의 모습에 도하인이 놀란 눈을 뜨고는 멍하니 입을 벌린다.
“도하운… 너 도대체 뭐야?”
들리는 말에 나는 눈웃음을 지어주며 답해줬다.
“뭐기는? 귀환자라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