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 *
“싫어.”
“…….”
지한결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의뢰를 받고 있는 줄 알고 그걸 받아?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거든.”
“도하운 씨, 당신께서 처리 중인 그 일과 관련된 의뢰인데도요?”
들린 말에 입술을 다물었다. 지한결이 그런 나를 보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성좌님들께서 들어오는 의뢰에 계속 발목을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 성좌님들께서는 지금 의뢰를 보내지 않고 계셔서 말이야.”
시도 때도 없이 보내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드래곤을 처치한 이후로 날아드는 의뢰가 없었다.
바쁘기라도 한가 보지.
지한결이 비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말한다.
“앞으로도 쭉 보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라. 나는 불퉁한 얼굴로 지한결을 쳐다볼 뿐이었다.
지한결이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쾌한 노래가 들렸다. 지한결이 그 즉시 휴대폰을 꺼내 들고선 말했다.
“네, 도빈 씨. 센터로 이제 출발할 거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전화면 대화 중에 저렇게 전화를 받나 했는데…….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고, 도비 새끼와의 전화를 끊은 지한결은 미소를 그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만났을 때는 원하는 답을 들었으면 합니다.”
“만날 것도 없이 거절이야.”
지한결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렇게 지한결이 손잡이를 잡고선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쿠―웅!!
“!!”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커다란 진동과 함께 거미줄 쳐진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권역 내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전투 요원들은 지금 당장……!
치직, 끊긴 목소리에 나는 멍하니 창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떠다니는 구름 없이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하늘을 뒤덮은 커다란 생명체들이 보였다.
“…지한결.”
나와 같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지한결의 두 눈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네가 받고 있는 의뢰가 뭐야?”
* * *
“오우, 쉣.”
최강의 짧고 굵은 한마디와 함께 센터의 회전문이 박살이 나버렸다.
―키에에에!!
“으아악!!”
“못 들어오게 막아!!”
부서진 회전문 위로 커다란 벽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센터 안쪽으로 들어온 몬스터가 다수 있었다.
“비각성자는 지하로! 나머지는 저것들 처치해!!”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최강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형, 우리는 어떻게 해요?”
해로운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변장하고 있기에 해로운을 비롯하여 귀환의 길드원들을 알아보는 헌터들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가 않았다.
해로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도하운에게 수천 개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죽겠지.’
그렇게 해로운이 어깨를 축 늘어뜨릴 때, 유대공이 울상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림이! 자고 있어서 하운에 두고 나왔는데 괜찮겠죠?”
“하운 쪽은 괜찮지 않을까, 대공님?”
“그보다 문제는 우리란다.”
강인한의 말에 유대공이 호들갑을 떨던 얼굴로 소란이 가득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느라 아주 난리였다.
강인한은 그런 난리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드장만 찾아서 바로 나가자꾸나.”
하지만.
“지금 도하인 부길드장님이 별관에 고립되었다고 합니다!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려다가……!”
“그 인간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하운은!!”
“하운 쪽이랑은 연락 두절됐습니다!”
들려오는 말에 강인한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도하운 혼자서 센터로 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에 해로운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피하고선 입을 열었다.
“누구, 길마님한테 연락해 볼 사람?”
“연락해서 어쩌려고요?”
“물어봐야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아가리가 사람들을 향해 쩍 벌어졌다.
“흐아아악!”
다리에 힘이 풀린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끌어 잡기 무섭게, 강인한이 굴러다니고 있던 쇠막대를 들어 곧장 몬스터를 향해 날렸다.
―끼에에엑!!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며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었다.
“사고 좀 쳐도 되냐고.”
하지만, 본디 사고란 치고 나서 말하는 거였다. 그걸 아는 길드원들은 곧장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지한결’ 님의 의뢰 공유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떠오른 시스템 창을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봤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권능이 일부 해제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신살자’란 이름이었다. 왜인지 가벼워진 것 같은 몸에 나는 기지개를 쭉 켜보았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기라도 하셨습니까?”
“의뢰는 나중에 살펴볼 거야.”
말을 끝맺기 무섭게 안쪽의 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키야악!!
뾰족한 부리를 치켜들고 있는 몬스터가 침을 질질 흘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에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주었다. 몬스터가 그런 나를 향해 부리를 크게 벌린다.
“도하운 씨!”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키야아악!!
묵직하게 누르는 힘에 크게 벌린 부리에서 거무죽죽한 핏물이 튀어나온다.
나는 질색하는 얼굴을 보이고선 지한결에게 말했다.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서 네 ‘의뢰’ 좀 빌린 것뿐이거든.”
“……?”
게이트의 규모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꽤 심각해 보였다.
지금껏 열린 1급 규모의 게이트가 아주 우스울 만큼 말이다.
“지 팀장님! 여기 계십니까?!”
찌그러진 문이 힘겨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지한결을 보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보다 지금 당장 움직이셔야 합니다!!”
“게이트가 지금 어디에 얼마나 열렸습니까?”
“구체적으로 장소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곳에 열렸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시 전체가 게이트에 삼켜질 겁니다.”
남자의 말에 지한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이내 두 손을 주먹 쥔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마치 도움을 바라는 듯하여 말했다.
“센터에서 각성자로 인정받았는데 뭔들 못할까.”
지한결이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다. 그에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서 가기나 해.”
지한결은 그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남자의 뒤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
“보자, 나는…….”
―끼아아악!!
“흐악! 시발!!”
뚫린 벽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대가리에 나는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말았다.
콰광!
푸른 벼락이 내리쳤고, 몬스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뚫린 벽 아래를 쳐다봤다.
다행히도 깔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길드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다들 ㄱㅊ?
그러기 무섭게 길드원들의 성난 메시지가 빠르게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북부대공| : 안 괜찬아여ㅠㅠㅠ!! 우리 림이 어케해여ㅠㅠㅠ
|무림제일고수| : 길짱님! 지금 어디에여?! 길짱님네 동생분은 별관에 있다는데 같이 있는 거심?
|용사| : 참고로 우리는 센터에 있단다, 길드장.
시야를 빼곡하게 가린 메시지들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센터……? 그보다 도하인이 별관 쪽에 있다고?”
우리가 차를 별관 쪽에 댔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신호가 잡히지 않는 먹통이었다.
“귀찮게 됐네…….”
도하인이라면 난데없이 열린 게이트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다가 별관 쪽으로 간 걸 거다.
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어쩐담.”
나는 별관이 있는 곳을 보고자 아슬아슬하게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전뿐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별관을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본관 건물에서 별관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들어오는 길에 봤던 안내 지도에도 그런 길은 없었다.
어떻게 별관 쪽으로 움직일까 고민하는데 메시지가 날아왔다.
|Pr. 마왕| : 도하운아, 지금 어디 있느니?
|Pr. 신살자(길드장)| : 아직 센터. 마왕님은 어디야?
|마왕| : 짐도 센터이니라.
우마한에게 얻어맞다가 사이좋게 센터에 갇힌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안쪽으로 걸음을 돌리곤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로비로 갈 테니까 다들 그쪽으로 와, 알겠지?
해로운의 포털을 이용해서 별관 쪽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로비로 오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신살자(길드장)| : 뭔데.
|9서클대마법사| : 우리 지금 사고 치는 중이야.
“…….”
요컨대, 들이닥치는 몬스터를 해치우는 중이라는 말이었다.
“이 망할 새끼들이…….”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고는 시원하게 뚫린 바깥을 다시 쳐다봤다.
커다란 날개를 펼쳐 들고 있는 수십 마리의 드래곤들이 보였다. 그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그래, 마음껏 사고 쳐.
나를 발견한 드래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그것을 보며 나는 굴러다니고 있는 쇠막대 하나를 집어 들었다.
|9서클대마법사| : 진짜? 진짜 사고 쳐도 돼?
|신살자(길드장)| : ㅇㅇ
믿기지가 않는지, 법사 새끼가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9서클대마법사| :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나중에 딴말하면 로운이 울면서 길드 나갈 거죠ㅠ
|신살자(길드장)| : 지랄ㄴㄴ
가까이 다가온 드래곤이 큰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보며 나는 굵은 쇠막대를 크게 휘둘렀다.
까앙, 휘어지는 쇠막대와 함께 드래곤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낸다.
푸르게 번쩍이는 전격을 보며 나는 개운한 얼굴로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신살자(길드장)| :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마음껏 사고 치라고.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이 말을 후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