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센터의 고위 관료들은 기자들을 불러놓고선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댄 것이었다.
나와 우마훈이 건네는 이야기에 수긍하는 즉시, 기사를 뿌려 언론 플레이를 할 작정이었단다.
“그래도 자네들 신분은 안 밝혔다네!”
그렇다고 해도 마왕님의 신분은 이미 밝혀져서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가 재미난 댓글을 보고는 키득거렸다.
“마훈아, 이것 봐봐. 다들 너를 찬양하고 있어.”
“짐의 위대함을 사람들이 이제야 알아주었도다.”
마왕님께서 댓글을 읽지도 않고 뿌듯한 웃음을 지으신다.
그와는 달리, 우마한의 얼굴에는 우중충하게 먹구름이 가득 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 사는 어느 마왕님 덕분에 화랑의 이미지는 아주 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마한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는 벌벌 떨고 있는 센터의 고위 관료를 향해 말했다.
“그쪽들 덕분에 화랑의 이미지가 아주 제대로 망가졌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그에 뒤늦게 도착한 도하인이 비딱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우마한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분명, 센터를 방문한다는 것에 대한 비밀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주 궁금하군요.”
우마한의 말에 고위 관료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앞다투어 변명 섞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비밀을 보장해 주려고 했네! 그런데 저 양반이……!”
“자네가 언제 그랬나!! 아닐세, 우마한 길드장! 이렇게 일을 벌이자고 한 건…….”
“자네 아닌가!”
“내가 언제! 언제 그랬나!!”
그냥,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센터장의 자리가 현재 비어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저렇게 엉망인 건가 싶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첩을 들어 아웅다웅 다투는 중인 고위 관료를 향해 이를 펼쳐 보였다.
“그만 싸우시고요. 저희 둘, 각성자로 인정해 주겠다는 말이나 지켜주세요.”
“그… 그래도 일단 검사는 받아봐야 할 듯싶네만…….”
그 말에 나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우마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우마훈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팔꿈치를 들어 우마한의 옆구리를 찔러버렸다.
“아학! 뭐 하는 짓이야! 우마훈!!”
“형님의 옆구리를 찔렀도다.”
“그러니까 왜 찔렀냐고!”
“도하운이가 찔러서 찌른 것뿐이니라.”
“?”
우마한이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마치 신살자님 왜 마훈이를 시켜서 저를……? 이라고 묻는 것 같아 그 시선을 외면하며 우마훈에게 말했다.
“마법 한 번 더 걸어보라고 찌른 것뿐이야, 망할 새끼야.”
“무슨 마법을 원하느냐?”
“금단의 언약! 저 인간들한테 걸었던 거!!”
“아.”
빼액 소리 지르기 무섭게 마법진이 곳곳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펼쳐진 마법에 고위 관료들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게 꽤나 사악하게 보였나 보다.
“일주일! 아니, 내일 당장 보내주겠네!!”
“뭐를요.”
“각성자 증명서! 센터 설립 5주년 기념우표도 넣어서 주겠네!”
“아니요, 그건 필요 없어요.”
100주년이라면 몰라도. 그보다 우표를 어디다 써먹으라고. 그래도 빨리 나와서 다행이다.
각성자 증명서는 빨라도 일주일은 있어야 나온다던데…….
심드렁한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고위 관료들을 쳐다보자, 그들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 아니면 오늘 중으로 보내줄 수도 있네!!”
그 말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를수록 좋죠.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그렇게 답해주고는 방을 나왔다. 뒤따라 나온 도하인이 투덜거리며 묻는다.
“하루 만에 나오는 거 불가능하다면서. 그보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마왕님께서 마왕답게 일을 좀 벌이셨어.”
“마왕?”
아차.
이미 내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 담겠냐마는, 나는 입가를 가리고 도하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도하인은 내 말에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마왕이라면 저기서 우마한 길드장에게 맞고 있는 쟤를 말하는 거 맞지?”
나는 도하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도하인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우마한은 ‘풍월주’라고 불리더니, 그 동생은 ‘마왕’이라고 하네. 아주 쌍으로 지랄들이야.”
“너는 종놈이잖아.”
“야.”
도하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혀를 날름 내밀어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각성자로 인정을 받는 게 생각보다 쉽게 처리가 됐으니, 어서 돌아가 다음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한창 싸움 중인 우씨 형제를 지나쳐 센터를 나가려는데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익숙한 사람과 눈이 한 번 마주치고, 나는 도하인보다 한 발자국 먼저 앞서 걸어 나갔다.
“도하인, 먼저 나가있어.”
“어디 가려고? 화장실?”
“아니,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 좀 나누고 갈게. 차에 먼저 가있어.”
“네가 센터에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쨍하게 외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벽에 기대어 서있는 ‘아는 사람’에게 달려갔다.
“도하운!”
“여기! 아는 사람!!”
“……?”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는 아는 사람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도하운! 야!!”
간발의 차로 나를 놓친 도하인이 꼭 닫힌 문을 쿵쿵 두드린다. 나는 문 너머의 도하인이 들을 수 있도록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짧게 끝내고 나갈게! 차에 시동 걸고 있어!!”
도하인은 5분 만에 안 나오면 센터를 뒤집어엎어 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은 뒤에야 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야기 좀 나누자고. 어차피 너도 나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내 물음에 지한결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만…….”
“그럼, 문제없네. 그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센터 소속이니까요. 각성자로 증명은 받았습니까?”
“마왕님 덕분에 편하게 받았지. 그래서 나랑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게…….”
곧장 본론을 꺼낼 줄 알았던 지한결이 뜸을 들인다.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저러는 건가 싶었다.
지한결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목소리를 들려줬다.
“도하운 씨, 당신은 귀환을 밝힐 생각입니까?”
“그러려고 여기 와서 각성자 증명을 받았겠지?”
내 말에 지한결이 미간을 살포시 좁힌다. 그 모습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왜? 이번에도 나서지 말라고 하려고?”
“그 말을 한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소 불만이 어린 목소리였다.
지한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활동하기 편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뭐?”
내가 놀랄 말을 말이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뜬 푸른 시스템 창이 있었다.
[‘지한결’ 님께서 의뢰 공유를 요청하셨습니다.]
“거래합시다, 도하운 씨.”
* * *
[속보] 센터, 현재 폐쇄 조치 中
[속보] 화랑, 현재 우마훈은 화랑 내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 센터에서 일어난 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뉴스에 해로운이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길마님께서 마왕님과 함께 센터를 쳐부수는 중인가 보죠.”
해로운의 말에 유대공이 그럴 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마왕님 혼자 부수는 거 아닐까요? 길마님은 그걸 말리는 중이고요.”
그에 강인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길드장 성격에 마왕이랑 같이 센터를 부수고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면 길짱님께 메시지 보내면 되잖아요!”
최강의 말에 강인한이 낮잠에 든 하림이의 이불을 끌어 올려주며 말했다.
“길드장이 메시지 보내지 말라고 했잖니.”
“진언은요? 진언은 보내지 말란 말 없었잖아요!”
해맑기 그지없는 최강의 얼굴에 강인한이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한번 보내보렴.”
“오케이~!”
“나중에 길드장한테 처맞아도 나는 모른단다.”
“…….”
최강은 목소리를 내뱉으려던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하운이 제공한 방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한 귀환의 길드원들은 현재 하운 내의 귀빈실에 모여있는 중이었다.
회사를 굴려야 할 강하수와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를 이시온을 제외하고 말이다.
여기에 우마훈은 도하운과 함께 움직이고 있으니, 그 역시 제외한다.
어쨌든, 귀환의 길드원들은 도하운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면 되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는 그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해로운이 무슨 새로운 소식이 들어온 게 없나 화면을 여러 번 새로 고쳤다.
[단독] 센터, 폐쇄 조치 해제
“흐음.”
해로운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서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이렇게 기사가 뜨는 걸 보면, 센터에서 무슨 일이 생기긴 한 것 같은데…….
그때, 유대공이 휴대폰을 들었다.
“길마님 번호 있는데 전화해 볼까요?”
“내가 전화해 볼게.”
해로운은 그 즉시 도하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해로운이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선 말했다.
“…안 받는데.”
“마왕님 번호는 없어요?”
“우마한 길드장님 번호는 있는데……. 이쪽으로 전화해 볼게.”
해로운이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는가 싶더니 전화가 뚝, 끊기고 말았다.
그에 해로운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우마한 길드장도 안 받는데?”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해로운이 하나같이 굳은 얼굴들을 보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누구, 나랑 같이 센터로 나들이 갈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