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 *
도하운과 우마훈이 센터로 향하는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아 센터에 도착한 도하인은 도하운을 붙잡고선 몇 번이나 했던 이야기를 또 반복했다.
“도하운, 알았지? 그 노친네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구슬려 먹으려고 하면 당장 나오는 거야.”
“알았다니까? 지금 그 말이 몇 번째인 줄 알아?”
“알 게 뭐야!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간다 싶으면 내가 준 거 있지? 그거 바로 눌러.”
“누르면 뭐가 달라져?”
도하운의 짜증 섞인 물음에 도하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누가 들을세라 도하운에게 속닥거렸다.
“주변에 우리 길드원들이 잠복해 있으니까, 위로 바로 튀어 올라갈 수 있어.”
결국, 사고를 치겠다는 말이었다.
그에 도하운은 도하인이 준 것을 절대로 누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도하운아.”
도하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고, 곧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우마훈이 모습을 보였다.
우마훈은 도하인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도하운에게 곧장 말을 걸었다.
“도하운아. 너는 ‘도하운아’라고 부르는 게 좋으냐, ‘하운아’라 부르는 게 좋으냐. ‘하운’이라 하는 게 좋으냐.”
“도대체 그 셋의 차이가 뭐야?”
“뭐라고 생각하느니?”
도하운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는 눈빛으로 우마훈을 쳐다봤다.
“마훈이가 지금 임금님 말투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우마훈의 뒤로 우마한이 나타났다. 누가 알아볼세라 꼼꼼하게 변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건 도하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하운의 길드장인 도하준의 동생과 화랑의 길드장인 우마한의 동생이 센테에서 각성자 여부를 확인받는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됐다.
센터 쪽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그 둘이 방문한다는 사실은 비밀로 보장해 준다고 했다.
“마왕님…이라 부르면 안 되고, 마훈이도 왔으니까 나는 이만 들어가 볼게.”
“야! 내가 말한 거 꼭 명심해야 해! 알았지? 이상한 거 같으면 내가 준 거 꼭 누르고!!”
“알았다고!!”
도하운이 그렇게 우마훈과 함께 센터 안으로 들어간 뒤, 도하인은 초조함 가득한 얼굴로 같은 자리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도하인 부길드장, 보는 사람 정신이 다 사납군요. 얌전히 좀 있어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는 우마한 길드장께선 그 다리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다리 떨면 복 나간다는 말도 듣지 못했나 봅니다.”
“다리를 떠는 이유는 혈액 순환을 위해서입니다.”
“손톱을 뜯는 이유는요?”
“미관상 정리하기 위해서고요.”
“…….”
도하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우마한을 쳐다봤다.
도하운과 우마한이 센터에 들어간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둘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도하인이 손목시계를 흘긋거리고는 다시 센터 쪽을 보며 입술을 뜯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별일은 없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도하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압수당한 거라면?’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도하인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렀다.
“도하인 길드장? 안색이 안 좋군요. 여기는 제가 볼 테니 길드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하인은 당신의 뭘 믿고 돌아갈 수 있겠냐는 시선을 보낸 뒤 폰을 꺼내 들었다.
도하준에게 센터로 침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도하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도하준이 전화를 걸었다.
도하인이 허겁지겁 도하준의 전화를 받고서는 입을 열었다.
“형? 안 그래도 지금 전화하려고 했는데…….”
―하인아! 지금 당장 센터로 들어가서 하운이 꺼내와!!
“응?”
도하준의 다급한 목소리에 도하인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금 당장 방송국에 연락 넣어! 특종이야, 특종!!”
“팀장님……! 지금 센터 쪽에서 들어온 소식이 있는데……!”
“네, 지금 바로 작업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대로 기사 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센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자들의 모습에 도하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새끼들이……! 비밀 보장은 개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하운이 당장 센터에서 데리고 나와, 하인아!!
“안 그래도 지금 센터로 들어가려는 참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우마한 길드장 역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선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뉴스 봐! 뉴스!!
“뉴스……?”
도하인이 센터로 들어서는 회전문을 통과하면서 만인의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속보] 신원 미상의 남자, 센터의 고위 관료를 향해 난데없이 “꿇어라”를 시전
[속보] 신원 미상의 남자,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으로 밝혀져… 화랑, 현재 사실 확인 中
“……?”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던 도하인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하나뿐인 누나에 관한 기사는 올라와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속속들이 올라오는 기사에 적힌 ‘신원 미상의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도하인이 멍하니 중얼거리기 무섭게 소란이 가득한 센터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마훈! 이 미친 자식!!”
우마한은 그렇게 도하인을 지나쳐 센터를 내달려 갔다. 그 모습에 도하인도 뒤늦게 걸음을 박차 달리기 시작했다.
* * *
마왕 새끼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인 게 분명했다.
마왕과 함께 있는 방은 중세 시대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은 방이었다. 원래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고, 마왕님께서 이렇게 바꾼 거다.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센터의 고위 관료들은 지금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구르는 중이었다.
“끄…으윽……!”
“끄흐읍……!”
마왕님께서는 옛 임금님께서 앉으시던 의자와도 같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선 믹스커피를 홀짝이는 중이셨고.
이런 상황에서 커피가 잘도 넘어가는구나 싶었다.
“한잔하겠느냐, 도하운아.”
“…필요 없어.”
이런 상황에서 여유로이 커피를 마시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먼저, 센터의 고위 관료들이 지지부진하게 이야기를 끈 게 문제였다.
“도하운 양은 말입니다. 이전, ‘H-Entertainment’에서 있었던 심사에서 해로운 씨의 도움을 받고 나오셨었지요?”
“그때는 그 해로운 씨가 심사 도중에 참가한 일이라고 여겼기에 ‘비각성자’라고 판명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나와 우마한의 각성 여부는 시험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지난날을 꺼내가며 떠들어 댔다.
“그러고 보니 도하운 양, 도하준 길드장께 아주 큰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도하준 길드장도 돌발성 적합자 심사의 통과자이지요.”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도하준 길드장을 ‘정기적 적합자 심사’의 통과자라고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가족을 건드렸다는 거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우마한 길드장도 마찬가지이지요? 하긴, ‘돌발성 적합자 심사’보다는 ‘정기적 적합자 심사’ 쪽이 이미지를 만들기 유리하니까요.”
마왕님네 가족도 건드렸다.
“우리 형님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도다.”
마왕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나셨다.
“도하운의 오라비 되시는 그분의 이름도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느니라.”
시시덕거리면서 앉아있던 센터의 고위 관료들이 당혹감이 짙은 눈으로 마왕님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마왕님께서는 단조로이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짐은 도하운과 긴히 의논할 것이 있으니, 어서 빨리 ‘각성자’라고 증명받아야겠도다.”
그 말과 함께 곳곳에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시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고위 관료들이 웅성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왕님께서 손가락을 맞부딪치고는 환하게 빛이 들어오고 있던 방을 순식간에 바꾸셨다.
“도하운과 짐을 ‘각성자’라고 인정하도록.”
그 순간, 나는 펼쳐진 마법진이 ‘금단의 언약’을 나타내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마왕님의 진중하고도 근엄한 목소리에 센터의 고위 관료들이 고개를 끄덕일 리가 없었다.
“지금 누구 앞이라고 그딴 말을……!”
우리를 향해 삿대질하던 노인이 돌연 입을 부여잡았다.
“크흡… 으……!”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몇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왕님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인정하는 것이 싫다면 짐의 앞에서 무릎을 꿇거라.”
노인 공경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막말이었다. 그 역시 콧대 높은 센터의 고위 관료들이 들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언약에 의해 고위 관료들은 모두 입가를 부여잡고선 무릎 꿇고 말았다.
그래서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거다.
“…미쳐버리겠네.”
환장할 상황에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중년의 남자가 수첩을 꺼내 들고선 빠르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해주겠네! 도하운 양, 자네도! 그리고 저자도! 모두 각성자라고 인정해 주겠다는 말이네!!]
어쨌거나 목적은 이루었다.
나는 남자에게서 수첩을 받아 든 뒤 마왕님께 보여주었다.
“다행이도다.”
“그러니까 어서 마법 해제해. 방도 원래대로 돌려놓고.”
우마훈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펼쳐져 있던 모든 마법을 거두었다. 넓은 창으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혀의 마비가 풀린 고위 관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숨까지 옥죄려고 했느니라.”
“…….”
마왕 새끼, 마신한테 안 좋은 것만 배워서는.
괜히 악당이 된 기분이라 성녀의 힘을 사용하는 선행을 베풀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마왕님의 마법에 고통받았던 고위 관료를 향해 성녀의 힘을 사용하려는데, 굳게 닫혀있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우마훈… 우마훈!!”
문을 부수며 나타난 건 우마한 길드장이었다. 급하게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우마훈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짐은 여기 있느니라! 마침 잘 왔도다. 조금 전, 저자들에게서 짐과 도하운이 각성자로 인정을 받았……!”
우마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우마훈, 너 이 망할 새끼!! 뭔 일 있으면 그냥 나를 부르라니까 아이템은 얻다 두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날아드는 우마한의 발 차기에 가드를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10점 만점의 만점짜리 발 차기에 나는 영혼 없이 손뼉을 치며 생각했다.
조금만 더 빨리 나타나 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